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0:42-45. 섬김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 복음서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내용을 요약한다면 두 가지로 요약이 가능하다. 하나는 ‘예수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삼위 일체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 드러나는가의 문제는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의 문제와 통하게 되어있다. 예수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이후 약 450여년간 논쟁의 중심 주제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땅에 오신 하나님으로서 어떤 삶을 사셨는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된 우리들의 삶의 문제와 연결된다. 즉, 우리가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하나님과 같이 걷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고, 그런 삶을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13-16)’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은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이야기한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가복음1:1)’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던‘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가복음15:39)’라는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생이 끝나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마가도 당시에 논쟁의 주제였던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계속 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마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무엇이라 답하고 있는가? 2. ‘왜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교리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우리의 신앙의 대상에 대한 문제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시는가의 문제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하여 바울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라는 고백을 이야기한다. 이런 바울의 이야기를 ‘예수님의 자기 비하’라고 말한다.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삶을 감당하셨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만,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되심으로 우리들에게 찾아오셨고, 우리들과 같이 걸으시기 위해 우리의 죄악을 스스로 담당하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이다. 요19: 30절에서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면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섬김을 바탕으로 우리를 향한 죄의 요구를 다 값으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희생과 그분의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사셨다. 그것도 하나님과 동등하신 몸으로 말이다. 3.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에서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을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라고 말씀하신다. 이 섬김을 위해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하기까지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고, 우리를 위해‘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4-6)’라고 말하는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사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신 것처럼,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음을 향해 나아가신 것처럼 섬김은 스스로를 내려놓음으로 이루어진다. 즉, 포기하는 차원의 믿음을 요구한다. 우리가 포기할 것을 올바르게 포기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없다. 바울은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목표를 포기함으로 이방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도가 되었고,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을 포기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그렇게 자기의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포기함에서 온다. 그러나 자기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주님보다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더 사랑하는 일이 되고, 결국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4. 예수님은 제자도를 이야기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마16:24)’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회를 삼기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첫 번째 원리는 ‘포기’함에 있다. 우리가 포기되어 질 때에 하나님을 위한 섬김의 삶이 나온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포기하고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드러나는 것처럼, 그래서 적극적으로 믿음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의 삶에 ‘섬김’이 드러나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 하는 데서부터 나온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포기할 것이 무엇이고, 누구를 섬겨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주일이 되었으면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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