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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과 사회윤리-정광덕

아브라함 카이퍼

by 김경호 진실 2015. 11. 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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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과 사회윤리

- 정광덕

 

한국교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 있어서 이해되는 교회의 사회윤리에 관한 이론과 실제에 무지하다. 자신들을 개혁주의적 칼빈주의자들로 일컫는 한국의 보수적 장로교회들은 비정치적 자세(apolitical stance)를 취하며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영혼구원에 관심을 쏟아왔다. 반면 민중신학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 즉 민중의 정치적 해방과 동일시 해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올바른 이해야말로 여러 가지 문제들로 얼룩진 사회현실과 이에 관한 교회의 사회적 임무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 있어서 사회의 문제들을 고려하며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사회적 임무들을 이해하고 그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했던 아브라함 카이퍼를 연구하고자 하는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 글은 빈곤으로 인하여 병든 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변혁을 시도한 한 카이퍼를 다루고자 한다. 우선 1장에서는 카이퍼 당시 화란 갱생교회 혹은 개혁교회 (Nederlandse Hervormde Kerk)의 교회론적 문제와 카이퍼 자신의 교회론을 조사할 것이다. 2장은 가정, 경제, 사회, 정치를 포함하는 인간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평화로운 왕국에로 변혁을 꿈꾸었던 카이퍼의 기독교 사회윤리에 대한 견해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것을 위하여 두 가지의 접근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첫째는 제도로써 교회는 사회적 삶, 예술, 경제, 정치의 영역들에 그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다는 카이퍼의 입장과 유기체로써 교회는 일반은총의 영역 안에서 기독교적 문화형성이라는 사회 윤리적 임무를 지닌다는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로 한다.

 

 

1. 그 당시 교회론적 문제와 카이퍼의 교회론

 

 

카이퍼는 교회개혁가이며 사회 정치적 개혁가로서 활동을 하였다. 아울러 그 두 분야에서 가졌던 그의 경력들은 기독교적 사회에로의 변혁이라는 그의 유일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역할들이었다. 그래서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그의 신학적 견해와 보다 실천적이며 실제적인 그의 공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들이 안고 있던 교회론적 문제들을 알아야한다. 본장의 목적은 19세기 카이퍼 당시 네덜란드 갱생교회 혹은 개혁교회의 교회론적 문제를 알아본 후 그 문제에 관한 그의 견해를 연구하는 것이다.

1.1. 교회론적 문제: 갱생교회와 두 번의 분리들

 

 

네덜란드 역사에 있어서 스페인으로부터 네덜란드의 자유를 위한 국가적인 투쟁은 개혁교회(the Reformd church)와 화란 공화국(the Dutch Republic)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초래하였다. 그 이전 시대에는 카돌릭 교회와 챨스 5세 및 필립 2세와 같은 통치자들 사이에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1) 1619년부터 1795년 사이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들은 도르드레흐트(Dordrecht) 교회규정에 기초하여, 7개 지역으로 나누어진 하나의 응집체로 존재하였다.2) 7개 지역 교회들 간에 동의만 있으면 총회가 열릴 수 있었다.

 

 

1795년부터 1813년 사이 네덜란드는 자유를 위한 혁명의 기운이 용솟음쳤다.3) 1795년 프랑스 군대의 입성은 네덜란드 안에 많은 민족적 애국자들의 봉기를 가져왔다. 네덜란드의 혁명정부는 곧 원래의 개혁교회 (the Reformed church)에게 교회와 국가 간의 새로운 관계성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네덜란드의 국가 대표회의 (the National Covention)는 특정한 교회에게 특권은 불가하다는 취지 아래 자유의 원리를 따라서 교회와 국가 간의 분리를 포고하였다. 그리하여 개혁교회는 자신이 종전에 누리던 특권적 위치뿐 아니라 교회에 속한 많은 재산권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또한 모든 교단들이 자신의 건물 밖에서는 종교적인 성격을 띤 행사를 가질 수 없었으며 공개적인 종교집회도 가질 수 없었고 심지어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교회의 종이나 벨을 사용할 수 없었다.4)

 

 

그러나 1813년 국가의 주권 회복은 다시 한 번 개혁교회와 국가사이에 깊은 결속을 가져 왔으며 몇몇 지역의 교회 협의회들은 개혁교회의 부흥을 꿈꾸었다. 이전의 개혁교회와 국가 간의 밀접한 관계를 위한 이들의 노력은 독립한 국가의 초대 왕인 윌리엄 1세를 자극하였다. 그들의 계획은 교회의 재조직을 위한 모임들에 필요한 전 비용을 왕이 부담해 줄 것을 요청한 일에 여실히 드러났다.5) 개혁교회는 국가와의 깊은 결속을 원했다. 1815년 윌리엄 왕은 법 앞에 모든 종교단체들은 평등하다는 새로운 법안을 발표했으며6) 그 이유는 1814년에 개신교가 지배적인 북쪽의 네덜란드와 카톨릭의 벨기에가 합병하였기 때문이었다.

1816년 자신의 포고령에 의하면 윌리엄1세는 네덜란드 안에 교회조직의 재정비를 통하여 개혁교회들 간의 한층 더 결속을 추진하였다.7) 그는 교회들 간의 단일성을 이룩하기 위하여 개혁교회에 새로운 계급 구조적인 교회규정을 제시했으며 지역 교회협의회들의 다양한 업무들을 정부가 감독하도록 하였다. 또한 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들의 최종적인 권한은 국가총회 (a national synod)에게 위임하였다. 그 총회의 구성원들은 왕에 의해서 임명되고 지역협의회들의 임원들은 정부에 의해서 선임되었다8).

 

 

이것은 네덜란드의 남쪽지역과 벨기에에 지배적이던 로마 카돌릭에 맞서서 세력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들 간의 교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국가적 개신교(a national Protestant church) , 포괄적인 개혁교회를 만들려는 정부의 야심이 숨어있었다.

윌리엄의 새로운 법안에 관한 지배적인 의견은 1817년에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운데 엿 볼 수 있다. 많은 기념행사들은 개혁교회 새총회의 상임 비서인 이삭 요한네스 더마우트의 개막연설을 추종하는 연설들로 가득 메웠다. 181772일 총회의 개막연설에서 더마우트는 말하기를 교회들 간의 깊은 평화종교개혁이 빚어낸 순수한 정신의 결과라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네덜란드의 개혁교회는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구성원들 간의 평화와 그 교회의 교사들(신학 교수들) 사이의 형제적 우애--이 우애는 학교 교수들로부터 시작해서 전 계층의 교인들에게로 퍼지는-- 때문에 그리고 그 교회의 제도적 모습이 향상된 사실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찬양한다.“9) 라고 하였다.

 

 

그러나 새롭게 조직된 개혁교회를 정화하기 위하여 전통적 교훈과 업적들을 보존함으로써 그 교회의 추세에 맞서고자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었다.10) 19세기 네덜란드의 갱생교회 혹은 개혁교회 (the Hervormde Kerk) 안에서 일어난 중요한 두 사건은 다른 아닌 1834년의 분리(Afscheiding)1886년의 분리(Doleantie)였다. 분리하여 나간 두 개의 그룹들은 1892년에 합쳐지면서 `네덜란드 개혁교회들‘ (the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새로운 교단을 형성했다.

 

 

이러한 사건들의 선행적 이유들 가운데는 윌리엄 왕에 의한 하나의 국가 교회에로의 재조직, 국립대학 신학부들이 자유주의에 의해 잠식됨, 저항운동 (the Reveil)으로 알려진 경건주의운동의 번성, 그리고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영향력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지난 150여 년 간의 화란 개혁교회와 그 신학을 형성하고 정의되어 왔다.

 

 

1.1.1. 분리 혹은 이별 (Afscheiding)

1.1.1.1. 분리의 행위와 돌아감 (Return)

 

 

분리 (the Afscheiding)1816년 윌리엄 왕이 개혁교회 혹은 갱생교회를 재조직한 것에 반대하며 그 교회(the Nederlandse Hervormde Kerk)의 강단과 교단이 점차 비정통 신학화 되어 가는 것에 맞서는 운동이었다. 신학적으로 1834년의 분리의 정당성은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전통적 교회 규정을 고수한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분리는 돌아감 (Wederkeer) , 종교개혁의 믿음에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분리자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려는 것이 아니라 갱생교회로부터 돌이켜 종교개혁의 믿음에로 돌아가는 자들이라고 했다. 여기서 돌아감이란 종교개혁을 행한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돌이켰던 것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그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그 교회로부터 분리가 아니라 갱생교회의 총회 (the Synodale Hervormde Kerk)로부터 분리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분리는 분리를 위한 분리가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간과되어 온 종교개혁의 믿음에로 돌아가려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분리였다.

