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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절기의 문제에 관하여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4. 1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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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들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갈 4:10절에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라고 표현으로 절기들을 언급하는데, 그러한 언급은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는 말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는 말에 에워싸여 있다.

 

그런데 갈 4:10절의 언급은 얼핏 갈라디아 사람들의 이방종교에서 지키던 절기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장을 더욱 넓게 확장하여 이해해 보면, 이미 3장에서부터 사도는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3:2)고 하여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가운데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갈 4:10절에서 언급하는 날과 달과 절기와 해는 다른 아닌 안식일과 속죄일, 그리고 월삭과 같은 구약의 절기들을 주의하여 지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갈 5:3-4절에서 사도는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하여, 율법이 규정하는 예법(의식법)을 따르는 것까지 포함하여 구약의 모든 절기들 뿐 아니라 예법들까지 언급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율법을 따라 행하는 모든 예법들과 절기들을 뭉뚱그려서 율법이라 칭하는 사도는 갈 3:24절에서 이르기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25절에서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음을 언급한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구약의 모든 예법들과 절기들이 약속하신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있는 것들임(3:19)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히 10:1절에서 사도는 이르기를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사도는 단순히 제사(속죄제)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시행하는 구약의 모든 절기들과 그 때에 시행하는 예법들을 포괄하여, 그것들이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했다.

 

무엇보다 사도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말하면서, 아울러 이르기를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새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5-6)고 하여, 유대인들의 미혹에 사로잡혀 율법을 따른 예법들과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타락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구약시대에 조심하여 지키던 예법들과 절기들을 여전히 따르려고 하는 문제를 결코 가벼운 문제(adiaphora)로 생각하지 않고, 단호하게 배격하도록 강력히 권면하고 있다. 유대인이었다가 복음을 들은 히브리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제사법과 의식법을 따라 행하던 제사와 절기들은 아주 익숙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단호히 복음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런 모든 모형이요 그림자인 것들이 나타내는 바 실상(實像)임을 직시하도록 강력하게 권면했던 것이다.

 

이로 보건데 부활절’(Easter)이나 성탄절’(Christmas), 혹은 사순절’(Lent, 특히 이것은 로마 가톨릭을 따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에서부터 부활절까지도 함께 인정하게 되는 점에서 상당히 심각한 것이다)과 같은, 소위 교회력’(church calendar)이야말로 사도가 버리도록 강력히 권면한 구약의 절기들과 예법들에 비할 바 아닌 무익한 것들이다. 성경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는 그런 것들을 지키는 태도는, 6:6절에서 사도가 말한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하는 극심한 타락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도는 만일에 그런 것들을 포기할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확실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6:5)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 나아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6:6)다고까지 지금도 여전히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경의 문맥들을 이해한다면, 성경에 단 한 번의 언급이나 소개도 없는 희한한 교회력과 절기들을 결코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28:20)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지키게(실천하게) 하라고 명하실 때에, 그처럼 가르쳐 지키도록 명하신 것은 분명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지 분부하지 않은 것들을 가르치도록 명하신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물론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WESTMINSTER DIRECTORY, 1645)에서도, 엄숙한 공적 금식과 공적 감사일 준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교회력에서 언급하는 절기들을 인정하는 의미의 언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의 몇몇 현저하며 비상적인 경륜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금식하며 감사드릴만한) 원인과 기회를 줄 때에, 특별하며 긴급한 경우들에는 한 날이나 여러 날들을 공적 금식이나 공적 감사를 위해 구분하는 것이 합법적이며 필수적이다.”라고 하여, 특별한 기념일을 언급한 말이다. 즉 그보다 먼저 언급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 외에 복음 아래 거룩하게 지켜지도록 성경에서 명령한 날은 없다. 보통 거룩한 날들(Holy-days)이라 칭해지는 축제일들(혹은 절기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보장이 없으므로 계속되면 안 된다.”는 문장을 전제로, 교회의 설립을 기념하거나 국가적인 일(독립일 등)을 기념하는 경우와 같이 거룩한 날이 아니라 감사의 날로 기념하는 것일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필자의 주장은 대부분 급진적이고도 강성인 주장으로 비칠 것이다. 대부분의 장로교회들에서 헌법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그리고 예배모범과 같은 것들이 전혀 무시되고 그 존재조차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기독교 절기의 문제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전혀 분쟁만을 야기하는 고립적인 입장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나 기타 이단적 오류들과 아무 구별이 없는 기독교인(Christian)이 아니라, 종교개혁의 후손(reformed)인 개신교(Protestant) 신자들이라고 한다면, 시대의 흐름(時流)이나 대세(大勢)가 아니라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는 모든 성경을 따라서(W·C·F 12항 참조), 그리고 선하고 필연적인 결론에 의해 성경으로부터 추론”(W·C·F 16항 참조)하여 실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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