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대제사장(히7:22-28) | |||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과 연관시켜 많은 것을 생각하고 해결하면서 서로서로 이해하고 살아갑니다. 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문제,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 또는 이웃과의 문제들이 생겨날 때 우리는 그 문제들이 나로부터 야기된 것이 아닌 상대방으로 인해 문제가 일어나는 것으로 늘 말합니다. 저 역시도 집안에서 아내와 의견차이가 생겨 언성이 높아지면 나를 가만히 놔두면 이렇게 시끄럽지 않을 것을 당신이 말하여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외부적인 영향 때문에 일어난다고 변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문제들이 일어날 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치료를 위한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단지 외적인 것에 집착하고 맙니다. 언제든지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같은 일로 서로 갈등하고 또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외모와 생활방식, 또는 우리의 삶의 질을 높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감정, 그리고 성품에 변화를 위해서는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있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이런 것들이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한해 두해가 가고 나이가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잘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알면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을 통해 하려고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이 말씀은 율법을 통해 세워진 대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워진 대제사장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혈통을 통해 세워진 대제사장은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여 주는 인물이 아닙니다. 자신을 힘입어 나간다고 하는 것은 그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은 율법을 통해 세워졌으므로 권위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지는 못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7장에 담겨 있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시110:4절의 말씀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변하지 않는 일을 하시기 위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라고 하신 이 말씀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위대한 복음의 힘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속죄의 제사를 드릴 수 있지만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을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제사장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죄인들이고, 그들은 결국 죽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죽음 때문에 계속 제사장들이 일어나고 대제사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모든 자들을 다 온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이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계속 중보의 사역을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대제사장은 항상 살아 있지 못합니다. 죽음 가운데 처하고 그들이 죽으면 새로운 대제사장이 세워 집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외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세상의 근본을 새롭게 하시며, 인간의 내면과 질적 변화를 만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든 일을 다 다스리시고 통치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분께서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무관심하시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주신 모든 영광의 복은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 주신 구원의 복은 천사도 흠모하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도록 중재를 하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로 설 수 있도록 이끄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급기야는 자신들의 동족끼리 서로 미워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오히려 이방민족인 로마제국의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일이 발생해도 막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대제사장들이 먼저 로마제국의 총독들과 타협하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차지하는 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이 성경의 말씀을 쓰고 있을 당시에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무리가 완전히 타락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대제사장의 중재를 힘입고 나가는 자들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오늘날 현대교회가 아주 심각한 타락과 부패의 모습 가운데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 특히 목사들의 타락은 이제 끝도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적타락과 윤리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그들이 강단에서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결국 성경과 상관없는 부패한 인간의 소리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강단의 타락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예배를 드리는 현장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읽어지고 그 성경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가르치고 선포하면 성도들은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변화를 나타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강단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목사 개인의 이야기와 자신이 읽고 듣고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설교라고 하면서 성도들에게 아멘을 강요하는 이러한 배교의 신앙을 가지고 어떻게 성도들이 은혜를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부 대형교회목사들은 이미 정치 세력화되어 세상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유명세를 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목사들이라고 하는 것을 알면 그들이 강단에서 말하는 것들은 모두 위선이며 탐욕에 사로잡힌 늑대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와 정치는 별개라고 생각하고 강단에서는 거룩한 척 하면서 정치를 위해서는 거짓말과 위선과 상대방을 정죄하는 그런 세상적악을 다 행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원정도박을 하고 성적음란을 다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에만 계신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면서 목회를 하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권위만 내세우면서 목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협박을 서슴없이 합니다. 마치 이러한 모습이 과거 이스라엘시대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들이고, 자신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백성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종교엘리트 주의에 빠진 세력들이 바로 제사장 무리들이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가장 종교적인 세력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율법을 가장 잘 가르치는 자들인 것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실 때 가장 먼저 종교적인 세력들에게 향해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종교적 특권의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리고 왕들이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 되게 백성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앙의 길을 가게 할 때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 아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들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거짓되게 사용할 때 이스라엘 민족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중세시대와 현 시대에도 교회지도자들의 타락은 결국 교회전체 성도들의 타락과 연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그 시대 속에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지금 증거하려고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구약의 이스라엘 제사장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세워진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계속 말씀하는 요점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것은 다름 아닌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상에 있는 대제사장은 흠이 있는 인간에 불과 합니다. 그리고 연약하고 죄 가운데 여전히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한 모형들이고 그림자들 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대제사장의 지위를 수임 받은 것입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누구를 위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을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셨습니다. 결국 이 맹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을 보증하는 수표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이란 바로 아들의 피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이 이제는 아들께서 단 번에 자신을 드려 이루신 구원사역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주 명백하고 분명하다고 하는 것을 보증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증을 선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그 보증의 효력은 상실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확실하고 의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 당시 그리스도인들과 오늘날까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자들이 바로 예수를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그 당시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이 되고, 끝까지 자신들이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고백하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이제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이방세계까지 증거되고 모든 이방 나라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믿어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중심에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교회가 세상 곳곳에 세워지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지금도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모든 우주 만물의 왕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말씀하실 때 요한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들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아들을 구원의 보증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 아들을 아버지께서 보시고 항상 아들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대 우리의 행위를 보고 판단한다면 세상 가운데 구원 받을 인간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며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보시면서 구원의 대한 언약을 확증하고 확증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는 이 말씀은 우리도 살 것이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는 보증인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이런 구원의 확실한 보증을 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의 불 확신 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 있었던 제사장들은 불완전한 중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 가운데 있었고, 또한 부정하고 거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해 사역을 할 때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단번에 자기를 드려서 모든 속죄제사의 완성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완전한 죄 사함을 받음과 동시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중보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오직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타락하자 생겨난 일이 바로 헛된 중보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교황이 중보자라고 하는 가르침은 아주 사악한 것이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또한 중보자일 수 없습니다. 다른 어떤 거룩한 성인들도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선한 공로마저도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 은혜를 받는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들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마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대적하시는 분이기에 아들을 통해서 구원을 주신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모든 인간은 원수이지만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주신 그 큰 사랑을 가지신 분이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 온전한 구원을 이루시고 그 구원의 확신을 위해 아들이 살아 계신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유대교가 가지고 있는 대제사장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항상, 그리고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확신도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삶의 문제에도 도움을 주신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확신과 보장을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누리고 있고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모든 삶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충분히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까 의심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연약한 우리들을 아시고 자신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세상은 인간의 공로와 경험과 성취, 그리고 많은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지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직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우리는 완전한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열매들을 맺고 살아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분이 계신다고 하는 것을 확신하고 그 분께 모든 것을 아뢸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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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853&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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