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자유주의, 상이한 표현인가 다른 종교인가?
- 최덕성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영국국교회 사제 존 셀비 스퐁은 다원주의 시대를 맞아 급속하게 변모하는 21세기의 기독교를 ‘새로운 기독교’(A New Christianity)라 부른다. 신약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이를 ‘새로 등장하는 기독교’(A Newly Emerging Christianity)라고 일컫는다. 어떤 사람들은 ‘신세계 기독교’(A New World Christianity)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교계는 이 ‘새로운 기독교’를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일컬어 왔다. 기독교 전통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신학 유형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여 그것이 역사적 기독교(Historic Christianity)와 구분되는 ‘새로운 종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 유서 깊은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는 하나님, 성자, 성령, 십자가, 부활, 교회, 구원, 종말 등 신학상징(theological symbols)들과 용어들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 패러다임, 뿌리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 기독교’(Liberal Christianity)라는 표현이 이 ‘새로운 기독교’의 개념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통일된 규칙이나 정연한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믿는 신학 흐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대마다 이론이 다르고, 정통신학과의 거리도 일정하지 않다. 온화한 자유주의가 있는가 하면 과격한 자유주의가 있다. 극단의 자유주의를 배제하는 자유주의가 있는가 하면, 성경의 신적 영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기적을 행하는 초자연적 능력 같은, 기독교의 근본 도리를 신봉하지 않는 자유주의도 있다. 성경을 신화, 영웅담, 전설집으로 여기는 자유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도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는 자유주의자도 있다.
그레스앰 메이첸은 여러 세대 전에 이 ‘새로운 기독교’의 정체를 규명한 바 있다.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23)에서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기독교’가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 전혀 다른 뿌리에서 생겨난 별 개의 종교라고 단정한다. ‘자유주의’(자유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별종 종교(a different religion from Christianity)이며, 유서 깊은 기독교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아우를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1 메이첸은 이 사실을 교리관·신론·인론·성경관·기독론·구원론·교회론·봉사론을 견주면서 그 차이를 규명한다.
과연 자유주의 기독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가 아닌 ‘별종 종교’인가? 이러한 메이첸의 판단은 옳다면 그러한 신학을 지향하거나 그와 비슷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와 일치하는 것은 진리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의 판단이 옳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유서 깊은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를 하나로 묶거나 아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유주의 신학은 무엇인가? 역사적 기독교와 ‘근본주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1. 새로운 기독교: 자유주의
자유주의 기독교는 일제의 한국지배가 본격화될 때부터 한국장로교회가 전수한 유서 깊은 기독교 신앙을 줄기차게 공격해 왔다. 장로교회와 정통신앙을 이탈시키고, 한국교회를 자유주의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여러 가지 지략을 짜내고 독설을 내뱉었다. 예컨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김재준 교수는 “옛 건물”(정통신학)을 파괴해야 “새 건물”(자유주의 신학, 신신학)을 건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정통신학은… 인본주의요 정통적 이단이다”2고 힐난(詰難)했다.
자유주의 기독교의 속성을 대략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 기독교와 상반되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연주의(Naturalism)에 뿌리를 박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초자연적 기초를 부정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현실 세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내는 세상의 합리성과 충돌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마저 넘어서는 영속성을 가진 진리일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계시의존 신앙에 근거하지 않고 종교경험, 깨달음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이성에 바탕을 둔 인간 진리와 신의 계시에 바탕을 둔 기독교 진리 사이에 단절이 없다고 본다. 기독교만이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계시가 기독교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둘째, 성경과 교리를 무시한다. 성경을 하나님에 대한 유태인들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 성경의 언어는 인식언어가 아니라 고백언어라고 본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의미를 고백한 것이라고 한다. 고백언어란 사실과 거리가 먼 신화, 꾸며낸 영웅담,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자유주의 기독교는 ‘역사적 예수’를 강조한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성(그리스도의 도성인신, 동정녀 탄생, 대속죽음, 육체부활, 기적수행능력 등)을 부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리와 신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개인 경험을 절대화 할 수 없다고 본다.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역사적인 기독교를 배타적인 집단으로 단정한다. 죄 사함이나 영혼구원이나 영원한 생명 따위 보다 지상천국 건설과 사회정의와 윤리실천에 역점을 둔다. 복음보다는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신자화, 복음화가 아니라 인간화, 사회화에 열성을 보인다.
셋째, 기독교를 도덕생활과 윤리실천 종교로 이해한다. 정의실현·사회악 타파·구조악 철폐·인권투쟁·성차별 철폐·핵무기 제거·환경보존·창조세계의 통합과 가난, 전쟁, 인종차별, 평화, 사회악 개선 등 현세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통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교도 세상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선교’를 천명한다. 악의 원인은 무지이며, 인간의 원죄나 타락한 본성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영지주의(Gnosticism)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인성, 역사성을 부정하면서 그리스도로부터 밀교(密敎)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이라고도 일컬어지는 17-18세기 영국의 이신론(Deism)도 일종의 자유주의 기독교였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섭리와 통치를 부정했다. 기독교가 일반 종교 가운데 발견되는 것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들만이 기독교의 참된 것이라고 보았다.
