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청교도들의 묵상

라은성목사(서울)

by 김경호 진실 2021. 4. 9. 09:36

본문

청교도들의 묵상

 

 

라은성(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영적 성장은 신자들의 기독교인의 삶의 부분이다.1 참된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그의 기름 부으심에 참여한 자들이다.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와 말씀 공부를 행하지만 묵상의 부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데 주저했다. ‘묵상’(meditation)이란 단어는 기독교의 주요한 훈련으로 여겨졌고, 기도 생활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뉴 에이지 영성과 연관이 되면서 퇴색되었다. 또 불교와 힌두교와 같은 거짓 종교들과 연관된 실천으로서 성경과 무관하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한 묵상 형태들은 살아계신 인격적 하나님을 위해 활동하고 듣기보다는 우주적 정신(Cosmic Mind)이라 불리는 것에 몰입하거나 세계로부터 분리하여 마음을 비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조용한 묵상과 장기간의 묵상을 그들로부터 배울 점도 없지는 않다.2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애정과 죄로부터 이원함을 위해 기독교 교회는 성경적 묵상을 행했다. 특히 청교도 시절 수많은 목회자들은 묵상에 관해 설교했고 그 방법에 관한 글들을 남겼다.3

 

정의

 

'묵상’이란 단어는 meditate 또는 muse로서 “생각하다” 또는 “숙고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윗의 묵상은 시편 39:3에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에서 나타난다. 이처럼 성경은 여러 곳에서 묵상을 언급하고 있고 특히 시편에서 다른 곳보다 많은 표현을 접할 수 있다.4 생각하고, 숙고하고, 또는 명상하는 것은 묵상하는 주체를 예상한다. 형식적 묵상은 중대한 주체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철학자들은 우주와 물질과 같은 개념에 관해 묵상하고, 신학자들은 하나님, 영원한 작정, 그리고 사람의 의지에 관해 숙고한다. 청교도들이 말하는 성경적 묵상이란 삼위일체와 그의 말씀에 대하여 숙고하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쓰인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묵상하는 것에 고정시킴으로 청교도들은 성경적 내용을 가지고 상상하는 것에 대하여 싸웠고, 행위를 나타내므로 관상을 강조하는 거짓 영성이나 신비주의와 같은 것으로부터 자신들을 이원화시킬 수 있었다. 청교도들은 묵상은 생각(mind)과 마음(heart)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명상할 때 그들은 자신의 지성과 감성을 가지고 주제를 접근해 갔다. 예를 들면,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 d. 1686)은 묵상을 정의내리기를, “기억해야할 하나님의 진리들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는 생각의 거룩한 행위”라고 했다.5 “참된 묵상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신의 마음을 불태우기 위해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하나님의 진리들로 바뀌기 위해 묵상하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죄를 묵상할 때를 말한다”고 에드먼드 칼라미(Edmund Calamy, 1600-1666)는 말하면서 선을 행하기 위해 묵상은 반드시 3가지 문들, 즉 이해의 문, 마음과 애정의 문, 그리고 실천적 삶의 문 등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걸으시는 것처럼 걷기 위해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를 존중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고 그에게 순종하기 위해 살아가야만 한다.”6

 

묵상은 청교도들의 삶 속에 다른 임무들을 고양시켰던 매일의 임무였다. 마치 엔진오일과 같이 묵상은 은혜의 수단, 즉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기도하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명한 다른 규례들을 부지런히 사용하는데 애용하고, 은혜의 표지, 즉 회개, 믿음, 그리고 겸손과 같은 것을 심화시키고, 그리고 타인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료 기독교인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계를 강화시킨다.

 

두 가지 묵상

 

