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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문을 닫을 자가 없다(계3:7-13)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4. 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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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문을 닫을 자가 없다(계3:7-13)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오늘 우리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6번째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먼저 '빌라델비아'라고 하는 이 도시는 '형제를 사랑하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과거 에스더의 남편인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이 유럽으로 원정을 가는 길에 유럽에서 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이전 140년 아탈루스 왕이 이곳에 도시를 세웠는데 그는 형제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별명을 필라델포스 즉 '필'은 사랑이고 '아델포스'는 형제이기 때문에 형제 사랑이라고 하는 빌라델비아라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빌라델비아 지역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유대인들의 박해가 여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계시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자신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고 닫는 분으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하여 먼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으로 지금 자신을 계시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구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22:15-25절에 나타나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 22장 말씀에 보면 셉나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셉나는 관리입니다. 하지만 부패한 관리입니다. 이 사람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 지위를 통해 많은 돈을 축재한 사람입니다. 부정 축재한 그 돈을 가지고 아주 고급스러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셉나는 자신이 장차 죽으면 매장될 무덤을 미리 준비하였는데, 아주 높고 튼튼한 반석에 자신의 무덤을 마련하는데, 그런데 국가의 돈을 훔친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높은 고위 관직에 있는 공무원이 국가의 돈을 횡령하여 자신의 집과 후에 자신이 죽을 때 사용될 무덤을 위해 많은 돈을 도둑질 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셉나를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셉나 대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 김을 셉나의 자리에 앉힐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런 말을 하십니다.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22).

구약 성경 이사야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김에게 주신다는 다윗 집의 열쇠는 다름 아닌 이전에 셉나가 맡았던 국고의 열쇠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국고의 열쇠를 맡고 있었던 셉나는 오직 자신만이 그 문을 열고 닫으면서 마음대로 사용했는데 이제 그 국고의 문을 열고 닫는 열세를 즉 권세를 엘리야 김에게 맡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오직 엘리야 김만 국고의 문을 열고 닫을 수가 있습니다. 마치 요즘 우리 시대에 보는 최순실이라고 하는 비선실세에게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주고 그녀가 마음대로 부정하고 불의한 일을 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셉나 대신에 엘리야 김을 대신해서 모든 권세를 맡기셨다고 하는 것은 결국 엘리야 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불의한 셉나는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전해 내려온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의지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아닌 중간에 불의하게 변질된 유대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불의한 유대교의 신앙 아래에서 환난과 고난을 당한 것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불의한 유대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자리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해주는 셉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자신이 다윗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엘리야 김이 국고의 열세를 가지고 자신만이 그 문을 닫고 열수 있는 권세를 가진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권세를 가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왕적 권세의 열세, 통치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유대교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지키면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을 한정시켰습니다. 거기에 이방인들은 단지 이방인의 뜰이라고 하는 곳에만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여자들도 성전의 중심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죄를 지어도, 불의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신분적으로만 인정이 되면 유대성전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은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배교한 이단으로 여겨 아예 회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들어온 사람은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계십니다. 예수님만이 문을 지키시는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 문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너희들이 배교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쫓아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은 가짜 청지기였습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잘 지키는 청지기라고 스스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참된 청지기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다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는 많은 청기기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올바르고 정직하며 성실한 청지기의 모습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주머니만 챙깁니다. 마치 셉나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의한 청지기가 누구인지 아십니다. 그리고 그를 내쫓으십니다. 그리고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자신의 청지기를 세우십니다. 엘리야 김을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며 모든 나라를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삼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영적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에 그동안 쫓겨난 참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드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쫓겨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쫓겨난 자들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쫓겨났는지 안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아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의 성전 문 앞에서 열쇠를 가진 자들에 의해 쫓겨났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자신이 열쇠를 가지고 계시고,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이렇게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 친히 칭찬과 위로의 말씀을 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열린 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열린 문이라고 하는 이 말씀을 알기 위해 반대로 닫혀 있는 문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여러 군데에서 문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먼저 마23:13을 보면 화 있을 진저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이 말씀에서 문을 닫았다고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닫은 천국 문입니다. 13:25에서도 문을 닫았다고 하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유대의 장로들이 닫은 천국 문을 여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14:27에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다고 합니다. 