고전적인 자유주의 기독교는 인간 이성의 제한성, 상대주의, 주관주의를 몰고 온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인식론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독일의 경건주의와 계몽주의 온상에서 자랐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1768-1834)와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이 대변하는 ‘구자유주의’(Old Liberalism)는 기독교의 핵심이 인간경험과 윤리에 있는 것으로 본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신을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종교의 본질이 신적 실재에 대한 깨달음(radical sort of awareness of divine reality), 감(感)에 있다고 보았다. 리츨은 기독교의 본질이 교리나 깨달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의 실천과 우주적인 사랑 공동체 구성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잠재 가능성과 도덕 실천을 통한 지상낙원을 추구했다.
성경, 계시, 교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자유주의 기독교의 태도는 성경비평학을 고무시켰다.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을 부인하고,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며, 창세기를 단일 저자의 기록이 아니라 여러 전승(傳承)들을 편집한 것으로 보는 경향을 낳았다.
전술했듯이,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기(1920-1930년대)에 나타난 미국의 자유주의 기독교는 성경무오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기적수행 능력 등을 단지 ‘이론’(theories)이라고 보았다. 성경이 역사 사료편찬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고 본다. 성경에 대한 역사비평학 접근을 지지한다. 복음 메시지에 추가된 문화적, 신화적 요소를 배제한다고 하면서 ‘바울 기독교’와 ‘예수 기독교’를 구분한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뒤에 다양한 형태의 현대주의 사상으로 나타났다.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주의, 불트만의 비신화화 신학, 모세오경의 모세저작을 부정하는 고등비평학, 구약성경을 신화집, 전승집으로 보는 성경신학, 성경적 신론을 신화로 여기는 폴 틸리히와 존 로빈슨의 신학,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 알타이저의 사신(死神)신학, 하나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 신학,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나타났다.3
정통신학자 박형룡 박사는 ‘자유주의 기독교’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성경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다. 성경 권위보다는 그리스도가 직접 말씀하신 교훈에만 권위를 둔다. 과학, 역사, 도덕에 관한 성경 본문에는 오류가 있다고 본다. (2) 반(反)교리적이다. 성경에 바탕을 둔 교리, 신조를 배척한다. 기독교는 생활이지 교리가 아니라고 한다. 신조는 사상의 자유를 앗아간다고 본다. 교리나 신조는 각 종파 사람들의 심리 경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3)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며, 신관(神觀)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교리가 아니라 예수라고 한다. (4)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 (5)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6) 그리스도를 신앙의 모범으로, 독특한 인물로 추대하는 반면 그의 초자연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능력과 구속적인 기능을 가진 그의 인격을 부정한다. (7) 원죄를 부정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수용하고 그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 타락의 교리를 부인한다. 죄의 중대성과 흉독성을 희박하게 여긴다. (8) 성경이 제시하는 것과 상관없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한 구원을 부정한다. 이신칭의 교리를 부정한다. 성령으로 중생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9) 천국과 영생의 희망을 포기한다. (10)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신앙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를 선행으로 극복하겠다고 한다. 타계적, 초자연적 능력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격변시키려 하지 않는다. (11) 영벌과 지옥, 형벌, 심판도 없고, 백색보좌도 없고, 심판주도 없다고 한다. (12) ‘내재하는 하나님을 재발견’하는 일을 자신들의 비범한 업적으로 여긴다. 그 내재성은 전통적인 성경적 유신론의 내재성이 아니라 과학에 맞추기 위해 초월성을 제외한 내재성이다.4
용어의 개념은 그것이 사용되는 콘텍스트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의 보수계 교회들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가 체계화한 신신학, 바르트주의(신정통주의)를 ‘자유주의 기독교’에 포함시킨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했으며, 변증법적 신학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박형룡은 구자유주의와 바르트주의를 모두 ‘자유주의 신학’으로 분류한다. 바르트주의가 자유주의 신학과 연루(連累)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본다. 둘째, 파괴적인 성경비평학을 허용한다. 셋째, 인본주의에 기초한 신학을 재구성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바르트주의는 성경적인 기독교에서 떠났다고 한다.5
바르트주의는 전통적 신학술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통신학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술어에 새로운 개념을 부가하여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기독교와 다르다. 옛 신학술어들을 그대로 쓰면서 그 속뜻을 다르게 풀이하여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을 새 사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상투적인 수단이다. 바르트 신학도 옛 신학술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해석에서 성경적 전통적인 본의를 떠남으로써 기독교를 재해석한다. 일종의 새로운 신학체계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편에서는 그의 보수적 경향에 주목하여 ‘신정통’이라고 부르지만 코넬리우스 반틸 같은 신학자는 이 신학에 담긴 자유주의 내용을 보아 ‘신현대주의’라 일컫는다.7
한국교회가 바르트주의를 자유주의 기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관례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괴적 성경관과 성경비평학을 수용하는 현대주의자들, 아빙돈주석 사건,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 바르트주의 성경관에 대한 논쟁 등과 관련되어 있다. 박형룡은 1930년대 중반에 장로회신학교(평양)에서 ‘기독교신학난제’를 가르치면서 기독교계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신학 사조들을 비판했다. 그 무렵, 김재준·송창근·채필근·김영주·김춘배·김관식·조희염 목사 등은 자유주의 신학자로 주목받고 있었다.