두 가지 묵상이 있는데 하나는 경우적(occasional)이고 다른 하나는 신중한(deliberate) 묵상이 있다. 칼라미는 “하늘의 것들에 관해 갑작스럽고, 간단하고, 경우적인 묵상이 있고, 그리고 진중하면서도 의도적이고, 그리고 신중한 묵상이 있다”고 했다. 경우적 묵상은 “자신의 사상들 속에 하늘의 묵상을 하도록 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자들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처럼”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모든 것을 사용한다. 시편 8편에서 달과 별들을 경우적으로 묵상했고, 잠언 6장에서 솔로몬이, 그리고 요한복음 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다.7 이런 점에서 토머스 맨턴(Thomas Manton, 1620-1677)은 “하나님은 여러 형태들과 의식들을 통해 옛 교회를 훈련시키시고, 공동 목적을 위해 영적 사상들을 일으키시고, 신약성경에서 우리 주님은 사람들 가운데 정규적인 기능들과 의무들에서 취할 수 있는 비유들과 유사점들을 가르쳤고, 일상적 생활에서 우리들은 하늘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맡고 있는 세상적인 일들, 즉 일터든지, 들판이든지, 베틀에 않았든지 간에 힘쓸 것이다”고 했다.8 이렇게 경우적 묵상, 즉 즉흥적인 묵상은9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디서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신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맨턴은 “은혜를 받은 마음은 마치 무희(alembic)와 같아서 직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필요한 묵상을 유출해 낼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10

 

하지만 경우적 묵상에 위험성이 있는데 마치 로마 카톨릭 영성처럼 말씀을 떠나 방황할 수도 있고, 미신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은 반드시 거룩한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11 경우적 묵상을 둘러싸고 청교도들 가운데서도 견해가 나눠진다. 예를 들면 Pilgrim's Progress and Traditions in Puritan Meditation을 쓴 마일로 카우프만(U. Milo Kaufmann)에 따르면 청교도 묵상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전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학적 입장에서 보는 조셉 호올(Joseph Hall)은 1606년의 자신의 작품, Art of Divine Meditation에서 청교도들 가운데 묵상에 관한 문학작품을 쓰는데 공헌하였는데 묵상을 말씀의 내용으로만 제한시킴으로 묵상에 있는 상상을 억제했다. 이러한 견해는 1650년대에 작품을 쓴 아이작 앰브로스(Isaac Ambrose, 1604-1663)와 토머스 후커(Thomas Hooker, 1586-1647)와 이보다 후기에 작품을 쓴 존 오웬(John Owen, 1616-1683)과 어드먼드 칼라미(Edmund Calamy, 1600-1666)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들에 대하여 카우프만은 로마 카톨릭 저자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삶에 나타난 사건들을 묵상하기 보다는 성경의 교리들이나 특별한 명제들을 묵상”하였다고 주장했다.12 카우프만에 따르면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는 이러한 전통에서 벗어나서 성례들과 하늘에 관해 묵상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특별히 십스는 영혼이 고삐 풀린 상상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겠지만 “그것으로부터 더 많은 선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혼처럼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잔치한다는 의미에서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지상적 의미로 하늘의 것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수많은 영적인 것을 가지고 . . . 우리의 상상의 넓은 들판을 걷는 것이다”고 했다.13 믿음의 대상들을 감각의 대상들과 비교하면서 상상을 강조했던 백스터는 십스가 쓴 Soules Conflict에 의해 감동을 받았다고 카우프만은 믿었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자신이 쓴 The Pilgrim’s Progress에서 신자들의 영적 순례에 영향을 끼치는 폭넓은 주제들에 자신의 상상을 적용했던 것은 사실이다.14

 

카우프만은 성경을 떠나서 상상의 방종을 청교도들이 두려워했다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청교도들은 안셀름, 로욜라의 익나티우스, 그리고 다른 로마 카톨릭인들의 영성의 과용이 오감을 통해 상상을 펼칠까봐 두려웠다.15 더욱이 호올(Hall)과 앰브로스는 감성의 이용과 성경적 상상에 주어진 자유를 고려하지 못했다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16 호올의 Contemplations과 앰브로스의 Looking Unto Jesus는 성경의 제한점들을 범하지 않고 묵상을 자유스럽게 사용했다. 이러한 균형은 청교도 전통에 필수적이었고 그들은 어떻게 우리가 성화된 상상을 사용할 것을 잘 지침 하여준다.17

 

