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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길

김명도박사 설교

by 김경호 진실 2009. 8. 8. 13:09

본문

일시: 2008년 5월 10일 토요일 낮 12시 30분  (칼빈 신학교 졸업 설교)
장소: 칼빈 신학교 제18회 졸업식
본문: 디모데후서 2:15
제목: 종의 길 (The Way of Servanthood)
설교: 김명도 목사
길이: 40분

(이 설교는 지난 2008년 5월 10일 토요일 정오에 있었던 칼빈 신학교 제18회 졸업식에서 행한
본 튤립 교육 선교회 회장이며 칼빈 신학교 대학원장 과 변증학 교수이신 김명도 목사님
의 설교내용인데 실제 설교시에는 시간관게로 원고중에서 생락한 부분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서론:
재작년 졸업식때 설교를 맡아서 15분간 설교했더니 모두 설교가 짦아서 좋다고 하는 평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설교내용에는 관심 없이 짦은 것만 좋아하는듯합니다. 그래서 요즘 이 지방에 한국에서 어느 목사가 와서 “지루하지 않게 하는 설교법”을 강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설교할 때는 웃기면 제일 잘하는 설교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풍토입니다.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말씀 운동을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Cambridge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목사 세명씩 짝을 지어 시골에 나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세 사람이 모두 같은 성경 본문을 가지고 각각 다른 사람이 설교하지 않은 다른 내용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약 50분간 설교하면 몇분 쉬었다가 다시 두 번째 목사가 또 40분간 설교하고 또 얼마를 쉬었다가 다시 세 번째 목사가 약 30분간 설교합니다.  본문은 같지만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내용으로 설교합니다. 모두 합하면 두 시간 가량 되지만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도 졸거나 지루해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청교도들의 설교는 길었습니다.  1741년 7월8일 Connecticut 주 Enfield 에 있는 회중교회에서 주일 설교한 요나단 에드워즈 목사의 설교는 원래 준비한 원고가 40분 분량이었으나 설교를 듣는 회중들이 너무 가슴을 치면서 우는 바람에 설교자는 간간히 설교를 멈추고 “Silence Silence, please' 하면서 청중을 달래야 했고 이렇게 달래도 회개하는 청중들은 게속 우는 바람에 40분으로 예정되었던 설교는 1시간 반 가량이 걸려서 끝냈다고 합니다. 그 설교의 본문은 신명기 32:35 이고 설교 제목은 “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들어있는 죄인‘ 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첫 시작하는 말이 “지옥의 불길이 여러분을 삼키려고 타오르는데 언제까지 죄를 지우며 이 세상의 연락만 취할 것입니까?” 로 시작하여 “롯의 처를 생각 하세요” 라는 말로 끝납니다.  

이 설교는 하도 유명하여 이 설교만 별도로 책자로 만들어서 미국 P&R 출판사에서 3불에 판매하고있으며 한국말로도 번역되어 책방에서 $4 에 팔리고 있는 유명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영문으로 들으려면 www.ltbs.com  에서 성우의 목소리를 통해서 설교 전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요즘의 흔한 복음성가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으로만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믿음이 아들 디모데에게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윤언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쓰고 얼마안되어 순교했습니다. 오늘 칼빈 신학교 제18회 졸업식에 본문 디모데후서 2:15 말씀을 톹애서 “종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저 합니다.

종은 종의 길이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알고, 주인의 일을 할 준비가 되어야 하고 주인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우선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라고 했으니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지적 준비를 말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앞에 부끄럼이 없는 신앙인격을 말합니다.  셋째로,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리기를 힘쓰라“ 고 하였으니 하나님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가지 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성경에 밝은 사람이 되자  둘째, 인격자가 되라, 셋째로 주님에게 온전히 헌신하라  이렇게 세가지로 말씀 드립니다.

I. 성경에 밝은 사람이 되자
  종이 주님의 종을 하려면 주인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고 주인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주인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면 그 종은 얼마 못가서 해고당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주의 종은 주인이신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하는데 그 마음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특별 계시의 말씀으로 정확무오한 말씀입니다.  그 성경을 잘 알아야 주의 종으로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삼년동안 혹흔 사년동안 성경을 연구해 왔습니다. 오늘 졸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몇학기 배운 헬라어 나 히브리어 실력으로는 성경을 해석하기에 역부족일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길 안내만 하는 것
뿐, 공부는 각자가 해야 하는 것이지요.