한국교회사가들은 바르트주의를 자유주의 기독교 범주에 포함시켜왔다. 김양선은 『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1956)에서 광복 후의 한국교회의 분열을 자유와 보수의 대결로 파악한다.7 조선신학교의 김재준, 프린스톤신학교의 존 매카이와 에밀 부룬너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단정한다. 총신대학교에서 가르친 바 있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간하배(Harvie M. Conn) 교수는 미국의 자유주의 기독교의 연장선상에서 김재준을 자유주의 신학자로 규정한다.8 총신대학교의 박용규 교수는 『한국장로교사상사』(1992)9에서 간하배의 논지를 확대 서술하면서 김재준과 송창근을 자유주의 신학자로 분류한다. 조선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의 성경관과 신학에 대해 총회에 제출한 진정서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소개한다.
장로교 남부총회(1946)가 조선신학교를 교역자 양성기관으로 공식 인준할 무렵, 그 학교 안에는 교회에서 정통신학을 배우고 자란 신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우다가 충격을 받고서 ‘진정서’(1947)를 총회에 제출했다. 조선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과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성경관, 교리, 신관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다.
이 진정서는 김재준·송창근·정대위 교수의 신학을 다루지만, 주로 김재준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김재준은 구약성경을 유태교의 성경이라고 하며, 문서설을 주장하여, 모세 6경설, 제2이사야서설을 가르친다. 성경은 주변국의 종교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기록되었다. 성경에는 오류가 많다. 노아홍수설, 바벨탑 기사, 인류의 기원 등은 모두 허구이다. 여리고성의 함락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정신적 승리였다. 정통신학은 신신학보다 더 교묘하게 위장한 실제적 인본주의이며 정통적 이단이다. 성경은 교리의 교과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다. 칼빈의 예정론은 운명론과 다를 바 없다. 유일신 엘로힘은 셈족의 신이라고 가르친다는 것 등이다.10
김재준은 자신의 성경관이 이단시비에 걸려들자 바르트주의 성경관을 자신의 것으로 천명했다. “성경에 다소 오류가 있으나 그 속에 구속하는 이치가 있다”11는 점에서 성경은 무오(無誤)하다고 설명했다. 성경의 역사와 과학 관련 본문에는 오류가 있으나 구원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는 성경은 무오(infallable, not inerrant)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재준은 철저한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철저한 바르트주의자도 아니다. 정통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포괄성과 수용성의 면모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의 신학은 모두를 부정하는 부정신학(Nein-Theologie), 모두를 수용하는 포괄신학(Umgreifen Theologie), 마치 이것인 듯하기도 하고 저것인 듯하기도 한(Als-Ob) 신학이다. 어느 한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높고 먼 공중을 떠도는 신학―장공신학(長空神學)이다.12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의 자유주의 기독교는 근년에 이르러 종교다원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윤성범, 변선환, 홍정수, 한신대학교의 김경재 교수 등이 이러한 물결을 주도해 왔다. 한국의 보수계 교회들은 김재준을 동력(動力)으로 출범한 기독교장로회와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대한기독교감리회를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교단이라고 생각한다.
2. 역사적 기독교와 개혁주의 신학
학자들 가운데서 가끔 발견되는 우상성은 자신의 신념을 유일한 성경적 견해로 여기며 절대화하는 태도이다. 타성적으로 지금까지 다루어 오던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같은 형식 속에 집어넣어 판단하면서 오히려 자기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을 자연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말하면서도 자주 “객관적으로 말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것과 다른 신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역사적 기독교 신자들은 기존의 견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주저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 상태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신학도의 임무는 쟁점들을 명확히 밝히고 공동유산인 신앙고백을 비평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적합한 기준을 제공하며 성경·전통·신앙고백·교리·신학·역사 등 신앙의 내적 외적 요소들을 해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역사적 기독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평 작업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기독교 신학자들 가운데도 해석학적 겸손이 결핍된 사람들이 없지 않다.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패러다임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 한다. 신앙과 이성을 구분하고, 기독교의 초기 역사(그리스도의 도성인신, 동정녀 탄생, 대속죽음, 육체부활, 기적 능력 등)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관주의와 상대주의 태도를 가지면서 그것을 절대시한다. ‘선 무당 사람 잡는 식’으로 사물을 판단하기도 한다.
