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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차(말8). 율법을 기억하고 돌이키라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5. 12. 1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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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차(8). 율법을 기억하고 돌이키라


 

 

(본문) 4:4~6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1.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인간이란 완전히 타락하여 연약해진 존재이기에 늘 죄를 짓고 삽니다. 죄는 추악하고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거룩한 나라이기에 더럽고 추악한 죄가 발을 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를 가지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방 안에 들어가려면 발에 묻은 더러운 오물을 깨끗이 씻어야 하듯이 천국에 가려면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그러데 오물은 물로 씻을 수 있지만 죄는 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씻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죄를 완전히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세례를 통해 죄가 씻어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면서 이 세상에 오시어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우리 모두의 죄 값을 몸소 치루시고 인류에게 죄를 씻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잠언서를 통해 약 일곱 가지의 죄악을 미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눈, 거짓된 혀, 살인의 손, 악한 마음, 악행으로 달리는 발, 거짓된 증인, 인간질 하는 자를 싫어하신다고 하셨습니다(6:16~19).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정말 미워하시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잘못을 하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들이 말라기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 도다”(3:13) 하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합니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을 아프게 합니다. 예전에는 양심이 살아 있어서 죄 짓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양심이 돌처럼 굳어져서 더 이상 죄 짓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고, 죄를 더 이상 숨기려 들지도 않습니다. 거짓말하고, 도둑질 하고, 세금을 떼어먹고, 법을 위반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우선 나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우상처럼 숭배되고, 성문화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남녀가 만나면 당연히 성관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어른은 젊은이들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오직 내 자식만 최고이고, 잘 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웃을 적으로 알고, 내 영역으로 침범하면 즉시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겁니다. 매일 집안과 골목과 거리와 광장에서 싸우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대한민국 서울은 21세기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이런 도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은 말라기서 마지막 강해설교를 통해 바로 이것을 전하려 합니다.


2. 율법을 기억하라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하나님은 정부와 국가를 세우시고 이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국가의 능력이 무소불위한 것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지도자가 있어도 세상을 완전하고 안전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저 범죄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 국가 사회를 지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도덕을 유지하도록 교육을 통해 계도하는 일,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일, 그리고 국민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의 확보 등에 힘을 쏟을 뿐입니다. 의학적 처방으로 치면 임시적인 처방책일 뿐입니다. 타락하고 부패한 사회와 백성들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방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오늘 본문 44절에 주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의무는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법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이를 토라라고 하고 모세오경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율법은 성경에서 여러 다른 의미의 단어들로 나타납니다. 미츠와는 계명이고, 다바르는 말씀 혹은 증거로, 호크는 법령이나 조서로, 마쉬파트는 규례와 판단으로, 다트는 법도, 법령 등으로 사용됩니다. 율법은 크게 특정한 범죄에 대한 형벌을 규정하는 사례법(case law), 일반적으로 일련의 어떤 행위들을 규정하고 금지시키지만 형벌은 없는 규정법(prescriptive law)으로 구성됩니다. 내용적으로는 중요한 두 모음집, 즉 시내산 사건들과 관련이 있는 모음집(19-10:10),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행한 고별설교를 기록한 모음집인 신명기로 나눕니다. 이 두 모음집의 내용을 연결해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그 분의 백성들을 보호하셨으며, 또한 그들을 인도하시어 약속의 땅에 이르게 하시고 그곳에서 하나의 국가를 세우신 사실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로서 율법의 근원이십니다. 이를 인간에게 전달한 모세는 율법 제정의 중개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 충실해야 합니다. 율법에 순종하면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면 저주하신다고 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으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5-6)

오늘 내가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4:40, 5:33, 28:2)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28:15)


 

 

예수님은 결코 율법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철저하게 율법에 따라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율법이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공의와 자비와 절제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11:42)


 

 

물론 율법은 오늘의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3:24) 율법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내산에서 주신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하고 준행하는 의무를 지닙니다. 율법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이 제정하신 명령이요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서기관들이 만든 유대사회의 전통과 유전인 할라카’(7:1-8)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녀와 세리들을 비롯한 죄인들과 식사를 같이하고,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심으로 할라카를 범하였고, 이로 인해 바리새인들로부터 고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은 형식보다 내용, 현상보다 본질, 위선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 할라카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3. 기억하고 돌이키라


 

 

말라기 시대에 백성들은 패역의 끝장을 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같은 사람들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지 않으셨다면 이와 같은 악인들은 당장에 사라져야 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모두 진노의 그릇에 담아 불태워 없애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보다 더 끔찍하고 추악한 존재가 없습니다. 인간보다 고집 세고 말 안 듣는 존재가 없습니다. 아무리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이라 해도 매질 몇 번이면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기까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뜻대로, 성질대로, 취향대로, 의지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상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악인들을 보시고도 참으시며 다시 한 번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칭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들을 하나님이 더 가까이 영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라기 선지자도 하나님에게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와 헌물들을 도둑질하고, 하나님에게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아프게 한 유대인들을 향해 다시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 같으면 꼴도 보기 싫을 텐데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체결하신 언약 때문에 당신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다시 기회를 주시고자 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른 말씀을 통해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첫째, ‘율법을 기억하라고 요구합니다.

