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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강설> 4주. 인간의 배신

최더함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0. 1. 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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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강설> 4. 인간의 배신 2020. 1. 2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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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과 2장은 장엄한 우주 창조와 인간 창조에 대한 유일한 기록이자 하나님에 의한 위대한 선언입니다. 한편으로 이 두 장은 창세기 3장으로 인도하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인간은 갑자기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을 한편의 영화로 치면 급반전입니다. 1장과 2장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조상인 아담을 지으시고 또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2:18) ‘돕는 배필’, 즉 여자를 지으시고 둘을 부부로 삼아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아담은 이 여자가 얼마나 좋았던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고 고백하며 만족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에덴은 천국이었습니다. 행복의 전당이었습니다. 그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부터 분위기는 완전히 바꾸어 집니다. 성경은 여기서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그가 바로 뱀입니다(3:1). 뱀이 누구입니까? 땅에 기어 다니는 뱀을 가리킵니까? 아닙니다. 이 뱀의 정체는 사탄입니다. 계시록 12:9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뱀의 정체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먼저 그는 악의 우두머리인 마귀입니다. 다른 별칭으로 사단 혹은 사탄(satan)이요, 큰 용이요, 옛 뱀이요, 악한 자 곧 다아볼로스, ‘벨리알이요, 이 세상 신이요, 공중 권세 잡은 자요, 거짓의 아비 등등 부지기수입니다. 한 마디로 사탄은 범죄자이자 거짓말쟁이입니다. 요일 3:8에는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고 했습니다. 8:44에는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합니다.

2) 사탄은 기원에 대해 성경은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사 14:12~15, 10;13, 6:12, 딤전 3:6, 6 등을 보면 사탄은 영적 존재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았지만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다가 지상으로 추방된 자로 묘사합니다.

3)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항하여 강력한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는 온 천하를 갖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의 화신입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악한 천사들, 즉 악한 영들을 수하에 거느리는 두목입니다. 사탄은 이 악한 영들을 부리며 이 세상 임금 노릇을 하는 자입니다

 

4) 사탄의 주특기는 속이고 유혹하는 일입니다. 그는 모든 선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선한 일들을 방해하기 위해 선한 일에 가담하는 사람들을 은밀히 유혹하는 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수하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지독하게 못살게 굽니다. 어떤 때엔 스스로 광명의 천사’(고후 11:13-15)로 가장하여 사람들의 눈을 속여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그는 온 천하를 꾀는 자 즉 속이는 자’(deceiver)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사기꾼의 우두머리입니다.

5) 지금도 사탄이 활약하고 있습니까? 답은 일정한 영역 안에서 여전히 활동을 한다입니다. 물론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12:31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결국 주님의 이 예고대로 사탄은 십자가의 심판에 따라 완전히 굴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탄의 활동은 허용된 한도 내에서 일어나고 있고 국지적이며 일시적으로 승리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과 함께 그는 무저갱에 일천 년 동안 감금될 것입니다. 그 후에 잠시 풀려나 열방을 꾀이지만 그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25:41)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2. 뱀의 속임



이런 뱀이 창세기 3장부터 등장합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인간을 속이는 일이었습니다. 그중 특별히 연약한 인간인 여자에게 접근을 했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인간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자입니다. 그 대상이 바로 하와였습니다. 과연 하와에게 어떤 약점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남편을 통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짓기 전에 아담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216~17절을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사탄은 바로 이 점을 노렸습니다. 직접 들은 것과 간접적으로 들은 것에 대한 확신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31절 하반부를 보세요. “~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개의 큰 함정이 도사립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교묘하게 말을 돌리고 부풀립니다. 아담에게라고 말하지 않고 너희에게라고 청자를 확대하여 마치 하와가 직접 들은 것처럼 가장하도록 노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을 아담에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아담과 하와가 부부임을 빙자하여 너희에게직접 명령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요즘 여론조사의 왜곡 문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의혹이 부풀려지는데 질문지를 교묘하게 조작하면 의외의 결과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와는 당황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답변은 더해지고 왜곡된 것이었습니다. 33절을 보세요. 그녀는 두 가지 사실을 왜곡시켰습니다. 먼저 동산 중앙의 나무를 먹지도 말라 했는데 여기에 만지지도 말라고 첨부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녀는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 했는데 죽을까 한다고 왜곡했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하와는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마수에 걸려들었습니다. 사탄은 즉시 왜곡에 왜곡을 더하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심리적으로 세 번만 왜곡하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될 수 있다고 합니다. 4절을 보세요. 사탄은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진짜 의도를 조작하여 하와에게 일러줍니다. 참으로 그럴싸한 논리입니다. 이것이 거짓의 대가요 위선의 우두머리인 사탄의 교활한 수법입니다



    



3. 죄의 반복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듯이 죄는 계속해서 더해지고 발전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것처럼 처음에는 별일 아닌 잘못을 계속 방치하면 점점 나쁜 습관이 되고 나쁜 습관은 결국 범죄로 이어집니다. 죄는 죄를 낳고 세월과 함께 키가 자라고 몸집도 커지고 규모도 방대해지고 수법도 대범하고 치밀해집니다.