지적 폭군이 되지 않으려는 신학도는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왜곡, 편견, 실수에 대해 비평적이다. 해석학적 활동에서 본문을 자신의 선(先)이해에 밀어 넣어 꿰맞추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동시에 타인의 견해를 기꺼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다. 자신의 선이해를 본문에 비추어보고, 해석학적으로 검토한 결과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교정하려는 선비의 태도를 가진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사물이해는 완전할 수 없다. 해석학적 겸손을 가진 사람은 이성적 진리와 교회의 전통이 제시하는 진리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이성적 진리가 이성 자체의 제한성과 속임수 때문에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간파한다. 이성적 탐구와 발견을 위한 비평적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신학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저 수많은 탁월한 학자들의 이론들을 맛보는 것조차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배우고 담아 본 뒤에 그것을 버리는 자유인의 기개를 가진다. 현대신학의 변화와 흐름을 탐색한다. 현대의 지성인들이 무엇 때문에 고뇌하며 씨름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배울 것은 주저하지 않고 배운다. 진리탐구의 길을 뚫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
유서 깊은 기독교 안에는 여러 갈래의 신학 흐름이 있다. 그 중심에는 개혁주의 정통신학(Reformed Orthodoxy)이라고 하는 신념체계가 있다. 이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최종 표준으로 삼는다. 성경의 관점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성경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신학활동을 하고자 한다. ‘오직성경’(sola scriptura) 원리를 신학의 토대로 삼는다. 성경에 충실한 신조, 신앙고백, 교리를 선호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성경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신앙고백서라고 생각한다.
박형룡은 역사적 기독교와 관련하여, 자유주의 기독교가 과학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계시신학(啓示神學)의 본성(本城)을 버리고 자연종교의 막연한 황야로 도피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 신학, 신신학, 현대주의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판한다. 반면에 유서 깊은 기독교를,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술된 말씀과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초자연적 성경관을 중심축으로 삼는 신학’12이라고 정의한다. 칼빈주의가 이러한 종류의 가장 명확한 신학적 표현이라고 하면서, 그의 『기독교신학난제선평』(1935)은 정통신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정통신학은 절대적인 인식학적 권위가 오직 천계(天啓)와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에 있는 것이다. 순전히 성경에 따라서 거기 기초하고 거기 부합하는 종교적 의견이면 ‘옳은 의견,’ 곧 정통신앙으로 인정할 것이다. 교회의 교리를 제정함에 있어서 다수인의 권위나 선생의 권위에 따르지 않는바 아니다. 그러나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그 의견이 성경과 합하느냐 않느냐를 상고하여 성경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의견을 정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13
정통신학은 성령의 살아 있는 역사를 강조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시고 사랑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속(redemption)에 능동적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믿음과 칭의와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이다. 그는 만물의 주이며, 유일한 구원자이다. 창조·보존·섭리·통치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은 우주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케 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시간의 끝에 심판주로 재림할 것이다. 신앙은 삶 전체와 인격의 문제라고 본다.14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바르트주의)을 수용했다.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버렸고, 유서 깊은 기독교와 상반되는 ‘새로운 기독교’로 거듭났다. 그들이 버린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관이다.
3. 성경과 교리
기독교의 유일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은 모두 성경에 기초해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것에 바탕을 둔 기독교는 참 종교이다. 만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기독교 신앙은 거짓이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과 말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모두 헛된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계시(啓示)라고 하는 초월적이며, 신적인 수단인 신탁(神託: oracle)에 토대를 두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한 사이클에 맞추어 자신의 말씀, 영원한 진리를 특별하게 계시했다.
성경의 모든 구성요소는 무오하다. 모든 내용이 영감되었다. 하나님은 성경 기록자들을 유기적으로 사용했다. 그 내용은 정확하며 안전하며 신뢰할 만하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거나 구술형태의 기록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계시는 개념과 언어의 형식으로 전달되는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단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또한 거짓된 것을 담을 수 없다. 하나님이 진리(롬3:4)이신 것처럼,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딤후3:16)도 진리의 말씀이다(요17:17).
역사적 기독교가 고백하는 이러한 성경무오성, 완전영감, 유기적 영감의 교리는 구프린스톤 신학자들의 창작물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쳐 온 것이다.
유서 깊은 기독교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최종 규범이라고 본다. 신학과 에큐메니칼 활동의 평가 기준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성경이 신행의 최종의 판단기준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가 문화에 대한 탁월성과 동시대성과 통합성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문화와 복음을 선명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주변 문화의 이상과 구별되는 명백한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뚜렷하고도 확실한 메시지를 제공하지 못한다. 한 동안 진리처럼 여겨지던 사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진리가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캄캄한 흑암을 돌아다니는 유리하는 별처럼 잠시 빤짝이다가 그 빛을 잃는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교회를 점차 세속 문화의 흐름에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세상과 문화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다한다는 미명아래 교리와 신학의 한계를 넓혔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것은 교회가 세상과 문화를 변혁시킨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의해 변화된 것이다. 그 결과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복음과 문화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유서 깊은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역사적 사실과 기독교의 교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성경과 교리, 그리스도와 신조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교리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바울 서신의 약 3분의 2 가량은 교리를 담고 있다. 나머지 3분의 1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경, 교리, 신앙고백, 신학이 없이 저마다의 자기 생각대로 믿으면 인간의 제한성과 주관성의 포로가 된다고 본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교리를 구분하면서 교리무용론, 신조무용론을 펼친다. 교리가 교회의 분규를 조장하고 연합을 방해하며 신학의 발전을 제한하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교리를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십자가를 전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을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도신경을 비교리의 전형(典型)으로 보면서 그것을 고백하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고 본다. 다양한 사상과 교리들을 모두 아름다운 신앙유산으로 받아들이자고 한다. 무조건 하나가 되자, 외형적 일치를 도모하자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유한한 인간이 어찌 자기가 믿는 것만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찌 자기 교단, 자기 종파만 옳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사물이해와 사상은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일 수 없다. 교회가 복음을 현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형식으로 전하려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와 문화의 정황과 관련을 갖고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인간이 무오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상상적, 형이상학적, 초역사적 또는 초인간적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절대적이거나, 명제적으로 무오한 진리를 아는 것이 쉽지 않다. 사물이해에 대한 해석학적 조건과 제한성을 깨달아 항상 배우고 겸허하게 진리의 확실성을 탐색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하는 위험이 도사려 있다. 기독교 신앙은 그 어떤 것보다 성경과 그것의 권위 그리고 그 내용을 간추려 표현한 교리에 의존한다.
