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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편지하라고 하시는가?(계2:1-7)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2. 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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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편지하라고 하시는가?(계2:1-7)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요한 계시록을 설교하기 위해 연구하면서 계속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 계시록이 쉬운 성경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벤자민 워필드는 요한 계시록은 쉬운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계시록에 사용된 모든 상징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이고, 또 구약의 시인들과 선지자들 및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한 비유의 말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계시록을 통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고 절대로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요한 계시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계시록을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도들이 이 계시록을 읽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바로 가르치는 사람들이 게을러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주님께서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자신의 교회들 가운데 계속 일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아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위해 사역자들을 세워 복음의 진리가 계속 성도들의 입술과 삶에서 고백되게 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은 자신이 일하시는 교회와 오른손으로 붙잡고 있는 교회의 사자들에게 직접 말씀 하여 주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오늘날 모든 지상의 교회들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 교회들이 지금에 와서는 다 사라지고 없는 교회들이지만 일곱 교회에 직접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칭찬과 경고의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현대교회들이 바른 교회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신앙적 방법을 찾기 보다는 지금 계시록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키면 된다고 믿습니다. 병든 인간들에게 가장 위대한 치료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무엇을 원하냐? 고 할 때 그들은 한 결 같이 자신들의 병을 치료받기를 원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교회들이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일곱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예본 교회도 병들어 있는 것이 있으면 일곱 교회를 통해 말씀해주시는 것을 잘 듣고 순종하면 될 것입니다.

이제 일곱 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먼저 우리가 말씀을 자세하게 보면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곱 교회의 모든 사자들에게 예수님은 요한에게 편지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요한에게 자신의 오른 손으로 일곱 별을 붙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오른 손으로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까? 고통과 배신 그리고 속임과 불법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자신들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가 진정한 구원의 주님인지를 의심까지 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자들이 구약의 참선지자들인 것처럼 참된 종들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그들로부터 전해들은 복음과 가르침은 거짓이 없는 신적권위를 가진 진리라고 하는 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진리위에 서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교회의 사자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지금 요한에게 각 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라하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편지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자들에게 편지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엄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음성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이 계시록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적용시키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오늘날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이 말씀을 통해 자신들이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 때문에 주님께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주에 어떤 분이 (다른 교회를 섬기는 교인)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참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례가 나타나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저는 그 분에게 말씀이란 성경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성경을 가진 교회가 참 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단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이란 성경,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선포하는 설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일을 누가 합니까? 2000년 전에는 사도들이나 교부들이 했지만 지금은 목사들이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에 의해 교회가 서고 무너지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은 요한에게 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바르게 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양들을 치는 일을 위임받았다면 심판도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 모든 책임이 바로 목사들에게 있습니다. 특별히 1세기 유대교와 로마의 압제 하에 신앙의 위험에 직면해 있었던 성도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신앙을 계속 성실하게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순교의 제물이 된 위대한 성도들도 있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믿음에서 떠나는 즉 배교의 모습으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에 있었던 교회들 안에서도 나타났지 않았습니까? 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일반 성도들이 신사참배가 죄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따라 일본 천황을 신으로 섬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지금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은 그야말로 신앙의 도전을 받고 시련을 겪고 있었던 역사적인 교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하라고 하신 것은 교회들을 교정하고 지상의 교회에서 이제는 천상의 교회를 받기 위한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왜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교회를 이루시게 하시는지를, 그저 이 땅에서만 한정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통해 항상 땅에 것을 찾지 말고 위에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깐 있을 나그네와 같은 시간을 우리가 사는 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훈련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지상에서 불완전하고 늘 죄 가운데 살지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는 그 신앙 때문에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는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시며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교회에서 추구하는 신앙을 보면 천상적인 삶을 사모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목적은 지상에서의 행복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라고 하지만 오늘날 현대교회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세속적인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왜 교정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왜 바르게 교정하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이 쓰여진 목적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없어질 구약의 모든 신앙의 체계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역시 이 세상은 곧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살든지, 아니면 죽든지,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세상에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시스템과 이별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교부 아다나시우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저 예루살렘이 더 이상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세워진 것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계신 곳을 바라보면서 우리들도 그곳에 가기를 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 땅에서 주님을 만나는 그전까지는 땅위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새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에베소 교회는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섬겼던 교회입니다. 특히 바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가 목회를 했던 곳입니다. 