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1편1-6 행복한 자

by 김경호 진실 2019. 2. 18. 09:34

본문

1. 옛날 사람들은 잘 먹는 것이 행복이었다. 농사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늘에 의존해야 하는 시절에는 농사는 곧 제의적인 삶의 결과일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농사를 시작할 때 제사를 지내고, 추수 후에 제사를 지낸다. 어부들 역시 풍어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바다라는 또 다른 환경과 마주하기 때문에 어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우상들이 있다. 현대에도 어떤 회사에서는 정초에 제사를 지낸다. 이유야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장사가 잘되어야 회사가 성장하고, 그렇게 해야 회사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든, 고기를 잡던 아니면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를 자신들의 을 의지해서 이기려 한다. 사람들이 제의적인 삶을 살려는 이유 중 하나는 혹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최종적인 책임을 신에게 돌리기 위함이기도 하다. 신의 뜻이 자기와 달랐기 때문에 일이 안 풀렸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은 이렇게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에서 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데도 사람은 언제나 한계를 느끼며 산다. 뜻하지 않은 행운에 기뻐하고, 예기치 않은 삶의 문제 앞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런 삶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은 인생(人生)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이 가진 한계와 거꾸로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언제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요즈음 묵상하는 시편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이다.


2. 시편은 행복한 사람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시로 시작한다. 유대인들이 볼 때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시 1편에서는 시낸가에 심은 나무라는 말로 이야기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디엔가 자라던 나무를 뽐아 다시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의미한다. ‘시댓가에 심은 나무에 대하여 말빔(Malbim)이라는 랍비는 세상의 쾌락에 뿌리박혀 있던 영혼을 뽑아 생명이 공급되는 영적인 세계에 다시 심겨지는 것(replanted)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를 의미할 것이다. 바울이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로마서11:20)라고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유대인들이 구원에서 제외되고, 예수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자라는 말이다.

다윗은 행복함을 유지하는 삶의 원리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소극적으로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1:1)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1:2)삶을 사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불행의 출발은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이다. 악인은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사야57:20)다고 말한다. 그래서 악인의 꾀를 따르는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불안함이 있을 뿐이다. 1:1에서 악인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반면에 죄인은 그런 의도성 조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죄인은 아예 과녁을 맞출 생가조차도 없이 쏘아진 화살이다. 오만한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시인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4:1)라고 말한다. ‘행복한 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삶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라는 말은 그 욕망이 여호와의 말씀에 있다는 의미이다. 행복을 향한 사람의 열정이 우상을 만들 듯이, 행복한 자들은 행복을 향한 열정을 여호와의 말씀에 둔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심을 믿고, 그 목자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는 욕망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의 한계와 나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자들이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들어야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그리고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118:18-20)라고 기도하게 된다.

3.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문제는 현대사회가 행복의 조건으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있다. 하나님의 축복을 측정하는 방법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가에 달렸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다윗은 참된 행복의 조건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을 말한다. 아모스는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8:11)라고 말한다. 행복의 조건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기쁨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지 못하는 세대를 비꼬고 있다. 혹 우리 시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혹시 행복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생명으로 옮겨 심겨지는 데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한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많이 가진 것에, 많이 먹을 수 있는 삶에 있다고 생각하는 오늘 현대인들의 모습이 우리가 아닌지 기도할 때이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의의 회중에 드는데 있다

연락처 070-7817-3627, 010-8952-3627(오성환 목사) E-Mail : shsiny@hanmail.net

주소 : 광주시 서구 계수로51번길 4-4(쌍촌동 1318-1) 201호 


http://www.ctimes.or.kr/news/view.asp?idx=3201&msection=2&ssection=5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