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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사도직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셨다. 그 이유? (행27장)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1. 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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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의 주님이라고 하는 것을 증거 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붙잡힌 바울은 로마총독들과 유대 왕과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계속 전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지난 행26장까지 말씀을 들으면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바울이 상소하지 않았다면 바울은 석방될 수 있었지만 바울은 자신의 뜻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27장의 말씀을 통해 왜 성령께서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를 통해 바울이 로마로 압송당하는 과정을 기록하게 하셨는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바울이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주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결국 로마로 갔다고 하는 말씀을 하면서 사도행전을 마쳤어도 그렇게 말씀이 부족하지 않게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령께서는 누가를 통해 바울이 로마로 압송당하는 이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시는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사건도 필요 없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이 사건도 하나님은 목적을 가지고 기록하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그것을 사도 바울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는 사도직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내시기 위함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들어야할 말씀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그들이 올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로 인도하는 직무를 감당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복음으로 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길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7장에서 나타나는 풍랑과 그로 인해 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실제로 구원하고 28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닌 거짓 신에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행 27장에서 주님은 바울이 받은 사도의 직분이 사사롭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주셨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 그리고 다른 교회들에게 서신서를 보내면서 늘 강조한 것이 바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주님께서 어떤 특별한 모습으로 바울과 함께 하셨다고 하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이 사건이 바로 사도 바울이 주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아주 특별한 사도인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메섹에서 바울을 부르신 그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바울의 회심과 그가 복음을 위해 사도직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진술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27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 사건 전체는 바울이 지금까지 자신이 주님께서 부르신 사도라고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것도 주님께서 나타내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의 직분과 연관 시켜 전하는 이유는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바울이 증거하고 있었던 복음이 바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탁하신 구원을 이루시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주님의 다른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다른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더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할 복음이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 이 놀라운 진리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신 은혜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이 가득한 것을 아시고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었던, 그리고 사도행전의 거의 모든 부분이 바울과 연관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도행전이 전하려고 하는 복음의 목적을 전혀 훼손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성령께서는 아주 의도적으로 행27장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바람을 잔잔하게 하신 주님께서 자신의 종 바울이 편안하게 로마로 갈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본문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사도 바울과 어떻게 함께 하시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 아주 생소한 지명들과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의 관심은 이런 지명과 이름들에 있지 않고 이 사건의 본질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생소한 이름이지만 전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이 연관시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고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 개인의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여러 차례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가고자 한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와 아리스다고도 함께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죄인들이 아닙니다. 아마도 백부장 율리오가 누가와 아르스다고의 부탁을 들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군부대 이름인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라고 구체적인 이름이 언급된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사건이 구체적인 역사의 사건이라고 하는 것을 증거 삼기 위함도 있습니다. 이들이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과정이 말씀에 기록되었습니다. 어느 지역을 지나 어떤 섬을 거쳐서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에서 우리는 아주 독특한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여러 날이 지나 즉 많은 날이 걸려 항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고 하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름 아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절기를 기점으로 자연환경 즉 날씨에 대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도 어느 정도 예측하지 않습니까? 장마가 시작되는 날짜와 태풍이 어느 정도에 불기 시작하고 몇 개 정도가 여름에 온다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금식절기가 지나면 지금정도에 어떤 날씨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미 복음 선교를 위해 몇 차례 이런 지역을 지나온 경험이 또한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시기에 항해를 한다는 것은 위험한 것이므로 백부장에게 항해를 하게 된다면 화물과 배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더 많은 항해 경험을 가진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백부장으로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경험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목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이해해서 이 말씀과 연관되어 무조건 목사의 말을 들어야 산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도 목사보다는 전문가의 말이 더 타당합니다. 목사는 성경과 목회의 전문가이지 세상 직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닙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울이 어떤 예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바울도 알고 있는 지식을 선장과 선주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을 다른 곳에서 보내자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선장과 선주는 그들의 입장에 따라 항해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중해 연안선을 따라서 아주 조심하게 항해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첫날에 순풍이 불어 주니 자신들의 생각대로 되어지는 줄 알고 닻을 감아 해변을 끼고 아주 조심스럽게 항해 한 것입니다. 해변을 끼고 항해를 했다고 하는 것은 선장이 어느 정도 당시 환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장도 그 지역에서 험한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그런 지식을 이들이 무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 유라굴로 라고 하는 광풍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였던 배가 광풍에 밀려 계속 바다 한 가운데로 밀려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탄 큰 배 뒤에는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기 위해 사용된 작은 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거루하고 하는데 이 거루가 광풍으로 큰 배에 부딪치거나 줄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거루를 큰 배에 끌어 올렸다고 하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배가 큰 배위에 고정시키기 위해 선체를 묶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르디스라고 하는 암초에 배가 걸릴까봐 배에 실은 연장을 내려 그 암초지역을 통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광풍 유라굴로는 계속 휘몰아져서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에 실었던 기구들을 버려야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에 젖은 곡식은 배를 무겁게 하기 때문에 그들의 식량의 일부도 다 바다에 버리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바울이 백부장에게 말하였던 그대로 화물과 배에 상당한 손해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바울이 말한 한 가지가 남아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생명이었습니다. 이 날씨가 얼마나 험하였는지 낮에도 해가 없었고, 밤에도 별도 보이지 않고 광풍은 계속 그대로 자자지지 않고 불었습니다. 이제 살 수 있는 길도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지 못한 상태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장로님께서 큰 외국 화물선을 타면서 일본 근처에서 태풍으로 죽을 뻔 이야기를 해준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다른 화물선들은 거의 다 전복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장로님이 탄 배는 무사했다고 하는데, 정말 바다 한 가운데서 이런 광풍을 만나면 배와 사람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당시 배가 좋다고 해도 오늘날 배보다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풍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되고 거기에 먹을 것도 버리고, 사실 먹는 다고해도 어떻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에 배가 요동치는데 어떻게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죽음의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276명의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레데 항에서 자신의 말대로 떠나지 않았다면 이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지만 바울은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란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지난 일에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일어난 이 일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겠습니까?