바울은 기독교의 근본이 종교 감정이나 경험에 있지 않고 역사적 사실들(facts)과 그것에 대한 설명―교리에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인간이 (1) 그리스도를 믿고, (2)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고, (3) 율법을 지키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유태주의자들은 (1) 그리스도를 믿고, (2) 율법을 지키고, (3)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명확히 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교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하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교리이다. 교리가 사실을 명확하게 한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복음을 제시하는 ‘방법’보다는 복음의 ‘내용’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말하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이 관용 정신을 발휘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관용은 신앙무차별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진리 문제에 대해 매우 엄격한 태도를 가졌다. 자기 시대의 자유주의 신학(영지주의, 거짓교사)에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1:8)고 말했다. 거짓교사들이 진리의 복음을 비복음, 거짓복음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진노했다.
바울은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경험과 복음진리를 동등한 선산에 두지 않았다. 경험은 주관적이다. 특정인에게는 진리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바울은 기독교를 진리(교리)에 기초한 삶으로 이해한다. 교리(복음)가 먼저이고, 체험(삶)이 나중이라고 본다. 그는 항구적이고 우주적인 진리에 관심을 가졌다. 성령의 영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체계화했다. 바울의 관점에서 보면 교리 없는 기독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교회의 전횡적인 무대였던 유럽을 기독교의 불모지가 되게 만든 것은 신학을 시대사조, 시대정신에 걸맞게 변개해 온 자유주의 기독교이다. 다양한 신학을 수용하는 포용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이다. 영국, 독일, 미국, 캐나다, 호주의 주류 교회들이 생명력을 잃고 사양길을 걷는 이유는 성경이 제시하는 기독교 신앙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고백하는 신앙을 ‘배타주의’라고 비난하는 그러한 발상과 태도가 교회를 쇠잔하게 만들었다.
칼빈은 “거짓이 종교의 성채 안으로 침입해 들어오자마자, 요긴한 교리의 요점이 뒤집어지자마자, 교회의 죽음이 초래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교회가 사도와 선지자의 교리 위에 기초해 있다면… 그 교리가 파괴될 때 교회가 어떻게 계속 존속할 수 있겠는가?”15고 말한다. 다양한 신학에 교회의 문을 열어주면 기독교는 교리 없는 종교, 십자가 없는 복음, 믿는 바가 분명하지 않는 집단으로 전락한다. 종교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시대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성경관과 교리의 중요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4. ‘개혁주의’ 스펙트럼
역사적 기독교의 대명사인 ‘개혁주의’(Reformed)는 종교개혁 사건 뒤에 스위스를 중심하여 일어난 개혁파 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의 전통을 일컫는다. 비로마가톨릭교회와 비루터파 프로테스탄트교회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 프레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도 개혁주의자(개혁파 신학자)라고 불리며, 20세기 신학자로 일컬어지는 칼 바르트도 개혁주의 신학자로 불린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바르트주의)의 위험을 경고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그레스앰 메이첸과 코넬리우스 반틸과 국제기독교연합회(ICCC) 총재 칼 매킨타이어도 충실한 개혁주의자이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라는 이름을 가진 에큐메니칼 단체는 진보계 개혁교회들의 연합체이다. 국제개혁교회협의회(ICRC)는 보수계 개혁주의 교회들의 연합단체이다.
