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설교하고 들을 것인가?(계1:1-7) |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번 사도행전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상에서 자신의 구원 사역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속하셨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복음서가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이라고 하면 사도행전은 한마디로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의 행적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난해하다고 여기는 요한 계시록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사실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계시록이 언제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성도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리고 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기록시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큰 유익을 받고 있는 사람은 목사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그전에는 계시록에 관한 연구를 하지 않고 다만 책들만 모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설교를 준비하면서 언제 이 계시록이 기록되었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성전과 유대교의 멸망이 연결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핵심은 바로 이스라엘의 완전 멸망입니다. 그런데 주후 90년 이후에 기록연대를 주장하게 되면 이미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것으로 되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은 유대교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상관없는 말씀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교회가 이렇게 요한 계시록에 대한 아주 다양한 해석과 이단들이 발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부터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한 시점을 주후 90년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전에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1900년 동안 이 계시록이 주후 66-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을 대부분의 교부들이 믿었고, 그렇게 가르쳤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어떤 교부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각각 펼쳤지만 대부분의 교부들이 (파피아스, 터툴리안, 클레멘트 등) 요한 사도가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된 것은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당한 시점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로가 죽은 이후에 사도요한은 밧모섬을 떠났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역사자료들이 사도 요한이 네로가 죽은 다음에 밧모섬에서 떠났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바른 지식에 대한 사실을 알기보다는 왜곡된 지식을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바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회의 사역을 훼방하는 사탄의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분명한 것은 지난 1900년 동안 네로 박해 때에 이 계시록이 기록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절대 다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 요한에게 속히 이루어질 심판에 대하여 요한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요한이 이 계시를 받고 얼마 안 되어 예루살렘의 멸망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심판도 일어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천년왕국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본문에서 나올 때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요한 계시록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리는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가운데 이 계시록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보존되어 왔습니다. 본문 1장 1절에서 보듯이 이 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 사도 요한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당시 교회의 박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그 일들에 대하여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네로황제의 박해라고 하는 해석의 전제를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네로는 과대망상에 걸려 자신이 마치 신이라고 하는 것을 로마 시민들과 식민지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태양의 광선이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동상을 만들고, 급기야는 황금집을 만들고 그 현관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자신을 신으로 칭송하기 위해 많은 노래들을 만들고 자신을 마치 아폴로 신과 같은 존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네로의 미친 광적인 행동 때문에 많은 종교인들이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로마시내에 큰 불이 나서 로마가 거의 전소되었는데 이 불을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네로 자신이었지만 그 핑계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렸고, 시민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노와 저주를 퍼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것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은 비윤리적이며 도덕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을 퍼뜨려 성도들을 죽이는 것을 당연시 하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들이 믿는 주님처럼 같이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종에게 진정한 태양이며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일곱별을 쥐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에는 태양이 필요 없다고 소개한 것입니다. 네로가 건축한 황금집도 이 땅에서는 다 불타고 사라질 것이며 황금으로 묘사된 새 예루살렘 성만이 진정한 황금집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마제국으로부터 고난당하는 성도들과 교회에 진정한 위로는 로마제국을 심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계시록은 로마제국보다는 유대교의 멸망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유대인들이 로마식민치하에서 기독교를 핍박하는 아주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보았듯이 유대인들은 할 수만 있으면 계속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힘을 빌어서 그리스도인들을 다 죽이려고 하는 일을 계속 벌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인 다음에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심판의 말씀 그 대로 유대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언의 말씀을 요한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록에서 “속히 일어날 일”에 대한 말씀이 바로 이스라엘의 멸망과 연관된 것입니다. 속히 일어날 일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아주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직 예수님은 재림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믿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다면 우리는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 요한에게 구름타고 오신다고 하시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러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말씀하셨던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심판하러 오신 다고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예수님을 찌른 자들, 즉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다 볼 것이고 그들이 애통할 것이며 이방나라들도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거의 다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이 멸족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찌른 자들이 본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으로 예수님을 본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은 속히 될 예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악랄하게 로마의 정권에 아부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다 죽여 없애려고 하는 유대인들이 곧 있으면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이 말씀이 성도들에게 읽혀지고 들어야 하는 복음의 말씀이었습니다. 곧 있으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다고 하는 이 말씀이야 말로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큰 위로의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절에 보면,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요한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계시록의 말씀을 책으로 다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책으로 기록된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우리가 성경을 읽고 들으면 복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반드시 심판의 주로 오신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반드시 성도들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먼저 심판을 당한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났습니까?