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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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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진실 2016. 6. 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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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누가복음 15:7

 

 

 

 

 

우리나라에는 이단 종류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이단상담소의 이단 상담 중 90%

신천지 이단과 연루된 문제로 인한 상담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신천지 이단이 최근 한국교회에 가장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이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이 신천지에 쉽게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 교회 신자들이 신천지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요한계시록의 특징

2. 요한계시록의 구조

3. 요한계시록의 주제

 

1. 요한계시록의 특징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2. 예언의 말씀

3.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1)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1)

 

요한계시록은 이해하기에 대단히 어렵습니다.

낯선 단어와 사건들이 많이 언급되고, 수다한 상징어들이 나열되며,

구약의 직접 인용과 모티브 사용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은 이해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는 면사포를 쓰고 있던 신부의 면사포를 걷어 올려

그 얼굴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시는 숨겨짐이 아니라 나타남입니다.

계시는 감추는 것을 위하지 않고 밝히는 것을 위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계시인 이상,

이것은 독자들을 놀라게 하거나 두렵게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독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모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2)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이다(1:3).

 

 

 

예언의 사전적 뜻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하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기록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언의 사전적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적 의미가 중요합니다.

예언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현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1세기 말의 요한계시록 독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책입니다.

 

 

 

 

 

예언하면 미래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예언하면 현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미래에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의 말씀인 요한계시록은 1세기 말, AD9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한계시록 독자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게 하도록 하는 그런 목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1:3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언의 말씀이 먼 미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이라고 한다면

1세기말의 요한계시록 독자들이 어떻게 예언의 말씀을 지킬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예언의 말씀은 현재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래야 1세기 말의 요한계시록 독자들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요한계시록은 편지이다(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1:4)

 

 

발신자는 사도 요한이고요,

수신자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편지로서 요한계시록이 갖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고유한 언어적 코드, 언어적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어떤 의미로 글을 쓰셨는지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장병이 그 편지를 읽으면 이해가 되는 문장도 있고

이해가 안 되는 문장도 있을 것입니다.

옆에 있던 장병이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을 한참 고민하더니

그 아들에게 이 문장은 이렇게 해석해야만 돼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웃기겠습니까?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666을 바코드나 베리칩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13:16-18

표가 무엇인가 하면 짐승의 이름, 이름의 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름을 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수를 세어보니 666입니다.

666은 짐승의 이름을 수로 표현한 숫자입니다.

요한계시록 기록 당시 사용했던 언어는 헬라어와 히브리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각 철자마다 숫자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이름이든지 수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이름을 부를 때 수로 표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666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의미 있는 인물 중 666 숫자에 해당하는 이름을 찾아보면

그 인물이 네로 황제라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된 네로 황제 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해서

히브리어로 된 철자의 수를 합했더니 666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짐승의 실체는 네로 황제입니다.

왜 네로 황제를 짐승으로 폭력성 있는 존재로 등장시킬까요?

이 당시 네로는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핍박한 최초의 로마 황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네로 황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기록 당시 네로 황제는 사망하고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60년 중반에 살해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요한계시록은 90-96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30년 정도 차이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 황제를

기독교 성도들을 핍박하는 폭력성 있는 존재의 모델로 등장시키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네로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네로 황제의 존재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황제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면 사고 팔수 없다고 했습니다.

짐승의 표가 짐승의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의 이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짐승의 이름, 황제의 이름을 이마나 오른손에 새긴다는 것은,

새김을 받은 자들이 황제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황제를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짐승의 이름, 황제의 이름,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에게 속했다는 뜻이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황제숭배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이슈는,

황제를 숭배할 것인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어떤 우상도 둘 수가 없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게 될 때 주어지는 것은 칼로 목베임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을 읽었던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직면한

신앙의 결단의 문제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독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요한이 독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칼에 목베임을 당하고 감옥에 갈지언정

황제 숭배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특징>>

1. 계시 2. 예언 3. 편지

 

2. 요한계시록의 구조

 

프롤로그 (도입) 1:1-8 계시, 예언, 편지

 

서론 1:9 3:22

1:9-1:20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

2, 3장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일곱 메시지

 

본론 4-16

4, 5장 하늘 환상

4: 2 보좌, 보좌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행위를 두 단어로 표현하면 구원과 심판입니다.