 

바울은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에게 나타나 이제는 안심하라고 하였다고 하는 계시의 말씀을 전하여 줍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살 것이라고 하는 말을 전해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는 바울에게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네게 주셨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바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때문에 이들이 살 수 있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배와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의미도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8장에서 이들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3 개월 동안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섬에서 바울이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표적의 사건으로 보여 주였습니다. 다른 사건들도 있었을 것인데 이런 사건을 통해 바울은 섬 사람들과 같이 배에 탔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당연히 전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바울이 복음 때문에 로마로 가고 있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믿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나약합니까? 우리는 지나온 인생의 뒤를 보면서 그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였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모두는 늘 하루 하루 지나가게 되는 시간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마감하는 잠자리에 누울 때 이 하루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섬에 걸려 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 소망이 없는 그런 상황에서 바울의 이러한 소리는 바울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광풍은 계속 불었습니다. 그들이 배에서 있었던 시간이 14일 동안 있었고 결국 섬 가운데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공들이 섬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이 거루, 작은 배를 내려 자신들만 살려고 하는 것을 백부장과 군인들이 알고 사공들을 죽이려고 하자 바울이 말렸습니다. 그 대신 작은 배, 거루를 묶었던 줄을 끊어 배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바울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권하여 사람들이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하고 어느 섬에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빗물에 젓은 밀 곡식을 상당히 무겁게 된 것을 알고 자신들의 식량으로 삼았던 그 밀 곡을 배에서 버리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가벼워져야 항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먹을 것도 버리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섬에 도착해야 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276명 가운데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살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때문에 이들이 다 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바다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게 계속 되었습니다. 바닷물 하나는 이쪽에서 또 다른 하나는 저쪽에서 서로 맞물려 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곳에 배가 갇히게 되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압니다. 배가 깨어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죄수들이 바다에 빠져 도망갈까 하여 군인들이 죄수를 죽이려고 하는 결정을 내렸지만 백부장이 바울을 살리려고 죄수들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을 봅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이 소용돌이 가운데 빠져들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널조각이나 물에 뜨는 물건들을 의지하여 그곳을 빠져나와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다 구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바울을 자신의 종으로 택하였다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부대 백부장이었던 율리오와 그의 군사들 그리고 배의 주인인 선주와 그 배의 이름과 그들이 정착한 섬들의 지명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바울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항해를 고집하였던 백부장이 나중에는 바울의 말에 순종하여 생명을 구원하였다고 하는 것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아주 큰 위로와 은혜의 복음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 기독교 신앙은 사도 바울을 통해 거의 변증되고 있는 복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 외에 다른 서신서들은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라 복음서를 변증하고 설명해주는 변증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도 바울이라고 하는 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증거 된 이 복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는 확신이 우리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기록된 것은 바울이 어떤 인물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바울이 로마로 가서 증거하려고 하는 복음이 어떤 복음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록된 사건입니다. 바울의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려고 작정하신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에게 주신 이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전해주는 자를 높이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전해주는 자가 누구를 전하는지 잘 알고 그 내용을 믿으며 그 주인이신 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단지 바울의 사도직을 변호한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전하는 복음의 위대함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바울이 사도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사건입니다. 바울이 사도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은 그가 전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바울이 사도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가 사도들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도들이 증거하는 복음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146&msection=2&ssection=5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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