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후 신학계에서는 성경 영감과 무오를 완전 부정하거나 왜곡하기 시작했다. 계시보다 이성을 우위에 두는 합리주의 신학이 성행하면서 성경의 초자연적 사건은 모두 배제되었다. 성경 완전 무오성은 비이성적인 소산으로 간주되었으며,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문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다”란 선언은 무시됐다.
성경의 부조화, 비과학성, 비역사성이 강조되었고, 근동 아시아의 역사와 비교하여 이스라엘의 신앙은 고대 종교의 하나로 규정지어졌다. 성경은 다양한 문서의 짜깁기로 이루어졌고, 시대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쓴 소설로 간주됐다. 벨하우젠은 문서설을 주장하며 모세오경이 전승 혹은 여러 자료들의 혼합물이라고 주장했다. 슈바이처는 그의 저서 역사적 예수 탐구에서 신약성경의 모든 이적을 부정했고, 성경의 본질을 윤리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또 다른 운동이 세계대전 발발 이후 발생했다. 합리주의 신학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신학계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 운동은 칼 바르트가 이끄는 신정통주의 신학 이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지향했고, 성경의 무오성을 자기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의 신학은 여전히 합리주의와 실존주의 그늘 아래 놓여 있었기에 성경의 역사성을 의미사로 해석하고, 성경은 주관적으로 적용할 때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바르트의 영향 하에 있던 맥커리는 “성경 자체는 계시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 공동체가 그 공동체의 토대가 되었던 원초 계시에 접근하기 위해 열어놓은 하나의 중요한 길이다”라고 피력했다. 그는 성경이 계시의 무오한(infallibility) 기록이 아니고, 이성적이며 주관주의적인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앙하는 이성과 합리적 이성을 조화시켜 보려고 시도하였다.
성경이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이 완전하다는 신앙이 점점 사라지면서 성경을 기반으로 세워졌던 모든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구라파의 수많은 교회가 몰락하고, 교회 건물은 레스토랑이나 카페, 서점 등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복음주의 학자들은 지난 1978년에 ‘성경 무오성 국제 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로 모여 성경의 영감과 완전 무오성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심의회는 지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세계 전도회의’(The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와 동일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두 협의회에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가 기록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신적영감과 진실성 및 권위와 성경 자체가 단언하는 모든 것에서 오류가 없고, 신앙과 행위, 교리와 신학의 유일한 정확무오한 법칙임을 믿는다고 선언했다.
성경 완전 무오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비단 국외적인 활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혁적 신앙을 견지하는 교회 역시 지난 193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경 부분 무오설 혹은 문서설과 관련해 박형룡 박사가 비판적인 포문을 연 이래로 꾸준히 도전해 왔다. 그러나 성경 완전 무오성을 부정하는 자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으며, 설교에까지 합리주의 혹은 신정통주의 사상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러므로,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기반이 되는 성경의 절대 권위를 수호하고 적극적인 연구를 시행해야 한다. 교단 총회는 이를 위하여 목회자 양성기관인 신학교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여 개혁주의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해야 한다. 성경의 영감과 완전 무오성은 인간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성경이 자증하고 있는 바이다. 이를 밝히 드러내는 일은 당연한 개혁신학의 사명이라고 할 것이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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