 

 

1834년 실제적인 분리가 가파르게 숨 쉬고 있던 곳은 흐로닝헌의 울룸이었다. 그 곳에 위치한 개혁교회의 목사이며 분리 운동을 주도하던 핸드릭 더 콕 (Hendrik De Cock)은 국가가 개혁주의적 교회와 사회가 되는 것을 꿈꾸는 신정정치주의자였다. 그의 개혁적인 노력은 교회의 단일성 (unity)에 관한 견해를 주장하며 한층 더 가속화 되었다. 그는 종교개혁으로부터 그의 개혁적 열망의 동기를 가졌으며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진리와 신조들은 개혁교회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도르트 회의에서 결정된 교리들과 강한 예정론의 전통을 받아 들였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의 단일성 혹은 하나됨은 도르트의 정통성에 의존하는 것이며 도르트의 신조에로 돌아가는 것은 그의 거대한 포부 가운데 일부였다.11) 그의 생각은 신정정치를 염두에 둔 국가적이며 종교개혁적인 것이었다. 그는 윌리엄 1세에게 올바른 종교개혁의 총회가 열려야하며 화란교회들은 도르트의 정통성 위에 서서 진정한 단일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항변하였다. 그래서 그는 왕이 종교의 정통성을 보호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교회와 국가 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말하였다.12)

 

 

더 콕은 교회 단일성을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을 받아들이고 보유하고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시골 사람들이여 그리고 신앙의 동지들이여 우리는 진정한 종교개혁의 개혁교회와 개혁주의의 신앙인들로부터 분리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 모두에게 교제의 손길을 뻗칠 뿐 아니라 하나의 믿음, 한 소망, 그리고 한 성령 안에서 연합하고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도르트 신조에로 돌아가도록 그들에게 촉구하는 것입니다”13) 라고 했다.

 

 

암스텔담의 다 코스타 (Da Costa)에 의하여 주도되던 저항운동 혹은 경건운동 (the Reveil)과 이와 유사한 레이던의 저항운동에 가담이 되었던 핸드릭 스콜터 (Hendrik Scholte)는 독립주의적 자유교회 전통인 국가와 교회간의 분리를 열렬히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회중은 자신의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독립된 교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14) 그는 도르트의 교회 규정이나 신학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며 1834년의 분리를 도르트 종교회의의 입장에 서서 개혁주의를 엄밀하게 따르는 교회적이며 국가적인 개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인 자유를 향한 외침으로 보았다. 요약하자면 분리 (Afscheiding)는 신앙고백과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 (더 콕)과 새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고자하는 자들의 (핸드릭 스콜터) 종교적 자유를 위한 울부짖음이 만들어 낸 양심 있는 신자들의 종교운동이었다.

 

 

1.1.1.2. 분리(Afscheiding)의 역사적 상황

 

 

1816년의 교회 제도적 변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몇몇 목사들로부터 일어났다. 사실상 분리는 그 당시 상황 즉 경제적인 빈곤으로 인해 고통 받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로 얼룩진 사회적 상황과 신학적인 원리와 신념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다.

분리가 일어났던 흐로닝헌의 밀 재배지역은 프랑스가 지배할 당시에 번영하였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대륙간 체제 (Continental System) 즉 흐로닝헌의 농부들이 자신들의 밀을 높은 값으로 팔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실시되었을 때 곡물에 대한 외국 수입들이 줄어들었다.15)윌리엄 정부가 외국 수입에 대해 다시 개방을 표방했을 때 비록 흐로닝헌의 밀은 벨기에로 많은 양이 수출될 수 있었지만 그 가격은 엄청나게 하락하였다. 1828년을 거쳐 1830년에는 흉년과 함께 남부지방에서 거대한 반란이 일어났으며 특히 1830년에 있었던 벨기에와의 결별은 시장으로써 벨기에를 잃게 되었으며 그 해 가을 농민들은 과다한 세금의 부과로 말미암아 더욱더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국제적 관계의 긴장감과 벨기에와의 군사 협약은 윌리엄 정부로 하여금 세금을 낮출 수 없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혹독한 세금에 맞서는 혁명적 시도와 저항은 공권력에 부딪히게 되었다.16) 1832년에 토지세가 증가되자 민심은 여전히 동요하였고 게다가 그 해 홀란드 (Holland) 와 북부 지역에서 콜레라가 발병하여 사회적으로 엄청난 위기를 가져왔다.17) 이러한 경제적 위기와 참변들은 주로 저소득계층, 소규모의 자작농들, 그리고 신발상점을 하는 사람들을 엄습하였으며 1834년 분리(Afscheiding)에 참여한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윌리엄 정부가 연 새로운 국면의 교회 제도적이며 사회 정치적인 현실에 맞선 저항은 1834년에 현저히 일어나게 되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그 분리는 교회의 지도자위치에 있는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사람들 간의 충돌이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느린 행보의 산업화가 가져온 경제적 침체와 함께 초기 19세기 네덜란드의 혹독하며 비 민주주의적인 계층구조는 분리자들의 사회적 문화적 행동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필히 고려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분리는 저항 혹은 경건(the Reveil)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더 콕(De Cock)을 제외한 분리의 지도자들은 젊은 목사들이 주축이 된 모임의 출신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핸드릭 스콜터 (H. P. Scholte), 브룸멜캄프 (A. Brummelkamp), 반 벨슨 (S. Van Velzen), 반 랄터 (A. C. Raalte), 허젤러 미르부르흐 (F. Gezelle Meerburg), 루이스 발러 (Louis Baehler) 이다. 레이던 대학의 졸업 동문들인 이들은 저항 운동에 톡톡히 빚진 자들이다 이들은 그당시 종교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며 개혁의 의지를 확인하고 서로를 격려하였다. 시대의 정신과 삶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의 불만은 이미 1834년의 분리 사건 앞서 이미 형성되고 있었다. 그 분리의 미래 지도자들은 거의 1830년경에 점차 부흥되고 있던 저항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18) 이러한 관여로 인하여 교회와 사회 개혁에 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저항운동의 정신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유럽의 개신교 내에서 국제적으로 일어난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운동으로 일컬어지는 저항운동은 18세기 후반에 출발되어 19세기 초에 만개하였으며 네덜란드에서는 독특한 형태로 형성되었다.19) 이 운동은 일반 신자들이 확고히 믿고 있던 죄와 구속에 관한 설교가 교회 안에서 재생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들은 갱생교회 (Hervormde Kerk)의 교회 정치를 지지했으며 그 결과 종교개혁의 전통적 가르침에로 돌아가려는 많은 평신도들과 그들 사이에 서서히 균열이 생겨났다.

 

 

한편 저항운동의 지도자들의 관심은 1840년대부터 종교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자선사업 쪽에도 눈을 돌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부자와 가난한자의 벌어진 간격, 오랜 노동시간, 어린이와 여자들에 대한 노동 착취와 같은 이런 일들은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였다. 지식인들로서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위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리(Afscheiding)자체는 소수의 지식인 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경건주의적 저항정신을 꿋꿋이 지탱해 오던 하위 계층의 운동이었으며 저항운동 구성원들의 활약에 힘을 입고 일반 대중의 종교적 부흥운동에로 확산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 분리는 네덜란드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신학적, 그리고 교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며 운동이었다. 19세기 초 네덜란드 교회내의 투쟁과 갈등은 바로 네덜란드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 상태를 반영해 준다. 한편 그 운동은 정치적으로 고무된 조직들에 의해서 지지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을 실행한 믿음의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을 지킴으로써 진정한 교회의 개념을 구체화하려는 신자들의 노력이었다 .

