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 앞에 서있는 우리의 자세
현대신학의 양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때 부턴가 ‘객관적 검증’이라는 절차는 사라져버리고 주관적인 사고과정에서 무언가 ‘독창적인 이론’으로서의 신학이 주를 이루는 시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신학은 제기되는 이론으로서의 신학 혹은 당면한 현안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비판도 철저히 주관적이며, 따라서 그런 주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대성 가운데서 적당히 타협하는 선으로 결론이 주어지는 것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양상은 현대신학의 방법들 가운데서는 매우 일반적이지만, 과거 조직신학의 우세 가운데서 그러한 양상은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곧 조직신학적 이론 수립과 검증은 현대의 신학 양상들과는 달리 매우 보수적이며, 그 검증에 있어서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검증이 아닌 과학적 객관성 가운데서의 검증 체계르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조직신학은 단순히 역사성(historicity)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orthodoxy)으로서의 교리적 표준에 의존하는데 그 특징이 있었다. 즉 조직신학의 방법에서는 항상 대조할만한 표준적 신학체계 혹은 교리가 확보된 가운데서 그에 대한 명확도에 따르는 독창성만이 어느 정도까지 인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직신학의 방법 혹은 특징에서는 항상 비판에 앞서 ‘정확한 신학체계’ 혹은 ‘교리’에 대한 이해와 증명이 기본이었다. 한마디로 정확한 답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잘못된 신학이론에 대한 비판과 검증의 절차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주관주의적인 신학체계에서는 그것이 전도되어 비판과 검증이 앞서 중심을 이루기 쉬우며, 심지어는 비판 자체로만 이론체계가 수립하는 선에서도 충분히 그 가치가 인정되곤 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그 결과 현대적인 분위기 가운데서는 항상 다양한 비판들이 있을 뿐, 명확한 이해와 결말은 잠정적이거나 불분명하게 되는 것을 흔히 목격하곤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현대신학의 분위기 가운데서는 어떤 명확한 결론도 없이 수많은 비판과 반론으로만 점철된 매우 혼란스런 분위기가 되기 쉬운 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이론신학에서건 실천신학에서건 기본적인 분위기는 동일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도 이미 포스트 모던(post-modern) 시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할 것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들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남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 나보다 못한 듯이 보이는 남들의 신앙이나 신학에 관하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신앙과 신학이 어떠한가에 늘 착념하여야 마땅하다. 곧 남들의 신학과 신앙이 어떠한가? 나의 것과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른가가 아니라 나의 신학과 신앙이 얼마만큼이나 정통에 부합하는가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비판과 판단은 부정할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비판과 판단은 항상 자기가 지닌 신학의 정당성 혹은 정통성 여부에 따른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 점에 있어서 비판과 판단이 부정할 수 없이 정당한 것이라도 비판하고 판단하는 자기 자신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비판은 정작 우리 자신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와 같은 비판과 판단만으로는 다른 오해와 왜곡만 야기할 뿐이다.
그런즉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그 행실에 믿음이 보이지 않는 자들이 도처에 있는 것이 이 시대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관심을 둘 것은 그런 자들의 행실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이미 있는 믿음의 내용이 정당한가에 있어야 마땅하다.
신학함에 있어서 우리가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신학의 정통의 여부가 늘 먼저이며 우선이지 우리와 다른 신학에 대한 비판과 판단은 나중이며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분명한 정통의 표준이 확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많은 현대의 신학들은 이미 그 확신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그런 오류가운데서도 각자의 윤리와 도덕으로 선악을 분별할 뿐이다. 그 결과 수많은 윤리적 오해와 도덕적 왜곡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신학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현대신학의 모습 가운데 있는 사역자들이 착념할 것은 현대 신학의 오류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현대 신학이 잃어버린 순수한 복음(Full gospel), 즉 ‘정통의 교리의 회복’에 있어야 한다.
그처럼 정통의 교리를 회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현대신학의 오류와 왜곡들에 대해 비판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된 때에라도 항상 먼저 착념할 것은 우리 자신의 순수한 정통의 교리이며, 현대신학의 오류와 왜곡들에 대한 비판과 판단은 여전히 부수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특히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사역자들은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모범을 따라 순수한 복음의 교리에 착념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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