디모데가 유대인들에 의해 순교를 당하고 그 다음에 누가 에베소 교회의 사자로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아주 잘 가르치고 성실하게 믿음 안에서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을 물리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시는 것은 그들이 한마디로 말해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배워서 거짓 교사들,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고 복음의 순수성을 잘 지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복음을 전하는 나그네들이 많았습니다. 순례하면서 교회들을 방문하여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주님의 이름으로 방문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 장로들은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에게 공적인 예배 시간에 설교할 기회를 줍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되면 성도들이 미혹될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붙잡고 계신 교회의 사자들이 이들을 먼저 시험하고 이들에게 공적 설교를 하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가 이런 일을 참으로 잘했다고 칭찬하여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는 바울의 가르침에 아주 주의 하면서 교회를 섬겼던 것입니다. 20을 보면 바울이 마지막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밀레도라는 곳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들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 동안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20:28-31)”.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에 에베소 교회가 복음의 진리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교회 밖으로부터 사나운 이리가 교회 안에 들어 올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서 니골라 당 같은 자들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사나운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교리를 왜곡되게 전하는 자들, 참된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것을 전하는 자들, 곧 거짓 사도들, 거짓 선지자들, 거짓 복음 전도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복음을 어그러지게 전하는 목적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자신들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흉악한 이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사자들이 사도의 권면에 순종하여 교회를 잘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떠나고 40년이 지난 후에도 교회는 잘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110년경에 순교한 교부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여러분! 당신들은 모두는 진리를 따라 살고 있습니다. 어떤 거짓 이단도 여러분 가운데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 외에 다른 것을 말한다면, 그 어떤 사람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악한 교리를 가지고 나아갔지만 여러분은 그들로 하여금 여러분 가운데 그 거짓교리의 씨앗을 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들에 의해 뿌려진 씨를 받지 않기 위하여 귀를 틀어막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음이 순수하게 지켜지고 교회에서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 교회가 주님의 복음을 아주 잘 파수하고 성도들을 위해 열심히 수고한 것을 주님께서 칭찬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에 기록된 성경에서는 첫 사랑을 버렸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에베소 교회는 주님의 가르침에 아주 잘 순종하였고, 주님의 복음을 사랑하고 그것을 잘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이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즉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버린 것입니다. 형제에 대한 사랑을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파수하고 진리를 세우는 것 때문에 형제의 부족함에 대하여 쉽게 판단하고 형제 사랑을 등한시 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가난한 자들과 소외당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형제를 사랑하고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잘 돌보아주었을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그 모습이 아름답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는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지킨다고 하는 것 때문에 가나한 형제들을 돌보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에베소 교회가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듣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진리를 지킨다고 하는 명분 때문에 형제를 돌보는 일에 등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런 모습들이 교회 안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저주하신 것 가운데 하나가 그들은 자신들이 참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지만 그러나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인데도 가난한 자들과 세리와 창기들을 정죄하고 그들을 저주하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율법을 바르게 배워서 알았다면 이스라엘안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과부와 고아들이 있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로 모인 자신의 몸 된 교회가 진리를 파수 한다고 하는 명분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죽은 종교와 같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할 때, “버렸다”(아피에미)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 하고, 무시하고 간과해 버렸다는 뜻도 있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초대교회 가운데 교부들은 교회의 재산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의무로 규정하였습니다. 특히 교부들은 자신의 생명을 주신 주님께서 교회의 은과 금을 두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은과 금이 많아지면서 교회는 결국 타락하고 진리마저도 변질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진리가 변질되고 타락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 경우는 바로 교회에 금과 은이 많아지면 변질이 되고 타락하게 됩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한 평생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타락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돈이 많으면 교회가 가난한 이웃을 위해 많은 사랑을 베푼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진리를 왜곡하고 복음마저 등한시 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 주님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는 것은 에베소 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파수 하는 그 일에 있어 변질되지 않게 하시려고 잃어버렸던 형제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복음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닙니다. 이것과 저것, 둘 다를 가져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배우고 지켜 나간다고 해서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는 것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시작되는 일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도 함께 시작된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모습 가운데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한 가지를 더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을 주님도 같이 미워한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는 아주 비도적적이며 비윤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교회 안에서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자신들의 육체의 쾌락을 위해 당을 지어서 행동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을 미워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무작정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불법을 미워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이 진정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도 우리는 같이 배워야 합니다. 형제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불법도 용인하여 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바른 진리를 사수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참된 신앙을 가질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에베소 교회만이 아니라 일곱 교회, 즉 지상의 모든 교회들이 이렇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돌보는 일이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또한 깨달아야 합니다. 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은 항상 동일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나무의 과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들 입니다. 그 은혜는 죄 용서와 영생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은사들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지만 이 땅에서 새 이스라엘 백성들, 즉 믿음으로 이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현재에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악한 자들을 이기고,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참과 거짓을 혼합하는 니골라 당과 이길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낙원에 참여하는 것이며, 거기 있는 생명나무 곧 그리스도의 모든 축복과 구원의 은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213&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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