‘개혁주의’로 흔히 번역되는 ‘Reformed’(독일어 Reformiert)는 대략 10 가지의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1) 형용사 기능을 가진 분사로 사용되는 경우는 ‘개혁된’을 뜻한다. 개악(改惡)된 것이 아니라 고쳐져 새롭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2) 종교개혁을 거쳐 신약시대의 교회를 회복한 종교, 곧 프로테스탄트교회를 뜻한다. 해방 전후 우리나라 문헌들은 ‘개혁교’(改革敎), ‘개혁종’(改革宗), ‘갱정교’(更正敎)와 같은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3) 프로테스탄트교회 가운데 루터파, 재세례파, 영국국교회와 구분되는 ‘개혁파’ 교회를 뜻한다. 개혁파는 쮜리히의 쯔빙글리와 제네바의 칼빈, 스트라스버그의 부서와 관련된 교파이다. (4) 스위스종교개혁에서 시작된 개혁파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교단을 지칭한다. 네덜랜드개혁교회, 헝가리개혁교회, 미국개혁교회 등으로 사용된다. (5)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개혁주의’이다. ‘개혁파’ 또는 ‘개혁교단’이 믿고 신앙하는 것을 일컫는다. ‘개혁주의’는 이데올로기 뉘앙스를 풍긴다. 개혁신앙은 이데올로기적인 ‘주의’(-ism)가 아니다. 그 밖에도 문맥에 따라 (6) ‘개혁주의자’를 뜻하기도 하고, (7) ‘개혁파 전통’을 뜻하기도 하고, (8) ‘개혁주의 신학’을 뜻하기도 한다. (9) ‘개혁주의적인 어떤 것, 개혁파적인 어떤 것’을 지칭한다. (10) ‘개혁’으로 번역되어 ‘개혁신앙,’ ‘개혁신학,’ ‘개혁교회’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 ‘Reformed’란 용어는 종교개혁 역사 초기에 교황주의에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일컬을 때부터 사용되었다. 개혁된 교회가 본래의 신성한 질서와 생활을 회복했다는 뜻으로 ‘개혁된 교회,’ ‘교정된 교회,’ ‘정화된 교회’로 일컬어졌다.
그 뒤에, ‘Reformiert’는 루터파와 쯔빙글리파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교황주의자들에 맞서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루터파 신앙고백서인 좬협정신조좭의 도입 부분은 “우리 개혁교회는 교황주의자들과 다르게, 타락하고 저주받는 종파와 이교도로부터 분리되었다”16고 진술했다. 이 루터파 신조는 자신들의 교회를 ‘개혁된 교회,’ 곧 ‘개혁교회’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16세기 말과 17세기 초까지는 이와 같은 용례로 사용되었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Reformed’란 용어를 복음주의(Evangelical: Lutherans)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초기 루터파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루터파’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들의 교회는 새로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 ‘개혁된 교회’라고 생각했다.
‘개혁파’라는 이름이 종교개혁 전통을 따르는 비루터파 구성원만을 일컫는 용어가 된 것은 성만찬 논쟁 때부터였다. 이 논쟁은 프로테스탄트들을 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 개혁파로 구분했다. 칼빈파 인물이라고 비난을 받던 팔라틴 왕국의 프레드릭 3세는 1563년에 보낸 어느 편지에서 “루터파는 그리스도의 성찬 교리에 관한 주님의 말씀의 본문에서 이탈한 자들”이라고 말했다. 협정신조는 칼빈파를 “모든 성찬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유해한 자들”17로 묘사한다.
한국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주권, 성경에 대한 높은 권위, 확신 있는 전도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혁파―개혁주의 전통을 전수(傳授)했다. 초기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개혁주의 전통에 바탕을 둔 청교도 형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확신,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는 경건생활, 개혁주의 메시지를 가지고 교회, 학교, 도시, 촌락에서 말과 글로, 행위와 활동으로 전도한 사람들이다. 한국장로교회는 신학의 조형기(造形期)로부터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1907년에 출범한 한국장로교 독노회가 조직된 때부터 중요한 문헌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국장로교단들이 이 고백서들을 공족 문헌으로 수납힌 것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개혁주의 전통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개혁’이란 단어가 한글 문헌에 사용된 것은 1920년 4월에 발간된 좬신학지남좭이다. ‘만국장로회연합총회’라는 이 글은 부두일 선교사가 번역하여 게재한 것으로 1877년 에딘브라에서 모인 제1차 장로교연합총회를 소개하고, 그 모임에 다수의 ‘개혁교인들’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개신교를 ‘갱정교회’(更正敎會)란 말로 일컫는다. 한국인으로서 ‘개혁’을 문헌상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남궁혁 박사였다. 1934년 7월 좬신학지남좭에 실은 ‘칼빈신학과 현대생활’이란 논문에서 ‘칼빈주의’를 소개하면서 사용했다. 프로테스탄트교회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18
우리나라에서 신앙고백 차원에서 개혁주의(Reformed)란 용어를 공식 사용된 것은 고신교단이 출범하면서 발표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 발회식 선포문’(1952)19이었다. ‘개혁주의’를 3회 언급하면서 신생 교단의 신학노선을 천명한다. 한국장로교회가 전수한 개혁주의를 계승한다고 선언한다. 고신교단은 평양에서 마포삼열, 구례인, 박형룡 등이 가르친 개혁주의 신학, 곧 한상동·주남선·손양원 목사가 전수받은 정통신학을 계승하고자 했다.
총신대학교 교수회는 ‘총신의 신학적 입장’에서 이 학교가 개혁주의 신학 전통을 고수한다는 것을 선언한다. “우리 총신 교수 일동은 전국 교회 앞에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과 복음주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총신의 신학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이제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고 서술하면서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언급한다.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의 실제적 특징인 적극적 문화관과 사회봉사를 강조한다”20고 서술한다.
한국의 장로교회와 장로교계 신학교들이 사용하는 ‘개혁주의’의 개념은 이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고려신학교의 박윤선 교수와 직결되어 있다. 박윤선은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메이첸과 반틸의 신학노선을 따라 개혁주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했다. 정통신학, 개혁파 정통주의, 칼빈주의, 전통적 개혁주의, 개혁주의 정통신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져 온 이 유서 깊은 기독교는 종교개혁자, 칼빈주의자, 구프린스톤신학자, 웨스트민스터신학자, 평양신학자 등이 가르치고 고백해 온 신앙노선이다.