일순간의 판단 착오로 하와는 하나님이 금지한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동시다발적으로 아담도 그녀의 일에 동참했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므로 아담은 하와 혼자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담도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3:6). 불신자들 사이에선 나무 열매 하나 먹은 것 가지고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미안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정면으로 위반한 인류 최초, 최고의 범죄였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말씀을 경히 여기고 불순종하는 것은 그 시초가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따끔하게 꾸짖었더라면 반발하지 않았을 터인데 처음에 그 불순종을 묵인하거나 방조했기 때문에 커서는 그래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불순종이자 범죄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는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반드시 회개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도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3:9)며 부르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10절을 보세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변화된 아담의 모습을 봅니다. 분명히 225절에서는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310절에서는 부끄럽고 두렵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아담에게 죄가 심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로 인해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던 아담에게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찾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본성에 심겨진 죄에 대한 원초적인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도록 지으셨고, 그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두려워하도록 지으셨습니다. 만약에 죄를 짓고도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일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악의 화신인 사탄의 영에 미혹되어 사로잡힌 자일 것입니다.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자의 특징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인을 하고서도 전혀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범죄자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할 때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으로 죄를 지은 인간의 행동 패턴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를 지으면 재빨리 하나님에게로 나와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행동은 정반대로 숨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제가 잠시 판단 착오로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죄를 지은 인간은 똑같이 행동합니다. 실수나 혹은 잘못을 하거나, 자신에게 조금 힘들거나 불리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앞에 와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슬슬 피하거나 도망하거나 숨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런 죄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살이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4. 죄의 심판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그마한 죄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어물쩍하게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죄에 합당한 벌을 받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정당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죄에 대해 정당한 심판을 단행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불공정하고 불의를 묵인하시는 분으로 오해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적 속성상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죄의 형벌에도 순서가 있고 형벌의 경중이 있습니다. 314절부터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을 보세요. 제일 먼저 이 모든 죄의 최초 원인자인 뱀을 징벌하십니다. 그다음으로 아담에게 나무 열매를 먹도록 한 하와에게 죄를 문책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담을 문책하십니다. 여기서 잠시 살필 것은 성경의 기록 분량입니다. 뱀에 대해선 두 절(14~15)이 할당되고 여자에 대해선 단 한 절(16)이 할애된 반면에 아담에 대해선 유독 세 구절(17~19)이 할애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여자로 인해 죄를 짓게 된 아담이지만 인류의 대표자로서 최종적인 책임이 아담에게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봅니다.




뱀은 세 가지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 다니는 것입니다. 걷지도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굴욕적인 삶의 상징입니다.

또 하나는 평생 흙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흙이 내포하는 저주와 슬픔과 좌절과 굴욕과 패배의 의미들을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세 번째로 뱀은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어 그 머리를 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결국 사탄은 에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한 패배를 당할 것으로 암시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자는 두 가지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임신하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해산할 때 여자가 겪는 고통은 인류가 겪는 모든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여자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씨를 받아야 자식을 잉태하고 출산을 합니다. 또 사도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여자는 남자와의 상대성에서 수동적인 입장에 섭니다. 이것은 남녀평등의 차원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남녀의 본질이요 질서입니다. 마치 이것은 지구로 하여금 태양을 돌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만약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게 되면 지구를 비롯한 모든 태양계의 행성들은 불에 타 소멸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남자와 여자가 협력하고 상호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의 법칙이요 뜻입니다. 그렇다고 결코 가정에서 여자가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여자가 경제적 주체가 되고 가장의 역할을 다 한다고 해도 가정의 대표는 남편에게 있음을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가정의 질서가 확립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아담에 대해선 다섯 가지 사항이 언급됩니다.

첫째, 아담의 죄로 인해 제일 먼저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는 아담이 땅의 대표자로 세움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대표자가 범죄하자 그의 기반인 땅이 저주를 받아 아담을 괴롭게 하는 생산물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두 번째로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물을 먹도록 징벌을 받았습니다. 땅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피해 먹거리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수고로움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에덴동산의 모든 땅에선 무엇이든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물들로 가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죄는 제일 먼저 먹거리에서 변질이 되었습니다. 현대 지구촌의 제일 큰 고민거리는 먹거리들을 환경오염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지만 인간의 탐욕은 스스로 먹거리들을 오염시키고 있는 현실입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세 번째로 아담에게 내려진 형벌은 전에는 온 천지에 먹을 것이 가득했다면 이젠 특정한 지역으로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밭의 채소입니다. 다른 식물들은 저주를 받아 독성이 가득하여 먹을 수 없게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로 아담은 평생토록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한다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인생은 잠시 잠간 고난 중에 있을 수 있지만 영원토록 고난 당한다면 그것은 살았으나 지옥의 인생일 것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제일 고통스러운 죄수들은 무기징역형을 받은 자들이라 합니다. 고통이 심하면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아담에게 내려진 이 형벌이야말로 인생의 괴로움의 우너천이 어디서부터 발생했는가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므로 다시 그 원인인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원래 아담은 비록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수명이 다하면 그대로 하늘로 돌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담의 몸은 이제 죄의 몸이 되었습니다. 죄의 몸을 가진 채 천국에 입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의 몸은 지음을 받은 원천인 땅의 흙으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죄의 몸과 하늘의 분리를 말합니다. 이 분리를 다시 이어주신 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죄인으로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구속의 공로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비록 죄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우리 영혼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새로운 몸을 입고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5. 결어



오늘 우리는 인간이 왜 죄인이 되었는가, 왜 인간의 인생에 불행의 어두운 그림자가 찾아들었는가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음을 받았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죄를 탐닉하는 일에 기울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운명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에 속한 채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 사도는 죄의 결과 곧 사망”(623)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배신에 따른 하나님의 형벌이자 심판의 결과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해 다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그러나 사도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의 정죄를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




인간의 불순종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 영원히 살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이 길로 부르시고 초청하시고 그리고 이 초청에 응한 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에 기초하여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첫째, 우리 안에는 늘 배신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늘 범죄할 가능성을 지니고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매사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자중하고 경계하고 살피며 살아야 합니다. 불완전한 존재일수록 늘 조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감사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귀찮다고 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나 선행이나 노력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자력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어지는 믿음을 조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이면 날마다 시시때때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를 부탁하고 권면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사합니다인사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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