- 유대인들은 어느새 율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한 세기 전에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에스라 학사로부터 율법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인 율법을 듣자 유대인들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지도와 독려로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율법에 명시된 대로 성전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도록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나 혜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들은 외적의 침입과 권세에 짓밟히고 억압을 받았습니다. 생활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져 갔습니다. 땅도 마르고 매년 기근이 왔습니다. 여기에 자연재해와 각종 재앙들이 닥쳤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이름만 존재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한낱 고문서에 불과하였습니다. 먹고 살기에 바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가 되었습니다.

- 그런데 선지자라는 사람은 그것을 기억하라(자카르)’고 외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억이라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인간보다 더 우월한 기억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동물들이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기억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동일한 행동반복으로 얻어진 체화의 능력 때문입니다. 이것은 머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 배운 자전거 타기는 몸에 기억되어 평생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 그러나 정신세계의 기억은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인간의 몽에 기억시키지 않으시고 정신에 심어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기 위해 계속적인 반복학습과 수련을 통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에 문자는 기억을 돕는 좋은 도구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6:7-9)

 

 

- 기억한다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늘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늘 나의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함께 평화를 누리며 살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로 말라기 선지자는 주님에게로 돌이키라고 요구합니다.

- 5절에 보니,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날, 즉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십니다. 이 사람은 엘리야와 유사한 심령과 능력을 가진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11:14).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보내시어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이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 실제로 세례 요한은 주님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입을 열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2)고 소리쳤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회개요청을 받아들이고 요단강으로 나아와 요한이 주는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아마 노아 때처럼 속으로 비웃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다가 헤롯 왕에게 참형을 당했습니다.

- 지금도 회개의 요청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복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심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타락한 인간이 주님에게로 돌이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으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대가로 저주를 주십니다. 지난주에 저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책에 기록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회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회개를 요청하는 것은 크신 은혜이십니다. 그것은 마지막 기회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용서의 기회도 됩니다.

 

 

4. 결론


 

 

회개는 히브리어로 나함이고 헬라어로는 메타멜로마이입니다. 이 단어들은 과거에 임한 심판을 포함한 완전한 방향전환과 미래에 대한 신중한 방향수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단지 후회하거나 일시적으로 반성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회개는 완전히, 영원히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죄악과의 철저한 분리와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을 뜻합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향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참된 방향 전환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요구에는 진실함과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마음을 찢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 우시며 노하기를 더기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2:12-13)

 

 

하나님은 죄를 짓는 것보다 회개치 않는 자를 더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아시기에 죄를 지으면 슬퍼하시지만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회개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다 용서하시고 다시 화해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우리를 아들 삼아 주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십니다. 아들은 언제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아들은 언제라도 아버지의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도 탕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방탕한 삶을 살면 아들이라도 집에서 나가서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삶입니다. 탕자가 가장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방식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기의 것을 모두 포기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입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혔다는 것은 설죽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고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것은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새로움의 시작이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것, 즉 회개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잘못했습니다하고 고백하십시오. 그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실수를 했습니까? 그러면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그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떤 일이 잘못되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먼저 다가가 제 잘못도 있습니다라고 고백해 보세요. 그것이 회개의 열매가 맺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잘못했다고 말한다고 인격이 손상되거나 체면이 깎여지거나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말라기서 강해를 마치면서 저는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죄를 슬퍼해야 하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여 완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겸손의 자리로 이끕니다. 바리새인은 자신들이 택함을 받은 것이라 하여 으스대고 교만했지만 우리는 비록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을 해도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언제나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무엇보다 회개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아끼고, 조금씩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어 주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회개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회개한 사람만이 행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는 아직 회개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한 것을 더욱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틈나는 대로, 만나는 모든 이에게 회개를 요청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이 왜 핍박을 받아야 하냐면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회개를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요청하는 자체가 사람들로부터의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일시적으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을지라도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저주를 은혜로 바꾸시는 분이이십니다.

 

 

지금 사람들은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악한 세대의 사람들입니다. 점점 회개의 단어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이미 많은 교회 안에서 회개의 복음이 사라졌습니다. 반대로 회개를 요청하지 않는 교회가 날로 성장합니다. 회개를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입맛에 맞춘다는 것입니다. 대중들은 자기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자기를 칭찬하고 우쭐하게 만들어주고 자기편이 되어주면 만족합니다. 교회가 그런 소리를 하고 그렇게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다수의 의견을 쫓다보면 사람들이 참으로 민주적인 교회이고, 우리말을 잘 들어주는 교회이고, 우리 목사님은 사람이 참 따뜻하고 점잖고 인격이 훌륭하고 설교도 잘하신다고 추켜 세웁니다. 목사의 인기가 오르면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몰려 든 사람들 중에 거의 진짜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공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교리공부라도 하자 치면 손사래를 칩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옛날 창고에 쳐 박혀 있어야 할 그런 쾌쾌 묵은 것을 왜 내가 배워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에서 시달린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야지 왜 그런 교육을 해서 마음을 무겁게 하느냐고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들은 교회를 자신들이 위로받을 안식처요, 하나님의 품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바르게 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답이 궁색합니다. 그들은 어제든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회를 등질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한 부흥은 가짜입니다. 그런 가짜 부흥과 성장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벌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머리 위에 숯불을 얹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하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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