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데살로니가전서 1:2-8 / 본이 되는 교회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19. 5. 24. 09:22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1:2-8 / 본이 되는 교회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 바울이 3주간 동안 전도해서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의 전도를 듣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시기하여 시장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소란케 하며 전도를 방해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주 만에 데살로니가 지역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3주일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전했고, 또 그 지역은 박해가 굉장히 심한 지역이었으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염려와는 달리 가는 곳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소문이 들리는데 아주 믿음을 잘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7절에 보면 마케도니아 지방과 아가야 모든 지방에 소문이 나서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고 했고, 8절에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소문이 각처에 퍼져서 바울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떤 소문이 났습니까? 3절에 보면 그들은 믿음의 행위가 있었고, 사랑의 수고가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내용을 살피면서 은혜 받기 원합니다.



1. 믿음의 역사


교회는 뭐니 뭐니 해도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별소리를 다해도 믿음 없는 성도를 좋은 신자가 할 수 없고, 믿음이 없는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행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다고 하는 만큼 믿음으로 일하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과가 나타나고, 믿음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일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입니까? 내 믿음이 잘 자라나고 있으며, 믿음의 열매를 맺히고 있습니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죄와 싸워서 이기는 믿음입니까?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믿는다고는 하는데 믿음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형식적인 믿음이고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26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떻게 믿음생활을 했습니까? 6절에 보면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을 본받고,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힘썼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이 전해주는 성경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믿었습니다. 그럴 때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했습니다. 오늘날은 왜 믿음의 역사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2에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또한 데살로니가교회는 하나님을 믿을 때 막연한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9절에 보면 우상들을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은 우상을 버리면 죽는 줄 압니다. 집안 식구들의 반대도 심합니다. 따라서 우상을 끊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끊기 어려운 우상을 끊어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섬겼다고 말씀합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출애굽기 3:7-8에 보면 보고, 듣고, 알고, 찾아오고, 건져주고, 인도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그런 하나님 앞에서 살 때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믿음으로 살 것입니다.



2. 사랑의 수고


3절에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믿음을 강조하다가 보면 사랑이 식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믿으려고 하다가, 옳고 그름을 따지고, 비판하고 정죄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도 좋았지만 사랑도 풍성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9에 보면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사도 바울은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허물이 드러나면 덮어주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사랑의 특징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8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이 식어지면 허물이 크게 보입니다.
더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사랑은 말로만 하는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수고가 따르는 참 사랑이었습니다. 참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셨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므로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합니다. 이처럼 사랑에는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그러나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교회는 약해지고,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여러분 무엇이 위대한 교회를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3. 소망의 인내


3절에 보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6절에 보면 데살로니가교회는 환난이 많았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4에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박해와 환난이 심해지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게 됩니다. 믿음이 위축되게 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와 환난 중에서 소망 중에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소망했습니까? 10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을 가지고 환난과 핍박을 참고 인내하였습니다. 여러분, 참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입니다. 참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 위대한 것입니다. 참는 것은 손해가 아니고 복 받는 것입니다. 참는 것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렇게 참음으로 구속사역을 완수하고 승리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19에 보면 소망은 영혼의 확실하고 안전한 닻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소망이 환난이나 시험 중에서 우리를 인내하게 만들고 승리하게 만듭니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우리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풍성하여 믿는 자들의 본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합시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