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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라(계3:14-22)

임진남목사(김제)

by 김경호 진실 2017. 4. 1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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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라(계3:14-22)
임진남 목사(예본교회,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이제 우리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하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바울을 돕던 브리스가가 세운 교회입니다. 골로새 옆에 라오디게아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아주 부유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유한 지역에서 세워진 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됨을 잊어 버렸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자신의 교회들을 향해 책망하실 때 아주 작은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칭찬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을 받았고, 사데교회는 비록 책망을 받았지만 아주 적은 무리들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어떤 칭찬도 없습니다. 왜 이토록 라오디게아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같이 아주 작은 칭찬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먼저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이라고 하시는 것을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역시나 주님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멘으로부터 시작되는 신앙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멘에 대한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와 사람들은 그저 아멘이라고 하는 것을 외칩니다. 그 이유는 아멘이라고 크게 소리 지르는 자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멘소리가 나는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로 보입니다. 강단에서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어떤 성도가 아멘하고 반응을 하면 설교를 하는 목사는 자신이 지금 설교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아멘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에서 아멘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에 대한 축복과 저주가 임한 다는 것을 아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은 강력하고 매우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장로들을 모아놓고 너희들이 요단강을 건너가거든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언하고 그때마다 백성들에게 아멘을 외치도록 하였습니다(27). 언약적 축복과 저주가 같이 아멘하는 자들에게 인쳐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아멘을 언제 합니까?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선언될 때마다 아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의 입맛에 좋은 말을 들을 때만 아멘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교회가 아멘하는 것은 성경적인 아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저주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나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가 임한다고 할 때 아멘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멘의 결과는 축복 아니면 저주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축복 아니면 저주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렇게 자신을 아멘되시는 분으로 먼저 말씀하신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중간지대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으로부터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고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아멘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멘되시는 주님을 온전하게 믿으면 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에 아멘하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그러나 아멘되시고 충성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분이 이루신 아멘이 결국 성도들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도 주님의 것이 우리에게 전가 되었다고 여겨도 무방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멘즉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되어 진다고 하는 것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아멘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가 듣기를 좋아 하는 말씀에만 귀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간과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노래도 부르고 위로도 해줍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그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고 구원을 받아도 여전히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 본성을 인정하고 늘 우리가 죄를 사랑하는 인생인 것을 고백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위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즉,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늘 각성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징계하실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을 아멘으로 화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말씀에 신실합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회개하라고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하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이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듣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자세히 말씀하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그들이 분명 어떤 잘못된 신앙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뜨겁지도, 차지도 않으므로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합니다. 오히려 미지근하여 졌기 때문에 주님은 자신의 입에서 토하여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께서 하나의 비유를 가지고 라오디게아 교회를 설명하여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혹 사람들은 이 부분의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읽어서 뜨거운 신앙은 좋은 것이고 차가운 신앙은 주님을 배반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미지근한 것이 싫기 때문에 차가운 것, 즉 주님을 아예 배반하라고 하는 것으로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읽는 것이 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뜨겁게 헌신하고 충성하든지 아니면 아예 나를 버리고 떠나든지 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이 말씀을 성도들의 신앙에 대한 헌신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전혀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가 미지근하여 졌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지근하다고 하는 것 때문에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것을 왜 이토록 싫어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께서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사용하시는 비유를 알아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주 부유한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학이 발달하였는데 특히 안과 질환을 잘 치료하는 의술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는 지역적으로 골로새와 가까워서 그곳에서 내려오는 아주 차가운 빙하수가 라오디게아까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또한 옆에 있는 히에라 폴리스는 석회수 온천히 유명하여 뜨거운 물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차가운 물은 시원하고 생기를 주는 음료수로 사람들이 마시는 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온천물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좋은 목욕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시는 것은 둘 다 좋은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차가운 물과 뜨거운 온천물이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오면서 서로 만나 물이 미지근하여 집니다. 그런데 미지근한 물로 그만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석회석 온천물이 미지근해지면서 역겨운 냄새를 내고 먹을 수 없는 그런 물이 된 것입니다. 