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개혁사상 부흥운동 인사이트 (insight) 왜 우리에게는 개혁사상이 필요한가 -
①모더니즘의 태동과 결말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하던 낙관적 세계관, 세계대전 거치며 꺼져 … 출발점 같았던 종교개혁은 여전히 유효
글 쓰는 순서
❶ 모더니즘의 태동과 결말
② 종교개혁, 모더니즘에 답하다
③ 개혁사상과 부흥운동
▲ 라영환 교수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개혁사상부흥위원회 전문위원 |
그동안 종교개혁의 의미를 16세기 혹은 17세기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시도들은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철학적 혹은 신학적인 배경들을 이해하고, 또 그것이 당시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16~17세기에 일어났었던 종교개혁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대답을 주기에는 충분치 못하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50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연 500년 전의 가치가 오늘날에도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혁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종교개혁의 가치가 21세기에도 유효하다고 증명하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종교개혁과 모더니즘의 상관관계를 다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더니즘과 종교개혁 둘 다 ‘중세’라고 하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관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모더니즘은 인간의 자율성에서, 종교개혁가들은 인간의 전적인 부패성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하였다. 즉, 중세의 세계관을 대체하려는 출발점은 같았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운동 이후 서구는 모더니즘이라는 세계관이 중세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인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400여 년이 지난 지금 모더니즘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사상적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을 대체하는 하나의 사상인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논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대체하는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모더니즘이 붕괴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지난 400여 년의 역사는 결국 중세의 가치관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로서 모더니즘은 그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종교개혁가들은 초기 모더니즘을 형성했던 주체들과 같이 중세의 세계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당시 르네상스운동은 이탈리아와 북부유럽을 중심으로 각각 진행되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유럽은 그리스-로마의 문화에서 중세를 대체하는 하나의 사상적인 토대를 발견하려고 했다. 이에 반하여 북부유럽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운동은 중세의 종교적인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중심이었다.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모더니즘의 토대를 형성했던 르네상스-계몽주의 운동의 주체들과는 달리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칼빈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모더니즘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낙관론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해는 오늘날 모더니즘 혹은 그것의 병리적인 현상인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보이는 인간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제시했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종교개혁과 모더니즘에 대한 이러한 이해 속에서 개혁사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중세를 대체하기 위한 시도로 제기되었던 두 개의 커다란 지성사적 흐름 가운데 종교개혁이 모더니즘보다 더 유효하였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본 고가 의도하는 목적이다.
모더니즘의 태동과 결말
모더니즘의 토대가 되는 르네상스-계몽주의 운동은 중세적 사고와는 다른 근본적인 사상 변화를 가져왔다. 르네상스는 인간을 실재의 중심으로 고양시켰다. 중세까지 인간은 자연 혹은 우주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된 것에 반하여, 이때부터 모든 것들은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계몽주의는 인간의 위치를 한층 격상시켜서 인간을 역사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중세 사람들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식의 과정에 있어서 수동적이라고 여겼다. 이성은 안셀름의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에서 보는 것과 같이 계시된 진리가 옳은 것을 입증하고, 기독교 신앙이 제시하는 세계와 현실을 조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인식에 있어서 이성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인간의 이성이 진리의 결정에 있어서 최고의 결정자가 된다고 봤다. 이 시기에 와서 자율적인 인간이 진리와 행동의 결정자가 된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인간이 역사와 인간을 이해하는 거울이 되지 못하였다. 인간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지성사 흐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기를 특징하는 라틴어가 있는데, 그것은 ‘ad fontes’이다. 이 말은 ‘뿌리로 돌아가자’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과거 인간의 아름다움이 추구되었던 그리스-로마시대로 돌아가서 잃었던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 특별히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중세 가톨릭의 신학이 인간성 파괴를 가져왔다고 보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술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는 과거 그리스 문화를 통해서 인간의 재발견을 추구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만물이 형상과 질료의 혼합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속에서 중세를 지배하던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적인 토대를 발견하였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미래를 기다리는 르네상스의 인간상은 18세기 계몽주의를 통해 강화되었다.
19세기의 가장 커다란 시대적 특징은 진보에 대한 신념이었다. 진보에 대한 신념은 정치, 경제, 과학, 학문, 종교, 사회와 문화 그리고 예술과 같은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낙관론적인 이해는 과학·기술의 발달, 다윈의 진화론과 같은 것들로 인하여 강화되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역사는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과학의 발달과 산업혁명이 가져온 엄청난 진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초월적 어떤 세계가 아닌 이 역사 속에 인류의 도덕적, 물질적인 진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 왜 하나님의 초월성을 포기하고 내재성을 강조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리츨은 신학에 있어서 형이상학을 포기하고 가능한 한 윤리학과 밀접히 연관시키려 하였다. 그 이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르낙, 라우센부시 등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되는데 이들은 인간의 도덕적 진보에 대한 신념을 기초로 ‘윤리적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진보에 대한 신념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무참히 깨져 버렸다.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총성은 르네상스-계몽주의로 시작된 지적 사조의 몰락을 알리는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19세기를 지배하던 역사에 대한 낙관론적인 이해의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뒤를 잇는 시대정신으로 비관주의의 등장을 가져왔다. 더 이상 르네상스-계몽주의 이후 발전되어 왔던 낙관론적인 세계관, 즉 인간의 자율성과 인간이 스스로 이 세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Les De-moiselles d’Avignon)>은 인본주의적 희망 위에 세워진 르네상스적 예술과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프란시스 쉐퍼는 이 그림이 인간성의 파편화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쉐퍼의 평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20세기 미술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인간성의 파편화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마르셀 뒤샹 역시 르네상스-계몽주의적 이상이었던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희망찬 미래를 기다리는 인간상은 허구임을 깨닫고 인간성의 파편화를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파편화에 대한 묘사는 모더니즘의 이념에 기초한 자신의 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희망찬 미래를 기다리던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신념이 무너져 버렸음을 의미한다. 자연법과 올바른 이성에 대한 굳은 신념은 세계대전과, 인간이 만들어 놓은 두 가지 사회체제였던 나치 독일과 스탈린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잔혹함으로 인해 20세기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을 상실했다. 다미엔 허스트, 잭슨 폴록, 마크로스코, 론 뮤엑, 윔 델보이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듯이 20세기 예술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더니즘의 이상이 얼마나 허구였는가를 보여준다.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890
자신에 차있던 모더니즘은 20세기 문턱 넘지 못했다 (0) | 2018.05.01 |
---|---|
기독교의 공헌과 성장, 그리고 쇠퇴에 대하여 (0) | 2018.04.26 |
야소교(예수교) 이야기 (0) | 2018.03.13 |
루터 교수 (2) (0) | 2018.01.17 |
종교개혁을 통한 교회의 분리와 연합 (0) | 2018.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