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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5~19)

경건

by 김경호 진실 2021. 11. 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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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 위에 서서 인내하며 살아갑시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김석호 목사(전주서문교회)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진 것’을, 곧 성전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말했습니다. 이를 듣고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눅 21:6)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답고 좋은 겉모양을 보고 있지만, 주님은 언젠가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없어질 성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BC 957년 솔로몬에 의해 세워지고 난 뒤에, BC 586년(약 370년 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1차로 무너졌습니다. 다시 70년 뒤 BC 516년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 의해 성전이 재건됩니다. 이 제2성전은 다시 약 590년 뒤인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집니다. 즉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지 약 40년 뒤에, 실제로 무너지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성전의 겉모양을 보고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여기에 오늘 본문의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무리 좋고 화려하더라도, 그것은 성전의 실체인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서 언젠가는 모두 없어진다는 교훈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이 땅의 모든 물리적인 것들은 다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서 언젠가는 모두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과 신약의 교회는 결국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대변하는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비록 이 땅에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때를 따라 아름답게 되었지만, 결국 다 썩어지고 없어지는 이유는 우리로 영원을 사모하고 또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육체의 눈으로 썩어지는 세상만 바라보지 말고, 영의 눈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라고 교훈하십니다. 썩어지고 없어지는 물리적인 세상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약 1000년 가까이 하나님 은혜의 결정체였던 아름답고 위대한 예루살렘 성전이 들어왔지만, 그들은 정작 그 은혜의 ‘기원이요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무너질 아름다운 성전은 보면서도 그리스도를 통해 미래에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주님은 지금 제자들과 우리에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필요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단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복만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바라보며 소망을 두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믿음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이 아름다운 성전이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이 날이 언제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언제 성전이 무너질 것이며 그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에게 약 40년 뒤에 실제적으로 로마에 의해 무너지게 될 성전에 대해서 답하시지 않고, 이 땅의 모든 눈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지는 때,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될 때에 대해서 답을 주십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 곧 ‘구원과 심판’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때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와 물리적인 세상은 단지 목적과 실체인 ‘영혼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수단과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세상을 무너지게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 크게 두 가지가 먼저 오게 될 것을 주님은 가르치십니다. 첫 번째는 미혹이요, 두 번째는 고난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믿음에 대한 도전이요, 두 번째는 우리의 삶에 대한 도전입니다. 8절에서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라 할 것’이라면서 우리에게 미혹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듣고’ 우리가 두려워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오직 ‘주신 말씀’ 위에 서 있는지, 아니면 ‘자기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식’에 서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 마지막 때에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직 ‘성경의 진리’는 하나뿐인데 세상의 원리에 따라 나오는 ‘수많은 일리 있는 것들’을 사람들은 진리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도 이와 같은 미혹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교회를 세우는 곳마다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구원에 이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율법과 절기’도 함께 지켜야 한다며 ‘믿음 플러스 알파’를 가르쳤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또 주님은 세상의 수많은 난리와 소요로 말미암은 혼란의 소식으로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루도 평화가 없는 세상! 사람을 상하게 하고 죽이는 악이 마지막이 될수록 더 강해질 것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때가 가까운 줄 아시고, 두려워 말고 담대하시길 축복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믿음에 대한 도전입니다. 주님을 바르게 믿지 못하도록 인위적인 것을 가미하여 타협하는 신앙을 갖게 하고, 두려움으로 믿음에서 한발 후퇴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약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 삶에 도전을 주십니다. 바로 본문 10~17절까지에 해당하는 말씀으로 우리가 마지막 때에 ‘고난’을 겪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을 것이며, 동시에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악함과 고난을 통해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고, 죄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됨으로 우리로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은 결국 우리의 믿음을 오직 하나님께 향하게 합니다. 인간의 어떤 시도와 노력도 소용없는 불가항력적 문제를 통해 우리의 무능을 드러내면서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믿게 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금을 연단하는 불처럼 ‘고난’으로 시련을 주셔서, 우리의 믿음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이끌 ‘믿음’을 가장 중시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육체의 원리로 미혹 받는 우리의 믿음을 세우기 위하여 고난을 주십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런 고난의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이런 미혹과 고난에서 연약한 우리가 헤쳐 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본문의 말씀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14절)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15절) 우리가 미혹을 받더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슨 미혹에든 대적할 수 있는 ‘구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18절) 또 고난 받을 때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않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시고, 또 이 믿음을 온전하게 세우시기 위해 비록 ‘미혹과 고난’이 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이를 때까지 40년 동안 언약의 말씀과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그렇게 말씀의 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악할수록 믿음을 연단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주님만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으로, 마지막 때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신자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의 요절인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너희의 인내 안에서 너희의 영혼(: 생명)을 얻으라(명령)’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는 바로 ‘영혼’과 ‘인내’입니다.

모든 미혹과 고난이 지난 후, 마지막 때에 물리적인 세상이 허물어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데 주님은 바로 이 나라를 ‘영혼()’을 얻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몸이 다시 부활하여 몸과 영이 온전한 상태의 나라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영이 하나 되는 교통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육체에서 있는 대로 드러나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영의 나라임을 교훈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나라가 오기 전에 우리에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십니다. 바로 ‘인내(~아래에서 머물다)’ 안에 있어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주변 환경에 미혹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주님이 지혜와 능력으로 세우시는 믿음 아래 굳건하게 머무르는 것을 ‘인내’라고 합니다. 즉 인내는 ‘무엇을 참는다’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아래 흔들리지 않고 머무른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위 뒤편에서 고개를 날개 안에 넣고 잠든 갈매기처럼,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인내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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