묵상에 있어서 또 다른 형태는 매일, 그리고 신중하게, 다시 말하면 시간을 정하여 하는 것이다. 칼라미는 신중한 묵상에 대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 . . 어떤 시간을 분리하여 개인의 방이나 개인의 시간을 가지고, 하늘의 것들을 신중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묵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은 “벌들이 꽃에 머물고 거하는 것처럼” 하나님, 그리스도에게 머무르는 것이다. 또 숙고하는 영혼의 행위를 통해 영혼은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고, 원인들, 열매들, 그리고 특성들을 포함한 주제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다.18 토머스 화잇(Thomas White)은 성경, 기독교의 실천적 진리들, 섭리적 경험들, 그리고 설교들에서 신중한 묵상을 끄집어낼 수 있다고 했다. 설교는 특별히 묵상을 위해 정말 귀한 것이다: “한 가지 설교만을 듣고 묵상하는 것보다 두 가지 설교를 듣고 묵상하는 것이 훨씬 귀한 것이다.”19 토머스 가우지(Thomas Gouge)는 신중한 묵상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말하고 있다: “정해지고 신중한 묵상은 어떤 영적이고 하늘의 주제에 생각을 심각하게 적용시킨다. 자신에게 경고하며, 자신의 애정이 일어나게 하며, 그리고 자신의 해결점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또 죄를 미워하는 것으로 이르도록 한다.”20 리처드 백스터는 “정해지고 엄숙한” 묵상은 “경우적이고 몹시 서두르는” 묵상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며, 마치 일상적 일에서 행해지는 자연스러운 기도들과 시간을 정하여 하는 기도의 차이점과 같다고 했다.21 두 종류의 묵상은 경건을 위해 필수적이며 머리와 마음에 필요한 것을 채운다.22 마음을 적용하지 않는 묵상은 단지 공부하는 것에 불과하다: “연구는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묵상은 진리를 영적으로 증진시키는 것이다. 전자는 금맥이라고 하면 후자는 금을 찾는 것이다. 연구는 따뜻하게 하고 영향을 주는 겨울의 태양이라고 하면 묵상은 . . .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것이고 그것을 사랑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는 것이다.”23

 

임무와 필요성

 

  첫째, 청교도들은 묵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다. 그들은 이를 위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인용한다(신 6:7; 32:46; 시 19:14; 49:3; 63:3; 94:19; 119:11, 15, 23, 28, 93, 99; 143:5; 사 1:3; 눅 2:19; 4:44; 요 4:24; 엡 1:18; 딤전 4:13; 히 3:1). 묵상하는 것을 실패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고 경건치 않는 자로 나타날 것이다(시 1:2).

 

   두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신 서신으로서 그의 말씀을 묵상해야만 한다“우리는 성급하게 그 말씀을 대하지 말아야만 한다. 우리에게 그것을 보내신 그의 사랑과 문학적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지혜를 묵상해야만 한다.”24 이러한 명상은 우리의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일으킨다. 다윗에 의하면, “또 나의 사랑하는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이다”(시 119:48).

 

   세 번째, 묵상 없이 건전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맨턴(Thomas Manton)에 의하면, “믿음은 약속들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궁핍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시편 119:92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고 했다.”25 왓슨에 의하면, “묵상을 하지 않는 기독교인은 무기 없는 군인이거나 도구를 가지지 않은 일꾼이다. 묵상이 없는 하나님의 진리들은 우리들에게 머물지 않고, 마음은 굳어지고, 기억력은 쇠퇴하고, 그리고 묵상이 없으면 모든 것을 상실하고 만다.”26

 

   넷째, 묵상이 없으면 전파된 말씀은 우리들에게 남아있지 못한다. 묵상이 없이 성경을 읽는 것은 날것으로 음식을 십지도 않고 삼키는 것과 같다고 스커더가 말했다.27 리처드 백스터도 하는 말이 “어느 사람이 많은 것을 먹지만 그 모든 것을 소화시키지는 못한다”고 했다.28 왓슨도 하는 말이 “진리의 지식과 진리의 묵상 간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마치 횃불의 빛과 태양의 빛과 같은 것이다. 정원에 등이나 횃불이 놓여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태양은 우리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식물들을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한다. 이처럼 지식은 이해에 빛나는 횃불과 같은 것으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묵상은 빛나는 태양과 같은 것으로 우리들에게 애정을 심어주며 보다 마음을 따뜻하게 그리고 거룩하도록 이끈다. 묵상은 진리로 우리의 삶을 이끈다.”29

 