 

 

1.1.2. 카이퍼와 슬픔 (the Doleantie)

 

 

1.1.2.1. 분리에 관한 그의 견해

 

 

갱생교회 혹은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이며 동시에 목사로서 카이퍼는 1834년의 분리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20) 1867년에 분리자들에 관한 그의 평가는 비록 갱생교회 (Hervormde Kerk)내에 비탄할 정도로 타락된 상황에 맞선 분리자들의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반동정신에 의한 것이었다는 해석이었다. 그는 특히 1837년에 핸드릭 스콜터에 의해서 제안된 교회규정의 현대화로써 자유교회의 모델을 강력히 반대했던 분라자들의 1840년 총회를 인정하지 않았다.21) 카이퍼는 분리자들이 떠난 갱생교회가 마치 거짓교회의 표지들을 지닌 완전히 변형된 교회로 간주하지 않았다. 완전히 타락된 자들과 연합되어 있는 지역교회들로부터 자신들이 분리되도록 강요되어 졌다는 생각은 분리자들의 실수라고 보았다. 더더욱 카이퍼는 분리란 합당한 것이 아니며 한 신앙인은 자신이 태어나서 세례 받고 신앙고백을 한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22) 그는 성경과 역사를 빌미로 하여 한 교회가 불법적인 교회연합에 참여했다고 하여 그 교회가 거짓되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들로 구성된 한 나라 안에 하나의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분리자들은 부당하게 반대한 것으로 이해를 한 카이퍼는 교회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좀더 개혁주의적 견지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통합 내지 연합은 우연적인 것이어야 하며 교회의 본질은 국가나 혹은 교단 차원에서 교회 연합을 주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들의 자율과 자치에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카이퍼는 1884년에 분리자들이 독립된 지역교회들이 아니라 총회를 갖춘 기독교 개혁교회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라는 교단임을 정부에 통보했을 때 기독교 개혁교회는 세례교인들을 포함하는 그들의 모든 지역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단이 되었다고 비판을 한다.23)

 

 

교회 정치적인 면으로 볼 때 1834년의 분리는 합당한 것으로 카이퍼는 생각하였다. 분리를 함에 있어 그들은 교회를 개혁하려는 의무나 그들의 공식적인 권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존재하는 제도적 교회들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스스로는 이미 제도적 교회 밖으로 뛰어 나감으로 인하여 모든 공식적인 권위를 잃게 되었다고 카이퍼는 말하였다. 결과적으로 카이퍼에 의하면 교회 정치적인 측면에 이어서 분리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들은 종교개혁의 전통의 연속성 위에선 교회로부터 이탈되었다. 카이퍼는 신앙 고백적인 차원에서 볼 때 분리자들은 16세기의 종교개혁 교회와 연속성의 위치에 있지만 또한 비록 도르트 종교회의 교회규정 아래서 조직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종교개혁의 그 제도적인 교회와는 어떤 연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는 단순히 신자들일 뿐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미 존재하는 제도적 교회밖에 또 다른 제도적 교회를 설립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제도적 교회는 제도적인 옛 종교개혁의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카이퍼의 주장이었다.24)

1.1.2.2. 갱생교회 (Nederlandse Hervormde Kerk)에 관한 그의 견해

신학자이며 목사로서 그의 중요한 관심은 교회를 올바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갱생교회의 변혁은 그의 지적이며 정신적인 엄청난 정력을 쏟아 부은 삶의 목표요 임무였다. 그의 목표는 그 교회의 부당하며 비성경적인 조직으로부터 벗어나서 현대사회에 부합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의 첫 목회지인 베이스드의 헬더른 마을(Geldern villiage of Beesd)에 있던 교회의 사역기간(1863-1867)동안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로 구분을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의 구분과 일치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의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의 구분을 그는 교회와 종교적 사회 혹은 교단이라는 구분으로 대치를 시켰다. 그에 의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란 하늘 왕국과 동일한 교리적 교회(the church of the catechism)로서 마음속에 진실된 종교성을 지닌 신자들의 모임이다. 이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학식, , 교리가 아니라 회개와 중생의 깨끗한 마음과 삶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진실된 교회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여전히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 사회 혹은 교단들은 또 다른 교회이다. 이것은 우선 다른 일반 사람들의 모임들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거기로부터 분리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1834년의 분리는 자신들의 완전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었으나 그 분리에 맞선 정부의 뒤따르는 조치는 너무나도 파렴치한 행위였다. 다른 한편 교단으로서 교회는 일반 사람들의 모임들과는 다르다.”25)

1870년 갱생교회에 소속된 암스텔담 교회 취임설교 때 카이퍼는 바르고 자유로운 교회는 유기체로써 그리고 제도로써의 그 기능을 잘 조화시키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갱생교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26) 그는 조직된 회중들의 제도로써 외형이 필요한가 하면 그 외형 속에 담겨져 있는 교회의 본질로써 유기체가 필요하다고 피력을 하였다.27) 그 당시 카이퍼에게 있어서 정치와 사회적 활동은 제도적 교회의 임무였다.

 

 

갱생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에게 있어서 교회의 조직적인 구조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자신이 개혁주의 신앙에로 영적인 전환을 다룬 그의 소책자, confidentie (1873)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의 생각은 갱생교회를 개혁하려는 그의 활동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또한 그의 책, Tractaat van de Reformatie der Kerken에서 카이퍼는 교회의 올바른 조직과 교회 개혁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교회에 관하여 그가 내린 1870년대의 정의를 따르자면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유기체로써 교회와 제도로써 교회로 설명될 수 있다.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가시적 교회가 항상 불가시적 교회 안에서 발견된다는 면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가시적 교회의 본질은 불가시적 교회이며 동시에 불가시적 교회 안에 머문다. 그는 주장하기를 불가시적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선택된 모든 자들의 유기적 연합이다.”28)

 

 

불가시적 교회는 하이델베르그 교리의 주의 날 제 21항과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선택된 자들의 모임을 뜻하는29) 반면 가시적인 교회는 두 서너 명이라도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그곳에 있으며 그들의 삶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이 드러난다. 이 가시적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기관 혹은 제도의 설립을 필요로 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몸인 그 구성원들이 어느 도시나 시골에 산다고 할 때 그 구성원들이 성도 간에 온전하고 순수한 교회의 표지들을 통한 교제가 있다면 비록 그 방법상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교회의 본질은 존재한다.

카이퍼에 의해 내려진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간의 정의는 1870년에 또 다른 정의로서 유기적 교회와 제도적 교회를 구분하였다. 유기적인 교회의 두 번째 유형으로서 1870년대의 유기적 교회는 그것이 제도적 교회의 밖에서 활동을 하는 한--카이퍼가 1894년 그의 책, Encyclopaedie에서 주장 하였듯이--제도적 교회처럼 가시적이다. 카이퍼에 의하면 불가시적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안에 내재된 교회를 형성하려는 힘과 작용으로써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 그에 의하면 신자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내재하심은 교회의 생명의 원리이다. 하나님의 내재하심이 교인들 가운데 인식될 때 서로 간에 형제적인 연합이 일어난다.

 

 

하나님 안에 내재된 작용으로 인한 불가시적 교회는 하나님의 의지 안에 존재하므로 영원 가운데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으로 구성되었으며 유기체로 특징 지워진다. 카이퍼에게 있어서 영원한 선택은 새 인류의 근원과 이유가 되고 선택이라는 유기적 개념은 교회를 유기체로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게 한다. , 유기체인 교회는 또한 중생의 열매이다.30) 유기체로써 교회의 필수 불가결한 특징은 생명이 내재적인 원리 혹은 힘 즉, 기필코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숨겨진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있어서 이 새 생명의 원리는 성령에 의해 심겨진 힘 즉, 중생이다.

 

 

카이퍼에 의하면 유기체인 교회는 생명체의 집합체로써 인류에 결속되어 있다. 인류는 원래 전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과 우주는 하나의 단위로 형성되어 있다. 세상이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듯이 우주는 인간 중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원죄는 인류의 유기적 단일성을 깨뜨렸으며 그 결과로 인하여 본래적 전체성은 파괴되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은 우주적인 의미를 가진 새로운 인간 유기체가 형성되었다. 이 회복된 인간이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 교회는 인간의 원 유기체의 진정한 연속으로서 유기체이다.31)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체적 단일성은 종말론적인 실재로서 미래에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몸은 부분적으로 보여질 뿐이다.

 

 

한편 카이퍼는 교회의 본질을 그 속성(하나됨, 거룩성, 보편성)과 연관된 것으로 본다. 교회의 속성들은 제도적 교회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제도적 교회의 본성에 모순된다.32) 교회의 특징들은 유기적 교회와 연관이 있다. 카이퍼는 교회의 속성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제도적 교회의 표지들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을 한다.