6-16장 세상에 대한 심판과 교회의 구속

 

결론 - 이중적 결론

최후의 심판 // 구원의 완성

 

최후의 심판

17:1 - 19:10 바벨론의 멸망

 

 

 

바벨론은 BC538년에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미 멸망한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했을까요?

요한계시록이 쓰일 당시 유대 문화에서 바벨론은 로마를 상징합니다.

그 이유는 바벨론과 로마는 모두 거대 제국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멸망은 로마 제국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결론에서 로마 제국의 멸망을 말하고 있을까요?

그 당시에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황제를 숭배하라는

위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를 숭배하지 않으면 목이 잘리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의 세력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결론으로 성도들을 핍박하는 로마제국, 악의 세력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9:11-20:15 두 짐슴, 용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

첫째 짐슴 : 로마 제국의 황제,

둘째 짐슴 : 거짓 선지자,

: 마귀, 사단

최후의 심판 불못

 

 

구원의 완성

 

21:1-8 새창조와 새 예루살렘

21:1 새 하늘과 새 땅은 새롭게 된 창조 세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속 역사의 종착점으로서

처음 창조의 목적이 완성되는 새창조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21:9-22:9 새 예루살렘의 영광

새 예루살렘은 무엇일까요?

21:9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보이리라

21:10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거룩한 성 예루살렘 = 신부 = 어린 양의 아내 = 교회 공동체

요한계시록은 결론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새 예루살렘,

즉 교회 공동체라고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핍박받는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1세기 말 성도들은 매일 매일 로마 황제 숭배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누가 로마 제국이 멸망할 것이라고 상상했겠습니까?

고난 받는 성도들이 요한계시록 읽을 때

악의 세력은 궁극적으로 망할 것이다라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이 황제 숭배에 굴복하지 말고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을 이 세상에 드러내며 살도록

권면하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22:10-21

 

 

 

 

3. 요한계시록의 주제

 

 

1. 하나님의 나라

2. 교회

3. 심판

 

1) 하나님 나라(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당시에는 한 사람이 앞에 나가서 대표로 요한계시록을 읽었습니다. 단수

나머지 회중은 들었으므로 듣는 자들은 복수이고요,

나머지 회중이 들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니까 지키는 자들도 복수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황제 숭배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직업을 잃게 되고, 가난해집니다.

그런데 왜 복이 있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때가 가까움이라.

때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때입니다.

 

때가 가까움이라를 하나님나라가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것이다로

해석하기 쉽지만

때가 가까움이라는 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A 때가 찼고

B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성경 평행법, : 똑같의 의미의 말을 반복, 단어를 바꿈

 

때가 찼고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똑같은 뜻입니다.

 

때가 찼고는 때가 이미 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뜻입니다.

 

1:3

때가 가까움이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왔습니까?

예수님의 초림, 예수님의 탄생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 복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황제 숭배에 굴복하지 않으면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가난해지는데

왜 복이 있다고 했을까요?

 

황제 숭배에 굴복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됩니다.

그럼에도 복이 있다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되심을 경험하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2) 교회

 

(1) 7장 십사만 사천

 

7:1-8

7:4 144,000 = 12X12X1000

12 열두 지파 이스라엘, 약속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12 사도 교회, 성취로서 하나님의 백성

1,000 완전수, 영원수

144,000 = 교회 공동체

땅에서 전투하는 교회

144,000은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잘못된 해석입니다.

