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보다 탁월한 그리스도인 | |
오성환 목사(이야기가 있는 교회, 세움성경신학연구원 원장) | |
칸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있는 것 같이 사람의 마음에는 누구나 도덕율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별을 보면서 운명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단지 칸트는 아주 객관적으로 ‘밤 하늘에는 별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야기할 뿐이다. 칸트같지 않게 별 자체에 매몰되는 사람들이 있다. 별을 보면서 전갈이나 카시오파아등을 그린다.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왜 주변의 많은 별들은 무시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당연히 그런 별들은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인다든지 아니면, 어느 한 별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든지 하는 특성이 있는 별들이다. 이렇게 몇몇의 특별한 별들, 일정한 길을 따라 일정한 기간에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는 벌들, 그리고 일정한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는 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점치기도 하고,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는 안내자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별이 신(神)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하고, 때로는 이야깃거리로 쓰기도 한다. 또 별 자체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별의 크기가 어떻고, 별 빛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우주에는 몇 억개의 별이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가보지도 못하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별빛을 보면서 우주의 기원이 어떻다느니, 빛의 속도로 몇 억년을 가면 어떤 별이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도 한다. 별을 보면서 갖는 이런 다양함의 출발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자연 과학이 발달하면서 별에 대한 신비들이 풀리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별을 보고 이야기를 만든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별을 본다. 그러나 별 만을 보지 않는다. 별을 보면서 별을 만드신 이를 바라본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의 운행과 별이 갖는 신비함에 매료 될 수 있지만, 언제나 그것이 하나님의 솜씨임에 감탄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욥기38:31-33)’라고 물으신다. 밤하늘의 별들이 보여주는 신비함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시8:3)’ 본다. ‘별 만을 쳐다보는 사람들’과는 달리 시인은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이다.
별을 어떻게 보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다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만을 보는’ 사람들에게 있다. 별을 보면서 어떤 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있을 도덕율을 이야기했고, 어떤 사람은 고향에 두고 온 형제들을 생각했다. 또 어떤 이들은 별을 보면서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별을 보듯 세상을 보면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본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와 많은 생각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별의 찬란함이나 신비로움에 매몰되지 않고, 그 별을 지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임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우리의 생각이 그리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별 만을 보는 사람’들의 그럴싸한 자기들의 이야기들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별을 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별을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별을 보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본다. 그러면 별만을 보는 사람들보다 너와 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더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생기지 않을까?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385&msection=3&ssection=38
창 45:5-8, 꿈꾸는 자들의 삶 (0) | 2017.07.24 |
---|---|
"우리에겐 '경고'가 필요하다?" (0) | 2017.07.21 |
마 8:7-10. 너의 믿음대로 (0) | 2017.05.15 |
이젠 아픔을 딛고 (0) | 2017.04.05 |
문명, 그리고 우리의 믿음 (0) | 2017.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