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오늘 교계가 어지럽습니다. 기독교 역사 2000년에서 오늘처럼 말씀이 훼손된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고의적으로 경시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이성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진리인 성경이 주관적 상대적인 말씀으로 전락하여 말씀의 바른 뜻이 왜곡되어 전달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교회에 임합니다.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대략 세가지로 크게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통적인 역사적 문법적 해석방법 즉 Historico-Grammatical Interpretation"입니다.  성경 본문의 기록된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법적 해석은 성경본문의 원어의 단어, 문법, 구문등을 연구하여 그 본문에서 저자가 독자에게 의도하는 바를 바로 깨닫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정통적 개혁주의적 성경해석방법입니다. 또 History of Religions School  (종교사학파) 의 해석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유주의적 성경해석 방법으로 기독교는 독특한 종교가 아니라 원시 종교의 하나이기 때문에 다른 원시 종교를 연구하듯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Hermann Gunkel, Sigmund Mowinckel, 독일의 튜빙겐 대학이 그 온상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실존주의적 해석방법 (Existentialism)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의 인간의 작품으로 믿고 역사적인 문법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성경을 주관적으로 상대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경해석에는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1960년대에 프랑스의 솔본느 대학의 석좌교수로 동성연애자인 Michel Foucault 가 Madness and Civilization (광기과 문명) 이라는 책을 써서 이른바 후기 근대주의 라는 새로운 철학 사상이 도입되면서 뉴에잊가 출현하고 이것은 급기야는 신비주의적 성경해석으로 이어져서 오늘은 Contemplative Spirituality (명상영성운동)이 한창입니다.  Richard Foster 는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Foster 는  Celebration of Discipline 이란 책을 써서 기독교에 동양의 신비종교의 가르침을 도입했습니다.  기도할때는 손바닥을 위로 폈다 아래로 폈다 하라는 것입니다 (p.31). 이것은 불교에서 기도할 때 이용하는 방법이지요. 그럼에도 요즘 많은 한국의 교회는 이런 형태의  예배를 환영하여 얼마전 한국에서 Foster 가 큰 집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명상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은 Foster 만 아닙니다. 요즘 Emergent Chruch Movement 나 Alpha Course 가 모두 그런 것입니다.  Emergent Church 운동은 문자그대로 “과거의 전통적 예배형태로부터 빠져나오는 예배 운동”입니다.  불과 몇 년전 Brian McLaren 이라는 사람이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예배 형태입니다.  이들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Postmodernism 의 영향을 받아서 모든 것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진리가 있으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의 교리나 교파를 비판해서는 안되고 따라서 에배시에는 교리를 설교하면 사람들이 서로 분파가 생기니 서로 하나가 되기위해서는 설교할 때 교리를 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봉사와 전도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교리를 모르고 무엇을 전도합니까?  종전의 예배를 뜯어고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의 예배에서 교인들 중심의 예배로 고치겠다는 것입니다.

Alpha Course 는 얼마전 John Wimber 가 시작하여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소위
Vineyard 운동의 연장입니다. Vineyard 운동의 연장이 Toronto Blessing 을 지나서
Florida 의 Pensacola 의 Revival 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로 영국 Brimpton 에 있는 성공회 교회인 Holy Trinity Church 에서 Alpha Course 운동이 시작되어 지금은 전세계에 펴져 있습니다.  열다섯번의 강죄로 구성된 이 알파 코스 운동은 지금 전세계에 파급되어 개신교회거의 없는 독일에서 Wiesbaden, Dresden, Frankfurt 등징에서 성행하고 한국에서도 기하급수적으로 속히 파급되어 교회마다 앞을 다투어 이 운동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Discernment Ministries 의 web page 에 보면 영국의 Philip 공, Billy Graham, Paul Yonggi Cho, 영국 성공회의  캔터버리 대주교 (Archbishop of Canterbury), 도 가담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목사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은 잘 가르치는 장로 즉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사는 목사나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고 한 것이며 성경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존경하라고 가르치지 아니합니다.

