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긴 믿음 (히11:7) | |||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신 이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노아는 믿음의 대상이 무엇인지? 보지 않은 것을 또한 믿는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노아에 대한 이야기는 창6장에 나옵니다. 노아가 살았던 당시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없고 자신들의 육욕을 쫓아 사는 사람들만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극악한 타락으로 인간과 가축과 새들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심판하시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여 그와 그의 가족만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사람들이 알 수도 없고 한 번도 보지도 못한 것을 노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노아에게 아주 큰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길이는 대략 140m, 넓이는 25m, 15m 정도의 방주입니다. 그런데 이 방주를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지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시간을 보면 120년 전에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보면서 노아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노아가 정말 살았는지? 아니면 노아의 홍수는 고대근동에서도 나타나는 비슷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단지 설화정도였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합리적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노아의 방주를 찾는 자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 흔적이라도 찾으면 무엇인가 고고학적으로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신앙이란 흔적을 가지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짓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다 심판하시기 위해 노아에게 방주를 120년 전부터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노아가 하는 행위를 보면서 사람들은 노아를 조롱하였습니다. 멍청하고 정신이 없는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자라고 손가락 짓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분명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비를 내리셔서 세상을 다 심판하신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어떤 증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면서도 방주를 짓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구원의 방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또한 구원을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입술과 삶을 통해 이 구원의 증거를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노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아를 정신이상자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구원의 방주임을 증거하고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증거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임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노아시대 때와 같이 사람들은 노아가 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린다고 증거해도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심판주로 오시는 날은 노아시대에 갑자기 비가 내려 홍수를 맞이하는 그런 날과 같습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그날처럼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분명 우리를 조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그 메시지를 들으면 우리보고 너나 잘 믿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의 날은 갑자기 임합니다. 노아는 자신이 믿은 그 믿음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였습니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은 사람입니다. 우리 또한 노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은 과거 그 시대 사람들이 보이지 않은 것을 믿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일어난 일이었고 사실이었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증거해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를 읽고 있는 당시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들은 더더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을 당연히 믿어야 합니다. 노아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당대에 의인이었다고 하는 것은 노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노아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창6:8절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오직 노아뿐이었습니다.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수 있는 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 안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고 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 것은 완전하지 못하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완전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 없습니다. 무엇인가 불완전하고 흠이 있기 때문에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노아가 완전하였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내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이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믿음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이었습니다. 노아는 믿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들에 대한 순종은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가족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정신없는 짓을 한다고 판단하였을 것입니다. 100년 이상 방주를 지으면서 가족들은 노아의 행동에 얼마나 많은 격려와 함께 방주를 짓는 일에 도움을 주었겠습니까? 자신의 아비 때문에 자신들도 어리석은 가족이라고 하는 비난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고 그의 가족들에게까지 그 은혜가 내려진 것입니다. 노아가 가진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자신의 행위로 자신의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증거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여 자신과 가족을 구원받았습니다. 사실 노아는 아주 놀라운 믿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그전에 그리고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하나님께서 명령하므로 순종하고 방주를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이란 단 한 번도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행동하는 일에 주저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노아는 용기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고 하는 그 믿음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그 말씀에 순종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이십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스스로 계신다고 하는 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태도는 단지 겸손뿐입니다.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모든 피조물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죄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죄의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죄에서 구원을 받으면, 즉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믿으면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바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믿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증거가 바로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을 확증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노아보다 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그리고 경험하지도 못한 것을 예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지만 우리는 이미 세상 가운데, 세상의 모든 역사가운데 진행되었던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전해 듣고 또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통해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노아보다 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깨닫고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분명하게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노아가 보여주는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는 것처럼 믿었습니다. 없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있기 때문에 믿었습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야고보 사도가 증거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살아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 시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그렇게 책망하시고 저주하셨는지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말했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모세의 가르침도 바르게 믿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단에서 전하고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탐욕에 사로잡혀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인간의 전통이 마치 신앙인줄 알고 남들이 살아가는 그대로 자신들도 살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게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노아처럼 자신이 믿는 그 믿음을 삶속에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믿음은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고 우리 옛사람의 본성을 거부하면서 날마다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음과 행위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마저도 믿음과 행위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결국 목사들도 강단에서 믿음과 행위를 서로 구분하여 가르칩니다.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과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행위로 구원 받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성경은 바울과 야고보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순되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순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노아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믿음이란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있기 때문에 믿고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칼빈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주는 믿음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샘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믿음은 늘 순종을 수반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경외한다고 하는 이 표현은 단지 심적으로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경외한다고 하는 이 말씀을 연구하였습니다.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세세하게 유의하여 말씀에 순종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단 하나라도 버리지 않고 전부다 순종한 것입니다. 분명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노아를 조소하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 시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좌절하지 않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그 날까지 계속 인내하면서 방주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아가 수 없이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최근에 베트남에 일주일에 10,000mm가 넘는 비가 내려 댐이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사람들은 마치 홍수로 세상이 심판당할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려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렇듯 노아는 자신이 방주를 짓는 기간에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심판을 할 것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실 때 까지 노아는 인내하면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사람들은 노아가 외친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잠시 두려워했겠지만 비가 그치면 다시 노아를 조롱하지 않았을까요? 그럴 때마다 노아는 좌절하고 근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아주 세밀하게 믿고 순종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이유를 다시 한 번 묻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아가 이것을 믿지 않았다면 노아는 방주를 지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을 믿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불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임하는 것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날수가 짧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심판의 날이 남아 있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 한 시점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 날 천군천사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11장에서 믿음의 선진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육체로 계시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 왕으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노아가 살았던 시대에 노아는 분명 미치광이 노아였을 것입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짓고 바닷가가 아닌 높은 지대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세상은 노아를 정죄하였습니다. 정신 빠진 미친놈이라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이단자들이라고 정죄당하고 미친개들이라고 유대인들로부터 정죄당하는 것을 노아를 통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결국 노아는 자신의 믿음으로 세상을 정죄하였다고 말씀하여 줍니다. 세상이 물로 심판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영원한 심판을 당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유대인들로부터 정죄를 당합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려 죽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아 죽은 자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과 유대인들이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노아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해 줍니다. 노아가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노아의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의의 상속자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당대 의인이었습니다. 노아의 행위에 선한 모습들이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로 의를 상속받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의를 상속받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의가 노아에게 상속되었습니다. 결국 노아는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의를 상속받습니다. 믿음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노아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하시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계속 방주를 짓고 있었다고 하는 것을 교훈 삼아야 합니다. 물론 오늘의 말씀은 믿음으로 의를 상속받고 구원 받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여 줍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늘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지만 아들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다고 하는 이 진리의 메시지를 담대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다 같이 목사가 아니지만, 다 같이 교사가 아니지만, 또 다 같은 직분의 은사를 가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신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 때 세상은 오히려 두려워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담대하게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성도들이 되지 않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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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2997&msection=2&ssectio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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