 

 

교회의 단일성은 보이지 않는 교회의 속성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야말로 타락한 인류의 재건설이기 때문이다.”33) 교회의 이 속성은 보이는 교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실상 교회의 속성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보이는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 교회의 단일성은 이 땅위에 결코 존재 할 수 없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교회의 단일성 혹은 하나 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주님에게 영혼을 달라고 하지만 오히려 영혼은 창조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아니다, 교회는 그 하나 됨을 지니고 있다. 만약 한순간 그 하나 됨을 잃어버린 다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나 되기를 원하셨지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34)

 

 

따라서 교회의 단일성과 하나 됨은 보이지 않는 본질적 교회와 관계되어 있다. 사실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다시 말하면 유기체로써의 교회와 제도로써의 교회 사이를 구별하려는 카이퍼의 의도는 교회의 하나 됨을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교회의 하나 됨은 가시적 교회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불가시적 즉, 본질적 교회의 관점에 있어서 이해될 수 있는 믿음의 대상 내지 목표이다. 카이퍼는 서로 인접한 교회들의 다원성을 인정하였다. 교회의 다원성에 관한 그의 이론은 단일성의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다. 전 인류는 다양한 형태로 지구 위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교회의 단일성 역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야 한다.35) 더욱이 그는 다양한 교회들의 다원성을 교회의 단일성과의 진위 여부를 위한 해결책으로 보았다. 그래서 카이퍼는 다원성의 개념을 제도적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필연적이며 발전적인 의지라고 생각하였다.36) 그에 의하면 다원성은 창조와 함께 주어진 것이며 교회적 분열을 더 이상 상대화하는 것을 반대할 수 없다. 교회의 이 다원성은 고백적 다원성이다.37)

 

 

세워진 제도적 교회 내에 존재하는 불가시적 교회는 스스로 드러나며 구체적인 역사의 모습을 가진다. 그러나 구성원 혹은 회원권에 입각해서 볼 때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일치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있는 구성원들이 있다면 거기에는 교회의 본질이 존재해 있다. 교회의 핵심(womb)에 생명력을 지닌 구성원들이 있는 교회마다 비록 그 삶이 부패되었다 하더라도 교회의 본질은 여전히 보유되고 있다.38) 믿음의 대상 내지 목표를 고백하는39) 불가시적 교회는 완벽하고, 완전하며,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몸이다. 항상 완전하고 거룩한 영적 유기체인 그 불가시적 교회는 변형에 구애를 받지 않으며 결코 수정되어질 필요가 없다. 반면 보이는 교회는 항상 불완전하며, 나뉘어지고, 그리고 변형된다.40) 제도적 교회가 형성될 가능성과 충동은 유기체인 불가시적 교회 안에 지닌 고유한 특징이다. 세워진 제도적 교회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형성되지 않는다. 다른 인간 단체들처럼 신자들의 모임인 제도적 교회는 자유로운 의지로 서로 연합한 사람들에 의하여 어느 누구의 간섭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세워질 수 있으며 항상 성경의 말씀과 일치될 뿐 아니라 한 교회에서 이미 직분을 가진 자들의 지시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교회 공동체로부터 결별할 수 있는 자율권을 지니고 있다.41)

 

 

카이퍼가 정면으로 반대한 것은 1816년 갱생교회가 조직된 후 각 지역교회들을 통제하는 계급 구조적인 총회의 행정과 규율들이었다. `불어 닥친 갈등‘ (Het Conflict Gekomen)이라는 그의 책에서 카이퍼는 1816년부터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갱생교회로부터 나온 1886년까지 70년의 기간은 암스텔담 지역교회에게 있어서 망명의 세월이었다고 말한다.42) 1816년에 각 교회들의 단일성 즉, 국가에 의하여 하나로 합쳐졌을 때 그 교회는 자신의 자율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1816년 윌리엄 1세의 칙령은 왕 자신을 교회의 입법자로 만들었다. 윌리엄 1세는 교회 문제들에 최종적인 결정권을 쥔 국가 총회를 임명할 수 있는 새로운 교회 조직을 창출해 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카이퍼의 투쟁은 하나로 통합된 조직의 그 갱생교회로부터 지역 교회의 독립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갱생교회의 개혁은 바로 가시적인 제도적 교회의 조직에 연관된 문제였다.

 

 

카이퍼가 이해한 교회는 일정한 지역의 회중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는 우선적이며 근본적인 모임이다. 비록 유기적 단일성인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종말에 있을 실재이지만 유기적이며 가시적인 단일성은 지역교회를 벗어나지 못한다.43) 땅위의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지역 회중 즉 교회이다. 주님의 권위는 지역교회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으며 영적이며 유기적인 교제는 지역 회중의 울타리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대회 그리고 총회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는 이차적인 모임들이다. 이 회들은 다만 지역 교회들이 신앙고백에 서로 동의함으로 빚어진 것들이다. 지역교회들이나 대회들은 하나의 유기체적 연합을 이루기 위한 일부분이나 작은 세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인 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교회와 지역 회중의 구성원이지만 결코 교회들의 모임이나 교단 차원의 구성원이 아니다.44)

 

 

그러므로 카이퍼에 의하면 돌리앙시(슬픔: 1886년 갱생교회를 떠난 사건)의 교회들은 존재하는 갱생교회를 개혁의 모든 희망초차 없는 거짓되고 왜곡된 교회로 보지 않았다. 갱생교회의 회중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교회들이지만 그러나 몸 된 교회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불법적인 행정자들이 교회를 규제토록 하여 말씀에 불순종하였다. 돌레앙시(Doleantie) 교회는 교회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교회의 엄청난 병을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유하실 것을 믿으며 그 곤경의 상황을 슬퍼한다고 카이퍼는 말하였다. 이처럼 슬퍼하는 것은 불확실한 기대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슬퍼함의 그 정당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함으로 머뭇거리지 않게 한다.45) 그러므로 카이퍼는 기존 교회가 하나로 통합된 조직적 구조로부터 그리고 공공예배를 위하여, 종교 재판국의 임원을 임명하기 위하여,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는 모든 교회들의 모임인 대회나 총회를 형성하는 모임으로부터 분리하려는 교회개혁의 계획을 공고히 하였다.46) 이것을 위한 행동 지침은 신자 공동체인 지역교회와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갱생교회의 제도적인 조직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돌레앙 시의 의미는 기존의 교회를 반대하고 다른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교회의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다만 교회를 개혁하려는 것임을 의미한다.

 

 

카이퍼에게 있어서 교회의 개념이 몇 단계에 걸쳐 발전되었는데 초기의 생각은47) 제도적 교회만이 그리스도의 몸을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드러내는 가시적 교회이다. 돌레앙시 사건과 특히 그의 백과 사전 (Encyclopaedie)을 저술한 이후 카이퍼의 교회 개념의 발전은 세워진 제도적 교회 이외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외형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다른 유형들을 설명하기에 이른다.48) 카이퍼는 세워진 교회 이외에 가시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교회에 대 좀더 세밀하게 언급을 한다. 이렇게 외형적으로 보이는 교회를 그는 가시적 유기체라고 하며 이 교회는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중생의 삶을 비춘다고 주장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가시적 유기체로서 이 교회는 세례 받은 모든 자들과 동일시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제도적인 교회를 형성해 가는 신자들의 교제에로 축소될 수도 없으며 다만 제도적 교회를 그 안에 포함 할 뿐이다. 가시적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 안에 거하는 영적 힘의 일시적이며 가시적인 증거들을 표현하게 된다. 모든 문화적 활동들이 기독교적인 변형을 이룰 때와 중생 혹은 부활(palingenesis) 때에 그리스도의 몸은 가시적으로 드러난다.49) 가시적 유기체인 이 교회는 단순히 그 활동 영역이 제도적 교회의 업무에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통하여 회복된 인간의 삶을 의미한다.50) 그러므로 제도적 교회의 도움 없이 가시적 유기체의 교회는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가시적 유기체인 이 교회는 자신의 조직을 통하여 인간 삶의 전 영역을 차지해야만 하며 이 조직은 제도적인 교회 안에서 만이 발견될 수 있다.

 

 

2. 유기체 교회와 기독교 문화 형성

본장에서는 1890년대에 쓰여진 일반 은총론 (De Gemeene Gratie)과 칼빈주의 강좌(Lectures on Calvinism)과 같은 카이퍼의 신학적 책들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 변혁을 위한 교회의 사회윤리 혹은 사회적 임무들을 관한 그의 견해를 조사하고자 한다. 첫째, 제도로써 교회는 사회 정치적 문제들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그의 견해를 다룰 것이다. 둘째, 일반 은총의 영역인 인간 사회에서 기독교적 문화를 형성해야하는 유기체적 교회의 사회 윤리적 임무에 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볼 것이다.

 

 

2.1. 제도적 교회와 사회 정치적 활동의 제한성

 

 

2.1.1. 제도적 교회와 특별은총

카이퍼에 의하면 특별은총은 십자가를 통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인들과 화해하신 하나님께서 그 죄인들을 향하여 나타내신 은혜이다. 구속받은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들을 베푸신다. 이것은 선행에 관한 호의가 아닌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베풀어진 것이다.

 

 

이 특별은총은 선택된 죄인들이 새 언약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51) 십자가의 사건으로 절정을 이룬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구속받은 자들에게 죄 용서를 하셨으며 그 구속을 사람들에게 응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카이퍼는 주장을 한다.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접하는 개인적 경험의 출발점으로 간주되는 선택된 자들의 중생됨에 있어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그는 강조한다.52) 그러므로 중생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전적으로 피동적인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이다. 철저하게 죄로 인하여 타락되었던 인간의 본성이 중생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53)

 

 

카이퍼는 중생을 중생인과 자연인 사이의 극단적인 구분 점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중생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와 삶의 가장 핵심은 중앙 통제소인 마음이다. 타락으로 인하여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이 마음이 전적인 죄를 짓고 부패하게 하여 모든 언행심사가 의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 왔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특별 은총은 하나님의 행위이신 중생을 성취시키신다. 하나님의 이 행위는 삶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 존재의 핵심에서 역사하심을 강조하며 중생을 영적 의미로 해석을 하였다.