요새 사람들은 Rick Warren 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나 목적이 이끄는 삶, 또 Joel Osteen 의 “긍적의 힘” 이라는 책들을 줄고 호평합니다.  Rick Warren 의 책도 Osteen 의 책도 모두 세계 여러나라 말로 번역되어 3000 만부가 팔려나갔다고 말합니다. 이 책들이 과연 성경을 바로 믿는 목사들이나 신학생들이나 일반 성도가 읽을 수 있는 책인가를 봅시다. Rick Warren 은 침례교목사이고 Robert Schuller 의 교회성장 학교의 졸업생이고 남가주 Pasadena 에 있는 Fuller 신학교에서 학위를 마친 분입니다.  

그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Purpose Driven Church) 란 책 영문판 285면에 보면, “우리 교회에서는 찬송가를 쓰지 않는다. 찬송가는 지루하고 마치 ‘장송곡“ 같아서 교인들에게 3X5 카드를 나우어 주어 세상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세상 노래중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적어내면 그것으로 다음주일 예배에 찬송가를 대신한다“ 는 가장 퇴폐적이고 비성경적인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 이란 책도 성경을 여러 가지 인용하지만 아전인수격으로 현세중심의 철학을 고취합니다. 성경은 성경에서 명시한대로만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0장의 나답과 아비후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Joel Osteen 는 Oral Roberts Universtiy (은사주의 계통)에서 공부하다가 부친 John Osteen 이 가난하게 목회하다가 세상을 떠나자 부친을 이어서 교회를 담임했다고 Discernment Ministry web 에 올린 Marsha West 라는 기고가는 말합니다.  그는 <긍정의 힘, Your Best Life Now> 이라는 책에서 “아버지가 가난한 가운데 목회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이므로 나는 이런 저주를 벗어나 세상에서 행복하게 많은 재물을 가지고 성공하며 살 방법을 강구한다” 고 말합니다.  가난한 것이 하나님의 저주입니까?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빌립보 4:12-13 을 읽어보라고 하십시오.  온르의 목사들은 이렇게 교인들에게 기도굑의 교리를 오도하고 있어도 교인들은 어리석은 양처럼 그냥 박수치며
따라갑니다.

가난하기로 말하면 칼빈 선생만큼 가난한 분이 또 어디 있습니까?  여섯 살에 어머님과 사별하고 몸에 27가지 질병을 가지고 살다가 55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런 분을 Osteen 은 “저주” 라고 하는 것인가요?  빌립보 4:11-13 말씀은 이와 정반대로 가르칩니다. 그의 책에는 쓸만한 말은 별로 없고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신앙”은 눈을 비비고 보아도 찾아 볼수 없으니 신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분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책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우롱합니까? 그래서 목사마다 앞을 다투어 이 책을 권장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우리는 칼빈의 후예들입니다. 이런 목사가 되지 말기 바랍니다.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기독교의 신앙을 왜곡하여 세계의 종교를 통일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Emergent Church 나 Alpha Course 가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Discernment Ministry 의 기관지인 “Dispatch” 의 편집장인 Brown 여사는 Alpha Course 가 열리는 곳이면 몇 년간 자비량하고 찾아다니면서 저들이 가르치는 교리를 조사했습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처음 몇 시간동안은 정통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나중 후반에 가서는 성령을 강조하고 체험을 강조하고 신비주의에 빠져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운동이 지금 온 세계에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운동을 전개하는 분이 과거 Quaker 출신인 Richard Foster 목사로서 그는  Celebration of Discipline 이라는 책을 써서 이런 운동을 조장하고  Renovare 영성운동을 장려합니다만 한국 목사들은 이 방면에 눈이 어두어서 그를 초청하여 집회를 가집니다. 얼마전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그를 초청해서 집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 교계에 큰 속임수가 난무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령 피카소 라는 화가가 그린 추상화 그림을 우리가 볼 때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Picaso에게 그게 무슨 의미인가 하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당신은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해석하면 그것이 그 의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이현령 비현령> 입니다. 요즘 성경해석도 그러합니다. 아무나 제멋대로 해석해 놓고는 저마다 저마다 자기해석이 그바른 해석이라고 고집합니다. 이것이 오늘 실존주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요즘은 제3의 물결신학 시대라고 합니다. 첫 번째 물결은 1901년 순복음 운동이 시작될 때이고 제2의 물결은 1960년대 남가주 Van Nuys에서 생긴 은사주의 운동이고 제3의 물결 신학은 1980년대에 남가주 Pasadena 에 있는 Fuller 신학교 Peter Wagner 목사에서 비롯된 새로운 신학 풍토입니다. 이 세가지 운동이 모두 개혁주의와는 다른 신학입니다. 모두 성령과 체험을 강조합니다.  요즘 나오는 Alpha Course 가 바로 이런 점에서 흡사합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고 요한복음 15:26에 말합니다, 성령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오직 그리스도“ 라고 한 것이며 ”오직 성령“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제1권 14장 1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가 하면 복음을 잘 못 전하는 목사들이 들어갈 지옥을 분주하게 만들고 계셨다” 라고 말합니다.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잘못된 신학이 전파되고 있어도 교회의 성직자들이나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으니 에레미야의 탄식이 생각납니다. 에레미야 5:30절과 31절에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라고 탄식하는 소리를 들어봅니다.

