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남은 자들(계2:18-29) | |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 |
최근에 어떤 기독교 언론에서 일본의 역사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자 예수의 이름을 배반하고 생명을 지키라고 예수 자신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배도의 길을 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핍박과 환난 속에서 신앙을 부인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고 다시 예수 믿는 신앙을 가진 자들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합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전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지만 그 영화 광고처럼 주님께서 배도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는 요한 계시록에 나와 있는 이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이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각 교회에 계시하면서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사랑이 없는 분으로 보여 질 것입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신앙 때문에 핍박과 환란을 당하는 자들에게 주 예수께서 배도의 신앙을 가지고 생명을 지키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성경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생명을 빼앗긴다고 해도 주님 당신을 믿는 믿음을 부인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전해지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녀의 신앙은 시집을 가면 알 수 있고, 총각의 신앙은 군대를 가면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도 군대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때문에 선임병들에게 엄청나게 많이 맞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살았던 당시 시대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바보들처럼 그렇게 당하면서 살았던 선조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정말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위선자들은 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노력하면서 뒤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맛보고 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자신을 각 교회에 계시할 때 그 지역에 맞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서머나 교회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버거모 교회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 그리고 오늘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고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그 지역에 어떤 독특한 상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계시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두아디라지역에 있는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 신들이 섬김을 받고 있는 그런 상황 속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친 로마의 황제를, 아니면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로나 그들이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제우스의 또 다른 아들 트림노스라고 하는 신들의 아들을 섬길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입술과 삶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계속 주장합니다. 이러한 그들의 신앙 고백은 처음과 나중까지 변화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 안에 이러한 참된 신앙고백을 부인하게 하는 자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이세벨과 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900년 전의 북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입니다. 그때 이세벨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간음하게 하고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도 많은 신들 가운데 위대한 신들이라고 그렇게 믿게 한 장본인 이었습니다. 이세벨 때문에 구약 이스라엘 온 땅에 거짓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되었고, 백성들은 하나님도 믿으면서 우상을 섬기는 그런 배도의 길을 가는 백성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이세벨이라고 하는 자칭 거짓 여자선지자가 등장 했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때 이세벨과 지금 두아디라 교회 안에 자칭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 이 여자 이세벨은 같은 사상을 가진 이단입니다.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 안에 일어난 이단사상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합 왕 때 이세벨이 가르쳤던 악한 사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세벨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가 교회 안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을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했지만, 그러나 이세벨이 한 것처럼 다른 신들도 동일하다고 하는 것을 동시에 말한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도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다 같이 나눠 먹어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성도들이 자신들이 섬기고 있는 예수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일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들이 섬기는 예수는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황제도 신이라고 하는 것을 믿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바로 이세벨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에 대하여 용납한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이세벨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을 숭배할 뿐 만 아니라 음행도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세상의 문화는 이방신을 섬기면서 두 가지 의식들을 치렀는데 먼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린 음식을 먹는 것과 방탕하게 성관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취하도록 먹고 마시고 그 후에 광란의 성적 관계를 벌였습니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신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행해졌던 의식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자신들의 직장을 얻고 또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위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성도들은 자신들의 삶에 어려움이 생겨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과 삶 가운데 고민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바로 거짓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성도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서로를 더 위해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그저 인간적인 관계만을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즉 진리에 대하여 뜨거웠던 것에 반하여 두아디라 교회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사랑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신앙은 자신을 교만하게 만든다고 하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두아디라 교회 안에 일어난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자들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얼마나 세상과 손을 잡고 야합하고 있습니까? 자신들의 신앙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 대통령 탄핵과 관련하여 탄핵 심판을 인용하는 재판관들의 주문과 내용들을 들으면서 아주 중요한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그 시간에 헌법 재판관들의 판결을 다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수냐? 진보냐? 서로 나누어 다투지만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는 결정적인 내용이 바로 헌법을 수호하려고 하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고 불의하게 사용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판결 내용을 보면서 저는 목사로서 가져야할 자세가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 봤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경 말씀에 대한 진리를 수호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주님께서 목사를 세우셨고, 부르신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면 결국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지 못하는 것이며, 그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 안에 있는 교사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세벨의 가르침을 좋게 여기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생업을 박탈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신앙의 길을 선택하였는데 이제는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 일을 아주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 예배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을 빼앗긴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을 말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세벨과 그를 따르는 자녀들, 즉 거짓 교사들에게 분명하게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주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는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거짓 선지자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침상에 던진다고 합니다. 침상에 던진다고 하는 것은 질병으로 침상에 눕게 하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음행하러 침상에 가는 자는 반드시 병으로 죽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경고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음행은 영원한 죽음에 임할 것입니다. 인간세상 안에서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음행하는 자들이 병으로 죽음을 당하는 일들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영원한 자신의 신랑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쫒는 여인은 당연히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세상가운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같이 음행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 안에서 이세벨을 따르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주님은 이세벨을 따르지 않고 계속 주님만을 따르는 자들도 알고 계셨습니다.