 

 

비록 특별 은총이 이 세상에서 이미 택함을 입은 자들 위에 극단적인 영향을 가지지만, 그 은총은 근본적으로 `여기와 지금보다는 장차 다가올 삶에 그 초점을 모은다고 카이퍼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그 특별 은총의 목적은 택함을 받은 자들의 구원과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안 혹은 하늘왕국 안에서 발견된다.”54) 그의 강조점은 특별은총의 그 마지막 목표는 다가올 미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생이란 택함을 입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연합되듯 그의 몸에 지체가 되고 그들이 하늘왕국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비록 기독교인들이 죄로 물든 현시대를 살더라도 그들의 시민권은 장차 올 그 왕국에 있다.

 

 

카이퍼에 의하면 특별 은총의 목적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즉 죄인들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사랑으로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된다. 구속된 자들은 현재와 영원토록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게 된다.

 

 

제도적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카이퍼는 말한다. 이 제도적 교회는 중생자들의 내적 삶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 세상 안에서 특별 은총의 가시적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55)

 

 

2.1.2. 제도적 교회의 구속 사역

카이퍼에 의하면 제도적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구속받은 자들의 마땅한 행위에 관한 설교를 행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 제도적 교회로서 기독교인들의 행위는 구속 공동체의 삶과 일치하며 세상 안에서의 모든 행위를 포함할 수 없다.

 

 

이 제도적 교회는 세상에서 신적 명령의 회복을 연상시킨다. 분명히 카이퍼는 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나라로 생각을 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드러난 의도이기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주권자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교회의 존재는 이 세상에 통용되는 모든 가치들의 전적인 탈 가치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교회는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자신의 독특한 메시지와 기준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제도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속 사역만이 그 임무이다. 곧 이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다. 사회와 연관하여 이 교회의 증거와 행동을 고려할 때 그의 생각은 여전히 교회론적 이며 행정적인 업무에로 그 역할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로서의 교회는 사회 정치적인 일에 간섭 할 수 없다.56) 그 교회는 세상 문제에 간섭하거나 세상의 법률들을 만드는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다. 만약 그 교회가 자신이 외치는 말씀과 모순되는 삶을 보이게 될 때 교회의 사역 자체에 방해가 된다.57)

 

 

한편으로 카이퍼에 의하면 제도적 교회는 사회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 교회가 마치 모든 사람들이 지켜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도성처럼 특별 은총이 사회 정치 영역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례를 주어 그 영역을 기독교화 하게 한다.58) 그 교회가 일반 은총의 영역을 세례로 정화를 시킨다는 것59)은 선포되는 말씀의 능력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양심을 붙잡으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그 교회의 불꽃들이 세상 안에 비추어 져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세상 위에 세우는 것을 일컫는다.60) 특별 은총의 제도로서 그 교회의 발전은 일반 은총의 영역인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언덕 위의 도성인 교회는 사회 문화의 발전과 진전을 가속화한다. 그래서 그 교회는 일반 은총의 영역을 위한 축복이다. 특별 은총의 가시적 모임인 제도적 교회는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간접적 작용을 하며 주변영역의 변화에 이바지한다. 말씀의 선포, 성례의 집행하는 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의 왕이심을 인정하고 고백을 하는 삶을 통하여 세상을 위한 본이 되어야 한다.61)

 

 

2.1.3. 제도적 교회와 국가의 관계

그러나 제도적 교회는 땅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영적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카이퍼는 하나님의 권위가 제도적인 교회에게 우선 주어진 다음 사회의 여러 영역들에게 차례로 미친 다는 계급 구조적인 도식을 반대하였다.

중세 시대의 로마 카돌릭 교회의 실수는 믿음이란 다만 제도적 교회의 중제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일 뿐 그 믿음의 개인적 (personal) 성격을 인정하지 못했음을 커이퍼는 지적한다.62)

같은 맥락에서 카이퍼는 중세 교회가 이 땅위의 제도적 교회를 강조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을 의미하는 유기체적 교회와 그 의미를 간과하였음을 지적하였다.63) 따라서 제도적 교회의 강조는 로마 카톨릭 교회로 하여금 전 사회 문화를 압도하고 지배하게끔 만든 것으로 이해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하나의 정치적 기관으로서 거대한 제국이 되어 버렸다.64) 이처럼 카톨릭 교회의 변화는 사실 그 교회가 직면했던 독특한 상황들이 있었다. 교회적 제국이 된 그 교회가 서구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그는 본다.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지도력은 예배를 외적이고 형식적인 수단으로 만들어 버렸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삶보다는 그 교회의 통치와 그 교회에 대한 외적인 복종을 강조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카이퍼는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법권에 있어서 교황이 이를 남용한 것으로 보기에 교회의 영적 권위는 국가라는 점 (the sward of state)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제도적 교회가 사회 문화 영역을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세 로마 카돌릭 교회의 제국주의적 태도를 비난하는데 그의 말을 빌리자면,

로마 교회에 있어서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교회 자신의 신경계를 잘라 내버리듯 세상의 힘과 결탁을 하는 신호였다. 그 후 그 결과로써 세상은 점차 교회의 공포 속에 떨게 되었다. 돈 지갑과 먹을 양식도 없이 복음 전도를 향해 떠났던 제자들의 모습 대신에 교회는 웅장한 궁궐이 되었고 갈릴리 어부의 계승자들 즉 로마 교회의 수장들인 교황들은 왕족처럼 화려하게 살았다.”65)

 

 

카이퍼는 예술 분야에 있어 르네상스, 정치에 있어 이태리의 공화주의, 과학의 인문주의, 그리고 종교의 개혁과 같은 운동들은 모두가 다 로마 카돌릭 교회의 보호권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들의 삶의 원리에 입각하여 그 삶을 추구하려 했던 노력들이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모든 삶을 통치하는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은 교회의 부당한 보호권을 그는 거부하였다.66)

 

 

사실상 카이퍼는 제도적 교회가 하나님과 사회 즉 개인, 가족, 그리고 국가를 포함하는 전 영역 사이에 중재자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본다. 일반 은총의 영역 위에 제도적 교회의 여하한 지배적 형태의 삶을 반대한다. 그래서 사회의 영역 안에서 이 교회가 후원자가 된 기독교인의 행위는 인정될 수 없다고 본다.67) 삶의 각 영역은 다른 영역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아야 하며 다만 각 영역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법의 구조들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카이퍼에게 있어서 제도적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따라 나아갈 뿐 공공의 사법 기관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의 독립성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를 의미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가 자신의 영역을 초월하여 자신에게 낯선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할지라도 자신을 가리켜 기독교적 혹은 기독교인이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비록 국가가 특별 은총과 별 관계가 없고 그 행동 지침이 창조적 (creational) 법의 구조들에 의거한 규범들을 따르는 일반 은총의 영역 안에 있는 창조적 (creational) 기관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발전 수준이 특별 은총의 힘들을 퍼트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기독교적이라 불리 울 수 있다.68)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국가는 기독교로 불리 울 수 없으나 기독교적 성격을 지닐 수 있다.69)

 

 

카이퍼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질서 정연하게 창조 하셨음을 믿는다. 비록 인간의 타락이 창조의 전 영역을 타락시켰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 타락된 창조를 자신의 섭리 속에 일반 은총을 통하여 자연과 인간사회의 영역 즉, 창조의 질서를 지키신다는 것이다. 이런 면을 고려하는 카이퍼는 일반 은총의 기관으로써 국가의 역할을 제한시킨다.

 

 

그러므로 특별 은총이 아닌 일반 은총에 의해 제정된 국가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법에 복종해야한다. 그러나 구속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은총의 기관으로써 국가는 교회의 신조를 지키거나 이단들에 맞서 시민적 형벌을 내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국가가 창조에 있어서 비 본래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적 법의 구조들이 전개되는 과정의 결과로 유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는 죄를 막으시려는 하나님의 선물 즉 일반 은총의 결과이다. 카이퍼는 국가의 기초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믿는다.70) 그러므로 국가와 관련된 두 가지 견해를 말하는데 첫째, 죄가 국가라는 제도를 필요하게 하였으며 둘째, 땅위에 존재하는 국가의 모든 권위는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만 온다. 달리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죄를 억제하시려고 통치자들을 세우셨으며 자신의 주권으로부터 그들에게 권위와 힘을 부여 하셨다.71) 국가는 죄악의 세상 가운데 사회 질서와 정의를 수행하기 위하여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팔이다. 이것은 국가의 기초를 창세기 9장과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사형과 사회 정의에 관한 법으로부터 찾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를 질서와 정의로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는 타락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수행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성경을 정치를 위한 교과서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구약의 신정정치는 이미 끝이 났고 더 이상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은 사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법을 보존해야 하며 법으로 인간들의 관계를 규제해야 한다.

