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2:1-5, 탄식과 응답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우리는 사순절동안 요한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을 묵상했다. 십자가는 겟세마네에서의 기도하심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그리스도 스스로의 확인 작업이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하심인 것을 확인하셨고, 빌립보서에서 이르듯이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시는(2:7-8) 낮아지심으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결정이었다. 주님께서는 마취의 기능이 있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부하실 정도로 가장 인간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스스로 감당하셨다. 주님은‘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로마서5:8)’다.
특히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면서 시22편의 탄식을 그대로 이야기하신다.
탄식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게 하는 가장 강력한 구원의 동기였음을 이스라엘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26장을 보면 5-9에 이스라엘 민족의 최초의 원시 고백이 나오는데, 그 고백문 속에도 부르짖음(신26:7 상반부) ----> 들으심(신26:7 하반부) -----> 구원(26:8-9) 의 도식이 나타난다. 즉, 부르짖음 - 탄원-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2.본문은 다음과 같은 구성을 갖고 있다.
1-2절 : 하나님을 향한 탄원 : 하나님의 부재를 의식함 3-5절 :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함 3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함 4-5절: 하나님을 신뢰함(역사를 되돌아 봄)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한낮이었던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어둠이 지속되었다고 복음서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주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부재를 십자가에서 느끼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생각하시고 심히 고민하여 죽게될 만큼(막14:33-34) 고통스러웠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떠나심이었을 것이고, 그 증거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고통당하시는 그 순간 어둠이 예수님을 감싸고 만 것이다. 즉,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4번째로 외치신‘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의 배경이 오늘 우리가 읽은 시22편 1절의 말씀이셨는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영적인 고독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런 고독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는 그리스도의 확고한 믿음을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느끼신 하나님과의 분리, 혹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하는 하나님의 부재는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부재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본 대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신뢰에 바탕을 둔 부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3.현실적인 이러한 절망을 느낄 때 그 절망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탄식하고 그 탄식이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로 변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실적인 고통들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로 승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위로를 얻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들이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절망, 즉, 우리의 삶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비참함’이라고 말한다. 그 비참함을 알아야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거꾸로 우리가 우리의 현실 속에서 절망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고난을 느끼지 못할 때 어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매달림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탄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우리들 스스로에게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느끼신 고독과 버림받았음에 대한 철저한 고통이 도리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믿음의 바탕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우리와 같이 걸으시는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이다.
4.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면서, 그 고난의 시작이 겟세마네였고, 그리스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작업이었음을 함께 나누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외면하심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그 소리는 결국 ‘지금 당장의 절망’을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변화시켰던 기도였고, 십자가에서의 외침은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외침으로 변하는 것이다.
참 아픈 주간이다. 이런 아픔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 피지 못한 아이들이 물속에 갇혀있는데, 그 아이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어른들이 하는 짓은 목불안견이다. 이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이 절망 속에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소망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이런 아픔과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느끼는 탄식이 우리들의 입술에서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우리들을 바꾸어놓기를 기도하자. 우리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이다. |
신 8:2-3. 하나님의 의도 (0) | 2016.05.02 |
---|---|
세월호는 상식의 문제입니다 (0) | 2016.04.26 |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마 5:10~12) (0) | 2016.04.20 |
선명하게 빛나는 신비 (0) | 2015.12.14 |
왜 나는 자주 포기할까요?(창 39:1~6) (0) | 2015.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