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성전이 파고되고 어린 자녀들까지 다 죽고 멸망당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주후 70년에 유대인들이 죽고 그들의 신앙이 다 파괴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4년 동안 로마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면서 결국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죽었고 창녀처럼 이방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유대교에서 드려지는 피의 제사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무리들을 완전히 다 죽였으며, 유대인들 중에 그 누구도 죄를 사함 받는 은혜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현장을 한 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유대인들의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보면 참으로 우습게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여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23, 눅13:) 마24장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한 파괴에 대한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나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그 때 예수님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것이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6-8)고 하셨습니다. 이 재난의 시작은 바로 주후 66년에 시작된 로마제국에 대한 유대인의 항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항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보면 이렇습니다. 유대 총독 플로루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유대총독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악행을 그가 저질렀습니다. 플로루스는 유대인들의 성전에 들어가 성전 금고에서 17달란트를 꺼내 갔습니다.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총독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짓밟았다고 집단으로 항거하자 플로루스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십자가에 죽이고 로마 군인들에게 예루살렘을 마음대로 약탈하고 보복하라고 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성전 수비대의 대장을 맡고 있었던 유대인 엘르아살이 로마황제를 위해 매일 드렸던 제사를 중지하게 하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로마에 저항하게 하여 로마 군인들의 요새였던 안토니우스 요새를 습격하여 모든 로마 병사들을 죽였고, 또 유대인들은 시리아 총독 케스티우스 갈루스와 싸워 이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이 용기를 얻어 마침내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로마와 항전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일을 알게 된 로마의 네로 황제는 베스파시아누스 군대 장군을 팔레스타인에 급파하게 되었고, 베스파시아누스는 갈릴리 지역부터 서서히 폭동을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환난은 “창세로부터 (그 때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없었고 후에도 없을” 그야말로 대환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네로 황제가 죽고 베스파니아누스가 황제가 되고, 그의 아들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하기 시작하여 멸망시킨 70년 4월-8월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때 로마군대는 예루살렘 도성에 물밀 듯이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잔인하게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예루살렘 성전까지 불태워버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붙여 있었던 금들이 녹아서 돌 틈에 들어가자 군인들이 그 돌들을 들어 금을 가져가게 되었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티투스와 항쟁하다가 죽은 유대인들이 이 백 십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로마인에게 죽는 것보다 스스로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에서 살아남은 17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잡아다가 이집트로 보내 중노동을 시키고, 17세 이하는 노예로 팔았는데 어린아이들이 9만에 이르렀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살수 없게 되었습니다. 극심한 가난이 찾아오자 먹을 것이 없는 유대인들이 결국 자기의 자식을 잡아먹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것을 본 티투스가 “하나님! 이 일은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고 유대역사학자 유세비우스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로마황제를 주로 섬기게 되었고, 제사장도 사라졌으며, 성전도 불타 없어졌고, 도움을 주는 자도, 나라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만 구원 받은 성민이라고 믿어 이방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로 여겼던 이 유대인들이 결국 세상 곳곳으로 쫓겨나고 개로 여겼던 이방인들의 도움을 받고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 사건이며, 언약을 배반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최후 심판하신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하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계속 증거하신 그리스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구약의 선지자 세례 요한이 외쳤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그 외침도 거부하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 달라고 외치면서 그 피에 대한 책임은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질 것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독일 나치에 의해 유대인들의 대학살을 이 말씀과 연관 시킵니다. 그러나 속히 될 일에 대한 것은 바로 유대인들의 멸망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계시록의 기록 시점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죄는 단순히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성경에서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말씀하였던 그리스도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분을 죽인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심판하러 오신 다는 이 말씀은 묵시적 비유의 말씀입니다.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재림하는 것이 아니리 구름 가운데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마지막 심판 때도 모든 민족과 족속들이 주님의 재림을 보고 두려워하고 떨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승처하는 것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의 현장에 내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내리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요한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속히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하는지를 지금 역사적으로 바르게 배우고 있습니다.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바른 해석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복음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교회에서 이 말씀이 읽어지게 하고 들려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읽어주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이 말씀을 교회에서 성도들 앞에서 낭독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이 말씀이 들려지게 했습니다. 당시 죽음 앞에 있는 성도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반드시 주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신다고 하는 그 말씀대로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예수를 믿으며 구원을 받을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모진 핍박과 죽음이 그들의 눈앞에서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정권에 아부하는 유대교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신앙을 보장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계속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를 부인하고 성전제사를 통해 구원을 받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신다면 마치 유대인들을 지켜주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 아닌가? 로마의 식민치하에서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유대인들의 제사와 성전과 그들의 신앙을 다 심판하시고 불살라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오직 하나님은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성도들의 신앙이 참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결국 유대교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이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을 전하고 가르친 것이 진리였다고 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성도들의 두 눈으로 보고 믿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심판을 통해 다시 한 번 천상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주후 70년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기록한 심판의 말씀이며 성도들에게는 위로와 소망을 주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주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계시록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190&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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