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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장군

목회

by 김경호 진실 2018. 6. 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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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조 정축년에 무과에 오른 정발(鄭發,1553~1592)은 필자에게 늘 생각하며 도전을 주는 충신으로 남아있다.

그는 선조 12년에 무과에 급제해 해남현감, 거제현령 등을 지내다가 임진왜란 때는 절충장군 경상좌도 부산진 수군첨절제사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고향은 조선 경기도 연천군 마전면 광동리 노븐골인데 자는 자고(子固)였고 호는 백운(白雲)이었는데 그의 별명이 이채롭다. 그의 별칭이 흑의장군(黑衣將軍)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별칭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가 임진왜란 때 왜군의 총에 맞고 포로로 잡혔다가 살해되었는데 전쟁 중의 일화가 유명하다.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할 때 “충성과 효도를 둘 다 겸할 수는 없으니 지금 이 아들은 나라를 위해 급히 가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염려 마십시오”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가거라, 네가 충신이 되려는데 어찌 마음이 흔들리겠느냐?” 답했다는 것이다.

그 길로 부산으로 급히 내려가 전선에 투입이 되었을 때 그의 활에 수많은 적군들이 죽어 그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되자 적군들은 흑의장군에게는 가까이 가지 말라며 겁에 질려 경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화살이 소진이 되어 위기의 상황이 되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도망을 권유하였으나 “남아에겐 죽음이 있을 뿐이다. 감히 다시 도망하라는 말을 꺼내는 자가 있으면 즉시 목을 베겠다는 명령을 하달하라. 나는 이 성의 혼이 되겠으니 가고 싶은 사람은 가라”며 거부한 후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징이 있었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해서 흑의장군이라고 불리운 것이다. 우리는 흑의장군을 통해서 강하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임전무퇴(臨戰無退)이다.


성경에도 흑의장군과 같은 용사이자 리더가 있다. 느헤미야이다. 그는 검은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옷을 벗지 않았다.(느 4:23) 예루살렘 성벽 재건공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산발랏과 도비야를 비롯한 원수들이 끈질기게 방해를 하였다. 그 때 느헤미야의 크리스챤 리더십은 빛이 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52일 만에 공사가 완료되어 성벽봉헌식(느 12:27)까지 마치게 된 역사를 보게 된다. 상상을 초월한 악조건 가운데서 공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보여준 특별한 모습이 있었다. 그는 옷을 벗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를 따르는 병사들 또한 리더를 따라 옷을 벗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반납하고 파수하였으며 낮에는 땀 흘리며 한 손에는 연장을, 다른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힘들게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땀에 젖은 옷을 벗지 않았다. 냄새가 나도 벗지 않았다. 성벽이 완벽하게 재건되는 그 날까지 52일 동안 참고 또 참아가면서 원수들을 경계하며 임전무퇴의 정신을 가지고 전투적으로 성벽 재건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의 그의 옷은 어땠을까? 원래 검은 재료인 옷이 아니었지만 느헤미야의 옷을 찌든 때로 검게 되었을 것이다. 진정한 흑의장군이 아니었을까?

이 시대가 매우 혼탁하다. 그리고 영적전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진정한 야전사령관 같은 장수가 없다. 비겁하다. 유약하다. 심지어 설교에 제약을 받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한다. 바른 교훈과 권면이 사라졌다. 대신 야합이 대접을 받는다. 서릿발처럼 날카로움이나 매서움이 없다. 어떤 목사가 어느 지역에서 7계명을 설교하였더니 예배 후에 벌떼 같이 성도들이 일어나 항의하더란다. 지역 정서를 전혀 모르고 그런 설교를 했다고.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행함도 강조하지 못한다. 함부로 천국과 지옥설교를 할 수 없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위기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 위기의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임전무퇴, 이 정신이 시대적 영적전쟁에 임하고 있는 우리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자세가 되길 바란다. 느헤미야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대적들을 경계를 하면서 성벽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완공하였듯이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양들을 지키며 교회를 바로 지켜야 할 때가 바로 이 때라고 할 수 있다.

무너져도 너무 무너졌다. 칼빈주의의 정체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장로교회로서의 정체성도 무너졌다. 다시 한 번 교단과 교회들을 돌아보자 그리고 이 시대의 흑의장군이 되어보자. 느헤미야처럼, 무엇이 두려운가!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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