 

 

카이퍼는 시민적 권위를 가진 국가가 그 영향력을 행사함에 있어 영적인 권위를 지닌 교회의 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한다. 사회의 다른 영역들의 영역 주권을 침범하는 국가의 법은 타당한 법으로 인정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국가나 한 사람의 통치자에게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그 독특한 성격과 임무를 수행 할 때 자신의 영역 안에서만 그 주권을 가진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은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침해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각자의 영역은 자신의 권위를 갖도록 하셨다.

 

 

한편 올바른 국가는 특별한 권한들을 제도적 교회에게 부여하지 않아야 하며 그 교회에 위임된 책임들을 수행할 필요가 없다. 신앙 고백을 정선하거나 단일화하는 일이 국가의 임무가 아니며 그와 반대로 교회는 사회 질서를 다스리지 않는다.

 

 

그런고로 국가는 교회의 업무를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교회를 통치하는 권한이 주어질 때 국가는 우상이 되거나 전체주의에로 빠지고 만다. 한편 교회에게 그 반대의 권한이 주어졌을 때 역시 우상이 된다. 카이퍼에 의하면 삶의 영역들과 관련하여 국가의 세 가지 기능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 다른 영역들 간에 충돌이 발생하였을 때 각 영역들 간의 한계를 규정짓게 하며, 둘째, 이 영역들 가운데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악용하지 못하도록 개인들과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리고 셋째, 국가의 본래적 결속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개인적이며 재정적인 부담들을 지게 한다.”72) 그러나 국가의 이러한 임무들은 창조의 법에 근거하여 집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개인을 집단의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고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법 구조들에 의거하여 사회가 조화롭게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이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국가에게 사회의 정의를 보장하도록 하셨으며 국가의 목표는 인간의 죄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기초는 하나님이 노아와 세우신 그 언약의 내용 즉, 창세기 9장과 13장에 언급된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한 일반은총에 있다. 정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은총의 법을 사람들 가운데 유지해야 하며 그 법에 의하여 사람들의 관계를 중재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정치체제가 발전하려면 죄를 억제하는 노력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카이퍼는 피력한다. 달리 말하면 검의 힘 (Zwaardmacht) 이라 할 수 있는 국가의 근본 기능은 죄가 몰고 오는 엄청난 혼란을 막는다. 이러한 뜻에서 국가는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개종시키는 위한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일시적인 인간 사회를 유지시키는 일반적인 구속의 소명을 가질 뿐이다.73)

 

 

죄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막기 위한 일반 은총의 기관인 국가의 근본 목적은 제도적인 교회로 하여금 세상 안에서 그 임무를 올바로 수행하게 하고 각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도적인 교회는 항상 국가를 후원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신의 존재가 가능하도록 좋은 여건의 사회적 정치적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74) 교회가 세상 안에서 구속 사역을 잘 이행 할 수 있는 평화스러운 환경을 제공하는 국가와 그 통치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카이퍼는 일반 은총은 창조를 발전시키고 유지하는 독립적인 목적을 가진다고 말을 한다.

한편 그에게 있어서 일반 은총의 행위 없이 특별 은총은 불가능하며75) 특별 은총 없이 일반 은총은 그 목적을 가질 수가 없다.76)

 

 

카이퍼에게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자신의 법들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 왕국의 이원론적 존재론은 용납되지 않는다. 즉 두 왕국이 있을 수 없으며 여러 가지 면들을 가진 삶의 다원성과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창조의 다양성이 하나의 하나님 왕국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의 관계에 관한 설명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기능들과 일치한다. 구속의 중재자로서의 기능과 창조의 중재자로서의 기능이다. 구속의 중재자인 그리스도의 의미성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제도적인 형태를 취하는 그 교회의 영역에 속한다. 창조의 중재자로서 그리스도는 일반 은총 안에 있는 가족, 사회, 학교, 그리고 국가의 영역들을 다스린다.77)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사회적 삶의 중요성은 그리스도께서 일반 은총의 영역에 있어서 창조의 중재자라는 사실에 있다.

 

 

2.2. 유기체로서의 교회와 사회적 임무

 

 

2.2.1. 기독교인의 사회 정치적 활동의 필요성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제도적 교회는 일반 은총의 기관인 국가의 도움 없이 존재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그 교회는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도록 하는 정치적 상황들이 필요할뿐더러 나아가 질서 있는 사회와 정치가 요구된다. 카이퍼의 일반 은총은 구속적 통찰력의 시각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간접적으로 일반 은총은 특별 은총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이런 면을 고려할 때 기독교 대학, 기독교 학문, 그리고 기독교 예술이라는 말을 사용 할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특별 은총을 위하여, 제도적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하나님이 인도하실 구원의 길을 위하여 쓰여진다면 그들은 `기독교적이라고 불리 울 수 있다.78) 게다가 카이퍼는 일반 은총의 기관이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 할 때 그것을 탈 은총 (dis-grace)의 기관이라고 주장을 한다.79) 이런 상황 가운데 기독교인 정치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정치의 영역에 입문을 해야하는 그 이유이다. 사실 1890년대의 카이퍼에 의하면 독립된 정당을 형성한 기독교인들이 정치 분야에 참여해야 한다. 만약 반 기독교적 권력들이 특별 은총에 반대하며 하늘 왕국에 맞서서 반항적 힘을 발휘함으로써 일반 은총을 탈 은총으로 이용할 경우에80) `활동의 기지가 되는 교회들로부터 명확한 힘을 모아서 독립된 하나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81)

 

 

다른 한편, 하나님의 특별 은총은 인간의 사회, 윤리, 그리고 지적 삶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영역에까지 미친다. 이 특별 은총은 종말론적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카이퍼의 이러한 입장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하는 유기체로서 교회가 지닌 임무라는 그의 주장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82) 일반 은총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유기적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활동들은 하나님의 영이 중생자들의 영적인 중심부에서 역사하시는 그 환한 빛에로 나아감 같이 본래적인 발생 혹은 출현이다.83) 달리 말하자면, 기독교인의 행위는 선택을 입은 자들의 마음속에 일어난 특별은총의 계시 즉, 하늘 왕국의 구체적인 표현인 계시이다. 카이퍼는 기독인의 행위를 다가올 왕국을 기다리는 믿음과 다가올 시대의 권세가들이 드러내는 믿음이라고 정의를 한다.84)

 

 

그러나 그 교회는 일반 은총의 가시적이며 일시적인 영역 안에 있는85) 특별 은총의 일시적인 표현이며 나타남이다.86) 일시적이며 가시적인 세상 안에서 교회는 하늘 왕국과 불가시적 교회와 그리고 불가시적인 특별 은총의 형상이다. 그러나 천국 그 자체라기 보다 하나님의 왕국의 도구이다. 그 왕국은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고 기대할 수 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카이퍼에게 있어 교회는 그 왕국을 위한 존재이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통치의 범위와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와 나라에 복종하는 교회는 그 왕국의 일부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왕적인 통치를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위임된 자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삶과 행위를 통하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

 

 

세상 안에 존재하는 유기체적 교회의 임무에 관하여 언급을 할 때 카이퍼는 중생이 선택을 입은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으로부터 나온 자유롭고 의도적인 행위를 하도록 한다고 주장을 한다. 하나님의 특별은총은 택함을 입은 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중생의 기적을 초래한다. 이러한 극단적 변화는 그들의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그들이 사는 현 세상에도 그 영향이 미친다.87)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중생자들을 통하여 하늘의 왕국은 구체적인 표현을 가지는 일반 은총의 영역 안에서 드러난다.88) , 그의 몸 된 중생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일시적인 현실 속에 그 왕국의 기대감들을 세운다.

 

 

유기체인 교회는 제도적 교회 안에 존재하지만 그 활동들은 제도적 교회의 사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기체의 교회는 영원하다. 제도적 교회는 이 세상 시대를 위 할 뿐이다.89) 게다가 유기체인 교회는 기독교인들의 조직된 형태로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교육이라는 전 영역에 참여한다. 비록 직분들이나, 말씀과 성례의 집행, 그리고 교회의 특별한 법이 결핍되었더라도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체적 삶과 세상에서 그들의 직업을 통하여 여전히 존재하며 가시적이다. 이 교회는 조직이나 비조직의 방법으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의미를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몸 된 신자들로 구성이 된다.

 

 

2.2.2. 기독교 문화의 형성과 하나님의 왕국.