아무 쓸모가 없는 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지근하여 졌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의도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이 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미지근해졌다고 하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경을 통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미지근한 신앙을 이렇게 징계하시는지 아주 분명하게 성경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다 같이 레18:24-28의 말씀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이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 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나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라도 행하지 말라 너희가 전에 있던 그 땅의 주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 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가 있기 전 주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 그 이전에 있던 거민을 토하여 내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왜 그 땅이 가나안 족속을 토하여 내었습니까? 바로 그들의 가증한 일 때문입니다. 그 가증한 일이란 레위기18:1-23절에 기록된 각종 성적인 범죄 행위들입니다. 그 가증한 행위가 그 거민들을 더럽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땅도 더럽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땅의 거민을 토하여 내쳤던 것입니다. 금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미지근하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교회가 가증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레위기의 본문을 통하여 토하여 내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가증한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가증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심판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지근하다는 것은 뜨겁지 않는 헌신, 성경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복음 전도와 헌금에 헌신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행위가 무의미하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쓸모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서로 모여 예배하고 신앙생활하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이 헛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생기를 주고 생명을 주는 그런 물이 아니고, 또한 삶의 활기를 주고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그런 물도 아닌 아주 역겨운 냄새만 나는 그런 미지근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법이 미지근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신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금이었고, 자신과 교회를 더럽히는, 그래서 주님의 입에서 토하여 내칠 수밖에 없는 가증한 모습으로 교회를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교회와 성도가 부요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그 부를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고 급기야는 자신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으니 영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신앙생활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부를 주신다고 믿었고 자신들의 신앙이 좋은 신앙이라고 그렇게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어리석고 미련한 교회를 향해 말씀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물질적으로 부요한 상태이지만, 실상은 가난하고 비참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가난하고 비참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육적인 환경을 보고 영적인 상태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좀 더 삶이 좋아졌다고 해서 영적으로 좋아진 것이 아닙니다.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신앙의 잣대를 가져다대면 모든 것이 다 잘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불법을 해도 잘되고, 남에게 상해를 입혀도 잘되고, 도적질해도 잘되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잘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질적으로 복을 받은 것이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바르게 알려면 그 받은 축복이 영적으로 어떻게 우리를 복되게 이끌고 있는지를 보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축복을 받았다고 여겼지만 그것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영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가증한 일을 하는 것에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말씀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회복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여 주시는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불로 연단한 금이란 것은 그야 말로 정금을 의미합니다. 신앙에 대한 참된 믿음과 순종이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신앙의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흰옷은 성도의 거룩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또한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는 것은 바르게 보고 판단하라고 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은 지금 신앙의 열매와 거룩한 행위와 올바른 판단을 가지고 다시 교회를 이루고 세워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이 교회지 바른 신앙에 대한 아무런 것도 없습니다. 신앙 때문에 연단을 받는 것도 없었고, 거룩한 성도들의 삶이 무엇인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라오디게아 지역 사람들처럼 그렇게 음란과 쾌락에 물들어 사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바른 신앙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현대교회가 건물을 화려하게 지워놓고 그 위에 십자가만 붙여 놓으면 교회라고 여기는 것처럼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모이는 것 때문에 스스로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내치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그들에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사생아가 아닌 이상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징계를 하십니다. 징계가 없다면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들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은 회개가 단순히 후회하고 각성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라고 하는 적극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반드시 토하여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늘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눠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먹과 마시면 그 사람은 다시 살아 날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의 구원의 의미를 바르게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성도가 무엇인지? 누가 교회와 성도의 주인인지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을 자신들의 주인으로 온전히 인정하고 주님의 통치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는 영적인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약속을 보면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의 신앙이 아닌 세상과 하나가 되어 있는 교회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교회를 사랑하시고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세상 가운데 있는 타락한 교회라고 해도 여전히 우리 주님께서 그 교회를 사랑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서로 연합되었다는 것을 알고 비판도 해야겠지만 계속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행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지금부터 계속 교회들에게 믿음으로 승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계시록의 근본적인 명령이 바로 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고 싸워 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언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믿음으로 세상과 싸워 이기라고 하는 격려와 위로와 승리와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부디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이런 올바른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281&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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