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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량의 하나님

구약학

by 김경호 진실 2021. 4. 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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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3:1-66

 

예레미야애가 3장은 예레미야의 탄원과 고백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예레미야 개인의 탄원과 고백이 아니라 유다 백성의 탄원과 고백을 예레미야가 하고 있습니다. 즉 예레미야 개인의 탄원과 고백을 통해 유다 백성의 탄원과 고백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가 유다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이것은 유다가 당시에 처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1. 예레미야의 고통(1-18)

 

유다 왕국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고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부패했고 정치적으로도 부패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분노의 매가 주어집니다(1).

 

하나님은 유다를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종일 손을 들어 자주 치셨습니다(2-3). 그래서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고 뼈들을 꺾으셨습니다. 고통과 수고가 유다를 에워쌌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들을 사슬로 무겁게 옭아매어 나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4-7).

 

유다가 하나님께 기도해도 물리치시고 길들을 막아 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엎드려 사냥감을 노리는 곰과 사자같이 유다를 무섭게 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과녁으로 삼으시고 화살을 당겨 맞추셨습니다(8-13).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14-16).

 

유다는 조롱거리, 노랫거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쓴 것들을 먹고 조약돌로 이를 꺾으시고 재로 덮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 쏟아 부으신 진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얼마나 무서운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하고 영광스러웠던 이스라엘 왕국은 죄악으로 인해 둘로 쪼개지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되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의 잔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누리던 모든 영광과 기쁨은 사라지고, 황폐함과 슬픔과 고통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고 토로했습니다(18). 이것은 예레미야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다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이었습니다.

 

2. 은혜와 소망의 하나님(19-33)

 

이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자신과 유다 민족이 당하는 고초와 재난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19). 예레미야는 그 고초와 재난을 기억하고 낙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었더니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합니다(21). 그 이유가 22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22).

 

이것을 표준새번역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고, 현대인의 성경은 “여호와의 크신 사랑 때문에 우리가 소멸되지 않았으니 그의 자비가 영원하구나”라고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유다 민족을 완전히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인자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여호와께서 기업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23-24).

 

그래서 사람은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26).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그 구원을 기대하고 회개하며 오늘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고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닙니다(33).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가게 하시고 믿음 안에서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업된 백성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매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믿음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한 징계입니다.

 

3. 구원의 하나님(34-66)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 재판을 굽게 하는 것,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34-36).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자기의 죄 때문에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수 없습니다(37-39).

 

따라서 유다 백성이 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조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40).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41).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의 범죄과 반역함으로 진노를 내리셨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가리시고 추격하시고 긍휼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유다 왕국을 여러 나라 가운데 쓰레기와 폐물로 삼으셨습니다. 원수들이 유다를 행하여 크게 입을 벌리게 하시고 두려움과 함정과 파멸과 멸망이 임하게 하셨습니다(42-47).

 

이 모든 과정을 본 예레미야는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살펴보시고 돌아보실 때까지 예레미야의 눈물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머리 위로 넘치는 것과 같이 원수들이 유다를 파괴하고 백성들을 죽였습니다. 마치 새처럼 사냥했습니다(48-54).

 

예레미야는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57-58).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그의 생명을 속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비방, 모해, 조롱을 다 보시고 들으셨습니다(59-63). 이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원수들의 손이 행한대로 보응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저주를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64-66).

 

하나님은 위기에서 예레미야를 건져주시고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유다 백성에게도 70년이 후에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70은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완전히 씻어주시고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우고 그들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세상에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그 택한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속량입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해주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결론

 

유다의 죄악을 속량해주신 하나님께서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속량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합당하게 믿음과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김순정 목사(말씀사역원 본부장)

 

[김순정목사 설교] 속량의 하나님:리폼드뉴스 (reform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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