 

 

앞서 본 바와 같이, 카이퍼에 의하면 사회 변혁의 방향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사회의 구조를 창조의 신적인 법 구조들의 절대적인 타당성 위에 세우는 것이다. 즉 사회 변혁은 평화스런 왕국으로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공동체 즉, 살아있는 인간 유기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창조의 법 구조들과 일치하는 인간 삶은 정부의 권위에 의해 건축된 기계적인 실체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전 유기적 구조이다. 따라서 카이퍼는 구원받은 자들은 선한 피조물로서 자신들의 올바른 위치를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들을 그 위치에서 실현해야한다고 믿는다.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평화로운 왕국을 위하여 부름 받았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유기체적 삶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그 교회는 창조의 법 구조들에 위배되는 사회적 불균형과 마비된 발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러나 카이퍼는 사회 변혁을 위한 기독교인의 행동의 본성은 혁명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를 한다. 그가 사회 변혁을 언급 할 때, 유기체인 교회가 급진적으로 사회 개혁을 시도하여 마치 교회와 비슷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카이퍼의 개혁을 위한 방법은 하나님의 원 창조와 구분되는 다른 세상 즉,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재세례파의 입장과 다르다. 그는 기독교인들에 의한 모든 혁명적인 행동을 거부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 재건설 방법은 새로운 사회를 겨냥한 기존 사회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점차적인 변화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적 구조를 인정해야 하며 그 토대 위에서 사회를 세워야 한다고 그는 피력한다. 인간 사회는 하나님의 창조 속에 세워진 현존하는 질서를 따라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따라서 살아야 하며 성경을 통하여 이런 법 구조들을 이해하게 된다.90)

 

 

자신에게 부여된 본성의 치밀한 발전을 통하여 사회는 창조 시 주어진 참되고 본래적인 목표를 추구여야 한다. 카이퍼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행동은 창조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반 은총에 의해 부여된 창조의 법질서를 따라야 한다. 한 국가 안에서의 사회적 삶과 관련하여 기독교인들은 혁명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혹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시민들이 아닌 정상적이며 최고의 시민들로 살아야 한다.91)

 

 

이런 근본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카이퍼는 `기독교 문화92) 발전이라는 말을 타당한 의미로 설명을 한다. 그는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에 의하여 동일한 관점에서 창조가 평가되고 그 창조의 발전을 고무하는 행위에 자극을 주는 특별 은총의 일반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에 그의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독특하게 기독교 문화라는 말을 사용 할 때 그의 뜻은 구속받은 공동체가 일반 은총의 영역에 미치는 그 영향력을 의미한다.93) 유기체로서 교회의 임무는 기독교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기독교 문화의 발전은 현 세상에서 중생자들의 중요한 소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카이퍼는 강조한다. 창조의 풍부함을 개발하고 인간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사회의 구조를 놓아야 한다. 그것은 일반 은총의 영역인 창조 안에 내포된 잠재성들을 높은 차원에로 발전시키는 것이다.94) 이것을 가리켜 기독교 문화의 발전을 주도하는 기독교인의 삶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 문화의 행위는 중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일반 은총의 삶을 위하여 부여된 그 법 구조들에 의하여 지탱이 되는 것이다.95) 이것은 창조를 그 목적과 전개됨 그리고 번영에로 이끄는 것이다.96) 카이퍼에 의하면 창조의 문화적 목표를 세우는 것은 삼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높이는 특별 은총의 목적과 같다.

 

 

카이퍼는 가정 안에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는 일은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본다. 그가 말하는 가정은 하나의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창조 시 하나님이 세우신 현존하는 질서 속에 그 유래가 있다. 기독교적인 가정은 창조 자체 속에 약정된 가정의 모습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가 `기독교적 가정이라고 말을 할 때 기독교인들이 그 가정을 교회와 동일하게 만드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가정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창조적 법을 따라 사는 그런 가정이 되는 것이다.

 

 

카이퍼는 역시 기독교 공동체와 문화를 위하여 정치의 중요성을 고려한다. 그래서 성경에 계시되고 창조와 함께 상세히 부여된 하나님의 법 구조들은 기독교인들의 양심을 수단으로 하여 현 정치적 상황에 적용되어야 한다.

 

 

카이퍼는 기독교 문화를 형성하기 위하여 유기체인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분야들로서 과학과 예술을 포함시킨다. 성경적인 믿음은 학문적인 일 뿐 아니라 예술적 활동과 관련하여 강력한 자극들을 제공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적 예술은 교회가 후원하거나 종교적 장면들을 묘사하는 그런 예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재세례파적인 거부감이나 예술에 대한 로마 카돌릭의 지배와 또한 사회에서 예술의 발전과 그 위치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불건전한 영성주의 모두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예술적 재능들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결과이다.97) 때로는 예술이 정치나 제도적 교회 그리고 사회의 다른 영역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 법 구조들을 나타낸다.

유기체인 교회의 소명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드러내야 하기에 카이퍼는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위에서 언급된 분야들에 만 제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분야들은 그 당시 비판과 문제가 되었던 사회적 삶의 분야들이었다. 하나님의 창조가 계속 전개 될 때 의심할 여지없이 기독교인이 증거를 하기 위하여 관심을 갖게 될 더 많은 분야들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 문화의 발전을 도모하는 유기적 교회는 전투적 자세로 일반 은총의 전 영역에 참여하여 그 일반 은총이 특별 은총을 위하여 봉사하며 창조와 구속의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98) 그러나 기독교 문화를 위한 활동은 창조 자체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특별 은총의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다.99) 게다가 기독교 문화는 새 땅에 대한 기대와 구별되지 않는다. 일시적인 가시 세상 안에서 기독교인의 소명은 순례자의 노래 즉, 외적인 삶을 향한 문화적 추구로 인하여 약화되지 않는 특별 은총의 영적인 중심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역사 속에 우리의 삶은 우리의 목적과 연루되어 있다.100) 카이퍼는 다가올 왕국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그 왕국에 대한 관계는 복종적인 기다림과 동시에 적극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카이퍼는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거듭나는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언급할 뿐 아니라 중생은 원 창조의 회복으로 본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창조의 삶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므로 일반 은총은 특별 은총 밖에서는 그 목적을 가질 수 없다. 인간에 의한 문화의 모든 분야의 발전은 영원에로 귀속이 된다. 더구나 인간이 이 땅에서 획득한 문화적 발전은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것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화적 발전을 통한 그 업적들은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의 결과들이다.101)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카이퍼가 일시적 삶을 넘어선 영적이며 종말적인 구속에까지 미치는 특별 은총을 언급 할 지라도 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법 구조들에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순례의 삶이다.102) 반대로 그가 비록 일반 은총을 통한 문화의 발전과 진전을 언급하지만 일반 은총에 속한 창조는 특별 은총의 재창조를 그 목표로 한다.103) 즉 다시 말하면 창조 안에 숨겨진 원래적 힘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들의 최고의 발전 단계에로 나아간다.104) 그러므로 특별 은총의 목적은 원 창조를 회복시켜야 할 뿐 아니라 최고의 발전 단계에로 나아가도록 하는 한다.105)

 

 

이미 언급하였듯이, 카이퍼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들과 관계없는 인간 문화나 일반 은총의 발전을 향상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 두 은총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 목표로 한다.106) 그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교회와 그 구성원들이 인간들의 문화를 특별 은총이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위한 문화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 위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는 카이퍼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107)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그의 입장은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두 가지 면을 가진다. 그 왕국은 현재적이며 은밀히 성장하고 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권능으로 다시 오실 때 그 왕국은 실현될 것이다. 그 왕국이 현재적이라는 말은 제도적 교회의 영역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하여 문화영역 안에서 특별한 임무들을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왕국을 섬김에 있어 자신들의 재능들을 발휘하여 문화변혁의 소명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문화적 사명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력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비록 그 왕국은 가시적인 제도적 교회와 동일한 것은 아니며 신자들 가운데 지금 현존한다. 그러나 그 왕국은 단지 믿음의 공동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인간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 하나님의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권능으로 다시 오실 때 완성이 된다. 그 왕국은 인간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인간의 임무는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만이 완성하실 수 있다고 카이퍼는 생각한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창조이다. 하나님은 그 나라를 자신의 시간과 방법으로 진행시키신다. 결과적으로 카이퍼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은 하나님의 통치를 그 특징으로 한다. 그 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즉 종말에 완성될 것이다.

