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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구원론강설> 구원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2. 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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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구원론강설> 구원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2020. 2. 9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16: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3~7)





성경은 구원의 책



바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영원한 운명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마음속으로 의문을 가지거나 관심을 표할 것입니다. 아무리 불신자라 해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삽니다. 마치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던진 질문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16:30).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 구절에 바로 이어집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



그러므로 아주 평범한 사람들도 성경의 중심적 메시지는 잃어버린 영혼들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이야기가 소위 원시복음이라 불리는 창 3:15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책인 계시록까지 기록된 성경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차원에서 구원이란 무슨 뜻입니까?



1) 먼저 구약 성경의 의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히브리 동사 야사가 있는데 이는 그 파생어와 합치면 구약에 약 353회 등장합니다. 니팔형(수동형)으로는 구원받다혹은 해방되다이고, 히필형(능동형)구원하다’ ‘해방하다입니다. 이 단어의 명사형이 바로 예수아’(구원, 해방)인데 이것으로부터 예사’, ‘테수아등이 파생되었습니다. 특히 이 단어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할 때(14:13, 30:15, 33:29)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는 보지 아니하리라”(14:13)

포로에서 풀려남(106:47, 46:13, 34:22)

마음이 완악하여 동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46:12~13)

이스라엘의 대적들에 대한 승리(10:9, 6:14~16, 9:27, 44:7)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10:9)



하나님은 구약 성경을 통해 자신이 곧 구원자이심을 명백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강조하시며 다른 곳에서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43:11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특히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과 구원자는 동일한 용어입니다.



2) 다음으로 신약성경에서 구원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 동사로 소조가 있습니다. 이는 구조하다‘, ’해방하다‘, ‘구원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명사가 소테리아이고 여기서 인칭대명사인 소테르’, 구원자(savior)’ 혹은 구속자’(redemmer)가 등장합니다. 이 단어의 용례를 찾아보겠습니다.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입니다.

바다로부터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8:24~26)

질병으로부터의 치유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5:34)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5:15)

대적이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나 구원을 말합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를 원수의 손아귀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1:71)

~ 특별히 신약에서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자로 등장합니다(1:47, 딤전 1:1~@, 1:3, 2:10, 벧후 1:1, 11, 3:2, 18 ). 예수님의 헬라어 이름인 예수스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핵심적 메시지는 사도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선포하고 그를 믿는 것이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명백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성경에서의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서 영원한 생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구원론에 대해 사도들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사도들마다 구원의 의미를 동일하게 설명하고 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구원을 얻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먼저 베드로의 구원론입니다.

~ 그는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당신의 구원받을 백성들을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2:9)

~ 다음으로 베드로는 하나님은 때가 되자 믿음을 가진 자들을 부르시고 새 생명을 주셨다고 증언합니다. 믿음이 곧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여기서 받을 것이라 말하지 않고 받음이라 말한 점에 주목하십시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임을 시제적으로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3)

~ 그런 다음 베드로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벧전 1:15~16),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서라(벧전 5:12)고 충고합니다.



2) 다음으로 사도 요한의 구원론입니다.

~ 요한은 성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주셨다고 증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이십니다(4:42, 요일 4:14)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7)

~ 성부는 성자에게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택하신 당신의 양 떼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6:37)

~ 그러므로 양 떼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10:27) 그를 믿으며(10:42), 죄 사함과 용서를 받아 깨끗하게 되고(요일 1:7, 2:12),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3:16~17, 36, 요일 2:25, 5:11, 13)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리라”(10:27)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10:42)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5)



3) 다음으로 사도 바울의 구원론입니다. 사실 기독교 구원론의 기초는 바울에게서 나왔습니다.

~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은혜로 죄악으로 가득 찬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려고 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선포했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5:15)

~ 그리고 바울은 구원을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구원을 죄의 용서’(4:32, 2:13)이 했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1:17, 3:21~22, 5:17)라 했으며, 아버지와의 화해’(5:10, 고후 5:18~19), ‘거듭남’(고후 5:17, 3:5)이라 말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정의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구원론이 만개한 것입니다.



