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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앙은 설교에서 나온다

강문진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7. 12. 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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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교단 내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많이 강조한다. “개혁주의 정체성 확립”, “개혁주의 신앙회복”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이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개혁주의란 종교개혁신앙을 뜻한다. 로마가톨릭 신앙이 무지와 미신인데 반하여 이것에 저항하여 일어난 개혁신앙은 그 핵심이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그리고 ‘오직 성경’이다. 우리는 개혁신앙의 원리가 Sola Scriptura(솔라 스크립투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이것을 구현하는 길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야한다.

 

오늘날 이 원리만큼 크게 훼손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설교 가운데 과연 몇 편의 설교가 이 원리에 충실한가? 설교에 있어서는 우리가 지금 사사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해도 어느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건전한 주해에 기초한 것이 아닌 궤변에 가까운 억지논리가 설교의 이름으로 전파되고 있지는 않는가? 성경을 철학이나 세상 문헌이나 심리학 등으로 풀면 개혁신앙은 요원해진다.

 

교회가 개혁주의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개혁주의 원리에 충실한 설교가 강단에서 끊임없이 선포되어져야한다. 이 일을 위하여 설교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청교도인 윌리암 퍼킨스는 목사가 그의 주된 임무인 설교사역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으면서 다른 일들에 전념한다면 그는 철저하게 기만당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목회자에게 설교사역은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교회가 목회자에게 세상직업을 갖지 않아도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설교준비를 충실하게 할 시간을 주기 위함인 것이다.

 

개혁주의적 설교를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인터넷을 통하여 방대한 개혁주의 책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누구도 책이 없어 연구하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는 만사를 제쳐두고 이 일에 집중해야 한다. 심방이나 개업예배 등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들은 ‘충실한 설교준비’ 다음에 오는 것이다.

 

교연구가 없이 강단에 서게 되면 그 설교는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빈약할 것이 뻔하다. 설교는 아무렇게나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정치적인 연설을 강단에서 하는데 그것은 국회에서나 할 일이다. 어떤 이는 교양강좌를 강단에서 하는데 그것은 문화센터에서 할 일이다. 또 어떤 이는 성공담을 말하는데 그것은 기업강연회 같은 곳에서나 할 말이다. 신학생 시절에 에드윈 다아간의 ‘설교의 역사’를 읽으면서 “설마 그러했을까”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설교제목이 성경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개혁주의 신앙은 설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개혁주의는 구호로 외쳐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피와 땀을 흘려 강단에서 선포해야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개혁주의를 외친다고 해도 건실한 주해가 없는 빈약한 설교를 계속 하는 한 개혁주의 신앙이 교회에 뿌리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교단 내에서 개혁주의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개혁주의 신앙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에 충실한 설교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모든 설교자들이 이 일에 가장 우선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에 우리의 교회들은 개혁주의 토대 위에 굳건히 잘 세워져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강문진  ekd@kidok.com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6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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