24절을 보면 주님께서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고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아신 것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이란 바로 이세벨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사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부패와 타락의 범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비롯하여, 술 취함, 방탕, 호색, 남색, 탐색, 간음과 같은 온갖 더러운 것을 탐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깊은 것입니다. 하지만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 가운데 이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세벨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전혀 이세벨의 가르침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세벨이 가르치는 죄악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우상숭배나 음란한 행위에 실제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교회 안에 이런 사탄의 깊은 곳에 대한 열망을 알기를 바라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당연히 사탄의 깊은 곳을 알기 위해 더 노력합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자연적으로 생명이 발생하여 진화하였다고 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생명이 외계인들이 주었다고 하는 학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사탄의 깊은 곳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사탄을 위한 모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 쉽게 부흥하는 것,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당기는 것, 육체의 감각에 자극을 주면 사람들은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이용하는 사악한 이세벨들이 교회 안에 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음란한 이세벨들은 계속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복음의 진리위에 세워집니다. 이 복음의 진리가 바로 오직 성경이라고 하는 말씀선포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라고 외치면서 하나님의 음성인 이 말씀을 듣지 않는 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왜곡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음란한 신앙을 우리가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세벨의 가르침에 반하여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아시고 계셨습니다. 참된 신앙으로 어려운 현실을 이기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르게 신앙생활 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어떤 짐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교회에게 새로운 짐을 부과 하지 않고 다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은 것과 음행을 멀리하면 잘 될 것이라고 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 성도들에게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르게 가르쳐 준 신앙의 도리를 잘 지키고 끝까지 지키면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새롭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이미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 안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진리는 과거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진리가 만들어 지고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던 이 진리 안에 거하면 그것이 바른 신앙이고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서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그리고 청교도들이 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까? 성경만이 바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이 기록한 연구물들을 읽고 묵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드러낸 진리가 아주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에게 축복을 하여 주십니다. 교회는 언제나 안과 밖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교회 안에는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고 세상은 환난과 고난을 줍니다. 어쩌면 교회는 참된 신앙을 가진 자들보다는 거짓된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자신의 자녀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이 말씀은 세상 만국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통치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성부께서 성자에게 세상을 통치하시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성자가 받은 이 만국 통치의 권세를 이기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두아디라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의 황제에게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로마황제가 자신들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과 다릅니다. 오직 믿음의 백성들만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정말이지 세상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그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적 통치를 행사할 것입니다. 왕적 통치를 행사할 때 철장으로 왕적 권세를 행사할 것입니다. 강력한 쇠막대기로 질그릇들을 다 부서뜨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 권세를 자기 백성들에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핍박만 받고 있는 자들에게 철장권세를 주고 심판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얼마 전까지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아닌 일반사람이 되는 것이 세상권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권세, 그리고 아들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는 권세는 만국을 영원토록 다스리는 왕적 권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에게 “새벽별”을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광명한 새벽별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신 예수님 자신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맞서 믿음으로 이기면 이길수록 새벽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밝게 빛을 비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당한 문제는 정말이지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던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구약시대 때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과 아세라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7,000이나 남아 있었던 것처럼 두아디라 교회에도 여전히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이 시대 속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분명 남겨 두셨습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오직 믿음의 조상들이 가르친 그 옛 길, 진리의 길에 서 있는 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길에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걸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서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오직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을 향해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대하면 할수록 그 조롱은 부러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진리를 담대하게 말하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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