4) 기타 누가는 구원을 압제와 죄로부터의 구속으로 보았으며(1:68, 74), 히브리서 기자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7번 사용하면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구약의 제사 제도의 완전한 성취라고 했습니다(2:3, 5:8~9). 나아가 그리스도는 홀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사탄을 멸하셨고(2:14), 영적으로 묶인 자들을 해방시키셨다(2:15)고 설명했습니다.



이 모든 구원론의 의미들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보면 구원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의미로서 이 땅에서의 죄와 죽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을 뜻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의미로서 하나님이 현세와 내세에 걸쳐 영원한 영적인 복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이 단지 현세에서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영생 복락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말보다 더 귀하고 은혜로운 용어는 없습니다. 구원이 없다면 믿음도 소용없고 교회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구원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죄가 없다 선언하고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까?



앞에서 우리는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모든 하나님의 형성이 흔적만 남은 채 완전히 망가졌으며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성경은 매우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1) 성경은 세상의 모든 인간이 하나도 남김없이 죄에 굴복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모든 인간은 도덕적인 타락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 영생의 상실, 그리고 영원한 형벌을 당하게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각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도다”(3:1~3)



2) 무엇보다 우리는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대해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셨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회를 통해 거듭나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라 선포했습니다(3:16).

~ 삭개오를 만났을 때에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19:10)고 하셨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자가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언합니다.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 또 탕자의 비유(15:11~32)를 통해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은 죄인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했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 또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은 자들의 현재 상태를 심판과 정죄라는 말로 묘사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여기서 불신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완료시제를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하세요.)



3) 사도 바울은 어떻게 설명합니까?

~ 먼저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의 현재 상태를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영이라”(2:1~2)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4:17~19)

~ 나아가 바울은 타락한 상태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2:3)로서 이스라엘 밖의 사람’(2:12)이라 했고,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는 상태’(3;10)라 했으며, 또 사탄에게 붙잡혀 지배당하는 상태‘(딤후 2:26)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사탄의 소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다르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6)



배신과 범죄 이후 타락한 인간의 현재 상태에 대한 성경의 모든 기록을 종합하면 마귀의 자녀로서 추악하고 더럽고 오직 육적인 정욕을 추구하기 위해 생존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히 격리 조치된 자들입니다. 요즘 바이러스 때문에 확증자들을 격리 조치하고 있는데 그나마 이들은 완치되면 집으로 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격리된 존재는 하나님이 특별한 사면조치를 내리지 않는 한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인간에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숨 쉬는 동안만 생존하다가, 생존의 기간에도 온갖 추악하고 더러운 쓰레기 같은 일들만 잔뜩 벌여 놓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이자 정치인이었던 키케로 같은 이는 인간은 구제불능이다고 했고, 프랑스 철학자인 파스칼은 인간은 괴물이며, “우주의 영광인 동시에 쓰레기라 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강요를 통한 칼빈의 통찰력이 우리를 제압합니다. 그는 인간을 자기도취에 취한 자로 규정하고(2-1-2), ’죄의 오염, 즉 부패의 상태‘(2-1-5)에 있으며, 그 부패성은 영혼의 모든 부분을 장악했다‘(2-1-9)고 파악했습니다. 그럼으로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선도 남아 있지 않으며, 비참한 빈곤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다‘(2-2-1)고 보았습니다.



, 이만하면 타락한 인간의 생태가 얼마나 위중하고 비참하며 무익하며 절망적인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복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자신이 진짜 추악한 죄인임을 알고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속히 구원의 길을 찾고자 하는 자이며, 나아가 가장 행운을 얻은 자는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은 자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언합니다.



3. 결어



모든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아담의 죄책을 유전 받아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원죄의 영향으로 인간은 각자 자범죄(본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비록 자신은 죄를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혹은 자신 스스로는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차원에서는 완전한 악이요 완전히 부패한 일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인간을 몸은 살았으나 영혼은 죽은 자로 묘사했습니다. 지금 거리를 걸어 다니는 수많은 불신자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완벽한 진단입니다. 이들의 행로는 결국 지옥의 문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천국의 이야기보다 지옥에 관한 말씀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주님은 회개치 않는 자나 구원받지 못한 자는 영원한 게헨나에 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8)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



사도 바울의 경고도 기억해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저희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시고“(살후 1:7~10)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이 무엇인가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왜 타락한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를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분만이 길이요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그 안이 유일한 구원의 방주요 생명의 은혜의 젖줄이 있는 곳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구원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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