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나라가 쇠망의 기운으로 가득차 숨을 몰아쉬며 임종에 가까운 사람과 같던 조선의 민초들은 새로운 신앙에 소망을 두게 된다. 언더우드 선교사와 홍삼장사 서상륜은 장로교회를, 아펜젤러는 감리교회를, 카우만과 양반 출신 김상준은 성결교회를, 메리렘지는 순복음교회를 세웠다.
조선 전역에 전파된 기독교는 구한말의 조선사회를 개혁하였다. 한글 성경을 일반대중에게 배포하여 수백 년 동안 천대 받아온 한글의 위상을 고양시켰고 문맹을 깨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신분을 타파하고 미신을 청산하였으며 농촌 계몽과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기독교는 최초의 결핵 요양원을 해주에 세웠으며 버림받은 수만명의 나병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요양원을 세웠다. 부산 상애원과 대구 애락원 그리고 여수애양원이 바로 나환자들의 요양원이었다.
미국 의료선교사로 워싱턴 의과대학을 졸업한 로버트 윌슨은 1905년부터 43년간을 헌신하며 애향원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보며 섬기고 있었다. 또 스코틀랜드 글래스코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제임스 노블 메캔지도 일제에 의해 추방되기까지 나병환자들을 위해 38년간을 사역했다. 광혜원 의사 호레이스 알랜 제중원의사로 한국에서 최초로 사망한 선교사 존혜론 세브란스 병원장 올리버 에비슨 민중 치료소를 애오개에 세운 윌리엄 스크랜튼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를 키워낸 로제타 셔우드홀 간호학교와 간호사협회를 시작한 엘리자베스 쉐핑 나환자의 친구 포사이드 선교사 등 구한말 이 민족을 위해 일한 이들의 공적은 글로는 평가하기 힘들만큼 너무도 대단한 사역이었다.
개화기 기독교는 민족기독교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독립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19년 3·1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16명의 인사가 기독교인이었고 일제 36년 민족 지사를 탄압한 105인사건 해서교육총회사건 의성동우회사건 등은 그 주요 인사들이 목사 장로 집사들이었다. 1909년 통계 로 전국 1500개 학교 중 950개가 기독교계 학교였다.
기독교는 반상의 차별을 거부하였고 평등의 가치를 고취했다. 서구의 신학문을 가르쳐 춘원 이광수는 청춘지에서 암흑하던 조선에 신문명을 전하여 준 최초의 은인이며 최대의 은인이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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