성경말씀을 바로 쪼개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헬라어를 한두 학기 해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한 절대 정확하고 무오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합니다.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것은 목사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라고 합니다.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성경에 “hai aletheiai”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he aletheia” 즉 단수 명사입니다. 진리는 하나뿐입니다.  거짓말은 모든 사람이 믿는다고 해도 거짓말입니다. 진리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진리 자체이시고 로고스 자체 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한국에 ”도올“ 이라는 사람은 구약은 필요 없다고 가르치지만 구약을 모르고 신약을 알 수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사, 즉 Redemptive History 를 가르쳐 줍니다.  기원 5세기의 Augustine 은 말하기를 “구약은 신약에 나타나 있고, 신약은 구약에 숨겨져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오늘 졸업하시는 여러분은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서 험난한 이 세대에 바른 목회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II. 주의 종은 훌륭한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 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사람 앞에 부끄러운 일을 하여 하나님을 욕 되게 하고 자신도 멸망합니까?  요즘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대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후기 근대주의 즉 Postmodernism 의 특징은 개인주의, 주관주의, 정서주의. 상대주의를 주장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에 두고 자기 멋대로 살아갑니다.  우리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교회 예배를 보아도 기분풀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예배 형태는 무시하고 기분 좋은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사람들은 엡5:18절 말씀을 읽으면서 “시”는 “시편”을 말하고, “찬미” 는 찬송가를 말하고, “신령한 노래”는 복음성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잘 못 이해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바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학교 강의실에서 늘 학생들과 충돌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엡 5:18이 무슨 의미입니까?  바울이 편지를 쓰고 또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전도할 때 바울은 칠십인역을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기 전이요 그 때 사람들이  가지고 사용하던 성경은 칠십인역 (Septuagint, LXX )입니다.  <칠십인역> 에서 시편을 읽어보면 “시” “찬미” “신령한 노래” 가 모두 서로 같은 의미로 서로 상호 대체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시에는 제목이 “시” 라고 썼고, 어떤 시의 머리에는 “신령한 노래” 라고 했고, 또 어떤 시는 초두에 “찬미” 라고 썼으니 이 말은 어느 시는 시 이고 어느 시는 찬송이고 어느 시는 복음성가라는 말이 아니라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를 만든 분들은 <표준 예배모범 (Regulative
Principle)> 을 택했습니다.  이 <표준 예배 모범> 의 내용은 예배 시에는 시편만 악기 없이 노래할 것, 부활절과 성탄절을 지키지 말 것 등인데 성탄절은 정확한 일자를 모르며 부활절은  주일에 예배때 매주일 지키는 것이므로 별도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이런 에배모범을 지키는 교단이 있는데 1636년 스콧틀란드 언약파들이 순교했는데 그들의 후예들로 미국 Pennsylvania 주 Pittsburgh 에 본부를 두고 있는 Reformed Presbyterian Church of North America (RPCNA, 북미주 개혁장로교단)입니다.  존 칼빈도 16세기에 살면서 시편만 노래했고 이 땅에 건너온 청교도들도 시편만 노래했고, 성탄절을 지키지 아니 했습니다.  

