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딤전 6:11-16)
송영찬 목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마무리하기 전에 거짓 가르침 안에 본래 들어있는 요소로 밝혀진 탐심과 대조해서 ‘하나님의 집’(딤전 3:15)에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할 내용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바울은 이 진술을 시작함에 있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 6:11)라고 함으로써 앞서 언급했던 돈을 사랑하는 사람과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님을 강조하고 동시에 거짓 가르침을 전파하는 거짓 교사와는 다른 정반대의 길을 가야할 것을 열망케 하고 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딤전 6:3에서 지적하고 있는 ‘누구든지’로 표현된 거짓 교사들과 대조를 이룸으로써 대조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마치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딤전 6:13)에 서 있는 것처럼 마지막 심판의 배경을 묘사함으로써 이제 시작하는 바울의 진술에 대한 감동적인 강렬함을 부여하고 있다(Thomas C. Oden).
1. 거짓 교사와 차별되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디모데는 거짓 교사들과 철저하게 달라야 한다. 그들은 교만하며, 다투기를 좋아하고, 탐욕스러우며, 하나님보다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들의 경건치 않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에 바울은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전 6:11)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부여된 칭호였다. 모세(신 33:1; 수 14:6; 대상 23:14), 사무엘(삼상 9:6), 다윗(느 12:24, 36), 선지자 스마야(왕상 12:22), 엘리야(왕상 17:18; 왕하 1:9), 엘리사(왕하 4:7), 레갑 사람 익다랴(렘 35:4), 세 명의 익명의 선지자들(삼상 2:27; 왕상 13:1-2; 대하 25:7-8)에게 주어진 영예로운 칭호였다. 후에 바울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딤후 3:17) 된 모든 성숙한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Jhon Stott).
특히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반응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구약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며 이것은 하나님의 집(딤전 3:15)에 속한 신자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할 행동으로 세 가지 현재형 명령을 제시하고 있다. ① 이것들을 계속해서 피하라. 이것들이 너를 붙잡지 못하게 하라. ②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계속해서 좇으라. 그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라. ③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해서 싸우라(James Allen).
피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행동을 묘사한다. 반면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바울은 ‘좇으라’(διωκε)고 명령하고 있다. 이 말은 경주에서 앞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모습은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잠 15:9)는 구절에서 가장 적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어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해야 할 덕목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해 나타내어야 할 태도로써 의와 경건을 추구해야 한다. ‘의’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며 경건한 삶과 행동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심령과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의’는 이미 소유한 의로운 신분의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표준에 합당한 행동이며(롬 8:4) 법적인 의로움의 결과로 나타난 실제적인 의로움을 말한다. 경건은 ‘의’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을 향한 합당한 태도, 즉 행동 이면에 있는 경외심과 공경심을 가리킨다.
둘째, 신자의 내면과 관련해 믿음과 사랑을 취해야 한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골 1:4, 5; 고전 13:13)은 하나의 동체를 형성하며 분리되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성령 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서 보여지는 ‘성령의 열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본질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셨다는 확신에 기초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의존을 낳는 원리이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의 마음 속에 부어주신 것으로(롬 5:5)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그리고 계속되는 관계이다. ‘소망’은 성도들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빌 1:6) 확신하는 신뢰이다(F. F. Bruce).
셋째, 신자의 외면과 관련해 인내와 온유를 추구해야 한다. ‘인내’는 삶의 모든 상황에서 지속적인 견실함을 보여주는 신자의 인격적인 측면으로 이것은 환난을 극복함으로써 형성된다(롬 5:3-4). 이때 인내는 소망의 열매(살전 1:3)가 된다(William Handriksen). ‘온유’는 인내와 달리 그리스도의 멍에를 받아들이는 신자들 안에서 발생하는 성품이다(마 11:29).
이 여섯 가지 덕목들은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을 동시에 취하고 있으며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소극적으로 악을 피해야 하며 그것도 가능한 빨리 그것으로부터 멀리 떠나야 한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선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연결된다. 이러한 삶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그리스도의 새 창조 사역에 속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2.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할 균형
하나님의 사람은 그리스도의 새 창조 사역으로 특징되는 새 사람이다. 이 새 사람을 가리켜 바울은 ‘(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으로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야말로 앞에서 제시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11절) 살아가는 것으로써 그 자신의 고유한 품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2)라고 말한다.