 

7:9-17 셀 수 없는 큰 무리 (7:9)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구약적 배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의 성취

13: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15:5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 같으리라

32:12 바다 모래

땅의 티끌, 하늘의 뭇별, 바다 모래의 공통점은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신약 교회는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입니다.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하늘에서 승리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십사만사천과 셀수 없는 큰 무리는 서로 다른 조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둘 다 모두 교회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3) 심판

 

초림 : 심판의 시작

재림 : 심판의 완성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오늘날 성도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황제 숭배에 대한 위협은 없습니다.

하지만 황제 숭배 대신 다른 우상숭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탐심입니다.

골로새서 35절에 탐심은 우상숭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이 왜 우상숭배일까요?

탐심은 우리 마음에서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재물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재물이 여러분의 왕입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명예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명예가 여러분의 왕입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지위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위가 여러분의 왕입니다.

여러분 마음 안에 자녀의 성공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녀가 여러분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안에 또 다른 왕이 있다면

어떻게 두 왕을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탐심이라는 왕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김 것인가?

이것이 바로 21세기를 사는 성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이 질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탐심이라는 왕을 죽이고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겨라.

탐심이라는 왕을 죽이고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기는 삶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는 탐심을 죽어야 합니다.

탐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탐심을 죽이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에 신천지 교인들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탄방교회만 신천지 교인이 없을까요?

저는 이 자리에 신천지 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신천지 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는 신천지 교인에게 이야기합니다.

신천지 교인 여러분의 영혼이 달려 있는 문제이니까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의 핵심

 

1) 신천지의 계시론

 

(1) 환상 계시 : 요한이 본 환상을 통한 계시 -

요한은 자신이 본 환상적 계시의 의미를 알지 못함

(2) 실상 계시 : 성취의 시대에 이만희에 의해 해석되는 계시의 가르침 -

오직 환상계시는 실상 계시를 말하는 이만희에 의해 풀어지고 알려진다.

-- 실상계시를 알아야 구원이 있다,

 

예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이것이 먹힙니다.

예언이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런 개념이 먹힙니다.

 

요한은 환상을 통해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환상적 계시는 그 자체가 실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환상을 통해 계시를 받고 그 계시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저자로서 집필에 임했으며, 자신의 성경적, 문화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독자들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 성도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원래 독자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환상이

실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로마 제국 황제 숭배를 받도록 하는 사회적 정황 속에서

교회가 거룩성을 훼손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종말적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의 사건을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함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2) 이원론적 세계관

 

유재열의 장막 성전(첫째 장막)

이만희의 증거장막 성전(둘째 장막)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모든 악의 세력(바벨론, 짐승)

기성 교회와 그것에 의해 장악된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있다.

 

요한계시록의 세계관 : 악의 세력은 사탄과 사탄의 사주를 받은 로마 제국과

그 황제를 적대적 세력으로 간주한다.

 

요한계시록의 시계관은 신천지의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3) 영육합일설 (20:4)

 

목베임을 받은 영혼 = 순교자의 영 (144,000) (20:4a) +

짐승에 경배하지 않은 자 = 신천지 교인 (144,000) (20:4b)

합일 = 하나됨 = 완전한 부활

 

성경에는 순교자가 144,00이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20:4절에는 목베임을 받은 영혼과 짐승에 경배하지 않은 자가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안 나와 있습니다.

 

영육합일설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근거가 20:4절에 전혀 없습니다.

 

순교자들 +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 (잠재적 순교자들)

= 순교적 정신을 가진 공동체, 교회 공동체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왜 교회 신자들이 신천지에 빠질까요?

 

 

신천지에서는 처음에는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이만희 교주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성경공부 하다보면 신천지가

교회 보다 더 성경적인 곳이라고 세뇌가 되는 것입니다.

 

 

 

 

세뇌가 된 후에 요한계시록 교리를 가르치니까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천지 이단에 빠진 교인이 돌이켜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용서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5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신천지 교인 여러분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잘못을 다 용서하시고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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