이런 전통이 무너진 것은 미국의 제3차 각성운동이 벌어지던 1860년 이후로서
Charles Finney 나 D.L.Moody, Billy Sunday 등이 부흥운동을 주도하면서 부터입니다.
이런 운동이 오늘에는 도를 넘어서 복음성가와 Christian Rap Music 까지 등장했지만 타락한 인간의 타락은< 끝이 없습니다.  영국의 개혁주의 자 John Blanchard 는 <Pop Goes the Gospel> 이라는 책을 펴내서 교회 음악의 타락상을 폭로했고 전에 대형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있던 Dan Lucarini 는 2002년에 영국의 Evangelical Press 를 통해서 “Why I Left CCM, 나는 왜 복음성가 운동을 그만 두었는가?”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칼빈의 후예들인 여러분들은 예배를 인도함에도 목회를 함에도, 설교를 함에도 항상 주인이신 주님의 마음에 맞도록 일해야 합니다.  내 멋대로 내 기분대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는 “길” 이 있습니다. 그 길은 변개할 수 없는 진리의 길입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항상 CORAM DEO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의 심정으로 일하십시오  골로새 3:23에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주께 하듯하고 눈가림만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한 칼빈 선생이 말한 것처럼 “SOLI DEO GLORIA ” (오직 하나님에게 영광) 의 심정으로 일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고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모두 사람들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갑니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학위를 받는다면 하나님에게 부끄런 일입니다.  목회현장에서 교인들에게 “세상 명예를 구하지 말라” 고 자신 있게 설교할 수 있습니까?  남에게 흠잡힐 것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훌륭한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격이 없는 사람을 목사로 안수하면 사나운 이리로 변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다가 떠나면서 그 교회 장로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내가 떠난 다음에 이리 때가 들어와서 양떼를 해치지 않도록 하라” 라는 내용이 사도행전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피흘려 사신 양떼를 맡아 목양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인격 manhood 가 중요한데 학문이 깊어도 인격이 없는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은 경멸의 대상입니다.  저는 오늘 까지 살아오면서 인격이 평신도만도 못한 목사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사귀는가? 어떤 책을 읽는가? 에 따라 인격이 달라집니다.  오늘 학위를 받으시는 여러분,  여러분을 향하여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면서 여러분을 mentor 로 삼고저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주위에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만일 한 사람도 없다면 무엇인가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저의 Mentor 가 있습니다.  Scotland 의 종교개혁가 Samuel Rutherford 입니다. 그분의 책 “Rex Lex” 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분처럼 살고 싶습니다.  1993년 St. Andrews 성당 바로 길 건너 <순교자의 묘역>에 잠들어 있는 그의 묘지의 비석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이 분처럼 한 평생을 주의 종으로 살아가리라 하고 다짐했습니다.  또 제 주위에는 저 처럼 살고 싶어하는 분도 여럿 생겨나니 감사한 일입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마춘영 선생님, 김진국 선생님 모두 훌륭한 스승이었고, 중고등학교에서 홍순 선생님 김윤식 선생님 모두 잊을 길없고, 대학에서 백낙준 총장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심금을 울렸고, 미국에 유학 와서 신학교에서는 Cornelius van Til 교수의 인격과 학문을 영영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다 낡아빠진 허리띠를 매고 다니시던 Gaffin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검소하신 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부선 목사님과  저를 목사 안수해 주신 이인재 목사님에게 깊은 인격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사귀는가? 누구와 교제하는가? 에 따라 인격이 달라집니다.  휼륭한 스승을 두고 그를 따르면 인격이 그렇게 변합니다. Barth 나 Kant 나
Hume 을 따르면 또 그렇게 다라집니다.

책을 많이 읽으십시오.  학생 때 시간에 쫓기면서 못다 읽은 책들은 졸업 후에라도 돈을 아껴서 구입하여 읽으십시오.  옛날 필라델피아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점심을 굶으면서 돈을 아껴 정신없이 책을 구입하여 마구 읽던 일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책 읽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교수들이 숙제를 많이 주기 때문이 었습니다.  유학생으로 와서 공부하던 저는 full time 으로 한 학기에 17학점 18학점을 하지 않으면 이민국의 <유학생 체류법> 에 위배되니 힘에 겨워도 감당해야 했고,  한 학기에 숙제 3개를 주시던 van Til 교수의 변증학 시간에 그 많은 <필독서적 목록Required Reading List>을 보고 학생들이 “숙제를 덜어 달라" 고 주문하면 노교수의 대답은 언제나 한 가지, ”책 읽기 싫으면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라, 하나님은 당신이 신학 공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라고 호통을 치던 일을 기억합니다.

