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력(敎理曆) 설교(1)
조병수 목사(본보 주필, 합신 명예교수)
설교가 청중에게 남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문하면서 한 가지 설교 방식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설교는 여러 방식으로 제공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제목 설교이다. 이것은 설교자가 필요에 따라 임의로 주제를 선정해서 설교하는 방식이다. 이때 경건, 윤리, 일상 등 신자들의 믿음과 삶에 도움을 주는 주제들이 선정된다. 그런데 제목 설교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설교자가 매번 새로운 주제를 찾아내는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또한 청중 쪽에서 보면 습격을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설교자는 목적을 가지고 설교하지만 청중은 예기치 않은 설교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목 설교는 대체로 단발로 하는 설교인 까닭에, 가끔 일련의 순서를 따르는 설교들을 제외하면, 각 설교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청중의 뇌리에 쌓이지 않는다.
이에 비해 강해 설교는 훨씬 나아 보인다. 이것은 성경 가운데 한 책을 선정하여 연속으로 설교하는 방식이다. 강해 설교는 책의 흐름을 따르기 때문에 제목 설교와 달리 분명한 순서가 있고 맥락이 이어지는 내러티브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나 마태복음처럼 책의 분량이 클 경우 어쩔 수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시리즈 설교가 지속되는 까닭에 설교자와 청중이 지루함을 느끼기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설교자에게는 책 한 권을 끝낸다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청중은 오래 전에 들었던 강해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력 설교를 선호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오랜 전통 가운데 시행된 설교 방식으로, 연중에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절기를 기준으로 삼아 설교를 편성하는 것이다. 교회력 설교는 매년 계절마다 동일한 주제가 반복되어 청중에게 메시지가 각인된다는 점에서 일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회력 설교는 그 내용이 주로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 치중된다는 문제점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비절기 기간에 다른 주제들을 채택할 수 있을지라도, 기독론 설교의 주제 반복은 내용의 다양성을 놓칠 뿐 아니라 형식화되거나 고착화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교리문답 또는 신앙고백 설교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설교 방식의 문제들을 타개하는 탁월한 설교 방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를 문답 또는 진술로 작성한 고백서를 연중 설교로 풀어내는 설교 방식으로, 논리적으로 전개될뿐더러 내용도 풍부하다. 게다가 매년 같은 주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청중의 기억에 새겨진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설교에 바탕 되는 성경 본문이 대체로 “인증 성구”(proof text)에 머무는 경향 때문에 본문 선택이 다채롭지 않다는 문제가 남는다. 나아가서 이 설교 방식은, 교리문답 또는 신앙고백이 오래 된 것일수록, 오늘날의 신자들이 종종 마주치는 다양한 현대 이슈들을 다루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동반한다.
여러 설교 방식의 장단점을 살펴볼 때, 논리적인 연속성, 견고한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 반복성, 기억에 남음, 주제의 다양성, 오늘의 사안들에 답을 주는 현실성 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설교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교리력(敎理曆) 설교를 제안한다. 기독교 진리는 보통 일곱 가지 교리로 진술된다. 계시/성경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이 그것이다. 교리력 설교란 주일 예배에서 일곱 교리를 달마다 순차적으로 설교를 하는 방식을 말한다. 물론 주일 외의 여러 집회에서는 위에 언급한 설교방식들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곱 교리를 매월 설교하면 일곱 달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다섯 가지 주제를 더한다. 무엇보다 성령론을 넣는 것이 좋다. 또한 신자의 경건과 신앙생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일상생활,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 기독교 세계관을 포함시킨다.
일곱 교리 더하기 다섯 주제는 열두 달을 망라한다. 이처럼 기본 교리와 필수 주제를 조합한 열두 가지 내용을 매달 순차적으로 설교하는 교리력 설교는 몇 가지 장점을 가진다. 교리력 설교는 주제가 다양하다. 다양한 주제가 매월 논리적인 연속성을 따라 설교된다. 교리력 설교는 열두 주제를 1년 단위로 반복적으로 설교한다. 연속성과 반복성을 지닌 설교는 청중의 뇌리에 뚜렷하게 새겨진다. 교리력 설교는 우리가 당면하는 현실 문제들을 직접 다룬다. 청중은 이런 교리력 설교를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배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현실을 살아가는 능력을 얻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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