   다섯째, 묵상이 없으면 우리의 기도는 아무런 효력을 읽고 만다. 맨턴에 의하면, “묵상은 말씀과 기도 간에 있는 의미와 같은 것이고 그 둘 모두와 관련을 맺는다. 말씀은 묵상을 살찌우고, 묵상은 기도를 살찌운다. 우리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들어야만 하고 우리가 허무하지 않음을 묵상해야만 한다. 이러한 임무들은 항상 나란히 함께 한다. 묵상 전에는 듣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 후에는 기도가 따라야만 한다.”30

 

   여섯째, 묵상에 실패한 기독교인들은 진리를 변호할 수 없다. 그들은 척추가 없는 것과 같고 자기 지식이 전혀 없는 것과 같다. 맨턴에 의하면, “묵상에 낯선 사람은 자신에게도 낯선 사람이다.”31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바로 묵상이다”고 왓슨은 말한다.32 “그래서 묵상의 필요성을 당신이 깨닫게 된다”고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말하면서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 전에 그 임무를 완성해야만 한다”고 했다.33

 

   마지막으로, 그러한 묵상은 설교 준비에 필연적이다. 묵상 없이 설교는 이해력이 부족하게 되고, 감정이 메마르게 되고, 그리고 적용이 풍성하지 못하다. 헬라어 신약성경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벵겔(Bengel)이 명상의 본질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Te totam applica and textum; rem totam applica ad te”(본문에 너의 모든 자신을 적용하라. 본문의 문제를 너 자신에게 적용하라.)

 

묵상의 주제

 

   청교도들은 여러 주제, 대상, 그리고 자료들을 묵상을 위해 채택했다. 괄호안의 숫자는 청교도들이 언급한 횟수를 나타낸다. 아래의 요소들은 개혁파 조직신학의 전통들에서 나온 것이다.

 

서언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3)

    기독교 변증(1)

 

합당한 신학

    하나님의 속성(7)

    하나님의 사역과 섭리(7)

    하나님의 영광(4)

    하나님의 위대함(3)

    하나님의 자비(3)

    창조자 하나님(2)

 

인간

    죄의 죄성과 우리의 개인적 죄(9)

    마음의 타락과 거짓됨(5)

    아담 안에서 타락과 하나님으로부터 소원(4)

    인간의 허무함(4)

    영혼의 불멸함(3)

    몸의 연약함(2)

    지상적 위로들의 불확실함(1)

    탐욕죄(1)

    하나님과 인간 비교(1)

 

기독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8)

    그리스도의 사랑(5)

    그리스도의 인격(4)

    복음의 신비와 이적(4)

    그리스도의 속성(2)

    그리스도의 직무(2)

    그리스도의 생애(2)

    그리스도의 상태(1)

 

구원과 기독교인의 삶

    하나님의 약속(7)

    은혜의 경험적인 증거들을 위한 자기 점검(5)

    신자들의 풍요한 특권(3)

    성령의 은혜와 인격(3)

    믿음의 유익(2)

    성화(2)

    기도(2)

    하나님의 계명(2)

    하나님의 훈계(2)

    배교의 위험(1)

    구원받은 자들의 적은 수(1)

    영적 위험성(1)

    사랑, 기쁨, 그리고 소망(1)

    안식일(1)

    자기 부인(1)

 

교회

    하나님의 규례(5)

    성찬(4)

    세례(2)

    말씀을 듣고 읽는 것(2)

    교회의 기쁨과 슬픔(1)

 

종말

    하늘(10)

    죽음(8)

    심판(7)

    지옥(7)

    영원)5)

 

청교도들은 이러한 주제들을 하나님의 분명하고, 능력있고, 그리고 유용한 진리들이라고 불렀다. 조셉 호올(Joseph Hall)과 같은 청교도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자세하게 이러한 목록들을 소개했다. 호올은 87개의 주제들을 묵상할 것을 제안했다:

 

