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에서는 루터의 도시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루터와 관련된 교회 건물들을 보수하고, 루터뿐 아니라 그의 부모가 살았던 생가들까지도 손을 보고 있다. 루터의 동상이 서 있는 광장들마저 새롭게 단장하며, 이모저모로 도시들을 치장하느라 야단법석이다. 한 마디로 형태를 개선하고(reform)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렇게 공사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종교개혁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일지 모른다. 종교개혁은 말뜻 자체가 형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루터부터 -아니 정확하게 이미 중세 후기의 여러 선각자들부터- 시작된 운동을 ‘reformation’이라고 일컫는 까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종교 ‘개혁’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종교 ‘개형’(reform)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의 형태를 바꾸는 것에서 실현되었다. 사물(성상과 성물)을 제거하고, 건물(교회)의 구조를 변경하고, 예식(미사와 성찬)을 달리하고, 제도(성직자와 수도원)를 폐기하고, 마침내는 이념(사상과 신학)을 개조하였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의 어떤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이 제시하는 형태로 항상 돌아갔다.
개혁자들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개혁에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우리가 어떤 문제에 빠져있는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금전과 건물에 집착하고, 예식과 제도가 인간적이 되고, 사상과 신학이 자유화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교회의 문제는 우리 시대의 문제 및 우리 자신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교회는 거시적으로는 시대와 관련되며, 미시적으로는 자아와 관련된다. 따라서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교회 자체를 개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을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개혁자들이 교회개혁을 시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사회를 개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를 개혁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저항하는 것이다. 개신교가 통칭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혁자들은 중세의 모든 것에 저항하였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저항정신의 실현이었고, 그래서 개혁자들은 치열하게 저항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치열하게 저항해야 한다. 부패 성향의 시대와 씨름해야 하고, 범죄 성향의 자아와 싸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타락 성향의 교회에 대하여 항상 전투해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저항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저항하고 있는가? 마음에 만족을 가져다주는 금전에 대하여, 어깨를 으쓱하게 만드는 건물에 대하여,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예식에 대하여, 인간 중심이 되어버린 제도에 대하여, 세속화된 사상에 대하여, 시대의 요청에 항복하는 신학에 대하여, 우리는 저항하고 있는가?
한국교회에 잘된 부분과 잘한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한국교회의 선하고 훌륭한 모습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칭찬거리가 너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문제들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끊임없이 저항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한국교회는 밖에 버려져 발에 밟히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누가 한국교회는 개혁될 수 없다고 말하는가?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보수해야 할 루터의 집도, 교회도, 광장도, 도시도 없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종교개혁자들이 본질적으로 모든 형태를 바꾸기 위해서 언제나 끊임없이 돌아갔던 유일한 표준인 그 성경을 손에 쥐고 있다.
우리의 자아와 시대와 교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저항한다면, 개혁은 지금 여기에서 오늘부터 시작될 수 있다.
조병수 총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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