 

 

2.2.3. 기독교인들의 조직적 반대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 그들은 하늘 왕국의 도래를 거부하며 일반 은총의 은혜를 오용하고 반대하는 세력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카이퍼가 말했듯이 탈-은총(dis-grace)이다. 이런 상황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일반 은총의 재능들을 주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 맞서서 자신들의 그 재능들을 오용하여 일어나는 즉, 신자와 그들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108) 다시 말하면, 신자들의 공동체는 죄로 물든 이 세상 왕국에 맞선 영적인 투쟁을 한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죽음과 심판의 권세 아래 사는 불신자들과 신자들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가져오는 반대(antithesis)가 있다. 그는 이르기를,

두 가지의 다른 원리들 즉 하나님에 맞선 죄의 원리와 죄에 맞선 은혜의 원리가 서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죄의 삶과 은혜의 삶 즉 자연적 삶으로부터 나온 삶과 초자연적 삶으로부터 나온 삶 즉,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삶들이 있다.”109)

 

 

카이퍼는 은혜의 왕국과 세상 왕국사이, 유기체의 교회와 아담과 함께 그의 죄 가운데 속한 인류사이,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인 인간과 여전히 하나님을 배반하고 죽음과 그의 심판, 그리고 진노의 대상인 인류 사이에 존재하는 건널 수 없는 깊은 반대(antithesis)를 인정한다.110) 거기에는 완전히 서로 다른 종교적 방향을 추구하는 두 공동체가 있다. 그들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이 반대(antithesis)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의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반대하는 이 세상 왕국의 반란으로 일어난 부차적인 결과이다. 다른 한편 이런 서로 간의 반대적 상황은 성도들이 실제적으로 일으키는 결과가 아니라 현 세상에서 만나는 실재이다. 이런 영적 전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와 아담에게 속한 비 성도들 간에 있는 지상전이다.

 

 

카이퍼에 의하면 일반 은총의 영역 안에는 두 영역들이 있다. 첫 번째 영역은 합리적이며 기술적인 영역이고 다른 한편은 도덕적 문화의 영역이다. 조직 혹은 비조직적인 성격을 통해 발전되는 합리적- 기술적인 정복은 도덕적인 시민 사회의 퇴락과 함께 진행이 된다. 이는 인간성의 `높은 가치들이 하락하는 것이다.111) 또한 기독교 문화는 높은 가치들을 보존하고, 촉진하고, 추구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왕국에 맞선 의식적인 반대 (antithesis)를 의미한다. 더구나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감은 점점 더 증가 될 것이다. 그 결과로서, 일반 은총은 오용되고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제자들? 맞서 등을 돌리게 된다.112)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이 영적 갈등의 상황 속에서 신자들은 기독교 문화를 세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 투쟁은 기독교적 믿음의 통찰력으로 비신자들의 삶에 영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일이다. 이 일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조직들을 형성하고 그 조직들의 활동을 통하여 가능하다. 교회, 가정, 경제, 교육, 국가,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창조 법 구조에 입각한 기독교적 원리를 따라서 조직되어야 한다. 비신자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반박을 하면 할수록 기독교인들은 사회 안에서 독립된 기독교인 기관들과 조직들을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 카이퍼는 악과의 전쟁은 개인적인 기독교인들의 투쟁보다도 공동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이 더 낫다고 본다.113)

 

 

기독교인 조직들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증거 하기 위하여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사회의 다른 조직들로부터 혹은 영역으로부터 독립된 자신들의 조직들을 사회 안에 세워야 한다.114) 동시에 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 구조들을 인식해야 하며 그것들의 원리를 따라서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문화 발전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기독교인 조직들의 삶을 통하여 가속화된다.

 

 

카이퍼가 제안하는 독립된 기독교인 조직들은 다소 제한적인 고립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위에 세울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아래 불신의 세상과 그 들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려는 소원된 기독교인 공동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비신자들의 삶을 회피하고 창조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되려는 재세례파적 기독교인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이다. 기독교인들이 불신의 세상으로부터 철회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다.

 

 

카이퍼의 강조는 중생자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세상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과감하고 공격적이 모습으로 비 기독교인의 세상에 참여하며 명확한 기독교적 원리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이것을 그는 강력히 제시한다. 그 가운데 중생자들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뿐더러 모든 인류 위에 넘쳐흐르는 일반 은총의 축복들을 보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스스로를 위하지 않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한다.115)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노력들이 모든 악의 세력들을 이기는 결과를 가져오거나 하늘 왕국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모습을 앞당기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천국의 완성을 가져올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기독교인들의 활동은 이미 가시적인 것들 속에 현존하는 특별은총의 권능들의 시초적인 돌파구를 초래한다고 이해한다.116) 그러므로 비록 이런 것들이 장차 올 그 왕국의 종국적인 모습과 동일할지라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문화 성취를 결코 고수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카이퍼는 일반은총의 독립적인 역할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비 기독교인들의 문화적인 업적들에 대해 관심을 쏟는 것처럼 그런 일반적인 이해를 북돋우고자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바라던 바는 사회적 문화나 세상에 대한 유기체적 교회의 관계성과 문화 변혁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사회 정치참여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117) 이런 의미로 볼 때 유기적 교회로서 기독교인 조직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회 속에 존재해야 하며 활동을 해야 한다. 다른 한편 카이퍼에 의하면 일반 은총의 문화적 활동이라는 토대 위에서 전 사회의 복지를 추구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은 비 기독교인들과 협력을 해야 한다.118) 사실, 카이퍼는 일반 은총은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제도적 교회 밖에서 기독교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그 타당성의 근거로 내세우는 개념이다. 일반 은총은 죄의 확산을 방지하며 사회로 하여금 올바로 기능을 발휘하게 하며 발전하게 한다. 하나님은 그 은혜로써 모든 인간들을 다스리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의 영역에 속하지만 국가는 일반 은총의 기관이다.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구주이시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과 악한 영들에게는 심판자로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을 침노하는 동안 일반 은총은 일시적인 삶 전체를 보존한다. 일반 은총론에 호소함으로써 카이퍼는 유기체인 교회가 시민적이며 문화적 문제들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실재성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독립된 기독교인 조직들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 삶의 공동성과 다른 한편 신자와 비신자간의 날카로운 반대가 존재함을 확증하였다. 사실 카이퍼는 창조의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인정하기에 두 은총 사이의 토미즘적인 이원론을 피하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인 원리에 부합한 사회 조직들을 만들어 사회 문화적인 영역들 위에 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되는 목적들을 회복하는 일이다.

 

 

3. 카이퍼에 대한 평가

 

 

카이퍼에 의하면 일반 은총과 특별 은총의 공통점은 동일한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사실이다. 일반 은총은 사회의 비교회적인 분야에서 작용을 하고 특별 은총은 건축된 교회 안에 제한된다. 다시 말하면 건축된 교회는 특별 은총의 영역 안에 속하며 비교회적인 부분들은 자연적인 힘들의 영향력이 중요하게 역할을 하는 일반 은총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종교의 횃불은 특별 은총과 일반 은총 안에서 활활 타고 있다. 그 횃불은 교회의 창문을 통하여 비춰질 뿐 아니라 유기체인 교회를 통하여 사회의 전 영역에까지 훤히 밝힌다.

 

 

카이퍼가 일반 은총론을 발전시킨 동기는 단순히 신학적인 이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빈곤의 문제를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그의 일반 은총론은 중요한 신학적 설명 근거로 등장을 한다. , 일반 은총론은 유기체인 교회와 그 교회가 기독교화 시켜야 할 세상을 다리 놓을 수 있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삶의 모든 영역을 그리스도를 위한 문화에로 변혁시키는 일이다. 창조 세계 안에 주어진 타고난 유기적인 원리들을 발전시키고 전개해야 할 책임이 유기적 교회에게 있다.

그러나 카이퍼의 일반 은총론은 유기적인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을 이 땅위에 세우려는 노력을 언급한다. 일반 은총의 영역에서 행해지는 교회의 사회적 임무는 하나님의 왕국의 유토피아적 건설에로 나아간다. 다시 말하면 창조 문화의 발전을 강조하는 가운데 교회의 사회적 임무가 종말론적인 구속의 면들을 함께 고려하지 못하였다. 종말의 완성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구조들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을 내포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왕국은 어떤 특별한 것에로의 근접이나 다가섬과 동일하지 않다. 교회는 종말을 바라보며 사회 변혁을 위한 자신의 비전이나 책략조차도 과감히 비판의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기독교 사회 윤리의 종말론적이며 교회론적인 비젼은 현세적 존재의 `아직이라는 성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완전히 이루어 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왕국은 이 땅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자신들의 방식대로 세상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비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음을 기억 할 때 안일한 기독교인들의 승리주의는 피해야 한다. 세상에서 미치는 죄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

 

 

더구나, 카이퍼에게 있어서 유기체인 교회의 기독교 문화 형성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을 통한 일시적이며 물질적인 왕국을 향하여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세속적인 일이다. 일반 은총 아래 잇는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그의 생각은 하나님의 왕국에 맞서는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창조 문화의 발전이라는 그의 견해가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역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카이퍼는 자연인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그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문화를 개발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확실히 시민적인 선일 뿐 구속하는 선은 아니다. 게다가 그의 일반 은총론은 동일하게 그 은총의 베푸심을 입은 비 기독교인들과의 협력에로 나아간다. , 일반 은총론은 신자들로 하여금 사회 안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 살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창조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협력하게도 한다. 이것은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의도 즉 세상의 구속이라는 관점에서 창조 문화의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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