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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년을 거슬러 루터(Martin Luther)인가?|

장대선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19. 4. 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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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들에서 올 한 해의 이슈는 단연 종교개혁(religious reformation)’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심벌이 되어버린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에 대한 책자와 그의 대교리문답이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그런데 그처럼 종교개혁에 있어 심벌이 되어 있는 루터의 신학이 얼마나 개혁적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개혁에 내포되어 있는 중심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사뭇 루터에게 머물러 있는 종교개혁의 정신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루터의 신학적 입장이 어떤 개혁의 선()인지가 그의 성찬론과 관련한 개념어인 공제설’(consubstantiation)을 통해 단적으로 들어남과 아울러 십계명에 있어서의 그의 분류법 가운데서도 드러나는데, 아쉽게도 두 가지 특이점들에서 루터의 개혁은 상당히 주관적인 적정선으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흔히 종교개혁에 대한 기초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크게 범하는 오류가 바로 개혁의 방향에 대한 오해인데, 종교개혁의 방향은 당시의 시대와 미래의 시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 기독교가 더욱 온전했었던 시점을 지향하며, 그 궁극적인 원점이 바로 성경이다. 아울러 그러한 방향성은 당시의 시대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 종교개혁의 시기는 세속(?)에 있어서는 르네상스(Renaissance)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서의 이성적 사고가 근간을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르네상스의 분위기 가운데서의 인문주의(humanism)적인 바탕은 원전 혹은 원천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것이었으니, 복고주의 가운데서의 고전(古典)에 대한 관심은 신학에 있어서도 교부들의 문헌들과 성경의 고전어인 히브리어·헬라어에 대한 관심으로 연계되는 것이 전반적인 풍토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적인 분위기와 종교개혁의 분위기는 그 바탕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며, 바로 그러한 바탕 가운데서 볼 때에 루터는 교부들이나 원전(성경이든 신학서적이든)을 근거로 하는 성향이 매우 취약했다.

 

이처럼 상당히 주관적이고 원전으로 돌아가는 방향보다는 시대적인 요구와 질문을 제기하는 선에서 시작된 그의 개혁의 면면은, 그를 대표하는 비텐베르크의 95개조 반박문(Theses)에서 단적으로 들어나는바, 면죄부(혹은 免罰符)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문제의식 외에 나머지 대부분에 있어서 로마가톨릭 체제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신학적인 부정이나 개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방식에서의 개혁은 로마가톨릭 자체에서 공표된 트랜트 종교회의(혹은 공의회)의 교령들에 더욱 큰 비중이 실려 있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루터의 취약점에 관해 로마가톨릭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의 미비(未備)와 부족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그의 성찬에 대한 공제설의 입장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지만, 그와 함께 더욱 실천적이라 할 십계명에 대한 그의 분류와 설명을 통해 간단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즉 제2계명의 차이 가운데서 그의 실천적 신학의 분위기를 원리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루터는 그의 소교리문답(Small Cateschim)과 대교리문답(Large Cateschim)에서 공히 제2계명을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20:7)는 것으로 분류하며, 10계명을 네 이웃의 아내나 종이나 가축이나 그 밖에 이웃에게 속한 모든 것을 탐내지 말라”(20:17)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로마가톨릭의 분류와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하게 소개되어 있는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로 시작하는 출 20:4절 말씀의 내용이며, 10계명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로 시작하는 출 20:17절 말씀 전체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는 존 칼빈(혹은 장 칼뱅)의 제네바 교리문답이나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1583)와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1587)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등 대부분의 개혁파 교리서들에서 분류하는 십계명의 내용이다.

 

사실 이러한 십계명의 분류에 있어서의 차이는 루터의 신앙체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개혁파 진영에서 우상숭배의 문제와 관련하여서 타파했었던 예배당의 각종 형상들과 그림, 심지어 십자가를 예배당에 부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개혁에 이르기까지, 루터주의(Lutheran Church)에서는 거의 개혁파 진영보다는 로마가톨릭에 훨씬 가까운 선으로 모든 형식을 갖출 수 있는 근거가 제2계명에 대한 그러한 변형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루터의 명백한 개혁적 한계에 대해 엄밀한 개혁주의와 그 신학(김영규, 도서출판 하나, 1998)이라는 책에서는 루터가 제도권에 대한 강한 비판정신을 그의 이신칭의 교리에서 나타냈을 때, 인간의 죄와 그의 구원이 갖는 한계를 뛰어 넘어서지 못하였다. 우리의 구원의 뿌리인 믿음이 (복음을) 듣는 능력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듣는 역사에도 근거하지 않은 성령의 역사에 있고,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면, 그렇게(하여) 교회본질이 설명되는 것으로 멈추는 것인가가 문제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것이었는데). 지금(혹은 그러나) 칼빈은 그 선에 머물지 않았다. 칼빈은 복음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주장하다가 순교하는 많은 순교자들을 변명(변론)하여야 했다. 큰 권세와 법과 다수에 의해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죽어갔을 때, 하나님의 교회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가를 변명(변론)하여야 했다. 루터주의는(루터주의의 경우에는) 다행히 자신을 보호해주는 제도권(군주와 영주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제도권은 엄밀한 개혁에는 방해가 되었던 것(군주들과 영주들은 큰 틀에서의 개혁은 원하지 않는다)이다.”(p. 16)라고 언급했는데, 루터에게 있어서 종교개혁은 처음부터 분명하고도 확고한 저변을 형성하지 못했었고, 그 후로 군주들과 영주들의 보호 아래에서 오히려 로마가톨릭의 신학과 적절한 타협선을 이루는 형태로 자리했던 것이다.

 

이로보건데 오늘날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들이 기념하며 이뤄가야 하는 개혁된(reformed) 내용은 역사적으로 루터보다 훨씬 오래전에 있었던 변질되지 않은 신앙의 유산들에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유산들에 내포된 원리들과 가치를 가장 잘 해설했던 신학자들의 신학을 이해하고 정립하여 실천해 가는 데까지 이르러야 마땅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작업들을 매 해마다 하나씩 발굴하여, 이해하고 실천했다면,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들에서는 최소한 100가지 이상의 개혁된 신앙유산들이 교회들의 틀과 바탕을 이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발굴과 이해와 실천이 있기를, 그런 방식으로 500주년의 기념이 되는 올 한 해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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