고전16:9에는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후2:12에는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말씀합니다. 4:1에는 이 일 후에는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이런 말씀에서 보면 열린 문의 공통점은 바로 복음으로 문이 열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문입니다. 복음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천국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닫으려고 했던 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복음으로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셨기 때문에 이 열린 문을 닫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한 번 열어 놓으신 문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든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문을 열어놓았다고 한다면 사탄이 닫고자 한다면 능히 닫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서 더 좋은 문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셨기 때문에 사탄은 닫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천국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서머나, 사데 교회들과 같이 어떤 특별하고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가진 능력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칭찬하시고 위대한 신앙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이 천국의 문으로 들어 가는데는 많은 능력이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그 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가진 다른 명성이나 물질이 없다고 해도 그리고 배움이 부족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끝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무엇을 우리들을 위해 하셨는지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붙잡고 있으면 됩니다. 만약 오늘날 어떤 교회에서 바른 신앙을 위해 목사와 대립이 될 때 교회를 떠나는 것 때문에 제명당하고 출교를 당해도 주님이 열어놓으신 이 천국 문으로 들어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거짓 가르침과 자신의 탐욕을 위해 목회를 하는 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천국의 문을 닫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치리를 한다고 할 때는 바른 신앙과 교리위에서 해야 합니다. 그저 감정적이고 정치적으로 성도들을 내모는 것은 어리석고 오히려 심판만 자초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두신 이유는 이렇게 바른 신앙을 가지고 불신앙적으로 사는 자들을 치리하라고 하는 것인데 역으로 자신들의 목회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징계하지 않고 앞장 세우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가지 않아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있는 교회에 매고 푸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권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권징이 때론 사람들의 탐욕과 정욕을 위해 사용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정당하게 시행되는 권징은 이 땅에서 교회가 매면 하늘에서도 매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산다면 교회가 그 사람을 출교 시킵니다. 그러면 하늘에서도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당한 권징이 아닌 사사롭고 정치적이며 목사 개인의 탐심을 위해 행하는 권징은 아무리 땅에서 맨다고 할지라도 하늘에서는 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땅에서 유대교로부터 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출교를 당하고 이단으로 정죄를 받아도 오히려 유대교는 사탄의 회였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거룩한 언약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10:32-33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이 말씀처럼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주님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상급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바로 사탄의 회였습니다. 사탄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 종교는 사탄의 종교입니다. 여기에 다른 설명이나 변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유대교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유대교를 사탄의 회라고 하시기 때문에 다른 어떤 논의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대교가 지금도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룬 구속의 길을 가로막고 부인하며 오히려 기독교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대교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하고 우리와 연결 고리가 있는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물론 주님은 유대인입니다. 하지만 유대교와 유대인은 다른 의미입니다. 유대교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탄의 회로 전락한 유대교를 그냥두시지 않겠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마24장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계1장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시고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보전하시기 위해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우리는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에 완전히 심판당하고 멸망당한 그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유대교는 우리와 상관이 없을뿐더러 하나님과 상관도 없는 단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피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유대교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을 증명하여주시기 위해 유대교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자들 가운데 몇 몇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핍박자들이 빌라델비아 성도들 앞에서 무릎을 굻고 절하게 될 것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 올 것입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이 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택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로 우뚝 설 것입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까? 빌라델비아 성도들과 이제는 저와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축복을 하여 주십니다. 큰 환난의 때에 그들에게 임하는 시험을 면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여기에 면하게 해준다고 하는 것은 시험을 받지 않게 해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온다고 해도 지켜 보호해준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유대교가 로마정부로부터 심판을 당할 때 예수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호하고 지켜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보살핌은 오늘날 자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여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항상 순종하기를 우리가 힘쓴다면 우리의 삶 속에 고난과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사탄의 시험이 온다고 해도 우리를 지켜 보호하셔 주시는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형제로 여겨주시기 때문에 늘 우리 편에 계십니다. 시편기자의 노래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위로를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3-8).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274&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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