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원어의 묘미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성경 번역자들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언어유희나 이중 의미를 지닌 헬라어 단어를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번역어는 필연적으로 원문의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언어유희나 이중 의미를 잃게 됩니다.
간단히 네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아모스 8:1-3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보이신 여름 과일 한 광주리요”
‘여름 과일’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어떤 논리적 연결이 있을까요? 번역문에서는 이것을 정확히 옮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히브리어의 독특한 언어유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름 과일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קיץ (qayits)이며 끝은 קץ (qets)입니다.
히브리어의 언어유희를 놓치는 것이 예언의 신학적 메시지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번역성경을 읽는 독자는 히브리어의 언어유희를 놓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선지자 또는 하나님이 자신의 메시지를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데 얼마나 세심하시고 지혜로우셨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언의 말씀이 구두로 주어졌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암기하여 보존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저자들이 얼마나 위대한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전달자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중 의미가 있는 단어를 번역하는 것도 똑같이 어려운 일이며, 저자는 의도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그의 메시지에 적용되도록 의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두 가지 뛰어난 예가 있습니다.
복음서를 살펴보기에 앞서 구약성경의 한 구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수2:18)
여기에 나오는 ‘붉은 줄’의 히브리어는 תקות חוט השני (tiqvaṯ ḥûṭ haššᾱnî)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번역성경은 여기에 나오는 ‘티크바’를 ‘줄’(cord)로 번역합니다. ‘티크바’는 구약성경에 모두 36회 나오는데 인명으로 2회, ‘소망’이란 의미로 32회, ‘줄’로 사용된 예는 단 2회 뿐입니다(수2:18,21).
여호수아 본문의 문맥상 ‘줄’로 번역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후트’ 역시 ‘실,’ ‘줄’ 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유사한 의미의 단어가 연속해서 사용된 것입니다. 실제로 2장 21절에서는 ‘후트’가 생략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티크바’에 이중 의미가 있다면 이 구절을 ‘실낱 같은 희망’ 정도로 이해한다 해도 역시 문제될 것은 크게 없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경 저자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 판단하는 문제는 오직 번역자와 독자의 몫인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21에 나오는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의 유명한 대화 장면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여기에 ‘거듭나다’ 라는 헬라어 ανοθεν (anothen)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새롭게’ 또는 ‘다시’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번역자가 이 의미를 선택하면 7절의 말씀은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you must be born again)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러나 anothen은 ‘위로부터’ 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번역자가 이 의미를 선택하면 “내가 네게 위로부터 나야 한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you must be born from above)로 번역해야 합니다. 어떤 번역어도 헬라어처럼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헬라어 본문은 예수님께서 영적 거듭남에 대하여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유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중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단지 두 번째의 출생이 아니라 성령의 영향을 받는 출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의미를 함께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헬라어 anothen처럼 이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번역어는 없습니다. 번역자는 피할 수 없이 하나의 번역어를 선택해야 하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미의 충만함을 번역에서 약화시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또 다른 이중적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구절에서 발생합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이중의 의미를 지닌 중요한 헬라어 단어가 마지막 문장에 나타납니다. 헬라어는 εντος (entos)입니다. NRSV의 번역자들은 그것을 ‘가운데’로 번역합니다(the kingdom of God is among you; NRSV).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가운데’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NRSV 번역자들은 문장의 you가 헬라어로 복수이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번역했을 것입니다. 이 번역은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entos는 ‘안에’(within)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NIV). 번역가가 이 번역을 선택하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좀 더 내적인 성향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초점은 신자의 내적 성향에 더 강조점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중적 의미를 지닌 헬라어 ‘엔토스’를 사용한 것은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가르침의 내적인 심리적 차원과 공동체적 차원을 모두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는 부르심은 내면의 여정으로의 부르심이며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우리를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어 가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는 부르심은 또한 우리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적 차원으로 나아가 조화로운 사회, 봉사, 화평의 자질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워진 사회를 위해 섬기며 살도록 부르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고 부르시는 지상적이지만 동시에 초월적인 현실에 완전히 들어가려면 내적 여정과 외적 여정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러나 번역가는 이 두 가지 의미를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 있는 번역은 독자들에게 각주에서 대체 번역에 대한 안내를 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번약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성경 본문의 풍부함을 파악하려면 각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원문이 담고 있는 풍부한 의미를 최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 성경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번역이라도 원문의 언어적 요소, 다양한 문학적 요소 등을 모두 옮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고 - 성경 원어의 묘미 (reformedj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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