교수마다 숙제를 내어주는데 모두 합해보면, 학생은 한 햑기에 열 가지 숙제를 기일 내에 제출해야 하니 그 고충이 어떠했을까요?  그래서 낮 2시에 강의가  끝나면 도서관에 들려서 책을 20권 대출받아 자동차에 싣고 곧바로 공장으로 나가 4시부터 밤 1시까지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새벽 1시 30분 집에 도착하면 <코피를 마시면서> <코피를 쏟으면서>  먼동이 틀 때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금 왜 그리도 그리운지요. 그렇게 괴롭히던 교수님들이 왜 그리도 존경스럽고 뵙고 싶은지요. 그러나 그 은사님들은 모두 이제 만날 길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니 옛 스승도 갑니다. 오늘 여기 단상에 앉아계시는 여러분의 교수님들도 하나씩 둘씩 앞으로 뵙지 못할 날이 찾아옵니다.

책을 읽으세요.  책을 읽지 않고 졸업하면 나중에 무식하여 후회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학위> 를 받으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합니다. 오늘 박사 학위를 받으시는 여러분은 적어도 1,000 권 가까운 책을 읽고 소화하고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쓰고 졸업하는 줄로 압니다. 저는 그렇게 하여 학위를 얻었습니다.  아직 책을 못 읽었다면 졸업하고 나서 책을 읽으십시오.  칼빈은 하루 종일 Geneva  Academy에서 책을 쓰고, 강의하고  설교하면서 “나는 너무 바빠서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릴 지경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남을 지도합니까?  여러분이 사역하는 곳에는 여러분 보다  독서를 더 많이 하고 성경지식도 풍부한 교인들이 앉아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훌륭한 인격자가 되세요.
실력을 겸비한 인격자가 되세요.

좋은 벗을 사귀고 좋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성훈령도 중요합니다. 기도하세요. 아침마다 성경 한 장 혹은 두 장을 원어로 읽으시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세요.  성도들, 특히 사역자에게는 기도가 생명줄입니다.  기도할 때 노스틱주의자 처럼 신비주의에 빠지지 말고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세요.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화하세요

III. 헌신의 생활
신학 지식을 갖추고 인격을 갖추고 나면 남은여생을 주님에게 온전히 바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리기를 힘쓰라" 라고 했는데 "힘쓰라” 라는 말은 원문에서 ‘spoudazo" 라는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열심히 봉사 하라는 말입니다. 흔히 우리는 주의 일을 뒤로 미루는 일이 많습니다.  이 "spoudazo" 라는 말은 디모데후서 4장에서 “속히 오라” 라고 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지체하지 말고 오는 일에만 정성을 다하라> 는 말입니다.

오늘 영예의 학위를 받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신 말처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광영을 안게 된 것이니 이제 남은 여생은 주님에게 온전히 바쳐져야 합니다.  헌신의 생활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오늘의 목회 현장에서 칼빈주의자들은 핍박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말씀을 바로 전하면 모두 싫어하는 이상한 신학기류가 교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을 편지한 것 처럼 고난을 참으며 전도인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인서르 기록하면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하고 로마서 8:18에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룬다”고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함에는 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고 한 사도행전 20:24절 말씀을 기억합니다. 종교개혁시기에 스위스 줄리히 (Zurich) 에 Zwingli 가 있었습니다. 그는 Martin Luther 와 성찬식 의 의미에 대해 논쟁으로 유명하지요만, Luther 와 논쟁을 하고 Zurich에 돌아와 얼마 안되어 로마 천주교의 군사들과 Kappa 이란 도시 근처에 있는 벌판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는 양편에 날선 도끼를 가지고 나가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는 입을 부상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몸을 죽이지만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 던지는 자를 두려워하라” 란 말을 남기고 순교 했습니다.