‘개혁주의’가 한국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한신대학교 관련 문헌도 ‘개혁주의’라는 용어를 종종 사용한다. 통합, 기장 교단 관련자들은 자신들을 칼빈과 바르트주의 영향 하에 있는 진보계 ‘개혁주의’와 동일시하고 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은 자유주의 기독교와 신신학의 영향 아래에 있는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1875년에 장로회 체제를 가진 유럽과 아프리카의 개혁교회 연합체로 시작했다가 1970년에 합동 과정을 거쳐 현재의 연합체로 바뀌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을 수용하는 프로테스탄트교회들, 특히 진보계 장로교회와 개혁파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무실을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 사무실 곁에 두고 있을 정도로 두 단체는 밀접한 사이이다.
이 단체는 안식교와 로마가톨릭교회와 더불어 대화를 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와 세계루터파교회협의회(LWF)의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안수하고,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는 단체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교리를 벗어나 공동교회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사회정의, 인간평등, 대화, 인도주의, 교제, 경제 불평등 해소 둥에 관심을 기울인다. 신앙고백의 일치보다 외형적인 연합을 우선시한다. 세계의 모든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는 폭넓은 개념의 교회(A larger household of God, a broader OIKOUMENE to which renascent world religions and cultures belong)를 지향한다. “우리는 특히 많은 교회들이 자신들을 깨닫고 있는 다종교의 상황에서 다른 종교에 대하여 우리 자신의 문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고 실제적 협력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21고 말한다.
장로교 기장과 통합은 세계개혁교회연맹의 회원교회로 활동하고 있다. 근년에 대신과 합동정통이 이 단체에 가입했다. 한국장로교연합회를 중심으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을 하던 이 교단 지도자들이 기장과 통합 교단의 인사들의 권유를 받아 가입했다고 한다. 신앙고백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면서도 신학적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외국 나들이를 좋아하는 인사들’이 주도하여 결정했다고 한다.22
한국장로교연합회의 서기 전병금 목사는 ‘한국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 모색’이라는 제목의 주제 강연에서 “처음부터 기구적인 통합을 모색하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연합교회의 형태를 갖춰가면서 점진적인 통합을 이뤄가야 한다”23고 말하면서 모든 장로교단들이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에 참여하여 세계교회와 연합을 강화해 나갈 것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고신교단도 한국장로교연합회 회원교회이므로 세계개혁교회연맹에 동참하라는 권유를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국제개혁교회협의회(ICRC)는 성경적 신앙고백과 개혁신학의 정체성과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신앙문답을 소중히 여긴다. 한국의 고신교단이 가입해 있다. 회원교회와 단체의 폭을 넓히려고 하고 있다.
개혁주의 진영 안에는 이처럼 두 개의 상반된 기독교가 존재한다. 개혁주의는 일반적으로 스위스종교개혁과 관련된 프로테스탄트 전통을 일컫지만, 그 안에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두 개의 신학 캠프가 있다. 극단의 자유주의 기독교와 극단의 보수주의 기독교가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다.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의 김재준 교수,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의 박형룡 박사,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이종성 박사, 고려신학대학원의 이근삼 박사는 모두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는 그 단어가 사용되고 있는 콘텍스트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개혁주의 서클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이유로 자신이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하거나, 자유주의와 개혁주의가 상반되거나 대립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모순이다.
5. 근본주의 바로 알기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외적 일치보다 진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개혁운동을 폈다. 그들은 관용주의자, 포용주의자, 화평주의자, 신앙무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진리에서 떠난 교회와 더불어 화평하거나 일치하는 것을 거부했다.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자,’ ‘분리주의자,’ ‘주의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라고 하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진리 안에서 일치’의 깃발을 들었다. 성경이 제시하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고백하는 범위 안에서 일치운동을 전개했다.
자유주의 기독교는 다원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고무시켰다. 이러한 흐름은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 강령에 따라 ‘개혁’되는 것을 돕는 반면에 성경에 따라 개혁하는 것을 방해한다. 성경보다는 문화에 더 높은 권위를 부여하고 그것에 따라 기독교를 변혁시키려고 한다. 무엇을 고백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성경이 제시하는 교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소한 문제라고 본다. 정통신앙과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양심적으로 ‘새로운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을 근본주의자, 배타주의자, 성경문자주의자로,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 성경의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자로 매도하고 폄하한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기독교를 배격하면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등장했다. 근본주의는 역사적 기독교를 변호한 사람들이 초교파적으로 펼친 광범위한 신학운동이다. 성경의 영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육체부활, 초자연적 기적능력을 역사적 기독교의 표지로 삼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주의-근본주의 논쟁은 기독교의 근본 도리들을 한낱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오번선언서(Auburn Affirmation, 1924)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디모디 웨버(Timothy P. Weber)가 지적한 대로, 미국의 근본주의 운동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이다. 그것은 도시와 시골, 사변성과 단순성, 지성과 반지성, 온건성과 극단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근본주의는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부정적인 대중 이미지보다 지역적, 사회적, 정치적, 교육적, 신학적으로 훨씬 더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24 조지 마스덴(George Marsden)은 그것이 “복음주의, 부흥운동주의, 경건주의, 홀리네스운동, 개혁파의 고백주의, 침례교 전통주의 그리고 기타 교단적 정통주의 등을 포함한다”25고 옳게 지적한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근본주의를 거부하거나 폄하하는 사람은 기독교의 중추 도리들을 거부하는 ‘새로운 기독교’ 신자이다. 오번선언서 사상을 따르지 않고 유서 깊은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신앙해 온 도리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근본주의자이다. 자유주의 기독교 추종자들은 역사적 기독교를 따르는 사람들을 ‘극단의 근본주의자’라고 일컫는다. 기독교의 근본 도리를 완고하게 신앙한다는 것이다.