명예와 위대함, 무지, 타락, 거룩한 삶, 농담, 악한 일, 하나님의 약속, 세상을 사랑, 만족, 외식, 행복, 세상과 동행, 하늘과 지상, 일과 수고, 부유함, 하늘과 지옥, 죽음, 고난, 경건한 전투, 죄, 성공, 은혜 안에서 성장, 교만, 죄를 미워함, 편견, 탐욕, 기도, 사랑, 신성모독, 존귀, 유혹, 수단사용, 예배, 순종, 야망, 기만, 단명한 삶, 자기 점검, 불행, 신앙과 철학, 희락, 신실한 친구, 분파와 진리, 슬픔과 걱정, 두려움, 이단과 기독교인, 마음과 생각, 거짓종교, 자기 상해, 생각과 방언, 시간 사용, 보살핌, 섭리, 불쾌함, 친분, 비방, 비난, 시기, 세속적 쾌락, 선한 모본 따르기, 시간, 즐김, 선행, 열매, 어리석음, 선을 따른 것, 은자, 행복한 삶, 하늘나라의 지침, 하늘나라를 향한 갈구, 영적 투쟁, 공판에서 담대함, 하늘나라의 마음, 겸손, 생의 목적, 악을 선으로 갚음, 미치는 것, 그리고 묵상 훈련, 등이다.34

 

   대체적으로 청교도들은 묵상의 주제들 가운데 하늘의 것, 즉 하나님을 가장 잘 알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고, 그리고 즐길 수 있는 장소인 하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하늘, 그리고 성도들이 영광 중에 영광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처럼 성도들이 즐거워하는 하늘에 관한 주제였다. “묵상은 다른 모든 임무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묵상의 생명이다”고 백스터는 말했다.35 하늘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묵상의 최상의 주제였던 것이다:

 

1) 그리스도는 현재 하늘에 계시고,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연합을 구성한다. 그는 우리의 지혜, 의, 성화, 그리고 구속이다. 하늘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의 모든 것의 중심이시다.

 

2)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만일 가졌다면, 즉 하늘의 마음을 가졌다면 마치 이 세상에서 하늘의 관점으로 살아간다면, 현재 악한 세상에서 기독교인들로서 살아갈 수 있다.

 

3) 하늘은 우리 순례의 목적이다. 우리는 지상에서 순례를 행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할 하늘을 향해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의 여행을 행한다.36

 

 

청교도들은 하늘과 다른 주제들에 관한 묵상들이 3가지 경우에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첫째, 특별한 묵상은 예배, 특히 설교에 관련하여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칼라미에 의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설교를 듣기를 원하시며, 들은 설교들을 묵상하기를 원하신다”고 했다.37 제임스 어셔는 “모든 설교는 묵상을 위한 준비이다”고 했다.38 훌륭한 설교는 건전한 교리를 가지고 마음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애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설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고 죄로부터 의지가 돌아서도록 한다. 묵상은 생각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므로 애정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설교를 묵상하지 않게 되면 그것들로부터 얻어지는 유익들도 멈추게 될 것이다.

 

   리처드 백스터는 “왜 그렇게 많은 설교가 우리 안에서 상실되고 있는지, 교수들이 설교를 수없이 행하지만 영혼의 배고픔을 느끼는 지 나는 묵상의 무의식적인 행위들과 무지들 외에는 다른 이유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또 “일부 듣는 자들은 영적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이유는 그들이 맛을 보거나 소화시키지도 않기 때문이고” 일부 다른 자들은 영적 다식증에 빠져 있지만 “그들은 맛을 보지만 소화시키지는 않는다”고 했다.39

 

   둘째, 주님의 성찬을 올바로 받기 위해 신자는 자신의 죄를 위해 희생당하신 주 예수님에 대한 묵상을 해야 한다. 토머스 화잇은 “자신의 준비, 부수물, 그리고 이에 따르는 임무들을 묵상하라.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라.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라. 그의 인격의 탁월하심, 그의 고난의 위대함,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의를 만족케 했는지 묵상하라. 성례의 우수성, 속성, 그리고 사용에 대해 묵상하라”고 했다.40 칼라미는 성례 동안 묵상해야하는 12가지 주제를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성부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사랑, 자신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이러한 성례전의 우수성, 자신의 무가치성, 자신의 영적 필요성, 무가치한 자신의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은혜를 받은 자의 행복, 성례의 요소들[빵과 잔], 성례의 행위, 성례의 약속,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헌신 등이다.”41 에드워드 레이멀즈(Edward Reynolds)와 같은 어떤 청교도들은 성찬 동안 신자들의 묵상을 도울 수 있는 글들을 썼다.42 존 오웬은 묵상, 점검, 후원, 그리고 기대가 내포된 성찬식을 위해 어떻게 준비할 것은 설명했다.43 모든 신자들은 이러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한다.44

 

   셋째, 모든 안식일은 묵상을 위해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다가올 일주간을 위한 영적 양식들을 쌓아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행해야하는 영적 자양분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안식일은 “영혼을 위한 시장 보는 날”이라고 불린다.

