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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장 14절-3장 4절/육신에 속한 사람

박석중목사(대전)

by 김경호 진실 2019. 12. 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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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 사람을 둘로 나누면 예수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을 다시 둘로 나누면 신앙이 성숙한 사람, 즉 신령한 사람과, 신앙이 어린 사람, 즉 육신에 속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을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 신령한 사람, 그리고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세 그룹 가운데서 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스스로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1. 육에 속한 사람
고전 2:14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육에 속한 사람은 자연 그대로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교훈을 받지 않으며 성령의 일을 미련하게 보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일을 분별할 능력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모든 가치를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은 무익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영혼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 말씀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성령의 일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혹 교회에 나올지라도 믿음생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에도 관심이 없고, 단순히 먹고 노는 것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영적인 갈등이나 시험도 없습니다.

2. 신령한 자
고전 2:15-16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신령한 자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영적으로 장성한 자를 가리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1) 신령한 자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판단한다는 말은 분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밝히 알고, 영혼에 대해서 밝히 알고, 신령한 영적인 일이나 이 세상에 대한 일도 밝히 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과 목적과 가치와 사리를 분별합니다. 신령한 자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거룩한 것인지, 무엇이 세속적인 것인지 예리하게 분별합니다. 해야 할 말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될 말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무엇이 교회를 이롭게 하고, 무엇이 교회를 해롭게 하는지 압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법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2) 이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한 자라는 뜻입니다. 아마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고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사람은 성도들을 섬기며 덕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3. 육신에 속한 사람
고전 3:1-4에 보면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입니다. 분명히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해서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불신자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거듭난 영혼이 자라지 못하여 연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육체의 본능을 따르고, 세상 습관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전혀 믿는 사람답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첫째. 육신에 속한 자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어린아이입니다. 즉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둘째, 젖만 먹고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같은 복음을 주셨으나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깨닫는 데 있어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젖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젖은 이해하기 쉽고 소화가 잘되고 전혀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런 말씀입니다. 들으면 기분이 좋고, 힘쓸 것도 없고, 부담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밥과 같은 단단한 식물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죽도록 충성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경건하게 사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받아먹기 쉽지 않고 소화시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어린 신자들은 이런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합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젖과 같은 말씀을 먹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은 지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젖이나 먹고 있으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20살, 30살이 된 아들이 젖을 먹겠다고 하면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히브리서 5:14에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지각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 하면서 감정만 사용합니다. 감정에 따라 믿음이 흔들리고 기분에 따라 믿음이 변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믿음생활 열심히 하고 기분이 나빠지면 넘어집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들은 모든 일에 지각을 사용합니다. 지각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영적인 지각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릅니다. 2) “연단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환난이나 시험이 올 때 잘 참으면서 연단을 받은 사람입니다. 연단을 많이 받으면 강해지고 단단해집니다. 따라서 웬만한 환난이나 시험이 와도 잘 이기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3)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입니다. 선악을 바르게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지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건을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도의 영적 지각이 있어야 선악을 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셋째, 시기와 분쟁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의 생각, 사상,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육신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성령의 인도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정욕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시기나 분쟁이 많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시시한 것을 가지고 다투고 싸웁니다. 사탕하나 가지고 싸우고, 과자하나 가지고 싸웁니다. 먹을 것 가지고 다투고 싸웁니다. 장난감 하나 가지고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자기만 알아달라고 하고 자기만 위해달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라나면 그런 유치한 일은 안합니다. 그런데 다 큰 어른이 먹을 것 가지고 싸우고 다툰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어른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으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넷째,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본받아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따라 행하고 당파를 만듭니다. 고린도전서 3:4에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도 편을 가릅니다. 누구하고는 놀지 마라. 우리끼리만 놀자. 이런 유치한 짓을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 즉 육신에 속한 사람들도 이런 행동을 합니다. 고린도교회에는 당파가 많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2에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고린도교회에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가 와서 설교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논리적이고 조직적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아볼로는 구약에 능통한 학자입니다 아볼로를 통해서 성경을 배우면 구약에 대해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인생이 나그네인 것을 강조하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 사람에게 배우는 것보다 여러 사람을 통해서 배우면 더 다양하게 풍성한 내용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나는 바울이 좋다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가 좋다 아볼로 파다. 나는 베드로가 좋다 베드로 파다. 나는 이것저것 다 싫다 그리스도 파다 하면서 당파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육신에 속한 증거입니다. 어린아이보고 싸우지 마라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어린아이보고 욕하지 말라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보고 시기하지 말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어린아이 일을 하지 않게 될까요? 자라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자라나서 성숙해지면 싸우라고 해도 안 싸웁니다. 당파 같은 것 만들지 않습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3:11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 세 부류 중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육에 속한 사람. 영적인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중에서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스스로 진단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야 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자라나야 하겠습니다. 영적인 사람 즉 신령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대전 탄방교회 박석중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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