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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주차(말7). 왜 참견하십니까?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12. 15. 09:03

본문

49주차(7). 왜 참견하십니까?


 

 

(본문) 3:13~18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가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였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없이 내개 그들을 아끼리니,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죄를 지은 사람들의 특징


 

 

대부분 죄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누군가 잘못을 지적해 줄 때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며 오히려 역정을 내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식들도 부모가 충고라도 하면 왜 다른 집 부모들은 그러지 않는데 엄마 아빠만 유별나게 그러느냐?’며 대듭니다.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 줄 때 오히려 화를 내면서 그 사람을 공격하고, 죄를 짓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질병에 걸렸다는 징후입니다. 특히 요즘 세대는 꾸지람’(rebuke)을 극도로 혐오하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진리의 꾸지람을 들어야 된다고 수없이 충고하십니다. 대표적으로 잠언서를 보겠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1:8)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3)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3:11)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5:23)


 

 

오늘 본문은 말라기 선지자의 여섯 번째 설교에 해당합니다. 원래는 46절 끝까지이지만 분량 상 두 주로 나누어 강해합니다. 알다시피 말라기서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이한 방식의 대화들이 소개됩니다. 오늘도 그런 대화가 소개됩니다. 하나님이 잘못을 지적할 때 백성들은 그것을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까?’하고 대들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말라기서의 처음부터 오늘까지 시종일관 백성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니 참 가관도 아닙니다.

-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노라하시니 백성들이 언제 우리를 사랑했습니까?”하고 말합니다.(1:2)

- 하나님이 내가 아버지이고 내가 주인인데 나를 공경하고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백성들이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했습니까?”합니다.(1:6)

- 하나님이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받지도 않겠다고 하시자, 백성들이 어찜입니까?” 합니다.(2:13-14)

- 하나님이 너희가 말로 나를 괴롭게 했다고 하시자,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게 했습니까?“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2:17)

- 하나님이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시자,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돌아가리이까?”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3:7)

- 그리고 오늘, 하나님이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했다고 질책을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했습니까?”하고 하나님께 대들고 있습니다.(3:13)


 

 

이런 백성들, 이런 자식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라기서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가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가듯이 점점 격화되고 그 결과로서의 벌과 심판이 더욱 가중됨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불평에 대하여 초기에는 약하게 반응하셨으나 그들의 패역함이 갈수록 커지자 급기야는 마지막 심판 날에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대화에서는 백성들의 대적함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악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백성들의 말은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사람들의 완악한 말입니다.


 

 

14절과 15절을 보세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행하는 것은 슬픈 일이고 아무런 유익이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교만한 자, 즉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오히려 화를 면한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을 부정하는 소리입니다. 버릇없는 손자가 제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할아버지 수염 이상 만지지 않습니다. 만약 할아버지 뺨이라도 때렸다면 그 손자 녀석은 패륜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하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에도 어느 정도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쁜 일을 해도 마음속으로는 얼른 이 일을 그만두어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의지가 약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면 당장 입에 풀칠하지 못할 것 같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감당치 못함만큼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그제야 아이쿠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를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진 위인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연약하고 죄에 약한 존재임을 누구보다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면 즉시 자비를 베푸시고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 아버지이시니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대적하는 말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시는 말입니다. 말을 가려서 해야 합니다. 성질나는 대로 말을 다 하고 살 수 없습니다. 선한 말은 양약이 되지만 나쁜 말에는 독이 묻어 있습니다. 이 나쁜 말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오늘처럼 하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대적하는 말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의 판결을 들으시고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앞에 겸허히 나아와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고 대적하시면 무서운 진노의 하나님으로 돌변하시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죄를 짓는 두 가지 경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거나 대적하는 것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 하나는 세상 유혹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잘 믿다가 점점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경우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었는데 별로 자기에게 유익함 것이 없다고 여길 때입니다. 대표적으로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처음에 유다는 예수님을 조국의 위기를 구해 줄 위대한 정치적 지도자로 생각하고 따랐는데, 자기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겠다고 하시니 유다는 실망하고 배신한 것입니다.

- 두 번째 유형은 교회나 목사, 성도 등에게 실망하고 냉소주의자가 된 경우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을 바라본다고 하면서 사람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말은 나는 예수를 버린 적이 없다. 단지 목사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나 혼자 신앙생활 할 뿐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자기를 포장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실망을 주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인내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판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정말로 진노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16절부터 43절에서 의인과 악인의 처사를 완전히 분리하여 의인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기념책에 그 이름을 기록하고 특별한 소유로 삼고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이겠지만, 악인 즉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극렬한 풀무불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첫째, 기념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3:16)

- 영어로는 ‘book of remembrance’인데 우리말로 풀이하면 하나님의 기억의 책이 됩니다. 이 책은 인간의 말과 행위를 기록한 책으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로 활용됩니다.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이 책을 언급하십니다. 혹자는 의인의 책은 생명책(book of life), 악인의 심판의 책은 기념책, 곧 행위책이라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32:32)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56: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69:28)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20:12)


 

 

둘째,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겠다고 하십니다.(3:17)

- ‘특별한 소유,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명칭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19:5-6)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26:18)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특별한 소유‘my treasured possession'이라 표현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일러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2:9)이라 정의했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이름과 대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분에 대해 정확한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더욱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셋째, 아들처럼 아끼신다고 약속하십니다.(3:17)

