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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2:8-11)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2. 2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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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2:8-11)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이 말씀은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말씀으로 사용합니다. 특별히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거나 아니면 교회의 중요한 직분이나 직책을 맡을 때 사용되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 말씀이 어떤 새로운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또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시는 말씀인지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도들이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목사는 없습니다. 충성하고 헌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성도 자신에게 기쁨일 뿐만 아니라 목사에게도 기쁨입니다. 그러나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기 위해서 위의 본문 말씀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합당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교회에서 교사의 직분, 찬양대, 그리고 다른 부서의 직분들을 임명하면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는 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록된 성경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는 사도들처럼 기록된 성경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만 읽는다면 여전히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고 맙니다. 지금 주님은 고난과 핍박과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자신의 양떼들을 위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하는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지금 네가 맡은 직분에 충성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직분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신앙에 충성을 다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물론 때로는 신앙 때문에 주어진 직분에 충성을 다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에 충성을 다한다고 해서 신앙을 바르게 가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직분을 사사로이 맡기지 말라고 한 바울의 가르침은 신앙과 직분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 주님을 따르는 모든 무리들이 고난과 환란을 받으면서 급기야는 자신들의 생명과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 예수를 주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환난이란 바로 순교였습니다. 이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댓가가 바로 순교였습니다. 어쩌면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순교를 당하는 그 순간 앞에서 다른 길을 생각하는 것은-믿음을 버리고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오직 한 길만이 요구됩니다. 그것은 바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가 가난하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가난하다고 하시는 말씀은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정말로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궁핍에 처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길도 막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수많은 논쟁거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부터 구약에서 언급된 유대인들, 즉 진정한 유대인들이 누구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구약의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할례를 가진 자들만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은 죽음마저 불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손으로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에게 아첨하며 그들로부터 받는 유익을 다 누렸습니다. 마음 것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로마 정부로부터 몇 가지 조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먼저 서머나라고 하는 위치와 지역적 상황을 아는 것이 설교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머나는 항구 도시로 지금도 이즈밀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도시입니다. 이 서머나 도시가 로마 황제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서머나가 아시아에서 가장 으뜸 되게 로마 황제를 섬기는 도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가장 첫째가는 도시라고 하는 플로테이 아시아스라고 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를 섬기는 신전을 관리하는 신전 관리자라는 칭호도 받았습니다. 그러니 황제에 대한 숭배가 가장 극심한 곳이 바로 서머나였습니다. 서머나에게 주어진 명칭이 바로 아시아의 왕관이라고 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황제의 왕관을 뜻하는 도시입니다. 이와 반대로 서머나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심하게 박해했던 곳입니다. 요한의 제자 폴리갑이 순교한 곳이 바로 서머나였습니다. 이렇게 황제를 숭배하는 도시가 번성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서머나는 아주 번성한 도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당하면서 궁핍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환난을 당하고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 된 것은 바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자신이 가진 신앙을 버리고 유대교로 아니면 황제 숭배의 길로 가면 가난은 사라지고 환난은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앙 때문에 환난과 가난을 기꺼이 선택했습니다. 이것을 보신 주님께서 이들이 육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실로 부요한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10) 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고난 속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이 능력을 어떻게 불신자들과 유대인들이 알겠습니까?

우리에게 믿음이 없다면 우리들도 이 말씀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때론 삶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 어떤 세상의 부자보다 더 부요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부요는 잠깐 소유할 뿐이지만 우리가 소유한 부요는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는 자가 있다면 정말로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생명을 빼앗겨도, 자식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이 부요를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따르고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진정한 유대인이 누구인지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서머나 성도들이 바로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9절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이 말씀이 바로 육체를 자랑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 계속해서 그들은 구약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육체의 할례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은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다. 이들의 모임은 사탄을 위해 모임을 갖는 자들이라고 저주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이렇게 저주하신 것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 하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회당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보전받기 위해 로마가 제시한 제안을 모두 받아들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회당에 로마 황제의 신상을 세우고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핍박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앙을 타협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로마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폴리갑의 순교라고 하는 문서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라고는 고작 단에 향 하나 피우면 된다. 그리고는 떠나면 그만이다고 유대인들이 가르쳤습니다. 서머나에 사는 유대인들은 이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 믿음의 조상 주기철 목사님을 회유했던 일본 순사가 주 목사님를 차안에 태워가면서 저기 보이는 신사에 머리를 잠깐 숙이고 지나가라고 하는 회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머리 한 번 숙이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유대인들은 로마의 황제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믿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과 부를 유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무리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서머나 교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말씀하여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이 말씀은 바로 구약의 하나님을 계시하는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었습니다. 44:6에 사용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용되었던 하나님에 대한 호징을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사용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계시의 말씀이지만 그것은 먼저 고난당하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바로 진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참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를 위해 분향 단에 향 하나만 꽂으면 모든 삶을 보장 받고 있는 유대교와는 다르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들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님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황제숭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은 고난과 궁핍이었습니다. 만약 교회가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향 하나만을 꽂고 서로 연합했다면 환난과 궁핍을 피했을 것입니다. 아니 목숨도 유지하고 자녀들의 삶도 보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때문에 그들은 그 모든 육체의 안전을 거부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섬겼던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 바로 진정한 유대인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참된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구약의 하나님을 믿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율법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신을 같이 섬긴 것입니다. 진정 올바른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모세를 믿는 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유대인들, 할례자들이 누구인지 가르쳐 줍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2:28-29).

그렇다면 누가 참된 유대인입니까? 성경의 말씀 가르침 그대로 하면 인종과 민족과 지역을 뛰어넘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의로 옷 입는 자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요 언약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배교한 이들은 사탄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참소하는 사탄의 자식들이 거룩한 진리의 자녀들을 참소하고 심지어 옥에 집어넣어 고난을 받게 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서머나 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유대인들의 참소로 인해 옥에 갇히는 고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그렇게 길지 않다고 주님은 말씀하여 주십니다. 환난은 심각하였지만 그렇게 길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이 10일 동안 된다고 하시는 말씀으로 환난이 짧다고 하여 주십니다. 구약의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십일 동안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이기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머나 교회에 가해지는 유대인들의 박해는 짧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엄청난 은혜와 축복가운데 거할 것입니다. 환난의 10일은 영원한 승리의 날로 바뀔 것입니다. 또한 환난은 생명의 면류관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서머나 교회에 지금 예수님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이제 어떤 의미를 담고 하신 말씀인지 우리는 아주 분명하게 깨닫고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주님께서 환난을 당하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충성이라고 하는 단어는 믿음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충성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그 믿음 말입니다. 마귀가 앞으로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핍박과 순교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충성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이 말씀은 성도가 가진 직분을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교를 당하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신앙을 죽기까지 지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모든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주신 말씀입니다.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참 유대인이며 아브라함의 후손들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모든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는 이 진리를 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이 음성은 1세기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입니다.

성도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기 시작하면 이 믿음을 가지고 죽음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주어지는 직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임명받은 직분을 한 달, 아니면 일 년도 못 감당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일평생 끝까지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죽기까지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믿음은 곧 영생입니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기를 충성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둘째 사망이란 바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 이후에 생명을 부여 받고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들을 소유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죽음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영원한 사망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신앙과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영원한 사망의 심판이 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죽도록 충성한 자들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역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주시기 위해 지금 주님께서 자신을 믿는 믿음을 끝까지 순교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버리지 말고 지킬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은 이 세상 가운데서 고난과 핍박과 환난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주의 백성들에게 용기와 위로와 담대함을 주시는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하는 이 진리를 기쁨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225&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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