천주교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그의 유골을 누가  가져가지 못하도록 시신에 불을 질렀습니다.  나중에 Zwingli 의 제자들이 그의 불탄 곳을 가보니 기적적으로 그의 심장은 불이 타지 않은 채 고tm란히 보존되어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확인할 도리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Zwingli 의 신앙태도입니다.  순교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은 그런 신앙가가 되라는 말입니다.  일정시대에, 혹은 북한 땅에서 공산당에게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 당했습니까?  멋진 인생을 살다가 간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칼빈 선생을 기억합니다. 그가 얼마나 어려운 가운데 사역하였는가를 압니다.
그는 여섯 살때 생모을 잃고 계모밑에 자라났습니다. 신학에 뜻을 둔 다음부터 닥쳐오는 온갖 고통은 필설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려고 기도하면서 제네바에 도착하여 Guillaume Farel 의 도움을 받아 제네바 아카데미를 만들었고 밤낮으로 성경과 신학을 가르치고, 설교하며 글을 썼습니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몸에 27가지 병을 가지고 고생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생각한 분입니다. 그가 의사에게 한 말은 몸에 여러 가지 병이 있어 무척 참기 어려운데 밤이 되면 밤마다 동리 사람들이 30명 40명씩 집앞에 모여와서 욕을 하고 돌을 집에 던지니 견디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잠시 도성을 피하여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도시인 Strasbourg 에 가서 때마침 프랑스에서 천주교의 핍박을 피해서 그곳에 피난와 있던 프랑스 위그노족 (the Huguenots) 들을 상대로 목회를 삼년간 했습니다.  그후 다시 제네바에 돌아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역겅속에서도 칼빈은 기쁨으로 사역했습니다. 1564년 5월 27일 저녁 서산에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드는 제네바의 자택에서 평생을 그의 종으로 몸바쳐 일하던 주님의 곁으로  가셨습니다. 지금은 그가 세운 Geneva Academy 가 Universite de Geneve 가 되어 제네바 대학교로 승격했고 그 학교 앞에는 사람의 키보도 훨씬 더 큰 돌로된 석상이 서 있는데 종교개혁가 네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석상입니다. 이 석상을 보노라면 왼편으로부터 Guillaume Farel, John Calvin, Theodor Beza 그리고 John Knox 등 네 사람입니다.

칼빈의 임종을 지켜 본 사람은 그의 제자겸 동역자였던 Theodor Beza 였는데 숨을 걷우면서 한 칼빈의 마지막 말은 “내가 한 모든 일은 아무 거치도 없는 일이다,  나는 하잘것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고 하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칼빈선생이 탄생한 것은 1509년이므로 내년 2009년 이면 그의 탄생 500 주년을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Greenville 신학대학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칼빈 탄생 500 주년 행사를 준비중입니다. 내년 2009년 6월 30일부터 7월 10일까지 10박11일 간 프랑스의 Paris 와 Strasbourg, 그리고 Geneva 등지를 순방하며 미국내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들 13명이 칼빈의 업적을 회상하는 신학강연회가 열립니다.  여러분 중에서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같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이 예배가 끝난 후 저에게 말씀 해 주십시오. 혹은 이 메일 rvkim@yahoo.com 으로 연락 주십시오.  칼빈은 위대한 종교개혁가 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종의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걸어간 신앙의 귀감입니다. 칼빈의 후예들이여, 우리도 그를 본 받아 주의 이에  이 생명 다하도록 헌신합시다.

결론:
사랑하는 나의 제자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칼빈신학교 선지동산의 교문을 나섭니다.
주님은 은혜를 주시어 여러분을 창세전에 하나님의 종으로 택해 주시고 오늘이 있기까지
건강으로 축복하시고 학문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여러분을 큰 그릇으로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일꾼이 부족합니다. 여러분이 이제 주님의 포도원에 나가서 일을 하여햐 합니다.

고통이와도, 핍박이 와도, 죽음이 와도 보배로운 피를 흘려 나를 영원한 지옥에서 구해 주신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 날에  내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요 나에게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라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신 바울의 말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던 때가 지난 날로 족합니다. 이제 후로는 우리의 남은 여생을 주님을 위해서 몸버쳐 일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건강으로 감싸주시고 여러분이 십자가의 군기를 높이 들고 싸움터로 나가는 길에 우리 대장 예수께서 항상 이김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하나님의 종 바울을 통한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합시다.
감사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교문을 나서는 여기 앉은 주님의 알꾼들의 앞길을 항상 인도하시어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바른개혁주의 신앙이 널리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널리 확장되는 복을 주옵소서.  그동안 뒤에서 기도로 뒷바라지하며 눈물과 땀으로 도운 가족들을 주께서 위로하시고 이들 주의 종들이 나가는 앞길에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항상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 나이다, 아멘                                    -설교, 종의 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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