 

   마지막으로, 나타니엘 래뉴(Nathanael Ranew)와 같은 청교도들은 묵상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면서 신자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여러 가지 지침을 제시했다. 내뉴는 “어린 기독교인들” “보다 성장했지만 나이 든 기독교인들” 그리고 “나이든 기독교인들”을 위한 장들을 마련했다.45

 

 

묵상의 방법

 

   청교도들은 묵상을 위한 준비할 것과 규칙들을 준비했다.

 

자주  

 

첫째, 신적 묵상은 자주해야만 한다. 하루에 두 회 정도, 시간이 허락되면,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바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처럼 주야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와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46 묵상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윌리엄 배이즈(William Bates)는 “만일 새가 보금자리를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알들이 차가워져서 부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주 알들을 품어주면 부화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다. 이처럼 오랫동안 종교적 임무를 게을리 하면 우리의 애정도 식어지고, 냉랭하게 되어 거룩하게 사는 것이나 영혼의 위로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47

 

두 번째, 묵상을 위한 시간을 정하라고 청교도들은 권한다. “생략하고픈 많은 유혹들에 반대하여” 당신을 보호하거나 임무를 행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정하라”고 백스터는 권한다.48 아침 일찍은 가장 유용한 시간이지만 묵상은 나머지 날 동안을 잘 대처 할 수 있다(출 23:19; 욥 1:5; 시 119:147; 잠 6:22; 막 1:35). 저녁도 좋은 시간이다(창 24:63; 시 4:4). 바쁜 주중도 언제든 시간을 내어 정기적으로 묵상하는 것이 좋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 하도다”(시 16:7).49

 

     묵상의 은혜로운 시간들을 위해 주일을 사용하라. Directory for the Publique Worship of God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은 “회중이 공적으로 엄숙한 모임을 가지는 사이나 아니면 후에 시간이 남게 될 때 설교를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되새기라”고50 권한다. 토머스 가우지는 “신적 묵상의 이런 임무의 달콤한 맛을 보았다면 잡담하는 시간이 없을 것이고, 주일에 설교 듣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51 백스터는 또 말하기를, “보다 적당한 날은 우리 주님께서 땅에서 부활하셨던 날보다도 하늘에 승천하신 날이고,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로 가득찬 날이고 천국을 소유하도록 하신 날이다.”52

 

     묵상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사용하라. 청교도들에 따르는 예들을 보면, “1.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특별히 부흥시킬 때 2. 고통, 두려움, 보호, 또는 유혹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찾기 어려울 때 3. 죽음에 임박했을 때, 나이가 들거나 육체가 연약해지거나, 또는 죽음을 직면했을 때 우리의 운명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53 4. “설교에서나 성찬에서 또는 하나님의 심판, 자비, 또는 행위를 직면했을 때 아연이 뜨거울 때 두들기는 것이 가장 좋을 때이다(시 119:23).”54 5. “중대한 임무를 행하기 전에 마치 주님의 성찬을 거행하기 전 그리고 심오하게 겸허한 시간을 가져야하는 시간 또는 안식일 전이다.”55

 

세 번째, “당신이 자신의 영혼에 전해졌던 느낄 수 있는 유익을 발견할 때까지 정규적으로” 묵상하라. 베이즈는 묵상이 젖은 나무에 불을 지피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계속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다. 묵상을 시작할 때, 먼저 얼마간의 연기가 나거나 불꽃이 가끔 일어나기도 할 것이지만 “마침내 하나님께로 향해 올라가는 거룩한 애정의 불꽃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베이즈는 “불길이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56

 

     불길이 올라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게으름이나 영적 무력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마귀는 이런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할 것이다”고 맨턴은 말하면서 “사탄은 그 두 가지를 이용하면서 당신의 영혼을 고문할 때 하나님의 일이 속박이라고 느낄 것이다.”57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묵상에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권하지는 않았다.

 

 

--------------------------------------------------------------------------

1 베드로후서 3:18과 골로새서 3:1을 보라. “묵상은 적용하며, 묵상은 치유하며, 묵상은 지도한다.” Introduction to “Divine Meditations and Holy Contemplations,” in The Works of Richard Sibbes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2001), 184. 또 Heidelberg Catechism, Questions 32, 45, 49, 64를 보라.

