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마1:3)라는 말씀을 접하게 된다.
예수님은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족보를 통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유다와 다말과의 관계는 창세기 38장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유다는 처음에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과 동침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라는 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 아들의 족보를 통하여 언약을 계승하지 않았다(마 1:3).
오히려 며느리 다말과의 관계에서 태어난 그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언약을 이루셨고 그 족보에 의한 약속에 따라 예수님이 오셨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며 오늘 우리들에게 적용할 것인가?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면서도(창 49:10) 이방 나라 여인과 동침하게 되었다. 유다는 이 가나안 여인과 동침하여 세 아들을 두셨는데 그 이름은 엘, 오난, 셀라였다. 큰 아들 엘은 하나님 여호와 목전에서 악함으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였다(창 38:7).
창세기 38:7에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고 말씀한다.
당시 형이 후손을 두지 않고 죽으면 바로 밑의 동생이 형수와 동침해서 형의 후손을 이어 주어야 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기업 무를 자’인 ‘고엘’이라고 한다. 이 기업무를 자를 ‘남편의 아우의 본분’이라고 한다.
큰 아들인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죽음이라는 심판을 받았다. 그러면 둘째 동생은 형수와 관계를 맺어 형의 아들을 낳아 기업을 이어야 한다. 유다는 둘째아들, 즉 엘의 동생인 오난에게 이렇게 말한다.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창 38:8)
그러나 오난은 형수와 관계를 맺으면서도 형의 아들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한다.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창 38:9)
둘째 오난은 형수와 동침해도 어차피 자신의 자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동침시 ‘땅에 설정하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정액을 땅에 설정’라는 말씀이다. 이 행위를 악하다고 판정하신 하나님은 오난을 죽임으로 심판한다(창 38:10).
창세기 38:10에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라고 말씀한다.
기업무를 자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정신을 거부한 오난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가 죽었으니 이제 큰 형수는 셋째인 셀라와 동침해야 하는데 셀라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시아버지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장성한 청년이 되기까지 수절하고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창 38:11).
창세기 38:11에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유다의 아내가 죽는다. 창세기 38:12에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라고 말씀한다.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가 양 떼의 털을 깍으러 딤나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창 38:13). 이 이야기를 들은 다말은 과부들이 입는 옷을 벗고 얼굴을 베일로 딤나로 가는 에나임 문 앞에 앉았다.
다말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유다의 막내 아들인 셀라가 다 커서 얼흔이 되었는데도, 유다가 그 아들을 자기와 결혼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38:14에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한다.
다말은 셀라가 이제 장성하여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결혼시켜주지 않는 유다에게 창녀로 가장하여 유다와 더불어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유다의 자녀가 총 다섯 명이 되었다(대상 2:3-4).
역대상 2:3-4에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를 주지 않는다면 다말에게 가장 가까운 친족은 유다 밖에 없다. 그래서 창녀로 가장해서 유다와 동침하여 씨를 잇게 된 것이다.
창녀로 가장한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다. 유다는 며느리인지 모르고 동침하였다.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당신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와 같은 짓을 했다”고 고했다. 그러자 유다는 “그 애를 끌어 내어 태워 죽여 버려라”고 지시한다(창 38:24).
창세기 38:24에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말은 위기에 처했다. 죽느냐 마느냐 하는 극박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때 다말은 “이 물건의 주인이 나를 임신시켰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물건인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제시했다. 그때 이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물었다(창 38:25).
이때 확실한 증거 앞에 유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유다는 “내 아들 셀라를 주기로 약속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그 애가 이런 일을 한 것이다”라고 하며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다말과 같이 자지 않았다.
결국 다말은 유다와의 동침 결과 쌍둥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고 말씀한다(창 38:27). 먼저 베레스가 출생했다. 이어서 세라가 태어났다(창 38:29-30).
유다의 다섯 아들 가운데 어떠한 자녀가 언약의 계승자가 되는가? 즉 누구를 통해서 구약성경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가? 다른 말로 표현해서 어떤 정신의 소유자가 유다 뒤를 이음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의 계승자가 되느냐는 것이다.
유다와 다말과 더불어 기업을 잇게 되는 베레스를 통해 구약의 구원역사가 이어지고 그 계열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기업무를 자‘를 통해 잇겠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바로 이 기업 무를 자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정신이다. 대신 가장 가까운 친족이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대속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메시야는 유다와 그 며느리 다말과의 기업을 자를 통해 오셨다고 신약은 기록하고 있다.
유다와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출생된 베레스를 언약의 계승자 내지는 구속사로 인정하면서 그 계통을 통하여 메시야가 출현한 이유는 메시야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가지고 자신의 택한 백성들을 위해 대속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자비의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자비와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곧 우리들를 살려주셨고 생명과 영생을 주셨다.
[성경의 맥 9] 유다와 며느리 다말, 기업무를 자:리폼드뉴스 (reform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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