- 알다시피 하나님과 구약의 백성들의 관계는 주종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16절에서 그때에라고 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지칭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대속과 피 흘리심과 부활 승천하심과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주종관계가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관계로 승격되었습니다. 아들이기에 아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낀다의 명사형은 하마르인데 이는 부성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있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늘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반면에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이 나약함에 빠졌을 때나 비참한 상태에 있을 때 강한 동정과 연민으로 가슴으로 눈물을 뿌리며 아들 대신에 목숨을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로서 우리를 아들처럼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신 약속을 이렇게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변경되지 않습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 위에 굳게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치료하는 광선을 발한다고 했습니다.(4:2)

- 하나님은 라파의 하나님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사리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죄로 인해 육신의 생명은 그 한도가 있으나 육신을 잘 관리하여 오래도록 장수하기를 원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아들에게 주는 복이 건강과 장수입니다. 다른 의미에서 장수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육신을 건강하게 유지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연약하기에 늘 병마와 싸워야 합니다. 병에 한 번 걸리지 않고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에게는 그 연약함도 고치시고 모든 병마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광선을 발한다는 것은 원어적 의미로는 그의 날개(까나프) 안에로 거두어들인다입니다. 날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상징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32:11-12)(참조: 91:4)


 

 

이제 악인에 대한 처리가 남았습니다. 하나님을 격렬하게 대적한 악인들의 말로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불 심판입니다. 풀무불에 넣어 다 태워버린다고 경고하십니다. 풀무불은 이미 다니엘서에서 등장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건지신 바 있습니다.(3;19-27) 옛날에는 대장간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쇠를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려면 풀무불에 넣어 뜨겁게 달군 다음 망치로 쳐서 낫과 괭이나 도끼 호미 등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불을 더욱 뜨겁게 달구기 위해 계속해서 바람을 집어넣었습니다. 이것을 풀무질한다고 합니다.

- 개역성경은 이를 용광로’(furnace)라 하는데, 포항제철의 용광로는 무려 수 천도에 달합니다. 몇 년 전에 일을 하다가 인부가 실족하여 이 용광로에 빠졌는데 순식간에 녹아버렸다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곳에 악인들을 집어넣어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활활 타는 용광로에 집어넣어 흔적도 없이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가 선포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우습게 알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사자의 벌린 입 안에서 어찌 토기가 안전할 수 있습니까?

 

 

3. 세속주의와 그리스도인


 

 

영국 속담에 하나만 아는 것은 전부를 모르는 것이고 둘을 알면 다 아는 것이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무얼 해도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벌을 받는 다는 것을 경홀히 여긴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완전한 구원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의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 묶여서 단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을 잃지 않게 된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미완성의 백성이요, ‘그림자로 살았던 백성입니다. 그런데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완전히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이미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육적인 소욕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면서 악인들이라고 하나님의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같은 조상을 가진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이스라엘은 철저히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에겐 하나님이 이렇게 대우하시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성령의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받은 모든 자는 영원토록 구원의 혜택을 누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세속주의에 대한 경고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길을 따라 나섰듯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세속주의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속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는 좌절감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살아보겠다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때를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고도 높아서 좌절하는 경우입니다.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이자 내고 공과금 내고나면 여전히 돈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몇 년 동안 죽어라고 공부를 했는데 시험의 벽을 넘지 못하면 실망하고 자포자기합니다. 그래서 되는 일도 없는데 그냥 먹고 마시고 놀자는 쪽으로 삶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거지의 문제는 단순히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마음에 패배주의와 자포자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 두 번째는 귀차니즘(botherism)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 만연해 있는 나쁜 병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렵고 귀찮은 일, 골치 아픈 문제를 생각하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학자가 미래의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려놓았는데 인간의 머리 크기가 지금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인간이 생각하기를 포기하여 머리가 작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은 진지한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인생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왜 태어났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사후세계는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붙들고 고민하고 성찰하고 연구하고 씨름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 것은 돈도 안 되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라서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저 즐겁게, 편하게, 행복하게, 귀찮은 일을 하지 않고 내 마음이 기쁜대로 살려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근본적인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고 갈등해야 합니다. 먹고 마시고 돈을 벌고 놀러 다니는 데 만족하는 것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 동부교회의 김서택 목사님이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남을 해치는 것만이 악이 아니라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악이라고 설파했습니다. 참 맞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겐 주어진 본분이 있습니다. 학생은 공부를 우선해야 합니다. 공부는 뒷전이고 맨날 놀기만 하면 본분을 벗어난 사람입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용납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런 학생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계산하십니다. 가장은 가장대로 본분이 있고 아내는 아내대로, 목사는 목사대로, 성도는 성도의 본분이 있습니다.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악입니다.


- 세 번째는 실용주의(pragmatism)입니다. 실용주의는 철저히 계산적인 태도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는 관심을 두고 이익이 없으면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오직 성공의 길만 찾고 따라갑니다. 누가 무엇을 해서 잘 되기라도 하면 금방 모방합니다. 실용주의는 성공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연결됩니다. 특히 위험한 것은 젊은이가 어쩌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돈은 벌었지만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흥청망청 돈을 쓰다가 거의 3년 이내에 거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실용주의자, 즉 계산적인 사람은 반드시 다른 실용주의자에 의해 이용당하고 사기당해 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버린 죄인들의 악행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확대되고 깊어지는지 말라기서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어찌 이 악행이 비단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되겠습니까? 오늘의 우리를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아가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가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주간 성령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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