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 네로의 황제 뒤를 이어 A. D. 132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는 명령을 내리자 유대인들은 A. D. 70년에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성전건축 자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는 황제숭배를 명령하면서 예루살렘에 주피터 신상을 만들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다시 분노하여 성전건축을 위해 모은 그 자금을 다시 로마군과 전쟁을 하는데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유대군을 이끈 사람이 바르코크바입니다. 바르코크바가 제2차 유대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바르코크바는 로마 군대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성을 탈환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바르코크바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기다려온 메시라가 아닌가? 의심하였고 당시 최고의 랍비인 아키바가 바르코크바를 메시아로 인정하자 모든 유대인들이 바르코크바를 메시아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사렛파 사람들은 이 바르코크바를 메시아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이미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파를 이단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자신의 조국을 위해 로마군대와 싸우는 나사렛파 사람들을 같은 백성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사렛파 사람들은 결국 바르코크바를 떠났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더 이상 이 일을 용납할 수 없어 모든 로마군인들을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기 위해 유대민족을 향해 군대를 보내게 됩니다. 이 로마 군대가 유대 땅에 들어가면서 90여개 이상의 모든 동네와 마을을 전부 쓸어 버렸는데, 이때 어린아이와 노인들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유대 민족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는 명칭을 사용하여 유대가 아닌 팔레스타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구약의 블레셋민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는 더 이상 유대민족과 유대인들이 사라지고 그들이 거주하였던 땅도 없어졌으며, 예루살렘도 불에 완전히 타버리고 그 모습은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을 통해 아주 귀한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하신 것입니까? 다름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을 주시는 완전한 사역을 증거하시기 위해 지상의 예루살렘 성은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완전한 하나님의 성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지상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고 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아직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지 않았지만 곧 있으면 위의 역사가의 진술처럼 그렇게 끝이 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이처럼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성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통해 이방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즉 교회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었던 이스라엘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존재도 없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새로운 나라의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대접을 가지고 나온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겠다고 하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머뭇거리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이며 그들이 모인 교회를 신부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계21장 10절 이하부터 나오는 상징적인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적으로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문자주의자들은 12,000 스다디온이라고 하는 숫자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성소의 정육면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단어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보석들과 문들과 12지파와 12사도들이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새 예루살렘 성의 구조와 재료들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새 예루살렘 성의 모양을 말씀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크고 높은 성벽이 있는데,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에는 열두 천사가 있는데, 각 성문에 한 천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성문에는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열두 개의 문이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자세히 보게 되겠지만, 예루살렘 성은 정사각형인데, 문이 동쪽에 세개, 서쪽에 세개, 남쪽에 세개, 북쪽에 세개 등 이렇게 모두 12개의 문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그 성에 모두 12개의 기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 어린 양의 12 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말씀대로 언급된 새 예루살렘 성을 우리는 어느 정도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 예루살렘 성은 실제 땅에 있었던 그런 예루살렘 성 처럼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성이 아닙니다. 지금 새 예루살렘 성은 진짜 성이 아니라 어린양의 신부 곧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성에 12개의 문이 있고, 동시에 12개의 기초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2개의 문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12개의 기초석은 12사도의 이름입니다. 즉 신구약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신앙적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계속 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에 아브라함과 모세와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뿐만 아니라 참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결국 신약교회의 성도들에게까지 동일하게 이어가게 하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분명히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중심에 서 있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의 말씀이 서로 다른 말씀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백성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신약의 백성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약은 그 빛이 희미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으로, 신약 백성들은 아주 분명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비록 지상에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지만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새 예루살렘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린양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신부에 대하여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고 그 신부를 아름답게 치장하여 주시는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신랑의 신부가 되는 교회에 대하여 사도들이 한 결 같이 증언한 말씀이 동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참된 신앙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그 말씀과 지금 12사도의 기초가 서로 연관 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은 바로 사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약의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이 놓은 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놓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리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하여 터를 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사역에 대한 가르침을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역과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사도들이 이러한 터 위에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들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셨지만 결국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이 세운 터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도 터를 놓았습니다. 이미 구약에 선포된 하나님의 터가 사도들에 의해 놓이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그림자를 보여주었지만 사도들은 실체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이 예루살렘 성이 바로 이것입니다.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의 모양과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15절 이하를 보면 천사가 측량하는 도구인 금 갈대를 가지고 성곽을 측량하고 있습니다. 네모반듯한 성을 측량합니다. 길이와 넓이와 높이를 측량하는데 그 모양이 완전 정사각형입니다. 