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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사고 설파하던 로버트 H. 슐러 목사 별세

로버트 슐러

by 김경호 진실 2015. 4. 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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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사고 설파하던 로버트 H. 슐러 목사 별세
전통신학 강조하는 교단의 입장과 달리 개인 주장 펼쳐
2015년 04월 04일 (토) 10:36:22 김정언 기자 truthnluv@gmail.com

보라빛 박사복을 즐겨 착용하고 희망과 생명의 정원을 상징하듯 짙은 초록색 나무를 배경으로 설교를 하는 독특한 목회와 예배전략을 구사하며 ‘긍정적 사고’를 설파하던 로버트 H. 슐러 목사가 별세했다.

   
▲ 로버트 H 슐러 목사 Ⓒhttp://www.joy105.com

미국 유명교회의 하나인 크리스털 커시드럴(수정교회)의 로버트 H. 슐러 목사가 4월 2일 별세했다. 향년 88세였다. 별세 장소는 아티시어 요양원. 사인은 2013년부터 앓아온 식도종양. 긍정적사고(possiblilty thinking)의 전도사였던 슐러 목사는 자신의 장기 TV방송 프로그램인 ‘아워 오브 파워’(HOP)를 통해 노먼 빈슨트 필 목사와 같은 긍정의 힘을 설파하면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포함한 30여권의 저서를 냈다. 1980년에는 그의 꿈을 실현한 명소 크리스털 커시드럴 건물을 오픈해 유명세를 더하기도 했다.

슐러는 여러 모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50년대에 드라이브인 극장(승차한 채 영화감상을 하는 자동차극장)을 빌려 주일 예배를 갖는가 하면 미국 최초로 청중이 승차한 채 예배를 드리는 드라이브인 교회를 통해 교회를 급성장시키기도 했다. 또 일찍이 텔레비전 등 미디어의 힘에 눈 떠 텔리밴젤리즘에 앞장섰다.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에 시대를 앞서가는 초현대적인 건물을 짓고, 보라빛 계열의 박사복을 즐겨 착용했으며 언제나 희망과 생명의 정원을 상징하는 듯한 짙은 초록색 나무를 배경으로 설교를 하는 독특한 목회와 예배전략을 구사했다. 그는 또 자신의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22에이커 짜리 쇼핑센터’로 부르면서 실제로 교회 구내에서 상품을 판매해 이 방면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폭넓은 미소를 띠고 낙관적인 모습으로 접근하는 그의 화술은 새로운 임프레션을 주면서 현대적이고도 호소력과 설득력이 뛰어났고 두 팔을 내밀어 펼치는 제언적인 몸짓이 때로는 과장스럽거나 유머스럽기도 했다. 이러한 슐러의 사상과 모습을 가장 본뜬 케이스가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울 오스틴 목사이다.

   
▲ 크리스털 커시드럴(수정교회) Ⓒhttp://www.joy105.com

크리스털 커시드럴은 명칭부터가 ‘대성당’이라는 뜻으로 천주교를 닮은 데다 벽과 지붕이 모두 1만 여개의 유리창으로 구성돼 있고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벽 한쪽에 설치해 주로 클래식한 교회음악들을 연주하곤 했다. 슐러는 특히 교계나 사회를 가리지 않고 각계에서 성공한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직접 인터뷰를 주고받으며 청중과 약 2천만의 세계 TV 시청자들에게 나름의 희망 메시지를 심기도 했다. 초청받은 명사들 중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있었다.

슐러는 어린 시절 풀밭에 누워 밤하늘에 뜨는 첫 별에다 소원을 말하는 등 꿈을 잃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가이드포스트> 창간발행인이었던 필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본뜬 슐러의 ‘긍정적사고’ 철학은 뉴에이지 심리기법의 일부로 평가돼온 구상화(visualization)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이들과 비슷한 사상을 공유해온 조용기 목사의 ‘4차원 신앙’과 함께 교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필의 긍정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는 그밖에도 광림교회의 김선도 원로목사 등 여러 사람들이 있다. 슐러는 여러 모로 포스트모던 시대를 앞당긴 교계 명사의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던 슐러도 대물림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나 슐러 왕국의 몰락으로 내달음질쳤다. HOP 호스트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다가 해고한 몇 주 후 아들이 담임목사직도 사임했다. 목회행정직은 대신 딸 실라 콜먼에게 물려주었다. 딸도 나중 떠나서 딴 사역을 시작했다.

늘 긍정적이던 그의 이런 부정적인 뉴스가 엄청난 실망의 파장을 몰아오면서 헌금과 기부금을 급격히 줄어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4,300만 달러 규모의 빚더미 탓에 2010년에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가 자랑삼던 건물은 '대성당'이라는 이름답게 2011년 천주교에 넘겨졌다. 2012년에는 저작권과 계약 문제로 부부가 모두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500만 달러 배상 청구 소송에도 패배했다.

한편 둘 다 아이오와 주 북부의 오렌지시티 출신인 슐러 부부는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가족 배경으로 일리노이주 홀랜드에서 지내다가 교단과의 약조로 당시 급성장하던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로 이주해 목회 대성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전통신학을 강조하는 교단의 입장과 달리 그는 교리보다 개인의 ‘자기긍지’의 회복에 힘을 쏟았다. 그 구체적인 실례로 슐러는 딸 캐럴이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일부를 잃고도 스키 챔피언이 된 사례를 들곤 했다.

5세 때 이미 목회자를 꿈꾸기 시작한 슐러는 필 목사처럼 평생 미국개혁교단(RCA)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교단을 초월하는 활동 양상을 보였다. 아내는 지난해 2월에 먼저 떠나보냈으며, 후계자로 지목했다가 관계를 단절한 독자 슐러 2세 외에 다른 후계자로 삼은 딸 쉴라 콜먼 등 일부가 여성목회자인 네 딸들, 현재 목회자이자 HOP 운영자인 바비 슐러를 비롯한 손자손녀를 유족으로 남겼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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