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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8-25.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경건

by 김경호 진실 2016. 7. 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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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18-25.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1.고린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이 전해지는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대부분 복음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통념과 상식의 요구를 거슬리게 된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의 전래 과정 역시 그런 통념과 복음이 한판 전쟁을 벌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심각한 신분제의 고통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해방의 기쁨이었겠지만, 신분제를 지키려는 양반계급들에게 복음은 적대적인 대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진 장소에서 억을한 일을 당한 백성들은 서양 선교사들을 찾아가 호소하는 일들이 생겼고, 예수 믿는 자들이 많은 곳에는 가지 않겠다는 탐관오리들이 생겼던 것이다. 이렇게 복음은 사회적인 통념과 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면서 역사를 이어왔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역시 구원받았다는 말은 사회적인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변화된 삶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가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십자가가 선포되는 곳에서는 사회적인 통념같은 신분제나 사람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 수밖에 없고, 십자가가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하나님의 섬김의 모습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선포되는 곳에서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 낮은 신분의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2. 고린도는 경제적으로 풍족한 도시였다. 두 개의 항구가 동서를 연결해줄 뿐 아니라 남북이 연결되는 도로의 중심지에 있던 도시였기에 고린도는 사회적인 이동이 용이했다고 한다. , 가난하고 차별받던 사람들이 고린도에서 열심히 일함으로 사회적인 신분이 상승되고, 그래서 소위자수성가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 고린도였다.

 

삶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퇴역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재건된 고린도가 가지고 있는 로마적인 기질과 교통의 요충지로서 만들어지는 경제적인 풍요와 만연한 이방신들에 대한 제의로 인한 음란함은 고린도가 복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부적합한 곳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이 곳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불모지인 이 곳에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 그리고 교회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시의 상식과 사회적인 통념이 신앙적인 요구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생겨난 그 풍성함이 당시 사회적인 통념으로 해석되고, 당시의 상식으로 이해됨으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가 부끄럽고 미련한 것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섬김이 외면당하고 파당을 지어 서로를 견제하고 군림하려고 했으며, 결국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결과는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난 파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로서 십자가를 이야기한다. 십자가는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린도전서1:24)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고린도전서1:23)하게 되는 것이다.

 

 

3.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1:18)라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로마서1:16)이라고 말한. ‘십자가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그러나 이 십자가는 사회적인 통념상 부끄러울 수 있는 요소가 있고, 멸망당하는 사람들 이 볼 때 미련해 보일 수 있다.

 

그것은 십자가를 세상의 지혜로 바라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십자가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치욕적인 형벌이었고, 십자가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틀림없이 저주를 받은 자임을 확증하는 원리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for) 능력이지, 누구위에(over) 군림하는 권력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십자가는 미련해보일 수 있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십자가는 사회적인 통념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상의 통념을 이길 수 있고,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상식적인 세상의 삶의 원리를 거수를 수 있다. 그것은 십자가가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고, 세상은 그 지혜를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혹 그 지혜를 접한다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자체가 세상의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4. 사회를 변혁시키고, 국가의 이념을 바꾸는 등의 엄청난 큰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너무 쉽게 지나치는 일들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들을 보면서 혹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말이다. ‘예수하는(Doing Jesus) 우리들'이 되기 위해 그리고 예수하는 우리의 삶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이렇게 우리의 작은 일들을 십자가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는 자로서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했던 바울처럼 우리도 역시 이웃들을 향해 예수를 본받는 삶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관심은 부모의 관심이고, 아이의 태도는 부모의 삶의 모습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모습도 역시 나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십자가가 세상의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어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하자.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1778&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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