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없이 교회 없다!
“이제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동참했으므로, 그리스도의 권위로 세워진 교회의 질서는 신성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 없이 교회는 존속할 수 없다.”
위의 문장은 1559년에 칼뱅에 의해 초안되고 1571년에 라로쉘 총회를 통해 공표된 프랑스 위그노들의 신앙고백서인 프랑스 신앙고백 제25조 “교회에 필요한 목사”에 관한 고백의 초반 문맥이다. 프랑스 신앙고백은 제28조에서 교황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를 천명하고 있으면서도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 존속하는 모든 제도와 전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 가톨릭교회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는 성경적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아일랜드의 로마 가톨릭교회와 잉글랜드의 성공회, 그리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주의가 함께 통일된 신앙을 논의하는 과정을 통해, 전적으로 기존의 모든 체계와 교리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항상 정립하여 잊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 바로 개혁된 신앙의 중심원리에 대한 이해다. 그 원리를 숙지하지 못하는 가운데서의 종교개혁은 무질서와 혼란만을 초래하는 분파주의 결론에 이를 뿐이다.
실제로 재세례파를 비롯한 열광주의적 종교개혁진영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으로 기존의 모든 제도와 전통을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정의하고 수립하는 종교적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진영 안에서 그러한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교회개혁으로서의 종교개혁을 바르게 이해하는 핵심적인 바탕을 이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신교회의 평판이 그야말로 땅에 떨어져 버린 가운데서, 우후죽순으로 일어나고 있는 교회개혁의 목소리들이 상당수 개혁된 신앙의 골격을 전혀 숙지하지 못한 가운데 오히려 무질서의 배지를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두절미하고, 개혁된 신앙의 중요한 골격중 하나인 “오직 성경”의 원리는 개혁된 교회의 전 체계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원리다. 오직 성경에 충실한 교회정치(교회가 서고 유지되는 원리)가 있을 때에 교회는 눈에 드러나며, 오직 성경에 충실하여 성례가 시행될 때에 은혜의 역사 또한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가 눈에 드러나는 중요한 표지(sign)인 말씀의 선포야말로 오직 성경에 충실할 때에 비로소 열린 하늘문에 이르는 교회의 길이 드러나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진리(성경의 진리)에 따른 바른 교리의 선포를 위한 직분인 ‘목사’는 신성한 직분으로, 가히 열쇠권을 지닌 절대적 직분이다.
하지만 목사의 열쇠권은 현실에서 그들의 권한이나 권좌의 확실한 명분이 된다기보다는 지극히 두렵고 떨리는 것, 자신의 안위와 행복(심지어 가정의 행복까지도 포함하는)을 모두 포기하는 멍에요 짐이다. 그러므로 참된 목사는 죽을 때에 비로소 그 짐을 벗고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된다. 칼뱅을 비롯한 이 땅의 참된 선생들이 죽을 때까지 진 짐이 바로 그 짐인 것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참된 목사들에게 있어서 그 짐은 결코 무거운 짐이 아니라는 사실,마 1:30절의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말씀과 같이 그 짐을 참된 목사는 기꺼이 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처럼 멍에요 짐인 사역 가운데 평생 닳아버리는 사역자인 목사 없이 교회는 설 수 없고, 존속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자의 사랑과 헌신은 그처럼 가시적으로(그리스도의 권위로 세워진 교회의 질서로) 명백히 나타내지는 것이지, 결코 개인적인 성경읽기 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진정 복음을 취하는 성도들은, 그것에 홀로 족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회에 필요한 말씀봉사자인 목사를 바르게 세우고 존중하는 일에 헌신하게 마련인 것이다.
비록 그런 성도들의 헌신된 마음을 제 뱃속에만 채우는 삯꾼이요 도적놈인 거짓 교사들이 천지에 득시글거릴지라도, 여전히 성도들은 참된 목사를 세우고 존중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안타깝고 분노할 일은, 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목사를 교육하는 신학교야말로 삯꾼과 도적놈들이 우글거린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신학교에서부터 참된 신학이 천시되며, 장로교단의 신학교에서조차 장로교신학의 정수인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싫어하며 박대한다. 거의 대부분의 장로교단에서 목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교리들인 것이다.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을 때에 신동품인 육신으로 죽음을 맞고 싶은 목사는 절대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에는 관심을 두지 말라!
그러나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을 때에 다 닳아버린 육신으로 비로소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은 목사라면, 기꺼이 절대다수의 목사들이(심지어 신자들도) 싫어하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멍에와 짐을 지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29-30) 장대선 목사(가마산 교회) | |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614&msection=3&ssection=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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