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성경이 되게 하라
잘 아는 바와 같이 종교개혁은 성경을 사제들과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것으로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변혁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경이 신자들의 손에 들려지게 되었을 때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성경 본문을 주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모든 ‘교리’를 배제하고 한 본문 안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는 의미로서 ‘성경(a text)으로 돌아가자’는 양상이 그것이다.
이것을 지지하던 자들은 주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향하던 재세례주의자(Anabaptist)들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교리를 반대하고 대신에 성경만을 강조하는 입장을 지금까지도 표명하고 있다.
그와 같은 재세례주의자들의 성경해석 입장은 주로 ‘문자주의’ 입장에서 성경 본문을 자구(字句)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한 입장은 현대의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주로 종말론에 치중하는 문자적 해석의 폐단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한 본문 안에서 여러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가능케 한 것이 아니라 한 본문 안에 한 가지의 의미와 해석만이 존재하도록 했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교리’와 ‘신조’들이다.
반면에 한 본문 안에 담긴 의미가 한 가지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교리와 신조의 맥락에서 유념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 본문을 문자주의의 입장에서 자구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표준이 될 만한 진리로서의 정당한 교리와 신조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이 모든 신자들의 몫이 되는 것은 성경 본문을 주관적이고 다의적(多義的)으로 이해하는 문자주의적인 방식이 아니라, 유일하며 불변하는 것으로 규명하여 공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인 교리와 신조의 채택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표명하며 교리와 신조를 배척하는 가운데서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재세례주의와 이를 답습하는 현대신학의 방식은 성경본문을 신자들의 몫으로 돌려준다 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진리(Meaning)는 철저히 미궁에 빠뜨리고 마는 것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도 불변하는 진리의 표준으로서 ‘교리’와 ‘신조’가 표명되지 않고서는 결코 성경을 모든 신자들의 몫으로 되돌려 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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