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어서 배우려고 질문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했습니다. 이 율법교사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야 그 대가로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구원을 얻으려고 선을 행하고, 구원을 얻으려고 고행을 하고, 구원을 얻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구원을 얻으려고 할례를 받습니다. 그런 일들을 잘 하게 될 때는 ‘이 정도면 되겠구나’ 생각하며 위안을 가졌다가, 잘 못하게 되면 또 다시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영생은 사람이 노력하고 힘쓴다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무엇을 해 가지고 그 대가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데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께서는 그 율법교사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율법교사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바른 대답을 하였습니다(27절). 그 답은 사랑입니다. 두 가지 사랑입니다. 하나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계명이고 이 사랑이 중요합니다. 사랑이 나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과연 영생을 얻은 사람인지 아닌지 입증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의 대답을 보겠습니다.
1) 28절 “네 대답이 옳도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가 정리한 율법의 내용을 듣고 옳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즉 율법교사가 정답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 행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 아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런 생명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28절에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려고 힘쓰다 보면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구원 받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2:10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갈라디아서 3:10에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은 문자적으로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의 근본정신까지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이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 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와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율법교사는 다시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길은 산간 골목으로 강도들이 자주 나오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많이 맞고, 상처를 입고, 옷을 벗기고, 거의 죽은 상태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 길로 지나가면서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았으나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말았습니다(31-32절). 자기들도 강도를 만날까봐 두려워서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주의자들을 가리키며, 의식주의적인 종교가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말한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도와주었습니다(33-34절).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상종하지 않고, 이방인 취급하며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유대인을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주었습니다. 응급조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강도 만난 사람을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태우고 자기는 걸어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주막으로 데려가 맡겼습니다(35절). 주막은 영적으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는 죄인 구원 하는 일, 상처받은 사람들,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 고쳐 주는 일을 교회에 맡겼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마귀에게 상처받고 쓰러져 있는 자들을 도와주고 치료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상처 받고 병든 심령들을 돌보고 치료해주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 강도 만난 사람은 세 부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1)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입니다. 길 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던 물건 빼앗기고 매를 맞고 상처를 받고 죽을 뻔 했습니다. “강도”는 마귀를 상징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다가 강도 같은 마귀를 만나 올무와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되고 많은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제사장과 레위인을 만났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만나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해를 끼치지도 않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는 것은 많고 말은 잘하지만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을 도우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병든 사람, 상처 받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피해버리는 사람입니다.
3)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꼭 만나야 할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치료해주고 보살펴줍니다. 만약 강도 만난 사람이 이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죽었을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모든 인생들은 강도를 만난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마귀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었습니다. 영생을 잃어버리고, 모든 은혜와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저주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 죄 짖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상처를 받고 거반 죽어가는 인생을 위해서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죄를 대속해주시고 구원해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밖에는 상처를 싸매 주고, 치료해 주고, 구원해줄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강도 만난 사람들입니다. 죽게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의식이나 제도로 살 수 없습니다. 선행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4.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물었습니다(36-37절).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하지 않고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에 대해서 좋게 말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원수로 생각하는 사마리아 사람도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상종치 않고 원수 된 사람들에게 가서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베풀고 이웃을 만들어 나가라는 교훈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율법사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 당장 어려움 당한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은 많은데 이웃이 없습니다. 원수를 이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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