2 Richard J. Foster, Celebration of Disciplin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78), 14-5.

3 묵상과 시정 간에 밀접한 관계를 이룩했던 Louis Martz는 Richard Baxter가 말하는 묵상에 관해 비판적 글을 썼다(The Poetry of Meditation [New Haven: Yale, 1954]). Bunyan이 쓴 Pilgrim Progress에 등장하는 청교도 묵상의 중요성을 U. Milo Kaufmann은 피력했다(The Pilgrim's Progress and Traditions in Puritan Meditation [New Haven: Yale, 1966]). Barbara Lewalski는 묵상에 대한 프로테스탄트 형식을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썼다(Donne's “Anniversaries” and the Poetry of Praise, the Creation of a Symbolic Mod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3]과 Protestant Poetics and the Seventeenth-Century Religious Lyric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0]). Norman Grabo는 칼빈적 생각이 프로테스탄티즘을 17세기에 이르러 묵상 예술을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했다는 Martz의 논문에 반박했다(“The Art of Puritan Devotion,” Seventeenth-Century News 26, no. 1 [1968]: 8). Frank Livingstone Huntley도 역시 철학적으로 플라톤적이고, 심리학적으로 어거스틴적이고, 그리고 신학적으로 바울적이고 칼빈주의적이고, 아리스토틀식이고 토미즘적인 로마 카톨릭 묵상과 비교하여 잘 정리했다(Bishop Joseph Hall and Protestant Meditation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 A Study With the texts of The Art of Divine Meditations [1606] and Occasional Meditations [1633] [Binghamton, N.Y.: Center for Medieval & Early Renaissance Studies, 1981]). Simon Chan은 청교도 묵상을 신선하게 역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The Puritan Meditative Tradition, 1599-1691: A Study of Ascetical Piety” [Ph.D. diss., Cambridge University, 1986]). 그는 청교도 묵상은 17세기 후반에 보다 방법론적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했다.

4 창세기 24:63; 여호수아 1:8; 시편 1편; 시편 63:6; 시편 119:48 등을 보라.

5 Thomas Watson, Heaven Taken by Storm (Morgan, Penn.: Soli Deo Gloria, 2000), 23. 이와 비슷한 정의를 내리는 청교도들을 보려면, Richard Greenham, “Grave Counsels and Godly Observations,” in the Works of the Reverend and Faithful servant of Jesus Christ M. Richard Greenham, ed. H. H. (London: Felix Kingston for Robert Dexter, 1599), 37; Thomas Hooker, The Application of Redemption: The Ninth and Tenth Books (London: Peter Cole, 1657), 210; Thomas White, A Method and Instructions for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with Instances of the several Kindes of Solemn Meditation (London: for The Parkhurst, 1672), 13.

6 Edmund Calamy,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London: for The Parkhurst, 1634), 26-28.

7 Calamy, 14-5.

8 Thomas Manton, The Works of Thomas Manton, 17:267. Cf. A Gracious heart, like fire, turns all objects into fuel for meditation (The Sermons of Thomas Watson [Ligonier, Penn.: Soli Deo Gloria, 1990], 247).

9 Huntley, 73.

10 Manton, 17:267. Cf. “A Gracious heart, like fire, turns all objects into Fuel for Meditation” (The Sermons of Thomas Watson [Ligonier, Penn.: Soli Deo Gloria, 1990], 247).

11 Huntley, 74.

12 Kaufmann, 126. 그는 이들 중 토머스 후커가 가장 상상을 거부했다고 했다: “우리의 생각들을 덧없고 공허한 상상들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의 매일과 일용한 양식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의 진리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The Application of Redemption: The Ninth and Tenth Books, 232.

13 Kaufmann, 144-5.

14 Kaufman, 150-251.

15 Peter Toon, Meditating as a Christian (London: Collins, 1991), 175-8; 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us, trans. Anthony Mottola (New York: Doubleday, 1964).

16 Huntley, 44-54.

17 Cf. Peter Toon, From Mind to Heart: Christian Meditation Today (Grand Rapids, Mich.: Baker, 1987), 99-100.

18 Kaufmann, 22-3; Works of Greenham, 38.

19 White, A Method and Instructions for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with Instances of the several Kindes of Solemn Meditation (London: for Tho. Parkhurst, 1672), 17-20.

