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과일류를 구입할 때 실제적인 효용은 과육의 맛과 영양소, 포장, 브랜드 순이지만 접하는 순서는 역으로 브랜드, 포장, 과육의 순이다. 이는 사회 공동체 내의 교회와 교단, 교계에도 해당된다.
소통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를 이미지 기반의 사회(iconosphere) 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리더, 혹은 공동체가 아무리 좋은 모양이나 콘텐츠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어떤 이유로든 좋은 이미지로 잘 연결되지 않을 때 내부와 외부는 점점 단절되어 역작용만 심화된다.
우리가 스스로 갖는 긍정적 셀프 이미지들도 물론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교계와 교단을 향해 떠올리는, 주관적이며 정서적인 인식은 사실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지역 내 한 교계연합모임의 티타임 중에 나왔던 담론에서는 수년 전 이야기부터 최근까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화제들이 이어졌다. 물론 절제가 지켜진 자리였지만 마음은 편치 못했다.
목회자 윤리강령 제정
이런 배경에서 작년 100회 총회에서 교회지도자의 윤리강령과 도덕성 강화를 위한 법령 제정이 헌의되었지만 기각되었다. 국내 교계에서 그런 일들이 너무 잦아 만성이 된 것 같은 때에 얼마 전 부천에서 한 목사가 여중생 딸을 죽이고 시신을 장기간 방치한 사건의 보도가 전국을 메아리쳤고, 우리는 차마 그 뉴스를 함께 듣고 볼 수가 없었다. 한 목사가 저지른 참극은 사실 오늘 우리의 추악한 자화상이란 말이 그렇게 틀리지 않다.
전환의 계기가 필요하다. 2007년말 태안 기름유출 사건 때 자원봉사자 120만 명 가운데 70만 명이 현지로 달려간 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이었다. 거기서 한국교회는 섬김의 DNA를 유감없이 나타내었고 그것이 그때까지의 추락한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새로운 흐름이 없이 이미지 퇴색화가 지속된다면 우리의 여러 긍정적 디자인들(교단적 틀과 조직, 비전)과 콘텐츠(역사, 전통, 개혁과 보수, 성경의 바른 이해와 전달)까지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좋은 이미지를 쌓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것이 손상되는 것은 단기간일 수 있다.
근래 배출가스량 조작과 관련된 독일의 한 자동차회사 일이 예가 될 것이다. 반면 1980년대 후반 한 국산 자동차회사는 미국 시장에서 처음 판매 신기록을 달성한 후에도 싼 차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성능에 대한 보증수리를 연장하면서 신뢰도가 제고됐고, 옛 이미지 탈피가 이루어진 때부터 제2의 신기록이 이어졌다.
세상은 단순히 우리가 ‘국내 최대’ 운운하는 양적 성장주의나, 다양한 조직과 내부 제도에 감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를 보는 눈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을 능동적으로 이해하며 선도하여가야 한다.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연구하며 협의해서 실행해야 한다.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은 긍정적 감동이 잘 공감되고 유익이 많다. 이미지 증진에 지역사회봉사와 문화선교를 통한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점은 이미 입증되고 있다.
얼마 전 지자체와 협력하여 소외된 지역주민들을 후원하는 자리에서 특히 경내 많은 교회들이 참여한 것에 대해 지자체장들과 타종교인에게서까지 감사와 부러움을 표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교회들과 교단이 더 열심히, 더 많이 구제와 선행에 힘쓴다면 그것은 시대를 치유하는 한 백신(vaccine)이 될 것이며, 전도를 예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을 금지할 법은 없다. 좋은 이미지를 증대시켜줄 이런 일이 심각한 역작용으로 나아가는 사건은 더 이상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
개혁·회개운동 전개해야
디자인은 전체적, 통시대적 마스터 플랜과 비전을 계속 가다듬으면서 그것을 현대화하고 효율화하며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이 디자인의 완성이란 끝없는 추구의 과정이다. 필요하면 외부에서도 겸손히 벤치마킹하고, 일반 사회에서 앞서가는 부분은 역시 원용하는 것도 주저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의 이해와 인식 부족이 교단 내에서 건강하지 못한 쟁점으로 비화했던 점은 깊은 생각을 요한다.
콘텐츠는 본질이다. 종교개혁자들이 담대하게 재발견하여 선언해준 그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순전하게 파수되고 발전되고 있다면 우리의 그 고귀한 본질은 합당한 이미지와 디자인에 의해 지원을 받을 때 더욱 강력히 선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모두를 성경과 초심과 순수로 돌이키는 개혁운동과 회개운동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동시에 이미지와 디자인과 콘텐츠의 세 영역에서 전방위적이며 균형 있는 업그레이드가 시급하고도 과감히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 장자교단으로서의 닉네임과 선한 영향력이 향후 긍정적으로 계속 이어질 것인지 여부가 상당부분 달려있을 것이다.
김창수 목사(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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