본문의 ‘믿음’은 바울이 거짓 교사들을 향하여 그들이 믿음에서 떠났다는 점을 지적한 것과(10, 21절)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때의 믿음은 사도적 믿음으로 ‘진리’(딤전 2:4; 3:15; 4:3) 또는 가르침(딤전 4:6; 6:1; 딛 1:9; 2:1) 그리고 부탁한 것(딤전 6:20; 딤후 1:12, 14) 등으로 부르는 교리의 체계를 지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 즉 거짓 교사들이 이 교리를 떠났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와 에베소 교회가 이 교리를 위해 싸워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Jhon Stott).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신화와 족보에 얽힌 비생산적인 논쟁에 열중하는 것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싸우다’는 용어는 전투적인 용어라기보다는 운동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기 위한 훈련과 신념과 집중과 노력하는 모든 행위들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모든 신자들이 구원받는 순간부터 참여하는 영적인 싸움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빌 1:30; 골 2:1; 살전 2:2; 딤후 4:7). 특별히 여기에서는 믿음의 중요한 교리를 대적하는 사탄과 그 대리인들과의 싸움을 가리키고 있다.
신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으며 믿음을 고백한 바 있다. 따라서 신자들은 악을 피하고 선을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통해 영생의 모든 생명력과 능력을 누리게 된다. 이때 신자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자신을 부르신 영생을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구체적으로 바로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신자들에게 하신 일과 그것을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신자들은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으로써 그 사실을 증거하여야 한다. 이때 신자들은 자신의 삶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주님을 섬기면서 고백한 선한 증거들을 친히 내보임으로써 보고들은 그 사람들을 증인으로 삼게 된다(James Allen).
바울은 디모데에게 ① 윤리적으로 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할 것과 ② 교리적으로 거짓 가르침에서 돌이키고 진리를 위해 싸울 것과 ③ 경험적으로 그가 이미 받은 영생을 붙잡아 지속적으로 그 증거를 드러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며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에 집중해도 안 되며 하나님의 사람은 이 셋을 하나로 결합시킬 때 비로소 새 창조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3.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내어야 할 믿음의 증거
바울이 디모데에게 명령하는 내용들의 근거는 하나님의 임재(13절)와 그리스도의 재림(14절)으로 보강된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 6:13-14).
① 하나님의 임재 의식
바울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 의식 가운데 살아왔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바울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라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이 묘사하는 하나님은 만물을 살게 하신 분이시다(행 14:15; 17:28-29). 하나님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생명을 주고 보존시켜 주는 분이며 그들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신다(Jhon Stott).
한편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빌라도에게 자신이 참으로 왕임을 인정하셨다(요 18:33-34; 막 15:2).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담대한 증거의 역사적 선례를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모든 비교를 초월한 충성되고 참되신 증인이시다(딤전 1:5; 계 3:14).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제 디모데는 자신이 바울로부터 받은 명령을 지키고 보호하고 보존해야 한다. 이 명령은 복음의 사역과 교회의 행정에 대하여 그에게 명령된 모든 것을 포함한다(William Handriksen).
②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의식
디모데의 경우와 같이 교회에서 책임을 부여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는 날까지 그가 받은 명령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가 죽기 전에 종말이 온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그리해야 한다. 이 나타나심, 곧 현현은 신자들이 간절히 기대하여 바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이어야 한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해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5-16)이라고 찬양을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나타나심(Epiphany)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루어질 것이다. 이 날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친히 모든 사라들 앞에 보이실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을 나타낼 것이라는 이 표현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 밝히 드러나게 될 그 경이로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시는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A. C. Hrevey).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때에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신뢰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이 기꺼이 맡기는 것은 하나님이 가지신 속성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이라고 찬양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 즉 인간의 간섭과 조작을 완전히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네 가지 면을 증거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모든 지상적인 힘의 방해를 뛰어넘는 초월자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시간, 죽음, 소멸 등으로 말미암은 변화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불멸의 하나님이시다. 셋째, 하나님은 죄인인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시다. 넷째, 하나님은 인간의 시야와 이해를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허락되었던 모든 것은 그분의 영광이며(출 24:9-10; 사 6:1-1; 겔 1:28) 신의 현현으로 나타나신 모습이며(창 16:7; 18:1; 32:24) 성육신 하신 아들 안에 있는 그분의 형상이었다(요 1:18; 14:6; 골 1:15).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기 원하시는 만큼만 그분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을 초월해 계신다(Jhon Stott).
이 위대하신 하나님, 무적이며 불멸이며 가까이 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교회는 존귀와 무한한 영광을 드려야 한다. 바울은 이 송영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라는 기대 가운데 디모데에게 이 엄중한 명령을 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생명의 수여자 되신 창조주 하나님(13절)과 본디오 빌라도에게 자신을 왕으로 증거하신 역사적 사실과(13절)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성취될 종말의 완성을 통해 신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싸우는 신실함을 고백하게 하고 있다.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HMLI/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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