종교학이 말하는 근본주의자는 다양한 형태의 신념과 신조를 고백하고 종종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람이다. 열정, 확고한 의지, 냉정성이 철저하다. 근본주의는 인도 아요다(Ayodya)의 회교 사원을 폭파시킨 힌두교도나 소수 힌두교도를 박해하는 스리랑카의 불교도, 하나님이 아랍인의 땅을 자신들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는 구쉬 에누민(Gush Enumin)의 유대교도,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무조건 회교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역설하는 회교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근본주의는 체질상 새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타협과 변화를 거부한다.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고 혼란시키며 현대성(Modernity)을 반대한다. 매사에 우물 안 개구리식이다. 기독교권의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나 종교적, 민족적, 정치적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만사를 단세포적으로 파악하고, 지적 탐색을 거부한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같은 종파의 종교인들을 다른 종파의 종교인들보다 더 가혹하게 대한다. 같은 종파의 배교자들을 불신자들보다 더 빨리 화형의 불길에 밀어 넣는다. 잊혀진 과거의 지혜를 상기시키지도 못한 채 전통에 연연한다.
기독교계 안에도 극단의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현대적인 것을 거부한다. 반(反)지성적 태도를 유지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대학교는 전투적 근본주의(Militant Fundamentalism)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말씀보존학회라고 하는 그룹이 극단의 근본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킹제임스판 외의 성경번역본들은 모두 사탄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신학계가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있는 뉴인터내셔널판(NIV) 성경도 거부한다.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의 틀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 박형룡과 박윤선 교수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보급하고 유서 깊은 기독교를 선전하기 위해 투신한 신학자이다. 바울, 어거스틴, 쯔빙글리, 칼빈의 신학, 데오도르 베자, 프랜시스 투레틴, 유럽 칼빈주의자, 미국의 구프린스톤신학, 알렉산더, 핫지, 워필드, 메이첸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연결시켰다. 미국북장로교회가 좌경화 되기 전에 가졌던 개혁주의 신학은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위필드, 찰스 스펄전,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지녔던 신념체계이다. 주기철·한상동·주남선·손양원 목사가 배우고 전수한 칼빈주의이다.
유서 깊은 기독교의 대명사인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성적 활동을 환영한다. 새로운 문명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보는 반면에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근본주의는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문화 건설을 위해 힘쓰는 일을 주저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기독교는 복음전파와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세상에 대립하여 오직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거부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문화명령을 강조한다. 잔술했듯이 개혁주의 기독교는 드라마·댄스·문학·회화·조각·건축·음악 등의 예술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26
일제의 식민통치, 광복 직후에 찾아온 동족상잔의 전란, 독재정권, 군사통치, 가난으로 찌든 우리나라는 한국교회에 문화사명을 충분히 감당할 여건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대학교, 병원, 고아원을 세우는 등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등 여러 사람들이다. 그들을 ‘개혁주의자로 볼 수 없고 근본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더욱이 “극단의 근본주의자,” “극단적 보수주의자”27로 단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교회를 세웠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게 하셨다. 주께서는 이 교회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가 될 것을 기대한다(엡1:4). 한국교회는 예배당 강대상의 높이를 낮추고, 영상시설을 설치하고, 현대풍의 세련된 예배를 드리는 일에 열중한다. 사회적 신인도 제고와 도덕성 고양과 사회통합에 이바지하는 기독교를 모색한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그런 류의 혁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자와 교회와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화될 때 이루어진다. 성령 안에서 중생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화된 신자는 이웃사랑과 사회변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한국교회의 개혁 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바탕을 둔 신학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의 논의는 메이첸이 유서 깊은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가 같은 뿌리를 가진 상이한 표현이 아니라 다른 뿌리를 가진 서로 다른 종교라고 판단한 것이 그릇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신학과 교회와 신자의 신행(信行)의 평가 기준은 정통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 보수주의가 아니다. 좌우논리, 흑백논리, 중도논리도 아니다. 진보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제3의 길’도, 보수주의에 뿌리를 둔 중도파 또는 회색주의도 아니다. 극단의 배타주의와 선민의식, 무조건 타교단과 담을 쌓고 지내는 종파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아우른다’는 기치로 진행되는 한국교회의 연합일치운동은 배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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