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산출한 유산 가운데에는 ‘가정예배모범’(the Directory for Family Worship, 1647)이 있는데, 정작 총회가 열린 잉글랜드에서는 크롬웰(Oliver Cromwell, 1599-1658)이 회중주의를 지지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모든 유산들이 폐기됨과 함께 사장되어 버렸고 스코틀랜드에서만 정식으로 채택되었기에 흔히 ‘스코틀랜드 가정예배모범’으로 불린다.
가정예배모범은 3항에서 “거룩한 성경을 해석하는 책임과 임무는 목회 사역의 일부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의 교회에 의해 정식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서 그 자리를 뺏을 수 없는 것처럼, 가족 중에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가족들에게 성경이 늘 읽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특별히 “거룩한 성경을 해석하는 책임과 임무는 목회 사역의 일부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의 교회에 의해 정식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서 그 자리를 뺏을 수 없는 것”으로 말하고 있어서, 성경을 해석하는 책임과 임무를 지닌 목회자의 직무가 얼마나 엄중하고 신중하게 세워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도 성경을 그처럼 엄중하고 신중하게 읽도록 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거룩한 성경을 해석하는 책임과 임무”를 지닌 목사의 직분은 엄중하고 신중하게 세워져야만 하기에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정치모범’(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 Government, 1645)은 목사의 시험과 선발에 관한 규정(장대선,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스터디』, (서울: 고백과 문답, 2018), 105-6 참조)을 9항에 걸쳐 상세히 정의하고 있다. 이같은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비롯한 장로교회의 목회직에 관한 엄중하고도 신중한 규정은 일반 고위직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니, 특히 학문의 영역에서 더욱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학문의 융성은 장로교도들의 엄중하고 신중한 태도에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결과로 된 것인데, 그러한 신중함은 이미 대륙에서도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그런데 유럽대륙과 영국에서의 학문적 신중함과 엄중함은 임직하는 자나 학위를 부여받는 자들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것을 부여하는 자들에게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바로 그러한 엄격함 가운데서 유럽과 영국의 학문이 크게 융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례로 상당히 제한적으로만 알려진 신학자인 김영규 교수의 이력을 보면 “독일 괴팅엔대학에서 파피루스, 고대근동학, 신약학을 연구하고 신약학 분야에서 박사학위 과정, 조직신학 분야에서 지도교수에 의해 학위논문 제목을 받고 박사학위 과정 및 최종논문 제출, 평가서(1993.7.9.)를 받은 후 학장에 의해서 선정되어야 할 제2평점자 부재 상태에서 1년 이상을 경과, 지도교수의 쪽지내용에 따라 합법적 학위논문 출판.”이라는 독특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즉 시일이 경과하도록 평점자로 나서는 교수가 없을 경우에는 합법적으로 학위가 인정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평점자로 나서는 교수가 없었느냐는 점이다.
알려진 바로는 그 때에 평점자가 없었던 이유는 “파피루스, 고대근동학, 신약학을 연구” 한 것을 바탕으로 신약학 분야 박사학위의 논문을 작성한 경우가 거의 없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P-46과 같은 파피루스 사본에 대해 다룰만한 학자가 없었던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교수나 학위자라 할지라도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 그런 가운데서 새롭게 확장될 수 있는 학문 영역의 풍토가 이미 오래 전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 있는 유럽문화의 깊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동일한 경우가 한국에서 발생했다고 한다면, 과연 자신이 모르는 영역에 대해 인정하고 평점자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교수나 학위자가 과연 있었을까? 어떻게 해서든 학위를 주거나, 대충 심사하여 평점을 주고 말면 족한 것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그처럼 나서는 평점자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학위(신학) 시스템은 그 자체를 학위로 인정해 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유럽사회와 영국의 학문적 융성과 패권의 이면에는 학문적 엄중함과 신중함이 상당한 배경으로 드리워져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러한 풍토가 또한 목사를 세우는데 있어서의 엄중함과 신중함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사실의 정반대 위치에 한국 신학과 학문, 무엇보다 한국 개신교회들의 경망(輕妄)함이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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