20 Thomas Gouge, Christian Directions, shewing How to walk with God All the Day long (London: R. Ibbitson and M. Wright, 1661), 65. 어떤 청교도들은 신중한 묵상을 또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눴다. 묵상된 대상을 직접적인 초점에 만추는 것과 묵상하고 있는 사람을 숙고하고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직접적인 명상은 “이해를 위한 관상적 부분이고” 숙고하는 묵상은 “양심의 행위”를 말한다. 직접적인 명상은 지식으로 생각을 밝게 하고, 숙고하는 묵상은 선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다. 숙고하는 묵상은 교의적이어서 그 대상으로 말씀을 붙잡는 것이고, 또는 실천적이어서 그 대상으로서 우리의 삶을 붙잡는다. Manton, 17:268.

21 Richard Baxter, The Saints’ Everlasting Rest (Ross-shire, Scotland: Christian Focus, 1998), 553. Cf. White, 14.

22 Henry Scudder, The Christian Man’s Calling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n.d.), 103-104. Cf. The Works of William Bates (Harrisonburg, Va.: Sprinkle, 1990), 3:113-65.

23 Thomas Watson, Gleanings from Thomas Watson (Morgan, Penn.: Soli Deo Gloria, 1995), 106.

24 Thomas Watson, Sermons of Thomas Watson, 238.

25 Thomas Manton, The Works of Thomas Manton, 17:270.

26 Watson, Sermons of Thomas Watson, 238.

27 Scudder, The Christian's Daily Walk, 108.

28 Baxter, The Saints ' Everlasting Rest, 549.

29 Watson, Sermons of Thomas Watson, 239.

30 Manton, The Works of Thomas Manton, 17:272.

31 Ibid., 271.

32 Watson, Sermons of Thomas Watson, 240.

33 James Ussher, A Method for Meditation: or, A Manuall of Divine Duties, fit for every Christians Practice (London: for Joseph Nevill, 1656), 21.

34 Joseph Hall, The Art of Meditation, 37-60.

35 Baxter, The Saints’ Everlasting Rest, 702.

36 Toon, From Mind to Heart, 95-96. 하늘에 대한 묵상을 보다 자세하게 보려면, White, A Method and Instructions for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281-94; Baxter, The Saints' Everlasting Rest, 620-52; The Select Works of Thomas Case, 1-232을 보라.

37 Calamy,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4.

38 Ussher, A Method for Meditation, 49.

39 Baxter, The Saints' Everlasting Rest, 549-50.

40 White, A Method and Instructions for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88.

41 Calamy,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88-96. Cf. Manton, The Works of Thomas Manton, 17:288-97.

42 Edward Reynolds, “Meditation on the Holy Sacrament of the Lord's Last Supper,” in The Whole Works of the Right Rev. Edward Reynolds (Morgan, Penn.: Soli Deo Gloria, 1999), 3:1-172.

43 Owen, The Works of John Owen, 9:558-63.

44 Cf.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Questions 171, 174, 175.

45 Nathaniel Ranews, Solitude Improved by Divine Meditation (Morgan, Penn.: Soli Deo Gloria, 1995), 280-321.

46 Calamy, The Art of Divine Meditation, 96-101.

47 William Bates, The Works of William Bates (Harrisonburg, Va.: Sprinkle, 1990), 3:124-25.

48 Baxter, The Saints' Everlasting Rest, 555.

49 The Works of William Bates, 126-27. 토머스 왓슨은 아침 묵상을 강력하게 권한다. (Sermons of Thomas Watson, 250-54).

50 “Of the Sanctification of the Lord's Day,” Directory for the Publique Worship of God.

51 Christian Directions, shewing How to walk with God All the Day long (London: R. Ibbitson and M. Wright, 1661), 66-67.

52 The Saints' Everlasting Rest, 560.

53 Ibid., 561-63.

54 William Fenner, The Use and Benefit of Divine Meditation (London: for John Stafford, 1657), 10.

55 The Works of Thomas Manton, 17:298.

56 The Works of William Bates, 3:125.

57 The Works of Thomas Manton, 17:299

 

 

지명교회까페 | 청교도들의 묵상 - Daum 카페

728x9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