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5:24-29, 믿음의 패러다임으로 산 다윗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1. 경험이나 이성의 방법이 아니고 믿음도 무엇인가를 아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브리서11:1-2)’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세계 창조의 과정을 아는 것이고, 믿음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믿음으로 우리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고린도전서15:3-4)’신 사건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안다.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구름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이끌어 갔듯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심을 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와 임마누엘하시는 것을 안다. 믿음은 우리에게 비젼을 보게하고, 믿음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난 자리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누가복음5:10)’는 비젼을 주셨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설교할 때 5천명,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사도행전2:41; 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때로 많은 고통의 순간을 살게된다. 그것이 자신의 죄로 인해서이든 혹은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이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소외당하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고통과 소외의 현장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이 무엇인가를 물으며, 무엇인 ‘의를 위하여 목마르며 굶주리는 자’의 태도이고, 무엇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의 태도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2. 우리는 다윗의 삶을 묵상하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울왕에게 핍박을 받으며 겨우 목숨을 유지했었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야를 죽인 죄의 값으로 그 가족에게 칼이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당연히 자신의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다윗은 반란을 진압했다는 기쁨은 슬픔으로 변했다고, 아니 기뻐할 수 없었다고 사무엘하18-19장에서는 말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벧메르학이라는 장소에서 주위를 정돈할 때의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즉, 언약궤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따라서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다윗을 따랐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정통성이 압살롬이 아니라 다윗에게 있음을 천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다.
다윗이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이유는 물론 다윗이 압살롬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정보력을 키우는 것도 있었다. 아마 전장에서 뼈가 굻은 다윗으로서는 압살롬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려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사무엘하15:25-26절)’라고 말한다. 즉, 다윗은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것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실히 한 것이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실 것을 알았다.
3.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나의 삶을 후원하시는‘키다리 아저씨’정도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상4장에서 불레셋에게 패한 다음에 언약궤를 전장으로 갖고 온다. 그들은 쉽게 보이는 언약궤를 하나님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성전을 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성전이 자신들 가운데 있음은 곧 하나님이 자신들과 같이 하는 것이고,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 백성다움을 이야기하신다. 하나님의 의로 목말라하는 삶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고, 하나님과의 의를 지키기 위해 고난도 기꺼이 당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이다. 성전이 아니라 믿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게 한다는 말이다.
4. 다윗이 위기의 순간에 언약궤를 갖고 피난길에 오르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믿음의 패러다임으로 상횡을 보았기 때문이다. 언약궤가 있음으로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사무엘하15:25)’실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에 있어야 할 ‘이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약속을 하신다. 그러나 일반 종교적인 믿음은 종교를 자신의 삶에 이용하는 것이고, 종교적 믿음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얻으려 한다. 그런 태도는 전쟁에 이기위해 언약궤를 가져온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반란을 피해 달아나면서 언약궤를 가져가는 것과 같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다윗이 믿음의 패러다임으로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믿음의 패러다임은 하나님의 뜻을 상황 가운데서 알게 하는 힘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닥친 삶 앞에서 믿음의 패러다임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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