모든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똑같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성전에 있었던 지성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만들라고 하신 지성소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똑같은 그 모양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즉 교회가 이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소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재하실 때 지성소 안에 임재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라고 하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위로와 기쁨과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사렛 이단이라고 하는 것 때문에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핍박과 죽음에 이르게 되는 순교를 당하고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자신들과 함께 하시고 있었다고 하는 이 사실이 성도들에게는 가장 위대한 복음이고 진리였습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확인해주시고 있으며, 계속해서 증거하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 사실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처음에 주님을 믿을 때 국가적으로,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에게 얼마나 손가락질을 당하고 믿었습니까?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은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편안하고 갈 수만 있으면 마음대로 가는 곳이 되어 버린 교회당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믿음에 대한 위대한 신앙의 진수를 알 수 있는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각각 12,000 스다디온으로 측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수치로 하면 정사각형 동서남북으로 2,220km가 됩니다. 사실 이 수치만으로도 엄청난 것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대략 430Km입니다. 사실 엄청난 것입니다. 새로운 예루살렘 성이 이렇게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말이 성이지 한반도 보다 2배 이상 더 큰 성입니다. 성이라고 할 수 없고 나라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수치를 문자의 의미가 아닌 상징의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예루살렘 성은 실제 성이 아니라 어린 양의 신부 곧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12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숫자이고, 1,000은 완전하고 충만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도성의 장, 광, 고가 각각 12,000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 즉 신약의 교회가 완전하고 충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피를 통해 구원하시는 백성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 나라는 어느 한 곳이 아닌 세계만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의 양들을 다 찾아 낼 것입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신다고 하는 의미가 바로 이 숫자의 의미인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들을 모두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룰 것입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곽을 144규빗 이라고 하는데(두께를 의미함) 이것도 문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것입니다. 즉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놓은 터 위에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이 받는 구원이 확실하고 분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구원이 안전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한 마디로 보석들로 장식되었습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았고, 그 성곽의 기초석도 12가지 보석으로 놓았고, 또 그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지어졌는데, 그 성의 길도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었고, 그 성문은 진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이 새 예루살렘성은 교회이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말씀하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잘못 해석하는 것은 7년 대 환난 이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성도들이 휴거를 하면 여기에 언급된 금보석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산다고 하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여 주시는 것은 옛 언약 백성들, 즉 유대인들은 심판을 당할 것이고, 예루살렘은 불타고 사라질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는 성도와 교회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곳에 들어가는 자들은 금보석으로 만들어진 곳에서 살 것이라고 하는 식으로 아주 쉽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이러한 잘못된 종말론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 이 땅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금보석으로 만들어진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의 아름다음을 묘사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세상 가운데 나타나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부터 성막과 성전에 각종 보석을 가지고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새 예루살렘성도 성 전체가 맑은 벽옥이고, 성 전체가 유리 같이 맑은 정금입니다.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입니다. 신랑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신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를 통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를 통해 신랑의 아름다움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부의 아름다움은 신랑의 영광입니다. 자신의 아내가 거지같이 옷을 입고, 냄새나고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있다면 남편인 여러분들은 좋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면 자신을 아름답게 꾸밀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양의 신부들은 어린양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받습니다. 신부가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 신부를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고, 신랑의 음성을 듣기를 기뻐하면 그 교회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수많은 보석들이 새 예루살렘 성을 꾸미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아름답고 빛을 발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회의 교부인 아타나시우스는 성부께서 동일한 중보자로 창조와 구속사역을 하셨다고 말해줍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사역을 하셨고, 구원 사역을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이 새 예루살렘 성의 아름다운 보석을 통해 예수님께서 구약의 동산을 치장하신 그 아름다운 보석을 자신의 신부인 교회에 치장하여 주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상에는 불신 이방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미래의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게 하시는 교회의 사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 인해 빛나고 있고, 빛을 발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어린양의 피로 값 주고 산 자들만 모입니다. 그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그들만 교회의 지체들이 됩니다. 이제 더 이상 새 예루살렘은 땅에 속한 유대인의 도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 된 하늘에 속한 성입니다. 선지자들은 열방들이 그들의 영광을 가지고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성의 문은 절대로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옛 성 예루살렘은 안식일에 반드시 닫았습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60:11에서 더 이상 예루살렘 성문이 닫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은 이제 이 성은 세상 모든 곳에 임한 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유대 땅이 아닌 이방세계에 하나님의 성 즉 교회가 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복음 선포가 이방지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이 그곳에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도 요한이 보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성이 무엇인지 아주 정확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이며 교회입니다.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를 신랑이신 아들이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교회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비록 지상의 교회는 여전히 죄와 싸웁니다. 하지만 어린양의 피로 그 죄는 물러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에서 늘 선포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어린양의 피와 그의 사역입니다. 아직은 완전히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교회의 영광이 지상의 교회를 통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신부의 아름다움이 충만할 것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신랑의 피를 통해 거룩해져 갑니다. 이 진리를 알고 아들의 음성을 듣기를 즐겨하며 순종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 <현대 칭의론 논쟁>이 있다.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620&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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