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0:19-25, 코람데오(Coram Deo)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 이스라엘의 광야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따라다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해했고, 삶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했을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존재를 잊을 때도 있었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 40년의 삶을 살면서 그들의 삶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한 순간도 자신들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은 먹는 것을 위시해서 그들의 모든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다. 이렇게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제로 왕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기 위한 삶을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코람데오(Coram Deo : Before the God)라고 했다. 즉, 항상 하나님 앞에 서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라는 말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임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삶이 코람데오를 살아가는 자들의 삶이 된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향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사도행전3:6)’라고 외쳤던 베드로가 예수를 증거하지 말라는 강요하는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5:29)’라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예수님으로부터 ‘코람데오’의 삶을 배웠고, 성령 하나님과의 동행으로 ‘코람데오’를 삶 가운데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어렵게 말하면‘코람데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신학적 원리이다. 이 말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라디아서6:14)’라고 말한 삶의 실존적인 상태를 따라가는 삶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설수 있도록 해주신 ‘그리스도인의 실존’이 코람데오라는 말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바탕이 바로 코람데오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있는 자들의 삶은 세상이 나에 대하여 또 내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힌 자의 삶이 된다. 다시 말해 세상을 향한 욕구와 미련이 없는 삶이고, 세상의 요구에 무감각해지는 삶이 바로 코람데오의 실존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당연히 제의적이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드러나는 삶이라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은 제의적인 윤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제의적이고, 정직히 행하는 것도 제의적이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제의적이고, 살인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자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일들까지도 제의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제의적 윤리가 세상의 윤리적인 삶으로 이해될 때 삶의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직자들이 교회의 삶과 다른 세상적인 삶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갖는 중요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러진 제의적 삶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아야 하는 저주를 대신 받으시는 제의적인 죽음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은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저주를 끊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승리를 전해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약에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제의적인 요구가 완성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구약적 제의의 불완전함이 제거된 것은 맞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더 많은 제의적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말씀하신 ‘6개의 반제(마태복음5: 17-48)’가 그런 제의적인 삶이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4. 히브리서는 당면한 박해의 위기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그 비결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만들어진‘코람데오’라는 삶의 실존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께서 계신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고, 그런 담력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힘입어 얻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즉 코람데오의 실존을 살 수 있는 이유를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브리서10:20)’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자고 권면한다. ‘하나님 앞에’의 실존이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히브리서의 저자는‘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히브리서10:23)’자고 권면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삶의 실존적인 변화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삶의 실존적인 바탕이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 즉 모든 삶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는 제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제의적인 삶을 바탕으로 우리는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히브리서10:24-25)’않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은 하나님과 같이함으로 코람데오(Coram Deo)의 실존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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