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무모하게 보이지만 사랑하고 생명이다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때로 믿음은 무모한 모습을 가질 때가 있다. 도저히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향해 무모하게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십자가 앞에 서신 예수님이 그런 무모함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고, 예수님의 재림을 체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4:19-20)’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당시의 산헤드린 공의회가 가진 권력을 감안하면 무모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단순히 무모함만은 아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만들어진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에 대한 확신이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두렵고 떨리는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앎’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앎’이기도 하다. 여기서 ‘앎’은 믿음의 한 측면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11:1)’인 인식의 원리이다.
따라서 믿음 있는 사람들의 무모하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하심에 대한 확실한 앎을 바탕으로 둔 삶이다. 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았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디모데후서4:17-18)’라고 말할 수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앞 다투며 살았고,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2천년의 역사를 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해 죽기도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선포하기도 하면서 오늘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무모하게 오늘을 산다. 이렇게 무모해 보이는 삶은 다른 말로 ‘구별된 삶’이고, ‘거룩한 삶’이 다. 그리스도인의 무모함의 이유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있고, 그리스도인의 무모함의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무모한 하루하루를 산다. 원수가 된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였던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그들을 용서하면서 살고,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보여도 날 대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새로운 힘을 얻으며 산다. 세상 사람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희망을 보고,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4:8-9)’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예수의 죽음을 감당하는 이유는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고린도후서4:10)’이 우리의 소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에 매이지 않고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4:16-18)’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어디서나 ‘나’의 존재를 위한 삶이 요구되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너’를 위한 희생이 어리석은 일이 되었고, 미련하고 거리끼는 일이 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무모하게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 특별히 크기 때문이고, 그 은혜를 이야기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좀 무모하게 희생하고, 헌신하며 세상을 살면 안 될까?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1843&msection=3&ssectio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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